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크롤러 - The Sky Craw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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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에서나 사용되었을 프로펠러 방식의 전투기 1대가 창공을 꿰뚫고 하늘을 가르며 나타난다. 이어지는 기총소사에 상대 전투기는 박살이 난다. 탈출하는 파일럿까지 무참하게 살해하며 고고도 회전을 한다. 먹잇감을 찾는 맹수마냥 또 다른 적기를 발견하고 달려든다. 그 전투기의 옆구리엔 검은 사자가 그려져 있다.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스카이 크롤러’는 위의 설명과 같이 화려하며 정교한 도그 파이터(전투기끼리의 공중전)로 시작한다. 아마도 이번 그의 작품은 저렇게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이 주된 내용이 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지만 조금 더 진행하다 보면 이 생각은 무참히 깨지고 만다.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보면 폭력적인 액션 하나하나는 임팩트가 강렬한 만큼 그 시간은 짧고 전체의 영화 속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위와 같은 액션 신이 주를 이루진 않는다. 이번 신작 역시 마찬가지, 초반의 화려한 장면 하나로 관객들을 정신없게 몰입하게 만들고선 영화는 다분히 고요하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애니 자체는 꽤 깊고 진중하다. 누가 오시이 마모루 아니랄까봐 그의 전작 공각기동대에 버금 갈 수 있는 난해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간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형 같은 소모성 인간의 등장이나, 이런 과학력과는 동떨어진 프로펠러 추진 전투기들의 모습, 그리고 국가 간 무력대결이 군이라는 특수집단이 아닌 기업들이 대리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SF의 배경을 그리면서도 군데군데 이치에 맞지 않는 요소를 미묘하게 비틀어 끼워 넣는다. 인물들의 묘사 또한 지극히 단순하다. 흔히 봐왔던 캐릭터의 정교함은 사라지고 밋밋한 얼굴에 내뱉는 대사까지 단답형에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과 설정들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감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일 수도 있어 보인다.

‘스카이 크롤러’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궤적이 큰 포물선을 그리고 돌아온 자리가 다시 출발점인 것처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쟁이란 표면적 배경에 반환점을 돌아 다시 원위치로 회귀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거부할 수 없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와 흡사한 구조로.



이런 부동,불변의 윤회 속에 영화 속 핵심과도 같은 ‘킬드렌’의 운명을 짊어진 두 남녀가 존재한다. (주:킬드렌이란 유전적인 조작으로 성장이 멈춘 인간을 말하며, 이들은 죽을 때까지 청소년기의 상태를 유지한다.) 새로 전출된 파일럿 칸나이 유이치와 베이스 사령관 쿠사나기 스이토의 만남은 무미건조하게 시작된다. 형식적인 군의 계급에 의한 구분으로 유이치는 스이토의 명령을 받고 미션을 수행하는 종속적인 행동을 초반에 보인다. 조금씩 접근하는 그들에겐 유이치가 모는 전투기의 전임자 ‘쿠리타 진로우’의 존재가 주목되기 시작한다.

비행단 에이스 이었던 진로우는 전선에서의 전사가 아닌 다른 이유를 유명을 달리했고 그 빈자리에 유이치가 배속되어 어쩌면 그와 똑같지만 조금씩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간다. 이런 설정 속에서 거부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태생적인 운명인 킬드렌으로 태어난 두 사람의 인생은 짧은 시간동안 변하기 시작한다. 과거 진로우와 스이토의 관계와 현재 유이치와 스이토의 관계가 비교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한다.   

과거의 두 남녀는 그들의 태생적 한계를 결국 자의에 의한 죽음으로 종결되었다면 현재의 두 남녀는 유이치에 의해 그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로 유이치는 그들의 절대자일수도 있고  모든 금기를 내포하는 ‘티쳐(Teacher)’라는 적군 에이스에 도전하다 이카루스의 비극처럼 결국 격추되며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며 끝을 맺는다. 



