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의 일입니다. 모처럼의 놀토(1달에 한번 4번 째 토요일에 공직자들은 쉽니다)를 맞아 아침부터 운동 약속이 있어서 새벽 4시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차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 차 앞을  다른 차량이 가로막고 서 있는데 연락처도 없고 차량의 주차 브레이크는 단단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원룸이라는 다세대 공동주택에서 차량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찾을 길이 막막하고...더구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 가운데 어느 집에 입주하고 있는 사람이  차량의 소유주인지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하나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짧게라도 경적을 울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새벽 4시경에 경적을 울린다는것은 심하게 이야기하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천안 아랫쪽에 있는 약속장소까지는 최소한 1시간은 잡아야 갈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새벽을 깨는 도리밖에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짧게 '빵!' 하고 경적을 울렸습니다. 차량의 주인이라면 자신의 차량을 빼 달라는 요청이 있을것이라 생각하여 깊은 잠에 빠지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서의 배려였지요. 그런데 3분여가 지났음에도 아무런 반응들이 없었습니다.  또 한번...이번에는 조금 길게 '빠앙~'하고 경음기를 울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음기를 울리고 나서는 주인이 나오는것 보다는 아침의 적막을 깨는 소리에 단잠에서 깨는 주변 사람들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어주변의 집들을 우선 쳐다보게 되더군요.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지요... 하필이면 아침 이른 시간의 운동 약속이 있는 날...제 차 앞을 가로막는 차량이 있으니 말입니다.  경음기를 울렸는데도 주변은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4시 30분이 넘어가기 시작을 했고 저는 더욱 초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주민들이 깨더라도 차량 주인이 나오도록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크게 마음먹고는 "빠앙~~빠앙~ 빵"....  그리고는 남들이 볼새라 재빨리 차 속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몇몇 집에 불을 켜지는것이 보였습니다. 그 집들은 일어날 시간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는 경음기 소리에 보나마나 신경질적인 감정으로 잠에서 깬 것이 분명한것이니까요.  어느 집에서는 드르륵 하며 베란다를 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이 새벽의 정적을 깨는 불한당이 어느 녀석인지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이겠지요.

