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3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여행' 기분은 잠시 내본다고 프랑스 저자들의 <여행 정신>(책세상, 2013)을 읽고 적었다. 여전히 '여행을 떠나는 자'보다는 '여행을 생각하는 자' 축에 속하지만, '여행 정신'만은 미리 챙겨놓을 수 있을 터이다. <여행정신>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생각하는 자'도 읽어볼 만한 여행서로는 <여행자의 독서>도 손에 들 만하다. 독서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도 독서광들의 고질이라면 고질이겠다... 

 

 

 

주간경향(13. 07. 30) '세계'란 책을 읽고 싶다면 떠나라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만 계절은 여름이고 날은 무덥다. 며칠이라도 휴가를 꿈꾸는 건 자연스럽다. 그 휴가가 제값의 의미를 갖는 건 보통 여행계획으로 꾸려질 때다. 단, 모두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두 부류가 생긴다. 여행을 떠나는 자와 여행을 생각하는 자. 장 피에르 나디르와 도미니크 외드가 쓴 <여행 정신>(책세상)의 미덕은 이 두 부류에게 모두 효용이 닿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여행 전문가. 직업적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에 대한 식견이 안 생길 리 없다. 특이한 건 그걸 풀어놓는 방식이다. A로 시작되는 ‘Ailleurs(다른 곳)’에서 Z로 시작하는 탄자니아의 ‘Zanzibar(잔지바르)’까지 250개의 여행어를 표제어로 선정해 사전 형식으로 구성했다. ‘여행어 사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떤 의도를 갖는가? “이 새로운 안내서는 여행자의 눈에 쓰인 콩깍지를 벗겨내면서도 여행이 지닌 메마르지 않는 아름다움을 열렬히 예찬”하고자 한다. 거기에 여행에 관한 유명한 경구들도 얹었다.

 

대체 여행은 왜 하는가? 프랑스 작가 외제 다비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곧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읽는 행위다. 특이한 건 세계라는 책이 정해진 순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유컨대 이 책은 에피소드나 장면들의 카드로 구성돼 있다. 독서는 그러한 카드에 순서를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여정은 여행자 각자가 세계라는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저자들이 제공하는 것은 그 이야기에 필요한 상용어 해제라고 할까.

 

'사전'이라고 해서 객관적인 정보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전에 용례가 있다면 '여행어 사전'의 바탕은 체험담이다. 악명 높은 부다페스트 전차 12호선에 탑승했다가 열두어 명의 펑크족과 만나 잔뜩 긴장했던 경험을 소개하는 식이다. 한 노부인이 객차로 들어서길래 저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지만, 실제로 벌어진 건 열두 명의 패거리가 하나같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듯 의외의 일들과 맞딱뜨리게 되는 게 여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프랑스 비평가 이폴리트 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여행을 떠나려면 물론 여행이 가능해야 한다. 알다시피 여행안내서의 세계지도에는 여행금지 지역 내지는 위험지역이 표시돼 있다. 프랑스에서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알바니아라고 하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에는 이 지역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북한도 거명하면서 "언제쯤 우리를 맞아들여 저 미지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게 해줄까?"라고 언급한 대목은 프랑스 저자들의 시각임에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우리에겐 여행 금지지역인 현실 말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멀리 가까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여행에 대해서 생각만 할뿐인 사람들에게도 한번쯤 <여행 정신>을 뒤적이며 각자의 여행 사전을 구성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런 여행예찬론과 마주하다 보면 엉덩이가 조금은 들썩일 만도 하다.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알퐁스 드 라마르틴)

 

