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의 '3인 1책 전격수다'를 오랜만에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503165522§ion=04 참조). 어린이날에 맞춰 고른 책이 <그림 형제 민담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현암사, 2012)이고, 같이 읽은 책이 오이겐 드레버만의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심리 읽기>(교양인, 2013)이었다. 드레버만의 네 편의 동화를 아주 자세히 읽어낸다. 국내 저자의 해설서로는 이혜정의 <그림형제 독일민담>(뮤진트리, 2010)가 있는데, 74편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많은 작품을 다루는 대신에 아무래도 밀도는 약할 듯싶다. '어린이날 특집' 수다라고는 했지만, 어른이 돼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무의식을 다룬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기에 <그림 형제 민담집> 역시 '다시 읽기' 거리다.

 

 

 

프레시안(13. 05. 04) 아빠가 딸의 손목 자른 이유? 핏빛 동화는 현재진행형!

 

(...)

 

이권우 : 오늘 우리가 얘기할 책에는 그림 형제 '동화책'이 아니라 <그림 형제 민담집>이라는 제목이 붙었지요. 역자 김경연 선생님은 독문학 전공자 중에서도 특이하게 아동‧청소년 분야를 전공하셨습니다. 이번에 완전판으로 번역을 하셨는데, 부제에서부터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라고 못을 박았지요. 아동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이야기책이라는 점에서도 저는 아주 반갑게 읽어봤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이야기와 원본의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다들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김용언 : '옮긴이의 말'에 핵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16쪽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독일어의 '메르헨(Märchen)'을 동화로 옮기는데, 메르헨은 어원상 '이야기'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 형제의 메르헨은 작가를 알 수 없이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즉 폴크스메르헨(Volksmärchen)을 수집하여 다듬어 낸 것이다."

왜 '동화'가 아닌 '민담'이라고 쓰는 게 맞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가 근대 독일 문학의 원류가 됐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게, 다른 작가는 차치하고서라도 E. T. A. 호프만의 소설을 읽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호프만의 소설은 그림 형제 이야기에서 굉장히 많은 원형을 가져왔고, 그걸 좀 더 과장하고 괴기스럽게 변형한 버전이니까요. 게다가 어제 <그림 형제 민담집>을 읽은 다음 안데르센의 동화도 펼쳐 봤는데, 거의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림 형제가 채집한 민담이 독일만의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집단적인 이야기였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현우 : 이번에 <그림 형제 민담집>을 읽으면서, 2012년이 그림 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초판본 출간 200주년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림 형제 민담집>은 1857년 최종판(7판)을 원본으로 하되, 최종판에 수록되지 않은 모든 이야기들까지 합해 완역본 개념으로 만들었더라고요. 동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이렇게 정본 역할을 할 만한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그림 형제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었는데…(웃음) 흔히 아는 주요 작품들이 이 완역본에선 1/4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세 번째로는 이야기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아이들 용으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고 심지어 가이드북이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권우 :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그림 형제 동화가 얼마나 순화된 버전이었는지 새삼스럽더라고요. 그 많은 중요한 내용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바꾼 이유 역시 중요한 연구 대상 아닐까요. 어떤 문화적 환경 속에서 그림 형제의 원본을 훼손해서 들려줬을까 하는 지점들이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200편이 넘는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들끼리의 관련성이 보이지요. 그 모티브가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면, 융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림 형제로부터 보편적 무의식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싶어했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전 어릴 때부터 익숙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죽 읽었는데요. 이현우 선생님도 앞서 얘기했다시피 가이드북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펴냄)이 좋은 예지요.

 

먼저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는 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에요. 내용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림 형제 이야기 중 '재투성이 아셴푸텔', '장미 공주', '라푼첼', '영리한 엘제' 네 편을 분석하면서 여성 심리 체계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쳐요. 저자가 실제로 심리 상담을 진행한 예를 함께 얘기하는데, 민담과 현실의 예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결국 동화가 아닌 민담이란 말이 맞는 겁니다. 전래됐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의 동의를 얻었다는 뜻이므로, 그림 형제 이야기는 집단 무의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읽으면서 거꾸로 <그림 형제 민담집>의 위대함을 알게 됐다고 할까요.