  그런데도 차량의 주인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는 조금 간덩이가 부었습니다. 한번 더 경적을 울려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빠앙~~~".....이 집 저 집의 베란다를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누군가가 차량에서 나온다면 한 마디라도 할 참일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제가 사는 건물의 지하에서 어느 여자분이 다급하게 뛰어 나오더군요. 그제서야 저도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제는 아침을 깨는 경적소리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밝힐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제 앞을 가로막은 차량 주인에게 매우 다부지게 야단을 칠 요량이었습니다.  "죄송해요...빨리 빼 드릴께요" 그 여자분은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니..차량을 이렇게 두시면 어떻게 해요?  최소한 연락처를 남기시던가 아니면 싸이드는 풀어 놓으셔야지요" 처음에 모질게 야단치려던 생각과는 달리 조용하게 투정하는 말투를 그 분에게 던졌습니다. 너무도 미안해 하는 차량 주인에게 더 이상 뭐라 말을 할 수 없더군요.  새벽의 찬 바람을 맞으며 베란다 문을 열고 경적을 울린 차량 주인에게 한 마디씩 하려던 주변분들은 경적을 울리게 된 배경을 알게 되었겠지만 그래도 새벽의 단잠을 깨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기가 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량 주인보다는 베란다 문을 열고 내다 보는 인근 주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아침에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라고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에게 그 분들이 듣던 말던 큰 소리로 사과를 하고는 앞 차가 제 차 앞을 빠지자 마자 쏜살같이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정확하게 출발 시간은 04시 40분...서울서 천안 밑의 전의 부근까지 45분 내로 달려 가야 합니다. 나오자 마자 곧장 서울외곽 순환도로를 타고는 바로 경부 고속도로에 접어 들었습니다. 새벽인데도 왜 그리 바지런한 사람들이 많은지.... 고속도로는 생각처럼 그렇게 텅텅 빈게 아니었습니다.  차에 있는 시계는 어느덧 5시에 가까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시간 싸움이고...약속된 시간에 도착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에 달리는 차량을 하나 둘 뒤로 하고는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부모님 상을 당해도 지켜야 한다'는 운동약속이기에...더구나 오늘은 잘 모르는 분들과의 운동이기에 시간을 어긴다는 것은 이만 저만한 낭패를 당하게 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지만 고속도로에서 비켜주지 않는 앞차를 피해 차선을 옮기며 달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데 저는 단지 찻속의 시계만 보면서 달려야 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지금 망향휴게소니까 최소한 얼마는 걸리겠다-- 이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속도계를 보는 순간 저는 까무러칠뻔 했습니다.  속도계의 바늘은 정확하게 200을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시속 200Km.....  난생 처음 이런 속도를 내게 된것입니다. 제 차가 200Km까지의 속도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고 속도는 220Km로 되어 있지만  이런 속도로 달리고 있는줄은 미쳐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남천안I/C를 벗어나 국도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7분 전....  옷을 갈아입는둥 마는둥 출발 지점에 가니 정각 5시 37분이었습니다.  겨우 시작 시간을 맞춘것인데 일행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니 오히려 제 무안함을 희석시키려는듯" 아니다..괜찮다..."라고들 말씀 해 주셨습니다.  새벽 4시부터 1시간 30분 사이에 일어난 일들...운동을 하면서 그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맴거리니 운동이 잘 될리가 없는것은 당연하고...새벽에 인근 주민들의 잠을 깨운것도 그렇고,  시간을 맞추느라 달려 온 속도도 감히 상상도 못할 속도였기에 이 자리에 서 있다는것이 정말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저는 운이 좋아 그런 과속을 하면서도 사고가 없이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있었지만,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운동 중반에는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찾아 그런대로 운동도 마치고 즐거웠던 뒷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던 일들이 정말 꿈 같이만 여겨지는 가운데 저로 인해 아침잠을 설쳤을 주변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주차 공간의 협소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차량을 가로막고 주차를 해야할 경우의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 그 차량의 주인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 주차장과 접해있는 도로는 약간의 경사가 있어 주차 브레이크를 풀어둔다면 자칫 차가 굴러 갈 위험이 있는 지형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주차 브레이크를 당겼을 것입니다. 아침에 워낙 급한지라 제대로 말씀도 못드렸지만 후에 얼굴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오늘 아침에 잡을 깨워 미안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새벽에 자신으로 인해 주민들이 깨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무척 당황하고, 미안해 하며 무안한 표정을 지었던 그 분의 처지가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추신 :  저는 어찌하다보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렸는데 여러분들은 정말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지금 생각해도 "괜찮았다"라는 생각보다는 "사고가 나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었다"는 생각뿐이랍니다. 차량을 운행하시는 분들!!!   안전 운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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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일날 뻔 하셨네요!
과속감지 카메라에 잡히지는 않으셨는지요? ^^

비로그인 2004-05-2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길래 말입니다. 하마트면 두번 다시는 알라딘의 제 서재에 오지 못할뻔 했죠? 글쎄요...과속 카메라에 찍혔다면 며칠 기다려야 올텐데....제 차에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의 GPS가 달려 있어 조심은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나온 번호판은 감지를 못한다던데.....만약, 위반 사항이 적발 되었다면 당연히 댓가를 받아야하겠지요.
 

 여행이란 출발부터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출장이라는 단어도 따지고 보면 출장중의 업무가 끝나면 여가시간을 이용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것입니다만, 여행이라고 규정짓고 출발하는것과는 마음가짐 부터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여행이라고 딱히 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움직이는것 자체를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버스를 탄다거나 기차를 탄다거나, 또는 잠시 집을 떠나 마켓 등지에서 물건을 사러 다녀올 때도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다니는 것은 다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어로도sightseeing이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보고, 듣고, 가슴으로 느끼며 알아가는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여행이란 일정한 기간동안 거주지를 떠나 휴식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다녀오는것을 여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차를 타건 고속버스를 이용하건, 또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건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즐거운 길이 될것인데 정말 좋은 여행이 되기위한 사전의 작은 준비는 대부분 하고 떠나며 도착지의 정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파악을 하고는 가지만 막상 도착하여 관광을 즐기려고 해도 어디에 가야 하는지를 몰라 힘들여 다녀온 여행도 남는것이 없고 피곤하기만 하게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네 사람들의 심보는 참 이상하게도 여름철 바캉스기간이라고 불리는 휴가철에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남들처럼 휴가지를 찾아 떠나려고 하고 또 난리 북새통을 이루고 인산인해를 이루며 물가에 대해 바가지를 쓰고....그런 곳에 다녀 와야 그나마 휴가나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금년의 휴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작년의 고생스러웠던 기억을 추억으로 이야기하고는 하지요.