13.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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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0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서평을 쓴 것도 잊어먹고 있었다. 장 지글러의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갈라파고스, 2013)를 읽고 쓴 것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쓰인 것이니 '장 지글러의 기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사IN(13. 07.16) 부패의 성소 스위스 은행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이 <뉴스타파>를 통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소문만 무성하던 ‘검은돈’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게 될지, 그래서 ‘지하경제 양성화’의 전기가 마련될지 궁금하다. 물론 버진아일랜드에 한국인이 은닉한 재산이 드러난다고 해도 전모가 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듯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가 밝혀지기 전에는 말이다. ‘조세피난처의 원조’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있는 스위스 은행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때마침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출간돼 단숨에 읽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뉴시스</font></div>6월3일 <뉴스타파>가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같은 베스트셀러 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장 지글러의 <왜 검은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갈라파고스)는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간 얘기’를 다룬 건 아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적은 바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스위스는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세 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2013년 현재에도 전 세계 역외 재산의 3분의 1 이상이 스위스 은행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니 놀랄 만한 수준이다. 인간이 거주하는 면적의 불과 0.15%를 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0.03%가 사는 이 작은 나라가 1990년 기준으로 세계 2위 금융시장, 세계 1위 금시장, 세계 1위 재보험시장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엄청난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은 그들이 합법적 거래를 통해 오가는 깨끗한 돈뿐 아니라 회색 돈과 검은돈까지 다룬다는 데 있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검은돈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해마다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받아들여 은닉하고 ‘세탁하며’ 재투자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1934년에 제정된 은행비밀법 때문이다. 마약조직의 범죄 자금부터 부패한 권력자들의 불법 정치자금까지 온갖 검은돈이 스위스 은행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조국의 배신자’ 욕 먹으며 쓴 책
일례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일가가 크레디 스위스를 비롯한 스위스 은행 40여 곳에 예치한 돈은 무려 15억 달러(약 1조7120억원)에 달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국부를 국외로 유출하는 데는 복잡한 전략과 수완이 필요했는데, 마닐라에 파견돼 있던 스위스 은행가들은 1968년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독재자의 장물을 빼돌리는 데 매달려야 했다. 아예 자금 이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마르코스는 1978년부터 크레디 스위스의 간부를 취리히 주재 필리핀 영사로 임명했다고까지 하니 뻔뻔함의 극치다. 바로 이런 일을 합작해온 게 스위스 은행의 맨얼굴이다.

탐사 저널리즘을 방불케 하는 저자의 ‘보고서’를 채운 정서는 통탄과 분노다. 연방 법무부에서 일하며 자금세탁방지 법안을 준비하던 법률가가 자금 세탁으로 악명 높은 은행의 법률 자문으로 취업하는 게 스위스의 현실이라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이었던 저자는 이 책으로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의원의 면책특권을 박탈당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민의식의 봉기와 항거를 말하는 그의 분노는 쩌렁쩌렁하다. “시민의식의 봉기는 스위스 은행 비밀이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대번에 쓸어버릴 것이다.”

 

13.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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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실린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토마스 프랭크의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어마마마, 2013)을 골라서 썼다. '비즈니스 우파'에 대한 매우 강력한 비판을 제시한 책이다. 분량상 책을 읽으며 느낀 기시감까지 적지는 못했다. 스케일만 좀 다를 뿐 우리도 지난 정권에서 '비즈니스 우파'의 탄생을 목도했으니까...

 

 

 

중앙일보(13. 07. 13) 무능력해도, 부패해도, 낭비해도 결국 우파가 이기는 이유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가 쓴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전작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와 이어진다. 이 세 권은 미국 우파에 대한 조밀한 분석과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는 ‘우파 해부 3부작’이라고 부름직하다. 원제는 ‘난파선의 선원’(The Wrecking Crew)으로 자신이 만든 정부를 스스로 파괴하는 보수주의자를 일컫는 비유다. 이 선원들이 바로 ‘비즈니스 우파’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가 온갖 뇌물 혐의로 구속되는 건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다. 부패는 왜 발생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정치가 곧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금권정치, 부에 의한 정부로 변화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가 비즈니스라면 어떤 정부가 탄생하는가. 시장에 기반한 약탈적 정부의 견본적 사례가 조지 W 부시 시절 이라크의 미군정이었다.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미국은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시장의 유토피아’를 재건할 기회를 얻는다. 아예 최고행정관으로 부임한 미국의 ‘총독’ 폴 브레머는 “이라크는 비즈니스를 위해 활짝 열려 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라크 재건사업은 ‘자본주의의 꿈’이었고 “아웃소싱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웃소싱됐다.”

기업들이 미국 당국으로부터 계약을 따내면 기업은 하청을 주고 하청업체는 재하청을 주는 식으로 거대한 수익의 사슬이 만들어졌다. 고깃덩어리는 꼭대기 기업들이 챙기고, 노예수준의 노동을 맡은 인도·파키스탄의 노동자들이 밑바닥에서 부스러기를 얻어먹었다.

