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바다'를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의 문서들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알다시피 얼마전 한겨레에 '인터넷 서평꾼'에 관한 기사가 난 바 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그 '아류' 기사도 떠 있는 게 보인다. '로쟈'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자료'로 옮겨놓는다(국제신문은 부산의 지역신문 아닌가?). 그래도 로쟈가 올려놓은 글 몇 개 정도는 읽어본 듯하여 반갑다.
국제신문(07. 01. 23) 정보바다의 등대 인터넷 서평꾼
로쟈! 누구더라? 고개를 갸웃 하실테죠. 책 좀 읽은 분들은 열혈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떠올리거나, 러시아 출신 귀화인 박노자를 연상하겠죠. '도덕경'을 쓴 노자(老子)와도 이름이 비슷하군요. 하지만 로쟈는 혁명가나 철학자가 아닌 '살인자'의 이름입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 로쟈라네요.
이 로쟈가 요즘 책림(冊林) 고수들이 득실하는 인터넷 서평계를 평정하고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 진상 확인을 위해 다음카페 '비평고원'에 들어가보니, 과연! 듣던대로더군요. '비평고원'에는 로쟈 외에도 폭주기관차, 소조(小鳥), 쌍수대인, 로카드 같은 고수들이 한 영역을 구축하고 일합들을 펼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로쟈는 단연 도드라집니다. 식견은 박사급이고(*박사에게 '박사급'은 뭔가?) 순발력은 전광석화급이며 필력은 기자들을 주눅들게 합니다.
로쟈가 다루는 책은 주로 인문 교양서로, 국내외 온·오프라인을 망라하고 신간 뿐만 아니라 관련서적까지 좍 펼쳐냅니다. 책 속의 오·탈자를 찍어내는 건 기본이고, 번역서의 촌스러움과 상스러움, 국내외 인문학계의 동향과 지평까지 훤히 꿰고 있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죠.
지난 19일 로쟈가 올린 '지젝이 추천하는 라캉 필독서'란 글을 잠깐 엿볼까요. '… 오늘 아마존에서 온 소포를 뜯어 보니 지젝의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007)가 들어 있다. 별로 크지 않은 포켓북이다. …라캉에 대해서라면 '에크리'와 '세미나'를 읽어야 한다. 지젝의 권고는 반드시 둘다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둘을 겹쳐서, 잇대서 읽어야 하다. 사위인 밀레르가 편집한 라캉의 '세미나'는 국내에 단 한 권도 출간돼 있지 않지만, 영어로는 1~2년의 터울을 두고 계속 번역되고 있다. 러시아어로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세미나7: 정신분석의 윤리'(2006)이다. …국내엔 몇 편의 글이 '욕망이론'(문예출판사·1994)으로 번역돼 있으나 불어본 '에크리' 이상으로 읽기 어렵다. 거기에 비하면 지젝은 얼마나 경쾌하며 이해하기 쉬운가!'
이런 식입니다. 식견과 정보 없이는 쓰기 어려운 글이죠. 신상 정보를 캐보니, 로쟈는 1999년부터 인터넷에 글을 썼고,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서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더군요. 누군가 그의 독서(도서)편력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더군요. "보수만 두둑이 준다면 앉은 자리에서 하루 종일 책 이름을 적어나갈 수 있다."

로쟈를 비롯한 인터넷 서평꾼들은 정보의 바다를 비춰주는 등대가 아닐까요. 전문가급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자신의 이름은 감춘 채, 지식 공유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으니까요. 이들 서평꾼은 책벌레겠지요. 책벌레라고 하니 실학자 이덕무가 떠오릅니다. 이덕무 역시 지독한 책벌레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불렀는데, 그 말을 들은 이덕무는 '옳거니'하고 그걸 자호로 삼아버렸죠. 이덕무의 독서벽(癖)은 로쟈 같은 인터넷 서평꾼들보다 한수 위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추운 겨울날 이덕무는 얼어죽을까봐 '논어'를 병풍 삼아 외풍을 막고, '한서'를 잇대어 이불처럼 덮고 잤다고 하지요.

후대의 사가들은 '간서치'를 조롱하기는 커녕 진정 인간이 되는 길을 걸었다고 평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바쳐 책을 읽고 쓰서 전한 웅혼한 독서 전통이 곧 오늘날 지식문명의 바탕이 되고 있으니까요. 인터넷 서평꾼들이 자기 영역에서 등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전통의 소산이 아닐까요.(박창희 기자)
07. 01. 27.

P.S. 기자가 '간서치' 이덕무와 비교해준 것은 과분한 일이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은 나로선 아직 꿈꾸기 어려운 경지이다(나는 쿠션에서 이불 제대로 덮고 잔다). 그걸 이해해줄 만한 사람도 주변에 없고. 다만, 책에 파묻혀 죽을 거라는 애기는 곧잘 듣는바 그 정도의 운명이나 꿈꾸는 정도이다. 여하튼 정보바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열심히 노젓는 로쟈 정도를 자임하고 있었는데, '정보바다의 등대'라고 평해주는 분도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외로운 밤배들'은 다들 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