  지방자치제 이후 각 지방 행정자치단체는 자립도를 위하여 나름대로 자기네 고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기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이나 특산물, 또는 숙박업소도 사람이 없는것 보다는 사람이 찾아주는것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때문이고 이러한 관광객들의 내방은 관내 내수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고 덩달아 지방자치단체의 세수를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나름대로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손님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답니다. '함평'의 <나비 축제>와 <장승 축제>, '남원'의 <변강쇠 축제>, '금산'의 <인삼 축제>, '진도'의 <영등 축제> 등등 군 단위의 자잘구레한 축제가 무척 많답니다. 더구나 인터넷의 발달은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속속들이를 쉽게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지요.

  지방자치단체의 이러한 경쟁은 여행자들에게는 무척 편리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가장 편리한 정보가 바로 <여행지도>입니다. 어느 지역에 여행을 갔는데 주변의 여행객은 어디에서 났는지 그 지역의 지도와 특산물, 볼거리,먹거리 등이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를 들고 찾아 다니는데 그런 지도 하나 없이 여행지를 찾은 입장이라면 지도를 가진 분들이 부럽기만 할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도로표지는 외국인이 제대로 찾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말하듯이 소도시나 지방은 단숨에 찾아가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 한장이라도 이런 경우에는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답니다.

  이런 지도는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실 앞쪽에는 i 표시가 있는 안내소가 마련되어 있고, 이 안내소에는 인근 지역의 관광안내도가 도, 시, 군 단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지도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담당부서에서 자기 고장의 광고를 위하여 휴게소의 안내소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인데 일부 안내소에서는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꺼내 놓지도 않고 달라고 해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비치된 지도나 관광안내서는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것까지 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런 지도들을 구하여보니 아주 훌륭한 관광 안내서의 역할을 하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지도에는 그 지방의 모든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도로는 물론이고 지방에 산재한 문화재나 볼거리, 그리고 특산품, 먹거리, 숙박업소, 지방의 축제 등등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식사나 숙박을 걱정하신다면 전화로 미리 예약도 할 수 있어 편리하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관광지의 역사나 좀 더 자세한 참고자료를 구하고 싶으신분은 각 행정기관의 문화담당 부서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 책자로 된 안내서를 구할 수 있답니다. 번거로와 하지 마시고 꼭 들려서 도움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습관이 되어서인지 가장 먼저 방문지에 들리게 되면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지도나 안내서를 구하는데 이것을 모아보니 방대한 자료임과 동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그 단어가 주는 느낌만큼이나 추억도 많겠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피곤에 지치게 된다면 그런 여행은 안 다녀온것만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가 헤어지며 이혼 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특별한 경우는 제외하고 연인은 연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가족 단위는 가족단위로, 노년의 부부는 그들대로 나름대로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것이 여행이며 말씀드린대로 보고 느끼며 가슴속에 담아 둘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삼을 수 있는것이 여행일 것입니다. 조금 귀찮고 번거로우며, 또 한편으로는 대충 잘 안다고 휴게소의 지도 획득에 게을리 하지 마시고 매우 소중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마음으로 하나 하나 모아 보신다면 그것이 바로 여행을 손쉽게 하는 첫 번 째의 방법임을 아시게 될겁니다. 즐거운 여행들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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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5-2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교 때 라디오에서 여행을 하는 것의 장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10가지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단점 10가지 정도를 이야기했는데, 여행은 무조건 좋은 줄만 알았는데, 단점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었습니다.