 

이현우 : 저도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를 보면서 단 네 편만으로도 이토록 정밀하고 다양하게 분석해놓아서 좀 놀랐습니다. 대학원에서도, 특히 문학 전공자들에게 이런 민담이 좋은 분석 텍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각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반복적인 모티브는 주로 가정의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됩니다.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매우 보편적인 요소인데, 이 이야기들을 분석하면서 자기분석 또한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죠. 전래 동화를 대하는 시각이나 태도 자체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권우 : 그림 형제 이야기가 다양한 인문적 사유로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저작으로는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신화에서 역사로>(주경철 지음, 산처럼 펴냄)도 추천합니다. 그럼 각자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얘기해볼까요.

 

 

살인 사건부터 남편과의 결별까지

김용언 :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이야기가 '노래하는 뼈다귀'입니다. 일반적인 동화 카테고리는 아니고, 일종의 도덕극이라고 해야 하나…. 질투심 많은 형이 동생을 물에 빠뜨려 죽인 다음 동생의 공로를 가로채지요. 하지만 몇 년 뒤 어떤 목동이 동생의 뼈다귀를 발견하자, 그 뼈가 형의 악행을 폭로하는 노래를 시작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읽기엔 끔찍한 내용입니다. 존속 살인에다가 유령이 나타서 보복하는 얘기니까요.

 

'노래하는 뼈다귀'를 읽고 딱 떠올랐던 게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였어요.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시체를 마루에 묻었는데, 경찰이 집 안에 들어오자 결국 시체의 심장 박동 소리에 시달리다 살인죄를 자백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이 '노래하는 뼈다귀'가 아니었나 싶은 겁니다. 재미있는 건 보통 아시아 쪽 전래동화에는 문자 그대로의 귀신이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여기서는 신체의 일부가, '신체 없는 기관'이 전체로 기능하면서 보복한다는 차이점이 흥미로웠어요.

 

두 번째로는 '파란 등잔불'이라는 작품인데요. 어제 제가 <안데르센 동화집>(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을 들춰봤을 때 '부시통'이라는 동화가 있었어요. '파란 등잔불'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도 그 동화 읽으면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 재독하면서는 끔찍하기까지 했어요. 그림 형제 버전에서는 병사가 몽유 상태의 공주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서 하녀로 부리며 학대하고, 안데르센 버전에서는 매일밤 몽유 상태의 공주의 뺨에 키스하지요. 큰 틀 자체는 영리한 병사가 못된 왕을 이긴다는 줄거리지만, 그 영리함을 무기로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를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이 서브 내러티브가 제게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림 형제 민담집>의 또 다른 이야기 '닳아빠진 구두'의 경우엔 자진해서 지하 세계로 내려가 남자들과 밤새도록, 구두가 닳아 없어질 만큼 춤을 추는 공주들이 나오는데요. 이럴 경우에도 결국 '영리한' 남자가 그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한 공주들이 벌을 받게 됩니다.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되는 민담들은 정말 조심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이권우 :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가 바로 그런 여성의 착취 문제를 다뤄요. 특히 '영리한 엘제' 이야기를 분석하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영리한 엘제'라고 불리면서 성장한 엘제가 한스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곡식을 베러 들판에 나갔다가 일은 안하고 잠을 자버리죠. 그걸 본 한스가 엘제 주변에 종을 단 그물을 씌워버리고요. 저자 오이겐 드레버만에 따르면, '영리한 엘제'는 아버지의 통제라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영리한 척 굴며 자란 여성이 또다시 아버지와 닮은 남성과 결혼하고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광인으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심리적 파국의 드라마에요.

 

그림 형제 이야기에는 대부분 비약이 존재합니다. 어느 부분에 이르면 이야기가 탁탁 튀거든요. 그게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 심리의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비약이나 도약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다른 민담과도 관련지어 살펴봐야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립니다.

