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10월의 읽을 만한 책'이라고 꼽은 책 10권의 목록이 눈에 띈다. 기사는 아래와 같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는 올해 ‘10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조대리의 트렁크>(백가흠, 창비),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백승종, 푸른역사), <인간의 미래>(라메즈 남, 동아시아),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 2>(문명대 안휘준 외, 돌베개) 등 모두 10개 분야 10권을 선정, 발표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등 11명의 ‘좋은 책 선정위원’들이 뽑은 책은 이밖에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김서영, 은행나무), <대국 굴기>(왕지아펑 외, 크레듀), <나는 나를 베팅한다, 그리고 그 후>(김상경, 국일미디어), <위험한 생각들>(존 브룩만, 갤리온), <빅토르 위고의 유럽 방랑>(빅토르 위고, 작가정신), <밴드마녀와 빵공주>(김녹두 이지선, 한겨레출판) 등이다.
이 중에서 <나는 나를 베팅한다, 그리고 그 후>와 <밴드마녀와 빵공주>는 내가 처음 접하는 책이다. 아마도 분야가 자기계발과 아동서가 아닐까 싶다(평소에 내가 검색하지 않는 분야들이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나대로 '10월의 읽을 만한 책' 리스트를 꼽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11명이 모여서 회의하는 것보다 훨씬 덜 번거롭고 간결하게, 게다가 저렴하게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리스트를 뽑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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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문학쪽은 두 권이다. 모두 최근의 페이퍼들에서 다루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601982, http://blog.aladin.co.kr/mramor/1596181), 한국소설로는 김애란의 신작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 그리고 외국소설로는 미국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의 <팩토텀>(문학동네, 2007)을 꼽아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래도 페이퍼에서 다룬 책들에 먼저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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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쪽은 드디어 번역서가 출간된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 이미 <마르크스의 유령들>(한뜻, 1996)이라고 10년쯤 전에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데리다를 쫓아내는' 번역이었다. 이번에는 데리다에 관한 불량번역본들에 대한 서평을 쓰다가 아예 번역에 나섰다는 전공자의 번역이어서 믿음이 간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햄릿>도 자세히 읽은 데다가 러시아어판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몇 달전에 구해놓은지라 독서를 위한 만반의 준비는 돼 있다. 하지만 시간이 있으려나?..
그리고 또다른 철학서로 역시나 데리다급을 고른다. 들뢰즈의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이학사, 2007). 이 또한 지나번에 페이퍼로 다룬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1584851). 사실은 엊그제 올해 출간된 러시아어판 <안티 오이디푸스>를 데리다의 <산종>과 함께 배송받았고, 조금전에 그걸 들추면서 혼자 흡족해 하던 터였다(<안티 오이디푸스>의 새 번역본은 언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지는군).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뒤적이다가 여차하면 <안티 오이디푸스>로 빠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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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역사적인'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 있었지만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한 책은 내가 별로 읽어본 바가 없어 가장 최근에 나온 전상봉의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시대의창, 2007)에 대해서 '판단'하기 어렵다. 한국사회에 관한 책으론 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고르고 싶다. 한겨레의 '심야통신' 등을 묶은 서경식의 <시대를 건너는 법>(한겨레출판, 2007)과 '명랑좌파' 우석훈의 칼럼집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생각의나무, 2007)가 그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다. 별로 즐거운/즐거울 일이 없는 세태이지만 혹 '명랑하게 시대를 건너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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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학책으로는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생명의 편지>(사이언스북스, 2007)와 로렌 아이슬리의 <시간의 창공>(강, 2007)을 고른다. 윌슨의 책은 곧 나온다는 것인데, 보아하니 <생명의 다양성>(까치글방, 1995)과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다소 생소한 아이슬리는 고고학자인데, 정재승 교수의 평은 이렇다: "로렌 아이슬리는 뛰어난 인류학자이면서, 동시에 에머슨이나 소로에 비견되는 자연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존 던의 시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문장 곳곳에 가득 배어 있으면서도 브로노프스키의 '과학적 통찰력' 또한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시인의 재능을 가진 과학자'라 부른다." 기꺼이 읽어볼 만하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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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론서로는 일본 최초의 소설론이라는 쓰보유치 쇼요의 <소설신수>(고려대출판부, 2007). 근래에 주목한 만한 책들을 계속 내고 있는 고려대출판부의 일본학총서의 하나이다(고모리 요이치의 <무라카미 하루키론>(고려대출판부, 2007)도 역시나 같은 시리즈로 최근에 출간된 책이다). 기억에는 이광수도 탐독했던 책이며 최초의 근대 소설론이라고 할 '문학이란 何오'(1916)에서 언급됐던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지난 여름 새번역본이 나온 <소설의 이론>(문예출판사, 2007)도 같이 읽어볼 만하겠다. 단, 루카치 초심자라면 독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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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그의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격으로 씌어졌다(본격적인 도스토예프스키론은 끝내 씌어지지 않았지만). 바로 그 도스토예프스키의 최대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민음사, 2007)의 새로운 번역본이 지난주에 출간됐으며 10월의 필독 목록에 올려놓을 만하다('문학적 교양'을 위해서도 이 정도 작품은 읽어주자).
역자는 이미 <악령>(열린책들)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소설가 겸 러시아문학 전공자 김연경씨. 가장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떨지 궁금하다(각기 다른 번역본들은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각기 다른 음반들처럼 제각각의 음색과 흥취를 갖는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이달에 이 작품에 대한 강의도 해야 하기 때문에 비껴갈 수도 없긴 하다. '10월의 읽을 만한 책' 10권에다가 보너스로 (3권이나!) 덧붙여두는 이유이다...
07. 10.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