kimji 2004-05-2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수께끼, 님. 님의 서재에 자주 오는데 이제서야 인사를 드리는 듯 싶어요. 며칠 전에 바뀐 서재 지붕이 참 곱고 예쁘다는 말도 드리고 싶었고(지붕을 만들어주신 분의 마음도 곱고요) 그랬는데. 오늘은 페이퍼 제목에 반해서 후다닥 뛰어오다 시피 했네요.^>^
국내여행을 손쉽게 하는 방법,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다보니 생긴 습관 중에 하나는 휴가철과 연휴를 되도록이면 피하는 방법을 쓰곤 합니다. 휴가철에 떠나게 된다면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을 공간을 택하는 것,으로 대신하죠. 여름엔 모두들 바다에 가 있을테니 산의 사찰에 가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계곡을 끼고 있지 않은 사찰로요. 계곡을 끼고 있는 절은 거진 유흥지대와 매한가지로 변한 모습이 마음이 서늘해져서 오곤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리고 가기 전에 꼭 목적지의 도, 군 공식 싸이트를 뒤적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지역자치제를 하면서 각 지역별 관광상품을 많이 만들고 있는데, 여행관련 싸이트보다는 그런 공공기관 싸이트가 조금 더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듯 싶더라고요.
그리고 가게 되는 목적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정도는 공부(혹은 자료 읽기)를 하고 가는게 여행의 즐거움을 조금 더 배가시키는 것 같아요.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고, 어떤 전설이 담겨 있는지 등등을 알아가는게 그 곳에 도착했을 때의 감흥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준다고 해야할까요.
아, 제가 잘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고속버스 시간과 배차는 인터넷으로 안다하지만 군내 버스 경우에는 정보 찾기가 수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운전기사분 바로 뒷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기사님 운전하시기에 방해가 되곤 하겠지만 끊임없이 묻거든요. 되돌아나올 수 있는 버스 시간대라든지, 그 지역의 다른 볼거리들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죠. 의외의 수확을 많이 얻곤 한답니다. 계획했던 동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도 하고, 더 수월한 교통편이나 동선- 혹은 더 좋은 곳을 알려주시기도 하죠. 아마도 혼자 종종거리는 쪼그마한 여자애여서 동정표로 친절을 베풀어 주셨을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그래도 제 경험에 의하면 늘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던 것 같아요. 인심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는 경험이죠. ^>^
(아, 여행 이야기가 나와서 그만 흥분을 하고 이렇게 긴 이야기를^>^ )

비로그인 2004-05-2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여행이 말씀처럼 반드시 좋은것만 가득한것은 아니랍니다. 우선은 즐기며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요... 여행의 단점을 구태어 들춘다면 어디 한 두가지겠어요? 하지만 장점만을 생각한다면 정말 많은것을 느끼는 여행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증명님,
여름 산, 겨울 바다가 진정으로 여행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말씀처럼 여행에서의 요령은 정말 얼마나 머리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비야의 여행기도 추천할만 하지만 역시 서양것으로는 '80일간의 세계일주'그리고 탐험은 '톰 소야와 13인의 소년들"이...우리 나라의 해방 후 첫 여행서는 김찬삼 교수의 여행기가 고전적 여행의 틀을 간직하고 있기에 좋더군요. 아주 어렸을 때 그런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역마살도 몸에 배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여행지에서는 반드시 민박집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면 민가에서 묶는 것이 그 지방의 토속음식과 인심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빨빨거리며 다니면서 얻은 결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것과는 달리 아직도 우리네 인심은 결코 야박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여행은 언제나 즐거워요 ^^~
 

알라딘의 서재에 들어올 때 마다 다른분의 서재처럼 꾸미지 못함이 못마땅 하기도 합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서재라면 그냥 대나무라도 이엉처럼 엮는다면 어떻겠냐마는 그래도 이곳을 찾아주시는 님들께 뭔가 조금은 멋있게 보이고,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이뻐 보일 수 있는 서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라딘의 이미지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어 그 이미지를 선택하면 이상하게 잘려 버리거나 길게 늘어져 버립니다. 그건 그렇다치고라도 서재 이름이라도 목각 형태로 넣고 싶지만(제 명함의 이름과 숫자가 목각 형태인데 그런대로 제법 고풍스럽게 잘 어울리는것 같았습니다) 알라딘 어디를 둘러 보아도 다른 님들 처럼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더군요.