영화는 이렇게 유한성을 가진 두 인물에게 소극적이지만 처절하게 영원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준다. 마치 인형 같은 삶인 스이토에게 어쩌면 두 번째 만남일 수 있는 유이치는 그녀의 몸에 피가 돌고 체온이 느껴지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런 부분은 역대 자신의 작품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틀에 박히고 종속된 나약한 영혼들에게 무한한 연민과 동정을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과 동질감을 유지한다. 더불어 어쩌면 현실 속 스이토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는 몽상가스러운 메시지를 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항상 지나가는 길이라도 다른 부분을 밟는 경우가 있다. 항상 지나가는 길이라고 해서 경치가 똑같은 건 아니다. 그것만으론 안 되는 건가? 그것뿐인 거니까. 안 되는 건가?”

마지막 유이치의 대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돌고 도는 운명의 틀 속에 벗어나려고 버둥거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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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4-0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그파이트를 투견대회로 오역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지요.이런 작품은 단순히 애니메이션 산업 뿐이 아니라 정신문화 방면에 상당한 축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Mephistopheles 2009-04-04 10:30   좋아요 0 | URL
웃는 남자와 같이 전방위적인 인문지식이 축척되어 있다면 애니 보면서 재미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도 하는군요..^^

L.SHIN 2009-04-0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킬드랜'이라...인간이라면 한 번쯤 원하는 그런 상태?
유이치의 대사는 공감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하지만 데쟈뷰 현상도 무시할 수가 없죠. 그것을 의식하는 자가 몇이나 되겠냐만은..^^;

Mephistopheles 2009-04-04 10:34   좋아요 0 | URL
미쳐 말은 못했지만. 이 애니에서 킬드랜은 소모적인 인간생산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형이죠. 일예로 유이치는 사실 진로우와 동일인물입니다. 단지 과거의 기억은 죄다 말소시키고 오직 전투기 조종기술만큼은 살려놓은 복제품이죠. 스이토와 비행단 사람들이 알면서도 말 못하다 죽은 동료의 후임으로 온 파이럿이 죽은 동료와 비슷한 외모와 똑같은 버릇을 보고 유이치도 점차 자신의 과거 기억이 무언지 알아갑니다. 슬프죠. 태생적 속박에서 벗어날려고 유이치는 발버둥치지만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L.SHIN 2009-04-05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그렇군요.
제가 말한, 인간이라면 한 번쯤 원하는 킬드랜이란 '청소년 모습을 평생 유지하는'
외형적인 부분이었습니다.(웃음)
이 애니, 메피님의 설명을 들으니 나중에 보고 싶군요.^^

Mephistopheles 2009-04-08 14:35   좋아요 0 | URL
근데 평생 청소년의 모습...이것도 아마 실현되면 결국 후회하게 될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ㅋㅋ
 
인사이더 - The Ins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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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실제 일어났던 브라운&윌리엄스라는 거대 담배회사의 내부 고발자 제프리 위건 박사와 CBS 뉴스쇼프로그램 60분의 PD 로웰 버그만의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운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사장의 직책으로 회사의 담배제조 방식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위건 박사는 고달프고 힘든 내부 고발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파트너는 사회 고발로 유명한 CBS의 간판 프로그램 60분의 PD 로웰 버그만이다. 순조롭게 내부고발의 과정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바로 일이 틀어져버린다.  




위건은 정체불명의 세력에게 협박을 당하고 기업은 비밀서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매장시키려고 한다. 언론까지 동원해 한 사람의 인격을 거의 만신창이로 만드는 지경까지 몰아버리면서. 설상가상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가정은 아내의 이혼서류와 함께 붕괴 된다. 로웰 역시 마찬가지 위기에 봉착한다. 위건을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인터뷰까지 녹화한 후, 담배회사 사장들의 청문회 위증장면까지 편집한 마당에 CBS사장단은 담배회사의 소송이 두려워 위건의 인터뷰내용을 삭제하라는 압박을 로웰에게 시도한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그들은 정공법을 택하고 거대권력의 압력과 언론으로써 의당 지켜야 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전진한다.  