미국에서의 비즈니스 정치는 물론 이라크에서만큼 손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자유시장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미국 우파는 나름대로 유력한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그것은 주로 감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적자 지출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케인스적 발상이고 진보진영의 전략이지만 우파는 그것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일종의 ‘정부 공격’으로 그들은 의도적으로 재정을 거덜내고자 했다. 민주당 정부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엄청난 재정 적자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런 바보 같은 재정 낭비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면 오히려 금상첨화다. 정치적 냉소주의는 언제나 우파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곧 “한없이 무능력해도 승리하는 것이고, 마음껏 부패를 저질러도 승리하는 것이고, 실컷 낭비해도 승리하는 것”이 비즈니스 우파가 만들어놓은 게임판이다. 설사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승리는 우파의 몫이 된다고 할까.

비즈니스 우파의 시대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우파 냉소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들이 세상에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3. 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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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20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 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로 고른 건 '빅히스토리'다. 신시아 브라운과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책들이 번역돼 나온 게 계기인데, '지구사 시리즈'도 같은 범주로 묶었다...

 

 

 

책&(13년 7월호) 지구 역사의 퍼즐 맞추기

 

“빅히스토리를 공부하면서 왜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이런 공부를 하지 못했는지 안타까울 정도였다. 만약 그랬다면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빅히스토리에 예찬론자 빌 게이츠의 말이다. 역사학의 새로운 조류로 등장한 빅히스토리(Big History)는 무엇이고 이 ‘거대사’는 어째서 흥미를 끄는가. 여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이야기와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빅히스토리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려고 한다. 물론 국내에 소개된 몇 권의 책을 길잡이삼아서 떠나는 여정이다. 


빅히스토리가 어떤 것인지 적당한 규모로 간명하게 소개하는 책은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웅진지식하우스, 2013)다.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는 과학적 창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도 과학적 작업의 한 부분인 이상, 인간이 밝혀낸 이야기를 ‘과학’과 ‘역사’로 따로 구분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배운 역사학에서는 흔히 문자의 발명과 그 기록을 기준으로 역사와 선사 시대를 구분한다. 자연스레 역사의 범위가 지난 5000여 년으로 한정되는데, 따지고 보면 이는 지구 일생의 단지 100만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빅히스토리는 역사의 범위를 기록된 문서에 얽매이지 않고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와 자료를 활용해 최대한 확장한다.


그렇게 역사의 범위가 빅뱅까지 확장되면 역사를 보는 관점도 자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지구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과 인간의 행동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책의 숨어 있는 근본적인 주제라고 말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역사를 아주 큰 덩어리로 보고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의 역사 속에 포함하여 다루는 빅히스토리에서도 인간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은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생물 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인간의 양적인 증가’다. 수세기에 걸쳐 인간은 인구와 기대수명을 늘리기 위해 놀라운 기술력을 발휘해왔고, 2000년에 이르러서는 61억의 인구에 도달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500억에서 1000억의 인간 가운데 6%-12%에 해당한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16억에서 61억으로 늘어났는데, 이러한 증가는 말 그대로 ‘지구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시대에 이 실험이 의미를 공기와 삼림, 토양, 물, 방사능 등의 척도를 통해 기술한다. 빅히스토리적 시각이 갖는 특징이라 할 만하다.


빅히스토리에 대한 개관에 이어서 좀더 깊이 들어가고픈 독자라면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심산, 2013)를 선택할 수 있다. 먼저 소개된 <거대사>(서해문집, 2009)는 빅히스토리(거대사)를 아주 간략하고 쉽게 풀어쓴 책으로 <시간의 지도>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호주의 매콰리대학에서 처음으로 ‘빅히스토리’란 이름의 강좌를 개설해 그 용어를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그는 역사학도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통합 이야기’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표현을 빌리면 ‘통섭의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현재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빅히스토리야말로 학생들에게 과학과 인문학이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대단히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빅뱅 이후 최초 30만년의 이야기로 ‘시간의 지도’를 펼쳐놓지만 저자 역시 20세기 일어난 변화가 인류 역사의 모은 이전 시기에 일어난 변화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인간 사회는 20세기 초기부터 생물권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지속 가능한 한계를 넘어 살고 있다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빅히스토리의 공통적인 관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빅히스토리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약 40-50억 년쯤 뒤에는 태양이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고, 아주 먼 미래에는 우주가 다시금 평형상태로 접어들면서 황폐해질 것이다. 그러한 거시적 시야에서 인간을 바라봄으로써 빅히스토리는 우리를 좀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신시아 브라운, 두 저자의 책과 함께 ‘빅히스토리’란 명칭이 국내에 소개됐지만, 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글로벌 히스토리’, 곧 ‘지구사’란 이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빅히스토리처럼 빅뱅까지 포함하여 다루지는 않지만, 지구를 하나의 역사단위로 하여 전 지구적 역사를 다뤄야 한다는 관점으로 출간된 '지구사연구소 총서’(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는 이미 국내 빅히스토리 분야에서 유명하다.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거대사>와 <시간의 지도>도 이 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된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사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으로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역사>(혜안, 2008)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이 출간돼 있다.