어느 님은 삐뚤 빼뚤~ ...원래 심성이 그러신지는 몰라도 그런 모습도 나름대로 강한 개성이 있어 그 님의 서재만 생각해도 문패가 기억이 나고 또, 배혜경님 처럼 좌우를 누르면 다른 그림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거야 시뻘건 문패에 멋 대가리는 커녕, 멋 꼬리 조차 없는 문패를 달고 있자니 우체부가 제대로 찾을 수 있을런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이미지에는 제법 많은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이걸로 했다가 또 저걸로 하고.....그렇게 수 없이 해 보았지만, 그나마 지금 것과 이 바로 전의 책꽂이 모습이 가장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문패가 밋밋하기만 한 저와 어찌 그리 꼭 빼 닮았는지.... 도무지 변통이라고는 모르는 고지식함이 문패에서 뭍어나는것 같기만 합니다. 저야 뭐...  이 속이 저만의 공간이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들 부족함이 있으랴마는 찾아오시는 님들께 조금 더 이쁘고 아름다움을 선사해 드리지 못함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아마도 이게 컴을 다루는 제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20년 가까이 해 온 독수리 타법이라 타이핑 속도는 느릴것 같지만 그래도 오래 갈고 닦아서인지 분당 300자 까지도 가능하여 글을 올리는데 있어 별로 어려운점은 모르겠지만 각종 요술로 치장을 하는 부분에는 완전히 무지를 들어내고 말아야 하는 처지가 자못 한심스럽기까지 하답니다.

그런데 어때요....문패가 낡아 주인장 이름이 안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집안에 들어서면 별천지이고 많은 보화가 있다면야 괜찮지 않을까요?  흥보전에 보면 금은 보화도 번듯한 궤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이나 퍼야하는 박 속에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비록 문패는 허름해도 이곳에 각종 금은 보화 못지 않는 보배를 담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편입니다. 오시는 님들께 한잔의 차를 대접해 드리지는 못할 망정 이곳에서 많은 것을 가슴속에 담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지붕 올리기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나중에 제가 지붕올리는 기술을 알게 되어 초가 이엉이라도 성실하게 엮어 올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 단계에서는 그저 이렇게 움집에서 살려고 합니다. 저 하나 다리 뻗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 말입니다.(그런데요.....사실은 컴에 무지인 저 자신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살짝~ 말씀 드립니다)

                                                                                       < 如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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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1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저도 대단한 컴맹입니다. 님의 서재지붕, 문양이 참 맘에 드는데요.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담긴 내용이 더 중요하죠^^

비로그인 2004-05-1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패가 마음에 드신다니 고맙습니다. 하긴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입니다만 무척 소박하죠? 막사발 같다고 여기고 그냥 놔 두렵니다. 님의 말씀처럼 담긴 내용이 더 소중한데 제대로 담긴것이 없어 소리만 요란한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책방님께서도 이곳에 많이 퍼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을산 2004-05-1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어떤지요? 

 

 

저도 잘 못하지만, 맘에 드는 사진을 포토샵으로 가로 29cm, 세로 2cm 크기로 잘라서

서재 주소 적고 하면 지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연습삼아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비로그인 2004-05-1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아~~ 정말 지붕이고 좋군요...아....포토샵에서 작업을 한것을 가져 오는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데....지금 만들어 주신것은 제가 구태어 포토샵에 가지 않아도 되게끔 해 주셨답니다...문제는 이걸 어떻게 제 앙상한 솟을 대문의 틀 위에 올리느냐는 것인데요...연습이 아니시라 제게 선물을 주시는것 같아 감사말씀 드립니다.

비로그인 2004-05-1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나름대로 가을산님이 주신 그림을 오려서 제 지붕에 붙여보았습니다. 깜쪽같죠? 고맙습니다. 말 그대로 대궐을 하나 이게 된것 같고 훨씬 고즈녁하여 운치가 담겨 보입니다. 가을산님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프레이야 2004-05-19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이 님께 주신 기와지붕이 멋집니다. 님의 서재 성격과도 잘 어울리네요. ^^

ceylontea 2004-05-1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붕 분위기 너무 좋아요.. ^^

비로그인 2004-05-1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덕에 정말 분위기 있는 지붕을 머리에 이게 되었습니다. 밑에 있는 난초가 마치도 지붕의 기와밑에 담겨 있어 더욱 청초해 보이는것 같고 기와지붕의 합각도 너무 멋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starrysky 2004-05-2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붕이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수수께끼님 서재 분위기와 잘 어울리네요. (사실 수수께끼님 서재에 이제 막 발걸음을 들여놓은 참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종종 들러서 조심조심 보다 가겠습니다. ^^
 

1.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청주에 있는 한국공예관 2층에서는 청주불교방송의 후원으로 조선 찻사발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특별전 형식으로 "오백년만의 귀향"이라는 주제를 달고 50여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귀향(歸鄕)이라는 말은 고향을 찾아 왔다는 뜻인데 결국은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시대에 수탈해 갔던 찻사발중 일부가 되돌아와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일겁니다. 50여점의 찻사발들은 나름대로 형태의 아름다움을 지녀 어떤것은 굽이 높다란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것은 아래와 위의 속지름이 같은것 등등 다양한 형태의 찻사발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16세기 일본의 무장(武將)이었던 '다케다 신겐'이 사용했다는 찻사발도 있습니다.