이 영화가 빛나는 이유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주제로 삼았다는 현장감과 더불어 단순히 내부고발자의 정의로운 행동만을 부각해서만은 아니다. 마이클 만 감독의 1999년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내부 고발자가 겪어야 할 심적 고통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다. 고민 끝에 내부고발을 선택한 위건은 영화에서 내내 불안하고 위태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만큼 심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를 통해 관객들이 최대한 근접하여 느끼게 해준다. 언론의 참 의미를 부르짖는 로웰의 모습 또한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CBS 경영진의 인터뷰 삭제와 몸을 사리는 모습에 뉴욕 타임스에 또 다른 내부 고발로 일침을 가하는 모습은 아마도 이 영화의 절정으로 보여 진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이 영화 속 실제 사건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입시키게 된다. 아마 지금은 대부분 잊혀 졌을 삼성그룹의 내부 고발자 김용철 변호사가 생각난다. 아직도 기억나는 왜 이런 내부고발을 선택했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내 자식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기 싫어서’란 짧고 핵심적인 이유에 꽤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영화에서와 같이 벌어진 기업과 언론의 만행도 기억난다. 삼성의 발 빠른 대처. 검찰의 늑장수사, 일부언론사는 김용철 이라는 인간에 대해 거의 정신병자 수준까지 몰아 붙였던 것까지 말이다.  



삼성의 내부고발 보다 다소 규모가 작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또 다른 내부고발의 경우를 얼마 전 접하게 되었다. 내부고발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고 하는 그 분의 시도가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른다.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가장 권위적이며 철밥통을 자랑하는 그 집단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건 곧 자멸을 의미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입에 바른 정의로우십니다. 대단하세요, 존경합니다. 란 말 몇 마디, 댓글 몇 개 보단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도 수단과 방법, 능력도 부족해 답답할 뿐이다. 아마 지금 가장 실질적인 도움은 술이 부족하다는 그 분의 술상대가 되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초라한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교과서 같은 구문을 떠올리진 말자. 이젠 우리도 이런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를 지켜주고 지지해주는 방법을 계획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가 필요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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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건 작건 이런 일들이 참 많겠지요. 갑갑합니다.

Mephistopheles 2009-03-19 14:05   좋아요 0 | URL
크게는 김용철 변호사 말고도 대운하의 문제점을 공개한 연구원이 징계를 받고 기타 그밖에 수두룩 할껍니다. 그리고 동양적 사고방식이 내부고발=배은망덕으로 보는 경향도 무시못해요.

Alicia 2009-03-2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부고발자가 한명이 아니라 여럿이라면, 눈에 띄는 뭔가를 일궈낼 수도 있겠죠? 더이상 내부고발이라는 비밀스런 뉘앙스를 갖지 않아도 될거고- 혁명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테고요.

Mephistopheles 2009-03-20 10:01   좋아요 0 | URL
일단 영화나 삼성의 경우 내부고발의 내용은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중대한 사항으로 보고 싶은데..이건 뭐 미치광이다 앙심이다..배은망덕이다..이게 말이나 되나 모르겠어요. 저 불쇼하는 아저씨 머리 속에 근육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됩니다. 혁명이라는 대단한 의미보단 당연한 것..이라고 보고 싶어요..근데 그 당연한 것조차도 통용이 안되는 사회는 정말 문제 많은 거겠죠.

Alicia 2009-03-20 11:27   좋아요 0 | URL

저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좀더 소박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보고싶어요.

김용철변호사가 조만간 청문회에 나올 것 같던데, 걱정이네요.
정말 갈수록 쉽지 않을텐데.