 

오이겐 드레버만은 그림 형제 이야기를 통해 분석한 여성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해답도 줘요. 성숙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이해와 사랑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많은 민담들이 결혼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모험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 결혼에 이르는 주된 내러티브가, 심리적인 성숙을 위한 사랑의 반려자를 찾는 과정이라는 거지요.

 

이현우 : '영리한 엘제'의 마지막이 아주 재밌어요. 방울 달린 그물을 쓴 엘제가 "난 나일까, 아닐까?"라고 헛갈리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스에게 "안에 엘제 있어요?"라고 물어보자 한스는 시침 뚝 떼고 "엘제는 안에 있소"라고 답하죠. 그러자 엘제는 "오 하느님, 그럼 난 내가 아니구나"라며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여느 동화에는 이런 파격적인 결말이 없죠. 보통은 문제가 해결되면서 해피엔딩이 찾아오지만, 여기선 엘제가 떠나 버립니다. 이것 역시 동화의 관례라고 가정한다면 엘제의 떠남 역시 해피엔딩으로 읽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묘해지죠. 엘제가 부모나 남편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찾았구나, '영리한 엘제'라는 정체성에서 해방됨으로써 그 자유를 찾았다고 해석해야 하는 겁니다. 오늘날 시각에서 봤을 때에도 아주 도발적인 결말입니다.

 

김용언 : 그 마지막 장면에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났습니다.(웃음) 자꾸 자신의 키가 줄었다 커졌다 하자 혼란에 빠진 앨리스가, "넌 누구냐?"라는 쐐기의 질문에 "글쎄요, 선생님. 지금 현재는 저도 모르겠군요. 오늘 아침 제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제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뭔가 여러 번 변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누군지 도대체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는 그 장면이요. '나'라는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시작되는 혼란이 어린 시절과의 작별이라고 한다면, 저 역시 '영리한 엘제'가 해피엔딩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시는 부모님이나 남편의 믿음에 그대로 부응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니까요.

 

(...)

 

13.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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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24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급하게 써보낸 원고인데,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어크로스, 2013)를 다뤘다. 언젠가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2009)도 다룬 적이 있기에 나로선 구면이다(<안티조선 운동사>(텍스트, 2010)는 읽지 않았지만 데뷔작인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텍스트, 2009)를 읽은지라 왠지 친숙하다). 20대 담론이 이슈가 되면서 호명된 논객/필자군(한윤형을 비롯해 노정태, 김현진, 김민하, 조연호, 박가분 등)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듯싶다.

 

 

 

주간경향(13. 05. 07) 잉여세대의 문제는 시대의 문제다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자칭 ‘청년논객 한윤형의 잉여탐구생활’이다.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는 세대의 자화상과 세대의식, 사회적 열패감과 무기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정치의식과 사회비평을 두루 담았다. 저자는 “군대를 다소 늦게 다녀온 25살 청년이 31살이 되는 동안 사적인 공간과 담론의 영역에서 어떻게 분투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하면서 야심도 털어놓았다. “또래에게는 위안을 주고, 다른 세대에겐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봐야 하는 책이 되면 좋겠다”는 야심이다. 어떤 위안을 건네고, 어떤 이해를 돕고자 하는가.

전체적인 골자는 세대 문제가 결국은 시대의 문제라는 점이다. 잉여세대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시대를 반영하는 어떤 세대의 문제’일 뿐이다. 특정 세대가 뒤집어쓸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2007)가 세대간 착취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켰지만, 한윤형이 보기에 “세대 담론은 계급문제가 철저하게 정치에서 배제된 결과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담론이다. 게다가 <88만원 세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건 ‘원래부터 88만원 정도를 벌었던 젊은이들’의 관심이 아니라 그런 빈곤층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중간계급의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88만원 세대 담론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쪽은 명문대생들이었다(루저들의 정서를 잘 표현한 노래 ‘싸구려 커피’를 부른 가수 장기하가 명문대 출신인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계급 불평등의 세대 전이’가 ‘88만원 세대 담론’의 성공 요인이었다.