2. 세계적으로 백자가 유명한 지역은 동서무역의 교량 역할을 했던 이스탄불 지역이었습니다. 토프카피 宮에는 이런 도자기가 상당수 진열이 되어 있는데, 우리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고급스럽고 실용성이 배제된 형태로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 등의 보석이 도자기에 박혀 있습니다. 주로 페르시안 도자기라고 알려진 도자기들은 우리 도자기와는 달리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도자기가 갖는 기능보다는 우선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담아 둔 서양인의 감상기준을 만족시키기에 적합하도록 도자기가 만들어 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미적 기준이 내재된 심적 아름다움보다는 외재하고 있는 미적 아름다움에 우선하여 제작하였음을 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외적 치장에 상당한 노력을 해 온것이라 하겠습니다.

3. <찻사발>이라고 합니다만 실은 <막사발>이라는 용어가 더 어울리는것이 조선 백자로 만들어진 그릇들이 아닐까 합니다. 분명 조선백자가 분명함에도 아직도 그 용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결론이 난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차(茶)를 다리기 위해 만들어 사용하던 사발이라는 주장과 이와 달리 스님들의 탁발에 사용되던 밥그릇인 '발우'라는 주장도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일본에 있는 26점 모두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귀하게 여기고 있음에 빗대어 우리 나라에서 개 밥을 담아주던 막그릇이 바로 <막사발>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너무 터무니가 없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개나 소를 키우는 모습에서 보았듯이 깨어진 가마솥이나 찌그러진 냄비 등 더 이상 사람의 생활용기로 활용하지 못하게 된것을 개나 소의 먹이통으로 사용하였었고, 이러한 금속제의 생활 용기 이전의 여물통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것에 여물을 담았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4. 일본인들은 이런 <막사발>을 오오사카 城(大阪 城)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하였고, 그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고 무가보(無價寶)의 위치에 우리의 <막사발>을 올려 놓았습니다. 심지어는 군주제도의 막부 시대에 상대방의 공격에 힘으로 버틸 수 없을 때 서로간의 유화를 목적으로 항복을 하며 가는 길에 소지했던 것이 바로 <막사발>이었고, 이 <막사발>을 받은 군주는 너그러이 용서를 해 주었었습니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막사발을 구경을 하고자 하면 공개를 잘 안하는것은 물론이고 겨우 사정사정을 해서야  공개를 하게되면 그 소장자는 매우 번잡한 절차를 거쳐 공개를 합니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조선의 막사발을 '이도자왕(井戶茶碗)'이라고 하는데 이 그릇들은 모두 오동나무 상자로 만들어진 보관함 속에 다시 금이나 은으로 함을 만들고 그 속에 조선의 <막사발>을 넣어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위 우리가 <막사발>이라고 부르는 도자기 하나에 이렇게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세계 도예의 대가인 Bernard Rich는 이런 <막사발>을 보고 "이 막사발처럼 없으면서 있는것 같은 색과 투박한 촉감을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편하고 남을 행복하게 할까?" 라면서 울부짖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함부로라는 의미가 강한 <막>이라는 접두어가 들어간 사발 하나가 왜 이렇게 일본인들을 사로잡고 도예의 대가가 울부짖을 정도가 되었나가 궁금할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조선 <막사발>이 담고 있는 "내재적인 미"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검소하고 소박하면서도 도자기로서의 단아함을 잃지 않는 조선 백자 특유의 '멋' 때문일것입니다.

