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17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인권이다. 관련서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에 한정했다. 물론 그래도 다 카바할 수는 없지만(안경환 교수의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 2013)도 언급했지만 분량상 지면에서는 빠졌다)...
책&(13년 4월호) 인권,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인권에 대한 정의다. 당연한 권리이기에 인권만큼 자명한 것도 없는 듯싶지만, ‘인간’과 ‘권리’의 결합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라곤 하지만 인권은 저절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자각과 오랜 투쟁의 산물이다. 인권에 관한 책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겠다. 이달에는 적잖은 인권 관련서들 가운데 주로 최근에 나온 책들을 일람해보도록 한다. 인권에 관한 책 읽기가 인권지수를 바로 올려주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권문제에 대한 인지수준은 높여줄 것이다.
먼저 인권에 관한 이론서로는 벨덴 필즈의 <인권,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권리>(모티브북, 2013)를 손에 들 만하다. 정치학자이면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온 저자가 인권 관념의 탄생 과정과 그 다양한 쟁점, 그리고 미래의 인권에 이르기까지 인권에 관한 이모저모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인권이라는 관념은 17-18세기 서양에서 최초로 다듬어졌고, 이 관념에 철학적 형태를 부여한 최초의 철학자는 <리바이어던>의 저자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는 모든 인간이 자기 생명에 대해 절대적이면서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삶이 “불쾌하고 잔혹하며 짧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인권의 역사도 아주 짧다.
벨덴 필즈의 인권론에서 독특한 것은 인권에 대한 전체론적 접근을 제안한다는 점인데, 대전제는 모든 인간이 발전의 잠재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잠재력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구조 안에서 촉진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각자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억제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그런 경우 억압적인 지배에 맞서는 저항 또는 반란은 필연적이며 이는 새로운 구조와 제도, 관행을 지향하는 투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인권의 핵심 가치는 그래서 투쟁 자체에서 나온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구호를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인권을 위한 투쟁은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는 권리투쟁이며, 이 권리의 주체는 개인일 수도 있지만 집단이나 기구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인권이론의 윤곽이 문화간 차이를 넘어서, 심지어는 ‘인권’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인권에 대한 이론학습에 이어서 읽어볼 만한 책은 독일의 르포기자 귄터 발라프의 잠입 취재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알마, 2012)다. 그는 사십대 나이에 아주 짙은 색상의 콘택트렌즈를 끼고 검은색 부분 가발을 쓰고서 서른 살 가량의 터키 노동자로 변장하고서 이주 노동자의 용역노동 현장에 잠입한다. 간단한 변장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는 단번에 ‘소외되고 천대받는 소수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체험한다. 그가 겪은 멸시와 적대감, 그리고 증오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저자의 르포는 출간되자마자 독일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용역노동의 실상이 폭로되자 수천 건의 형사소송이 진행되었고 현장의 노동조건은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더불어 독일인과 터키인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다양한 접촉이 시도되었다. 한권의 책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서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들이 눈에 띈다. ‘영화 속 인권 이야기’를 다룬 <별별차별>(씨네21북스, 2012)은 지난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의 후원으로 제작된 인권영화들을 같이 보고 나눈 이야기들을 담았다. 아홉 가지의 인권주제가 토론감이 됐는데, 소수자 인권,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 장애인 인권, 인종차별, 여성 인권, 탈북자 인권, 어린이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일례로 <신비한 영어나라>에서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짜리 종우가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는 명목으로 부모의 강요에 따라 혀 밑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는다. 종우는 부모에게 수술이 싫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아이의 의사에 반한 성형수술은 인권 침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권 감수성이 키워질 수 있겠다.
물론 영화만 인권 감수성 신장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만화가 10인의 인권만화 <어깨동무>(창비, 2013)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인데, 인권의 개념과 역사, 세계인권선언의 탄생과정을 그린 만화부터 노동 현장과 학교 안팎의 인권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권 이슈들을 만화가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그림에 담았다.
덧붙여, 인권기구에서 일한 분들의 경험담도 인권 문제의 현황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참고가 되겠다. 초대 인권대사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박경서의 <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북로그컴퍼니, 2012)는 수양딸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서 세계 각지의 인권 현실과 우리가 인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을 이야기한다.
13. 0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