Mephistopheles 2009-03-20 11:39   좋아요 0 | URL
아..소박.긍정...맞아요 혁명은 거창한 것 보다 각자의 마음 속에 담아야 하는 것..그젓이 맞는 것 같아요..^^

얼마나 물어 뜯을까요. 이쯤되면 기업도 조폭과 별반 다를바가 없어보이는데요 배신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

비로그인 2009-03-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는 좀 다르지만 언론의 폭력을 다룬 영화를 본 건 매드시티가 유일하네요. 이 영화도 기억해두겠습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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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에선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환산한 결과치가 존재한다. 그 중에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배우자의 죽음이다. 무려 100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스트레스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자신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다름 아닌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결과는 때론 의아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는 사네 못 사네 하는 실제 이혼 사연들을 소재로 재구성한 드라마인 사랑과 전쟁의 경우 배우자의 죽음이 결코 스트레스 지수 100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고 보인다.  



얼마 전 보게 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 나오는 노부부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원수 부부들처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부부들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조용한 시골에서 노년을 안락하게 보내고 있는 평범하지만 화목한 부부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범하지만 화목한 노부부 루디와 트루디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병원에 들른 트루디는 남편이 중병에 걸려 있고 살날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트루디는 남편 루디의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의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들의 분신일 자식들을 찾아가고 젊은 날의 추억이 서린 해변을 찾아간다. 가장 애지중지하는 도쿄에 사는 막내아들 칼에게 가는 여정을 미처 여행의 경로에 포함시키지 못하면서.... 



이렇게 죽어가는 남편의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의 여행을 시작으로 결국 루디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면 기존의 이런 종류의 영화들과 구별되지도 않고 특이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는 예정된 루디의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변수를 주며 차별을 부여한다. 결국 이 변수로 인해 도쿄에 사는 칼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국의 풍치에서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진한 자취를 보여주고 느끼게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남겨진 사람이 가지게 되는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독까지 평범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본의 전통 춤인 ‘부토댄스’를 매개체로 영화를 보는 전지적 시점의 관객의 이해가 아닌 영화 속 2인칭인 인물들에게는 어색하고 거북한 모습을 대조시키며 신파조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묘한 매력과 함께 진한 잔향을 남겨준다.  



남겨진 반쪽이 먼저 떠난 반쪽을 찾아 그리워하며 몸부림치는 모습은 인간의 감정을 호소하는데 적절한 소재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익히 아는 방식과 모습으로 보여 진다면 타인이 느끼는 감성은 얕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도리스 되리라는 독일의 여성 감독은 아마도 이런 행동에 특별한 매개체를 넣고 똑같은 상황 속에서 어쩌면 더 진하고 짙은 감성을 이 영화에서 뽑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다보고 펑펑 우는 통곡이 아닌 눈 안에 그득 차있는 무언가가 그 결과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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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03-17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때리고 갑니다. 메피님 계속 결혼하면 힘들꺼라고 협박하셨지만, 이런 글 보니, 역시 결혼이 좋은점이 더 많긴 한 것 같네요 ㅋ 이제 한달 안남은 예비신랑 올림 ㅎ

Mephistopheles 2009-03-17 12:29   좋아요 0 | URL
으흐흐 협박이라뇨. 분명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요.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제일 최선이 아닐까 싶은디요. 한달이면..가장 힘들 때군요..^^ 잘 극복하세요 기인님..^^
 