6. 조선의 백자는 서양의 백자처럼 시선을 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골의 순박한 아낙네처럼 넓직한 낭군의 등 뒤에 숨어 다소곳이 지켜보는 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함부로 먼저 나서기를 하지 않으며 자신이 이루어 놓은 공도 모두 낭군의 공으로 돌리는 그런 서민적인 멋과 맛이 바로 조선 자기에 담긴 참 뜻 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조선 도기가 바로 서민적 표출로서 만들어진것을 의미하며 백자이면서도 서양의 도자기 처럼 우유빛 광채(乳白) 를 내지 않는 소박한 회백(灰白)으로 그렇게 눈부시게 희거나 화려하지 않은 백색을 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막사발>의 모습을 보면 잘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은 어디에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만들어지는 대로 만들고 싶은대로 만들다 보니 형태가 각양각색이 아닐 수 없으며, 유약도 일정하게 곱게 발라진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유약이 덩어리지고 또 어떤것은 그저 유약이 슬쩍 묻어만 간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이 <막사발>을 만들던 도공들은 단순히 도자기의 거친 면만을 없애려는 노력으로 무엇보다 서양의 도자기처럼 눈으로 보는 도자기가 아닌 실용적인 도자기로 생각하여 제작에 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지다보니 <막사발>은 그저 뒤꼍의 장독대에서 간장을 퍼도 되고, 시원한 열무 김치를 담는다던가, 구수한 된장국이 담기면 딱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수수하고 꾸밈 없는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것이며,그나마 조금 고급스럽게 사용하는 경우라면 떨뜨름한 녹차잎 몇 개로 다려지는 녹찻잔으로 사용이 되었을 때 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얍삽함도 없으며 구태어 궁중의 임금님 수랏상에나 올라가려고 노력했던 관요(官窯)에서 제작했던 도자기의 화려함을 닮을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서민이 다루기에 어려울 정도의 거만함이 배어 있다거나 기생 오라비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기녀처럼 이쁘게 꾸미지도 않았습니다.

7.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막사발>의 미는 제작자 보다는 사용자이며 약탈자인 일본에서 더 가슴깊이 담겨진 미를 먼저 읽고 간직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것은 우리의 짧은 심미안적 안목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아니면 모조리 쓸어가 버린 일본인에 의해 미쳐 두고 두고 감상을 하며 그 심연에 담긴 아름다움을 논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인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간송 전형필 선생은 고려 자기에 심취하여 어디서 어렵고 비싸게 구입한 고려 자기 찻잔이라도 손에 들어오게 되면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 고려 자기에 술을 따라 마시며 흥에 겨워 대취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감히 조상의 얼이 담긴 소중한 유물에 어찌 술을 따라 마실 수 있겠느냐는 질책도 있겠지만, 일본인의 손에 있던 우리의 보물을 되찾았다는 안도감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에 흩어져 있던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이 되어 소중히 보관되고 있으며, 그외 일부의 <막사발>은 우리 나라의 수집가에 의하여 다시 우리 손에 들어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경북 예천과 지리산 자락에서 조선의 <막사발>을 재현하기 위한 도공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막사발>이 주는 심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막사발>이기에 함부로 나뒹굴었던 사발로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 처럼 서민과 가까이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만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고보니 <막사발>이라는 용어는 아주 훌륭하게 이름 붙여진 용어인것 같습니다. 그 <막사발>이라는 용어에 담긴 의미야 말로 순수하고 꾸밈없는 우리네 서민적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주말경에는 7월 8일까지 계속되는 "5백년만의 귀향"을 반기는 의미로 가족과 함께 청주의 한국공예관을 찾아 <막사발>에 담긴 의미를 새겨보는것이 어떨런지요.....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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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5일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동향의 라이벌인 광주 상무와 전남 드래곤즈의 k-리그 축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경기 결과는 2:2의 무승부였고 경기 주도권은 경기 결과 만큼이나 50:50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슈팅의 숫자는 12:8, 득점찬스는 7:5로 다소 광주 상무가 앞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팀이 모두 1승 4무승부의 성적으로 중 하위권 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2. 경기 진행 상황은 후반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2:1로 광주 상무가 앞서 있었는데 언저리 타임이라고 하는 경기시간중의 경기와 무관하게 시간을 보내게 된것에 대한 추가 시간 운영에서 아깝게 PK를 허용하여 비기고 말았습니다. 광주 상무가 중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안타까운 경기였지요. 작년에 처음 참가하고나서 열심히 합니다만 이기기가 결코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3. 전남의 골키퍼는 올림픽 예선 전 경기의 무실점을 기록했던 김영광 선수였는데 이 선수가 지키는 골문을 두 번씩이나 뚫었던 것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는 전남이 패배할뻔 했다가 겨우 비긴 경기로 상무는 내내 아쉬움만 달래야 했던 경기였는데, 실제로 광주 상무가 프로리그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K-리그의 13개 팀에는 모두 외국에서 불러온 용병들이 버티고 있고 이들이 모든 팀의 공격의 핵임은 부인 할 수 없는것이 우리 축구의 현실인데 광주 상무는 단 한명의 용병도 보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화를 한 선수에게 국방의 의무가 있으니 상무에 입대하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 아니겠어요?