 

13.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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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3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리더스북, 2013)을 읽고 쓴 것이다. 원제는 '낙관 편향'이지만, 망각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임희택의 <망각의 즐거움>(한빛비즈, 2013)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주간경향(13. 07. 16) 인간은 왜 무의식적 낙관주의자일까

 

‘당신은 낙관주의자입니까?’란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관주의란 말이 낙관주의의 짝으로 항상 붙어 다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낙관적이고, 또 어떤 사람은 비관적이라는 게 우리의 통념이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탈리 샤롯의 <설계된 망각>에 따르자면, 그러한 통념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낙관 편향’이란 원제가 말해주는 건 낙관적 편향이 우리의 진화적 본성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핵심 논지는 간명하다. 첫째, 우리가 대부분 낙관적이라는 것.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뇌는 미래에 대해 낙관적 편향을 갖고 있다. 부정적인 결과를 염려할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긍정적인 결과를 따지며 보내는 시간보다 적고, 패배나 가슴앓이를 걱정할 때도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런 편향을 갖는가? 그건 물론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들은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고 행복하며, 재정계획도 더 잘 짜고, 더 성공한다.” 진화과정에서 낙관주의가 선택됐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곧 낙관 편향의 진화는 우리의 건강과 진보의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두 번째 주장이다.

뇌과학자들이 보기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은 전두엽의 발달에 있다. 기억력과 사고력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이 전두엽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서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미래를 내다보고, 자기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자각 능력과 전망 능력은 생존에 이익이 되지만, 문제는 그 부작용이다. 우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가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예견은 고통과 공포의 원인이지 결코 낙관의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과정에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정신적 시간여행은 그릇된 믿음을 동반할 때만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은 긍정적 편향과 함께 발달해야 했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 종의 비범한 성취는 바로 의식적 전망과 낙관의 결합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낙관 편향이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한 건 아니다. 낙관주의에도 적정선이 있으며 과격한 낙관주의는 과도한 음주처럼 우리에게 오히려 유해하다. 일례로 한 설문에서 낙관주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 것으로 생각합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대개는 기대수명보다 2~3년쯤 더 길게 보았다. 이들을 이른바 ‘온건한 낙관주의자’라고 한다면 한편에는 20년쯤 과대평가한 ‘과격한 낙관주의자’도 있었다. 자기 수명을 과소평가한 ‘비관주의자’는 아주 소수였다.

이들의 행동은 어떤 차이를 보여줄까? 온건한 낙관주의자들은 더 오랜 시간 일했고, 더 나이가 든 뒤에 은퇴하길 원했으며, 더 많이 저축했고, 담배도 덜 피웠다. 반면에 과격한 낙관주의자들은 적게 일하고, 덜 저축하고, 담배는 더 많이 피웠다. 우리 앞의 장애물을 적당히 과소평가하는 온건한 낙관주의가 우리의 지배적 본성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엄밀히 말해 낙관 편향은 인지적 착각이다. 우리의 낙관적 믿음은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에 대한 시각을 개조한다. 이런 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인 망각까지도 설계했다. 미래에 불운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을 낮추고 결과적으론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어서다.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더 일찍 죽었다. 1000명의 건강한 사람들을 50년에 걸쳐 추적 연구한 결과라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 혹은 착각이 심지어는 돈도 더 많이 벌게 한다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은 알고보면 전혀 특이할 게 없다. 우리의 본성이 그러할 따름이다.

 

13.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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