그린 카드 - Green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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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 두 녀석이 있다. 이 녀석들의 꽤나 대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 만나기만 하면 투닥투닥 말싸움으로 시작해 술이 좀 들어간 날엔 고성까지 오고 갈 정도로 꽤 충돌이 빈번했었다. 따로 만나 어쩌다 상대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누가 데리고 살지 참 걱정입니다.’ 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곤 했었다. 이런 녀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손을 꼭 잡고 나타나 조용히 청첩장을 건네줬다. 이런 망할 X놈들 이렇게 될 걸 그렇게 치고 박고 싸웠냐! 란 농담에 지들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었다. 잠깐 여후배가 자릴 비웠을 때 조용히 어째서? 란 질문을 던졌더니 치고 박고 싸우다가 어느 순간 너무나 사랑스런 부분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대로 팍 꽂혀버렸다는 수줍은 고백을 들었다. 지금까지 잘 먹고 잘사는 그 후배들은 결혼 전처럼 그렇게 치고 박고 격하게 싸우진 않아 보인다. 아마도 평생 싸울 껄 그때 다 싸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미운 정부터 들어버리는 사랑의 경우 그 중독성이 꽤 높아 옆 사람이 보기 참으로 닭살스러워 대패를 들이밀고 싶은 상황이 곧잘 발생한다. 영화 ‘그린카드’ 역시 서로의 성향이 너무나도 다른 두 남녀가 목적을 갖고 만나 뒤늦게 서로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요즘은 도통 얼굴을 보기 힘든 앤디 멕도웰(이 분은 미녀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매력적인 여배우)과 프랑스의 대표배우 제라드 드빠르디유(이 분은 결코 잘생긴 미남 배우가 아님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주연인 ‘그린카드(미영주권)’는 다분히 서로가 필요로 하는 목적을 가지고 가짜 부부 행세를 하는 어떻게 보면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예에 죽고 사는 그녀는 정원 딸린 아파트를 얻기 위해 혼인 증명서가 필요했고 떠돌이 생활을 하며 음악가였던 그는 미국에서의 정착을 위한 그린카드의 획득을 위해 계산된 행동으로 이민국 심사를 준비하며 가짜 부부 생활을 하게 된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서로의 영역이 교차될 때마다 충돌하고 부딪친다. 남자와 여자로 만난 사이가 아닌 소기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나 사이니 만큼 겉돌고 충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영화 속 그들의 초반 충돌의 모습을 보며 ‘그래 이러다가 둘이 짝짜꿍 눈 맞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나겠지’라고 미리 결론을 내버렸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내가 주절거린 뻔한 결말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가짜 아내의 화장품 이름을 잘못 말한 조지의 실수로 이들의 생활은 위기에 봉착한다. 결국 브론테의 사법처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강제출국을 택한 조지는 브론테와의 사랑이 브론테는 조지와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뒤늦게 확인한다.

가짜 부부 행세를 위해 사람들에게 보이기만을 위해 간직하고 있었던 반지를 그들은 이별의 순간 진실한 마음으로 교환하며 이별의 아픔을 사랑으로 보듬는다.  

















어찌나....절절하며...안타깝고...사랑스럽고...아름다운지....흑흑...

영화의 마지막이 이별로 끝을 맺기에 아마도 다른 기타 로맨스 영화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미운정이 잔뜩 들은 상태에서 뒤늦게 찾아온 사랑. 아마도 순리적이고 순차적인 사랑과는 다소 위태하고 삐걱거릴지라도 영화 속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녀의 사랑은 절절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앞 영화 리뷰에서 말했었지만, 또 다시 강조하고 싶다. 사랑을 해라. 그것이 고운 정이던 미운 정으로 시작하던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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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3-1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 멕도웰을 여기에서 보게 되는 군요.
청순하다고 해야할 지 비쥬얼이 평범해서 이웃집에 사는 사람같다라는 친근감이 있어요.
그린카드를 감상한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있었나 싶기도 하구요.
절절함이 있는 로맨스는 항상 구미를 당기게 합니다. ^*^

Mephistopheles 2009-03-10 21:32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여배우는 살짝살짝 어느 특별한 장면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질리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고요. 제가 기억나는 그녀의 영화 중에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도 재미있습니다..^^
 
