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의 여자는 어느 순간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외부적 요인이 내부적 멘탈을 붕괴시켰다 손 치더라도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었던 자신에게 어쩌면 지나치게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그냥 까짓 것 하며 무시해버리고 당당하게 한발자국만 내딛어도 어쩌면 그녀는 아침마다 정원 언저리에 앉아 맥주와 초콜릿 안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5살의 소년은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다. 그냥 남들 다니니까 나도 다니는 것. 정도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쁜 쪽으로 빠지진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신발을 만드는 장인.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벌어 가죽을 구입하며 연장을 구입할 정도로 열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약간의 일탈은 존재한다. 비오는 날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전철을 내려 근처 공원의 언저리에서 비와 함께 오전 수업을 그대로 빼먹어 버리곤 한다. 이런 소년 앞에 아침부터 맥주에 초콜릿을 먹는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 첫사랑의 애절함과 묵직한 뒷맛을 선사해줬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짧은 애니메이션에 공감하며, 아릿한 뒷맛과 더불어 많은 시간의 여운을 안겨줬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의 “초속 5센티미터”와 비교적 비슷한 느낌의 연가(戀歌)를 46분 동안 아름다운 그림과 배경을 대상으로 또 다시 재현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보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여운이 남는 결말과 밝아 보이는 미래. 이 모든 것을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선사해준다.

 

 

 초속 5센티미터 (秒速 5センチメ-トル.2007)

 

어차피 사람은 조금씩 이상하다는 자신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자신은 그 이상함에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모습과 나아가지 못하는 주저함을 15살 소년을 통해 모든 것을 터트리고 일종의 구원을 받는 마지막 장면에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울컥 솟구쳐 오른다.

 

보고 나서 진하게 남는 여운과 후유증은 제법 오래가고 있다. 난 아직 “감성”이란 것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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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6-0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 화면이 정말 예뻐요.

Mephistopheles 2013-06-07 18:37   좋아요 0 | URL
화면 뿐만이 아니라..내용도 그리고 음악도 정말 좋습니다. ^^
(비내리는 정원이 제법 많이 나오다 보니 하이드님은 더 눈여겨보실지도..)

머큐리 2013-06-0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서 예고편 보고 찜해두었는데...역시 매피님이 소개를 해주시네요...^^

Mephistopheles 2013-06-09 01:19   좋아요 0 | URL
참 좋습니다. 주변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극장에서 보고 싶군요..^^

paviana 2013-06-07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Mephistopheles 2013-06-09 01:20   좋아요 0 | URL
어쩌면 파비님이라면 아주 여운이 오래 갈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좀 짧게 줄여 말해 보면 “예쁘냐?” 라는 노골적인 질문을 받은 여성이 “난 예쁘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식사가 공짜로 제공되는 이벤트가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브라질의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단. 아름다움의 기준은 질문에 답변한 여성의 주관적인 시점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객관적 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을 스스로 예쁘다 생각한다면 이벤트의 특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꼭 맞춤형 성형으로 얼굴과 체형을 뜯어 고치지 않아도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을 당당하게 어필한다는 것이 이 이벤트의 취지라고 보인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이 땅엔 예쁜 사람들은 넘쳐나겠지만. 그에 걸 맞는 멋과 매력이 동반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저 브라질의 작은 음식점에서 당당하게 난 예쁘다. 라고 말한 분들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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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6-07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re! I'm beautiful! ㅎㅎ
아 싱그러워라~~
음식 공짜로 준다는데 설마 나 안예뻐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죠? ㅋㅋ

Mephistopheles 2013-06-07 13:15   좋아요 0 | URL
이벤트 결과 의외로 그리 많지 않은 여성이(300명 정도) 이쁘다 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이벤트 했던 날 매출은 35% 상승했답니다..^^

다락방 2013-06-0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짜로 먹을 수 있겠군요. 후훗. ( ")

Mephistopheles 2013-06-07 14:20   좋아요 0 | URL
얼마나 드시느냐가....중요한 변수로 떠오를껍니다. 키득키득..

이매지 2013-06-0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 am beautiful. No matter what they say"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나고 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6-07 14:1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조금은 당당해져야 해요. 우리 모두는....

L.SHIN 2013-06-10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실제 내용은 이랬었군요. 저도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저 글의 제목을 보았을 때,
'에이, 이게 뭐야. 왠 차별적 마케팅?' 하면서 내용을 아예 보지도 않았는데..이런 깊은 뜻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 '당신은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 하는가?' 라고 물어도 대답을 못할 것 같습니다.. =_= 오랜 시간 내 자신을 방치해놨더니.. '만년 동안'이라고 자부했던 내 얼굴이 '학부형'으로 오인 받는 슬픈 경험이 얼마 전 있었기 때문에..쿨럭.
아..난 결혼 근처도 안 가본 '솔로'이거늘.. 학부형이라뇨.. 충격의 여운이 꽤 오래 갑니다.(웃음)

그나저나, 잘 지내셨습니까, 메피님.

