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집착,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 가해.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이제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너무나 많이들 써먹은 주제이며, 그에 파생되는 여러 캐릭터는 이제 새로운 것을 찾기엔 너무 닳고 닳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착으로 시작해 광기로 절정에 치닫고 결국엔 파국으로 결말을 맺는 내용을 가진 영상매체는 이제 영화를 넘어서 안방극장의 (막장)드라마에서도 너무나 흔해 빠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그저 그런 흔해빠진 영화나 드라마들 때문에 스페인 태생의 “하우메 발라게로” 감독의 “곤히 주무세요(Mientras duermes, Sleep Tight)는 주목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토커는 다른 비슷한 종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부류와 기본적 성향은 같다. 겉으로 보이는 선량하고 착실한 이미지로 완벽하게 위장된 상태에서 스토커의 대상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정신적인 폭력의 정도 역시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차별성은 그가 펼치는 스토킹의 범위가 꽤 광범위하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아파트 관리인이 위치를 십분 활용하며 입주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빠짐없이 관찰하며 간섭한다. 더불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의 집착이 배신(이라 생각해버리고)의 단계에 이르러 복수(라 생각하는 범죄)의 완성까지 주도면밀하며 기민한 움직임을 선사한다. 더불어 예상 밖의 변수에 대처하는 그 능력 또한 탁월하게 묘사된다.
애당초 이런 부류의 영화는 즐거움이나 유쾌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봤던 모든 영화들의 대부분의 결말이 결국 응징이라는 단계에 이르러 작게나마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는 미덕을 배풀곤 했겠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착하디 착한 결말 따윈 부정해버리고 만다. 지독하고 때론 철저하게 모든 것을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리는 냉정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나 반어적인가. “곤히 잠드세요”란 달콤한 저 제목의 이면에 품고 있을 차갑고 냉정한 반동적인 내용이 그득하니. 한번 끝까지 가보자 작심한 감독과 호응할 수 있다면 혹은 극단적이거나 혹은 현실적일지도 모를 결말을 보고 싶다면 이만한 스토커 영화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