4. 작년에 그나마 그런대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조재진, 오승범이라는 두 올림픽 대표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도 원래부터 유망주로 손꼽히던 자원이 아니라 상무에 입대하고나서 잘 조련이 되어 실력이 늘었고 전역 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의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하여 성장토록 하는것이 상무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인기도나 생김생김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던 이동국 선수가 있지만 잦은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아직은 마음껏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것 같은데 이동국 선수의 게임을 지켜보면 천부적인 선수의 자질은 있으나 본인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로 여겨지며, 제가 이 정도로 여길지니 당연히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 선수를 월드컵 맴버에서 제외시키게 되었을 것입니다.

5. 상무팀의 선수 운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1부 리그격인 K-리그에 출전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2부격이며 아마츄어인 K-2리그에 참가를 하는 것입니다. 보통 프로리그에 참가를 하려면 40명이 넘는 선수로 구단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상무는 겨우 1개 프로구단이 운영하는 선수의 수만 가지고 2개 리그를 소화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답니다. 프로리그 참가도 상무가 원했던것이 아니라 프로연맹에서 이미 지급한 연봉, 선수의 기량 향상 등등을 고려하여 상무에게 프로리그 출전을 권하게 되어 광주를 연고로 하여 상무팀이 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작년에는 출전을 앞두고 광주 상무의 팀 로고를 만드는 작업이 제게 주어져 한참을 고생하고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고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믓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1.5부 정도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프로리그에 참가하는것은 매우 힘드는 일인데 기존에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군인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하여 작년에는 그나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6. 언젠가 광주 상무가 경기를 하는 대구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대구의 경기에 관람을 온 관중의 수가 적음에 우선 놀랐고 운동장 한곳 구석에서 열심히 상무를 응원하는 써포터즈의 규모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대부분의 프로경기에는 많은 써포터즈가 동반 응원을 하는데 제가 본 광주 상무의 써포터즈는 겨우 10명도 안되는 인원으로 구성이 되어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광주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부터 광주를 연고로 출발한것도 아니고 특별히 광주와 연고가 있다거나 광주가 필요로 해서 계약을 체결한 선수들이 아니기에 상무 선수들에게 별로 깊은 애정이나 관심이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또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억지로 운영해야만 하는 프렌차이즈 구단이기에 많은 지원과 관심을 나타내지 못하는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상무 선수들은 광주상무라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프로팀의 경기에 출전은 하지만 프로로서의 예산 지원이나 기타 각종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광주상무 선수들이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해 주는것은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7. 이제 상무에서는 또 다시 제2, 제 3의 조재진이나 오승범 선수와 같이 발군의 실력을 나타낼 선수를 육성해야 할것입니다. 일반팀과는 달리 군이라는 특유한 조직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훈련을 시행하기에 스스로 노력하는 선수라면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하여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겁니다. 상무는 시합에서 우승했다고 다른 프로팀처럼 우승 경비를 지급받는다던가 보너스를 지급받지 못합니다. 이는 감독이나 코치 모두가 국가의 녹을 공직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만큼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나 응원은 금전으로 지급되는 보너스를 상쇄할 수 있는 정신적인 보너스가 되는 셈입니다. 용병하나 운영 못하면서도 꾸려 나가는 국민의 군대 상무소속으로 그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묵묵히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광주시에서 제공하는 선수 이동 버스에 다른 프로팀의 버스만큼 잡다하지는 않지만 각종 격려 문구가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ㅇㅇㅇ오빠 화이팅!!><ㅇㅇㅇ아 사랑해> 등의 문구를 새긴 상무 펜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을 하기위해 상무 선수들은 오늘도 아침부터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에 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격려가 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될것입니다. 상무 화이팅!!!!!

P/S 상무(국군체육부대) homepage가 있습니다. "상무",또는 "국군체육부대"를 치시면 입장하실수 있고 양방향 통신으로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각 선수의 프로필과 종목 소개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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