Mephistopheles 2013-06-10 09:06   좋아요 0 | URL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 정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선뜻 당당하게 말하는 것만큼은 자신감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오...엘신님 어디서 뭐하시다 이제 오시나 했더니만.....결국 "동안의 학부형화"라는 아주 쓰디 쓴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셨군요...

근데 저 역시 뭐 남말할 처지가 않되는게 그래도 그리즐리 최강의 동안을 자랑했던 용모가 아주 팍삭 쭈글탱이가 되버렸습니다..ㅋㅋㅋ
 

 

천둥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데.

 

천둥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껍니다.

 

만엽집(萬葉集) 중에서....

 

 

 

또 다시 진하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1시간 이내의 영상에서 아우리가 뿜어지네요.

 

 

 

 

秦基博 - rain  -ED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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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하에 있었던 폴란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바르샤바 봉기) 성별과 연령을 불문하고 나치에 대항하며 조국 폴란드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팔에 하얀색과 빨간색의 완장을 차고 거세게 항쟁하였다고 한다.

 

결과는 수많은 시민이 학살되고 도시는 대부분 파괴되는 처절한 실패.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이 도시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단 1분.....그 시간 도시는 멈춰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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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5-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밥 먹고 들어와서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ㅜㅜ

Mephistopheles 2013-05-29 11:14   좋아요 0 | URL
짤막한 영상 한편으로 모든 걸 판단하긴 힘들지만 충분히 감동적인 내용이죠. 과거 선조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말이죠..^^

레와 2013-05-2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ㅠ_ㅠ

Mephistopheles 2013-05-29 11:16   좋아요 0 | URL
역사적 내용을 좀 살펴보면 바르샤바 봉기의 비극은 그 당시 연합군(미,영,프)와 소비에트 연합군(소련)의 철저한 무시와 방해 속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종의 항쟁봉기였더라고요, 무지비하게 진압하는 나치에 정말 처절하게 항쟁했다더군요....

바람돌이 2013-05-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옛날에 했죠. 국기 강하식- 오후 5시 ㅎㅎ
이런걸 보면 개념 자체가 얼마나 다른지 말예요. 같은 퍼포먼스라도 어떤 건 감동인데, 어떤건 섬뜩한 전체주의라니....

Mephistopheles 2013-05-29 11:18   좋아요 0 | URL
그때 그 당시 대통령의 사진이 왠만한 공공장소엔 떡하니 국기 옆에 걸려 있었다지요. 북과 남의 차이는 아직도 국기 옆에 국가 원수의 사진이 걸려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는 정치적으로 틀릴 바가 없었죠. 여기나 북한이나. (아 이런 댓글 쓰면 나도 종북좌빨일까요? ㅋㅋ)
 

 

 

 

 

 

 

 

 

 

 

 

 

 

 

 

 

 

스토커, 집착,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 가해.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이제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너무나 많이들 써먹은 주제이며, 그에 파생되는 여러 캐릭터는 이제 새로운 것을 찾기엔 너무 닳고 닳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착으로 시작해 광기로 절정에 치닫고 결국엔 파국으로 결말을 맺는 내용을 가진 영상매체는 이제 영화를 넘어서 안방극장의 (막장)드라마에서도 너무나 흔해 빠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그저 그런 흔해빠진 영화나 드라마들 때문에 스페인 태생의 “하우메 발라게로” 감독의 “곤히 주무세요(Mientras duermes, Sleep Tight)는 주목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토커는 다른 비슷한 종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부류와 기본적 성향은 같다. 겉으로 보이는 선량하고 착실한 이미지로 완벽하게 위장된 상태에서 스토커의 대상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정신적인 폭력의 정도 역시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차별성은 그가 펼치는 스토킹의 범위가 꽤 광범위하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아파트 관리인이 위치를 십분 활용하며 입주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빠짐없이 관찰하며 간섭한다. 더불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의 집착이 배신(이라 생각해버리고)의 단계에 이르러 복수(라 생각하는 범죄)의 완성까지 주도면밀하며 기민한 움직임을 선사한다. 더불어 예상 밖의 변수에 대처하는 그 능력 또한 탁월하게 묘사된다.

 

애당초 이런 부류의 영화는 즐거움이나 유쾌함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봤던 모든 영화들의 대부분의 결말이 결국 응징이라는 단계에 이르러 작게나마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는 미덕을 배풀곤 했겠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착하디 착한 결말 따윈 부정해버리고 만다. 지독하고 때론 철저하게 모든 것을 나락으로 떨어트려 버리는 냉정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얼마나 반어적인가. “곤히 잠드세요”란 달콤한 저 제목의 이면에 품고 있을 차갑고 냉정한 반동적인 내용이 그득하니. 한번 끝까지 가보자 작심한 감독과 호응할 수 있다면 혹은 극단적이거나 혹은 현실적일지도 모를 결말을 보고 싶다면 이만한 스토커 영화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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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05-2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공포....ㅠ.ㅠ
편안한 잠을 위해 포기할래요.

Mephistopheles 2013-05-27 11:0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도 "곤히 주무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