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6년) 써오던 노트북이 사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빌빌거리는 게 영 마땅치가 않았다. 고사양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돌리다 보니 파일 하나 오픈하는데 빌빌 거렸고 어쩔 경우엔 담배 한 대 피고 올 동안의 시간을 가지게 돼 버리다 보니 마님께 긴급제안을 하나 했다.
“나 노트북 하나만 살께!”
“이기이기 미칫나?(퍽)”
의외의 지원군은 주니어였다.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그리고 사교육(잉글래쉬)으로 인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가끔은 구닥다리 노트북을 공유하다 마님의 표현대로라면 울집 큰아들(나)과 옥신각신 하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조금 더 완곡한 표현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주니어도 이제 컴퓨터를 활용할 때가 되었는데 말이지 컴퓨터는 달랑 한 대 뿐이고. 블라블라 주절주절 어쩌고저쩌고.”
“그럼 사야겠다.”
참나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내가 사자고 할 땐 뭔 개솔? 이냐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만 주니어가 개입되니까 관음보살의 표정으로 허락을 해준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비싼 건 안 돼! 하지만 성능이 좋으려면 어느 정도 가격은 감수해야. 아 안 들려 몰라. 무조건 비싼 건 안 돼!늘 이런 식이다.
그래 뭐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가성비가 뛰어난 노트북을 찾아내 결재를 받아 내리라. 란 각오로 근 보름을 활활 불타올랐다.
본격적인 노트북 구매 체크 포인트.
1. 가성비가 우선인 제품을 추스른다.
- 확실히 노트북을 만드는 제조사들이 많이도 늘었다. 더불어 외산 제품들도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중에서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가격정보 사이트를 이용하면 비교적 상세하게 분류해놨으니 그에 걸맞은 항목에 들어가 비교하면 의외로 쉽게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비슷한 성능의 제품들 중 유독 S사의 제품이 고가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싸도 살 이유가 없는 S사의 제품이지만 비슷한 스펙에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노트북뿐일까. 가전제품 전반과 더불어 하다못해 고가의 소비를 지향하는 자동차의 가격도 이해 불가능이다.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어떤 면에선 국민호구 인증일지도 모르겠다.
2, OS의 유무를 확인한다.
-딸랑 노트북만 사면 뭐하나 안에 돌릴 수 있는 기본적인 구동 프로그램이 있어야 제대로 노트북을 사용한다. 이 부분은 사실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다. MS사의 윈도우가 가장 대중적이다 보니 선택의 폭은 아예 없다. 단 같은 회사 제품 내에서 어떤 OS를 쓸 것인가는 결정 가능하다. XP, 7, 8 중 자기 입맛에 맞는 OS를 선택하면 된다. 단 XP를 지원해주는 노트북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OS의 유무에 따라 제법 가격차이가 많이 난다. 본인이 스스로 OS를 설치할 수 있다면 이 부분에선 노트북 구매와 관련된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차라리 OS를 자가 설치하고 그 돈으로 RAM을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32비트 OS에선 아무리 램을 추가해도 4GB밖에 인식을 못하므로 이점은 유의해야 한다. 8,16GB의 램을 달아도 OS가 32BIT면 무조건 4GB로 인식해버린다. 그렇다면 64BIT OS를 깔면 되잖아? 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64BIT 전용프로그램들은 32BIT프로그램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3. 곁들여 주는 물품은 무엇인가?
-한참 때 용산에서 부품을 사 컴퓨터를 조립했던 시기. 그 바닥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일명 “용산 마피아”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컴퓨터 살 때 딸려오는 자질구래한 물품은 사실 공짜가 아니야. 알게 모르게 다 값이 포함된 거지. “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변하며 이 진실은 많이 완화되었어도 구질구질 별 쓸모없는 액세서리들을 받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고 본체만 달랑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대략 이렇게 기본 가닥을 잡아놓고 뒤져보니 딱 알맞은 메이커가 튀어 나온다. 사실 이 메이커는 옛날엔 전설이었다. IBM이라는 공룡이 탄생시킨 브랜드이며 그때 당시만 해도 이 제품은 노트북에선 단연 돋보이는 메이커였다. 하지만 IBM이 PC사업 부분을 포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싱크패드로 대표되는 ‘레노버’라는 브랜드는 중국의 어느 기업에 매각된다. 마데 인 차이나의 상표가 붙어버린 후 이미지 상으론 그때 그 화려했던 만큼의 영광을 누리진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기본이상은 하는 상표로 인정되고 있다. OS는 미설치 상태로 제법 저렴하게 나오다 보니 넷상에선 “가성비 으뜸”으로 이 브랜드의 제품들이 제법 입에 오르내린다. 단점은 국내 제품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AS정도. 흔히 말하는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리스크는 존재한다지만, 나처럼 눈치 보며 물건 사는 사람에겐 이정도 모험쯤이야............
그리하여 질렀다.
한 달 정도 사용해 보니 뽑기 운은 좋았고 노트북 내 여러 가지 옵션들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간다. 지문인식부터 캠, 무선인터넷, 블루투스까지 잘 잡힌다. 지금도 별 무리 없이 조금은 고성능을 요하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팽팽 잘도 돌아간다.
단지, 구입한 후 3일 만에 5만원이나 가격이 떨어져버린건 무지 속이 쓰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