중산층의 불안심리 내지는 중간계급의 욕망과 결부돼 있는 세대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 문제와 직결된다. 저자가 간추린 바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해서 자산을 축적했고, 그와 함께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 기업 활동에 투자돼야 할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자연스레 기업 경쟁력은 떨어졌고, 이를 보충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이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한 젊은 세대의 임금을 낮추는 것이었다.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춘 것이 한국식 자본주의의 운용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중산층 자신의 자녀가 월급으론 독립을 꿈꿀 수 없는 사회다. 이 ‘멋진 신세계’에선 부모가 몇억원 보태주지 않으면 전셋집 하나 장만하기도 어려워 어지간한 청춘들은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로 전락한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외면한 멘토 담론은 아무리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 공허는 잉여세대를 근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386세대의 위선과도 맞닿아 있다. 가령 교육문제를 보더라도 386세대에게선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 자기 아이를 외국이나 대안학교에 보내는 일이 양립 가능하다. 우파가 자식을 미국으로 보낼 때 소위 좌파는 독일이나 핀란드로 보내는 것 정도의 차이다. ‘결국 다 똑같다’는 냉소는 그래서 나온다.

물론 냉소가 우리를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창의성을 말살하는 값싸고 질 나쁜 공교육’을 그대로 받아내는 것이 오히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일은 아닐까라는 저자의 반문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제안은 진보담론이나 개혁정책이 실효적 의미를 갖기 위해선 한국 사회의 제도와 문화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에 대한 매우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학생의 85%가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동류의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건 계급간 연대의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 문제다. ‘루저’와 ‘잉여’를 양산해내는 사회체제와 경제구조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가능할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우리’를 발견하고 눈짓을 교환할 때 균열은 시작된다.

 

13.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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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금요일 저녁에는 부산 인디고서원의 청년 인문학 동아리 '인빅터스'의 초청을 받아 인디고 청소년들과의 만남 행사를 갖는다(모임공지는 http://www.indigoground.net/jBoard/view.html?bcode=indigo_23&no=854&page=1 참조).

 

 

시간: 4월 26일 금요일 저녁 6시~8시

장소: 에코토피아 옆 건물 3층 '아람샘-b612' 교실

행사는 30분간의 강연과 1시간 30분 동안의 질의웅답으로 이루어질 예정인데, 주로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등의 책이 화제가 될 예정이다. 부산에 계시는 분들 가운데 혹 관심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시길. 개인적으로는 인디고서원에 처음 방문하게 돼 기대가 크다...

 

13. 04. 25.

 

 

P.S. 인디고서원 얘기가 나온 김에 인디고 청소년들이 만드는 잡지 계간 <인디고잉>의 최근호들도 링크해놓는다. 어느새 38호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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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고전 강좌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5월에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기로 했다. 재작년에 박종현 선생의 번역본 <국가>(서광사, 2005)를 교재로 읽은 적이 있고, 이번에는 천병희 선생의 번역본 <국가>(숲, 2013)으로 읽으려고 한다. 강의 소개와 일정은 아래와 같다(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91).  

 

 

국가와 권력을 만들어온 인간사회는 그에 대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책들의 원조이자 ‘이상국가’ 문헌의 원조인 플라톤의 <국가>를 로쟈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함께 읽습니다. 이 책은 주로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정의에 관하여’란 부제가 붙여지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동굴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동굴의 비유’와 <반지의 제왕>이 영감을 얻은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기도 하죠.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시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의에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5월 3일 ~ 5월 31일 (4주)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 9시 30분(17일은 공휴일)
교재: 플라톤 <국가>, 천병희 옮김, 숲, 2013.

 

13.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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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17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인권이다. 관련서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에 한정했다. 물론 그래도 다 카바할 수는 없지만(안경환 교수의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 2013)도 언급했지만 분량상 지면에서는 빠졌다)... 

