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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이란 무엇인가
김경용 지음 / 민음사 / 1994년 5월
평점 :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무렵, 나는 대학원에서 문체론과 문학이론 강의를 듣고 있었다. 여러 기호학자들의 이름을 눈동냥으로 알고 있었고, 에코의 <기호학 이론>(영역)도 읽어봤기 때문에 기호학이 낯설지 않았는데(에코의 책은 결코 입문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기호학 입문서, 혹은 교재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었다. 번역서 가운데, 테렌스 혹스의 <구조주의와 기호학>은 입문서로서는 그 중 낫지 않을까라는 게 혼자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그럴 듯한 입문서가 나왔고, 게다가 제법 재미가 있었다. 그것이 <기호학이란 무엇인가>였다.
하지만, 모든 교재에 유효기간이 있듯이, 이 책에 대한 흥미도 곧 가셔버렸는데, 뭔가 흥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만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 친구가 책을 빌려가서 반납하지 않았어도 구태여 되찾으려고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호학을 '사용'할 일이 생겨서 다시 이 책을 구입했는데, 어느새 12쇄를 찍고 있었다. 어느 서평에서 이 분야의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소개한 걸 보면, 이 분야의 다른 책들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가(!)를 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문서로서 말이 좀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 기호학의 요모조모에 대해서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미국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기호학을 가르친다는 저자의 배경 탓인지 다루어지는 소재와 텍스트들이 우리 주변의 것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이를테면, 번역서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에 탄력이 붙지만, 우리에게 낯선 텍스트들의 분석은 어느 정도 재미를 반감시킨다. 참고문헌에 한국어 논저가 한 권도 들어가 있지 않은 것도 그렇고. 따라서 기호학 입문서이긴 하지만, 한국 문학과 문화를 기호학적으로 읽어내는 데는 그다지 친절한 안내서는 아닌 듯싶다.
근래에 존 피스크가 쓴 <커뮤니케이션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이 책의 절반 이상이 기호학에 관한 내용이다) 잘 쓴 교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강한 암시와 자극을 받았다. 아마도 이 책과 보완적으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국 문화를 텍스트로 한 기호학 입문서는 언제쯤 읽어볼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을 아직은 놓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