Mr.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 H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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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별별 희한한 직업들이 존재하나 보다. 농담으로 들어왔던 포항 제철소 쇳물 온도 손가락으로 재기나 김포공항 비행기 뜰 때까지 밀기 같은 말도 안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직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 히치 역시 기본의 관념으로 직업을 이야기할 때 생소하고 낯선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히치의 직업은 뉴욕의 잘 나가는 데이트 코치.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의사와 행동에 의한 남, 녀의 애정과 사랑을 의도적이며 계획된 작전을 통해 보다 확률 높은 사랑을 만드는 직업으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있다. 이쪽 분야 능력이 어찌나 출중한지 히치의 데이트 코치 성공률은 100%를 육박하는 수준에 오른다. 이런 그에게 뚱뚱하고 어리바리하며 거기에다 소심하기까지 하지만 순수한 남자 알버트의 데이트 코치 의뢰가 들어온다. 하지만 상대는 아름답고 거기에다 재벌이기까지 한 알레그라. 히치는 자신의 프로정신에 입각에 가능성 0%인 이 무모한 데이트 코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영화 속 히치는 누가 봐도 선수 중에 선수다. 속된 말로 지나가는 이성에게 말 한마디와 미소 하나로 그날 저녁식사를 약속 받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최상위 5%안에 들어가는 초 절정 고수 중에 하나이지만, 정작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대상에겐 어설프면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헛똑똑이 중에 하나이다. 이런 그가 누가 봐도 호감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알버트의 무모한 도전을 도와주며 점점 자신이 느끼는 참된 사랑에 대해 접근해가는 영화다.

모든 로맨스 영화. 특히 이렇게 뻔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표현기법과 배우들만 갈아 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 역시 걸출한 스타 윌 스미스의 원맨쇼를 흥행코드로 지정하고 만든 뻔한 영화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뻔한 이런 부류의 영화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에 본질에 대해 은연중 마주치게 된다. 알버트와 알레그라는 초반 히치의 코치 도움으로 안면을 트고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그 후 알레그라가 알버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부분은 히치의 코치가 아닌 알버트의 평소 모습이다. 완벽한 여자의 상징으로 보이는 알레그라 역시 밝혀지지 않은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투영된 모습이라고 보일 수 있는 알버트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난다.  



이들과는 대조적인 커플 히치와 사라는 표면적으로 순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 표현된다. 데이트 코치와 얠로우 저널리스트라는 직업 자체가 이들의 사랑이 순수한 목적과는 동떨어지는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순수하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히치에게 접근하는 사라 역시 히치에 대한 감정의 변화에 눈 뜨기 시작한다. 그녀가 자신하는 부분인 폭로와 의심으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지만, 알버트를 통해 용기를 얻은 히치의 데쉬에 무엇이 진실한 사랑인지 깨닫게 된다.  



이렇게 상반적인 두 커플을 대조시키며 영화는 남녀 간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어렵게 키운 사랑의 위기에 알버트는 잊는 것 보단 차라리 매일매일 그녀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걸 선택하는 모습이나 사랑에 빠져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을 낙하산 없이 점프하는 정신없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히치의 생각에서 콩깍지 씌운 사랑의 열병을 앓았을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상기온으로 들쑥날쑥 예년 같지 않은 3월.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경제가 어렵고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히치나 알렉스처럼 열정적이지만 어수룩한 사랑을 하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영화가 꼭 허구과 과장된 세계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영화 속 4명의 남녀처럼 열심히 사랑하자. 우리도 그들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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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9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9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03-0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이런 뻔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싶단 말이죠. ㅎㅎ
기분꿀꿀할 때 보게 찜해놔야겠어요. ^^;;

Mephistopheles 2009-03-09 11:42   좋아요 0 | URL
뻔한 내용 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로맨스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되니까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영화가 가상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컨디션 업이 되는 계기도 되기에 꼭 나쁘다라고 볼 순 없어 보입니다..^^

다락방 2009-03-09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분 꿀꿀할 때 보게 찜해놔야겠어요.

Mephistopheles 2009-03-09 12:34   좋아요 0 | URL
음 그럼 가급적 이 영화를 보는 일이 없어야 겠군요..^^

새초롬너구리 2009-03-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ok, 위에 알버트 커플이 귀엽겠네요. 전에 케이블에서 해주던거 밑에 커플만 보고 '뻔해~'하고 그만 봤는데.

Mephistopheles 2009-03-09 17:43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영화의 주연은 윌 스미스라기 보단 저기 알버트를 연기한 케빈 제임스일지도 몰라요. 어리버리 어수룩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제법 소소하고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지요..^^

순오기 2009-03-1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우수리뷰 당첨, 축하합니다~~ 윌 스미스가 흥행보증은 확실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