 

 

 

책&(13년 4월호) 인권,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인권에 대한 정의다. 당연한 권리이기에 인권만큼 자명한 것도 없는 듯싶지만, ‘인간’과 ‘권리’의 결합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라곤 하지만 인권은 저절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자각과 오랜 투쟁의 산물이다. 인권에 관한 책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겠다. 이달에는 적잖은 인권 관련서들 가운데 주로 최근에 나온 책들을 일람해보도록 한다. 인권에 관한 책 읽기가 인권지수를 바로 올려주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지수준은 높여줄 것이다.


먼저 인권에 관한 이론서로는 벨덴 필즈의 <인권,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권리>(모티브북, 2013)를 손에 들 만하다. 정치학자이면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온 저자가 인권 관념의 탄생 과정과 그 다양한 쟁점, 그리고 미래의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권에 관한 이모저모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인권이라는 관념은 17-18세기 서양에서 최초로 다듬어졌고, 이 관념에 철학적 형태를 부여한 최초의 철학자는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는 모든 인간이 자기 생명에 대해 절대적이면서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삶이 “불쾌하고 잔혹하며 짧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인권의 역사도 아주 짧다.


벨덴 필즈의 인권론에서 독특한 것은 인권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을 제안한다는 점인데, 대전제는 모든 인간이 발전의 잠재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잠재력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구조 안에서 촉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억제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그런 경우 억압적인 지배에 맞서는 저항 또는 반란은 필연적이며 이는 새로운 구조와 제도, 관행을 지향하는 투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인권의 핵심 가치는 그래서 투쟁 자체에서 나온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구호를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인권을 위한 투쟁은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는 권리투쟁이며, 이 권리의 주체는 개인일 수도 있지만 집단이나 기구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인권이론의 윤곽이 문화간 차이를 넘어서, 심지어는 ‘인권’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인권에 대한 이론학습에 이어서 읽어볼 만한 책은 독일의 르포기자 귄터 발라프의 잠입 취재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알마, 2012)다. 그는 사십대 나이에 아주 짙은 색상의 콘택트렌즈를 끼고 검은색 부분 가발을 쓰고서 서른 살 가량의 터키 노동자로 변장하고서 이주 노동자의 용역노동 현장에 잠입한다. 간단한 변장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는 단번에 ‘소외되고 천대받는 소수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체험한다. 그가 겪은 멸시와 적대감, 그리고 증오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저자의 르포는 출간되자마자 독일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용역노동의 실상이 폭로되자 수천 건의 형사소송이 진행되었고 현장의 노동조건은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더불어 독일인과 터키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다양한 접촉이 시도되었다. 한권의 책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서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들이 눈에 띈다. ‘영화 속 인권 이야기’를 다룬 <별별차별>(씨네21북스, 2012)은 지난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의 후원으로 제작된 인권영화들을 같이 보고 나눈 이야기들을 담았다. 아홉 가지의 인권주제가 토론감이 됐는데, 소수자 인권,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 장애인 인권, 인종차별, 여성 인권, 탈북자 인권, 어린이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일례로 <신비한 영어나라>에서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짜리 종우가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는 명목으로 부모의 강요에 따라 혀 밑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는다. 종우는 부모에게 수술이 싫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아이의 의사에 반한 성형수술은 인권 침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권 감수성이 키워질 수 있겠다.

 

 

 

물론 영화만 인권 감수성 신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만화가 10인의 인권만화 <어깨동무>(창비, 2013)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인데, 인권의 개념과 역사, 세계인권선언의 탄생과정을 그린 만화부터 노동 현장과 학교 안팎의 인권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권 이슈들을 만화가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그림에 담았다.  


덧붙여, 인권기구에서 일한 분들의 경험담도 인권 문제의 현황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참고가 되겠다. 초대 인권대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박경서의 <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북로그컴퍼니, 2012)는 수양딸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서 세계 각지의 인권 현실과 우리가 인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을 이야기한다. 

 

13.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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