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경험한지 어언 10년하고도 꼬박꼬박 5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사회초년생 후래쉬맨의 열정이야 쥐끝만큼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자리를 채운 건 능구렁이 같은 능청스러움과 늙은 너구리같은 뻔뻔함으로 꽉꽉 들어찬 느낌이다. 이런 사회생활 중에도 걷어내고 싶은 암흑기가 있었다면 압구정 쪽에서 근무한 11개월과 송파에서 근무한 1년여일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이 저주스런 사회생활 2년여를 예리한 메스로 깡그리 솜씨 좋게 도려내기엔 아쉬운 좋았던 기억과 추억도 존재한다.
척박한 근무환경과 말도 안 되는 일처리 방식에 속이 배배 꼬이던 송파 쪽에서의 1년여 나를 견디게 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꽈배기"였다.
근무처 뒤쪽 빌딩 숲속의 한 길가 구석에 자리 잡은 이 꽈배기 가게는 볼품없는 무허가 노점이었다. 노점이라고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질긴 고무로 만든 바퀴 4개에 얹힌 트럭 뒤쪽이 가게의 전부였으니까.
가게 생김새와는 다르게 어찌나 장사가 잘되는지 오후 2시쯤 도착하여 개시하면 점심시간이 불과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근처의 직장인들은 개떼처럼 모여 한 봉지씩 포장을 하거나 그 자리에서 서서 두세 개쯤은 입가에 허연 설탕자국을 남기며 흡족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돌아가곤 했었다. 누가 봐도 온화하고 참 착하게 생기셨구나가 떠오르는 중년의 부부가 하는 이 가게는 흔히 말하는 덤도 잘 줬었다. 품목이라고는 꽈배기와 찹쌀 도넛이 전부였는데 어쩌다 한 봉지를 챙기면 스텐 집게에 찹쌀도넛 한두 개를 거머쥐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서비스! 란 말을 하며 하얀 봉지에 우겨넣어주시던 아주머니의 따스함은 그늘진 빌딩 사이를 매섭게 파고드는 칼바람도 솜방망이로 만들곤 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초절정 세디스트라고 해도 어떠한 이견이 없는 발주처 X대리의 파상공습을 받고 내외할 것 없이 똥 씹은 표정으로 그 가게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이런 환경에서 더는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8할을 넘기던 즈음 이였고 하필 찾아간 시간이 근처 여고생들이 방과 후 가게를 휩쓸고 지나가 찹쌀도넛이고 꽈배기고 깡그리 동이 나버린 상황이었다.
아쉽게 발을 돌리려는 상황 아주머니가 불러 세운다. '날도 추운데 커피 한잔 끓여줄까?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 남편이 금방 꽈배기 튀겨 줄 텐데..' 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괜찮아요. 한마디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겠지만 그날따라 사무실로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었기에 아주머니가 건네 준 인스턴트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집어 들고 아저씨가 꽈배기 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커다란 스텐 그릇에서 고무주걱으로 턱하니 한 주걱을 떠내 밀가루가 뽀얗게 발라진 널따란 나무도마에 반죽을 던져놓고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반죽을 늘리고 줄이며 점차 꽈배기의 형상을 만드신다. 아저씨의 손에서 창조된 꽈배기가 제법 형태를 갖추어 갈 때쯤 보조를 맞춰 이미 달궈진 기름에 군더더기 없는 모션으로 아주머니는 풍덩풍덩 빠트린다. 자글거리는 근사한 효과음과 더불어 뽀얗게 베이지색 기가 돌았던 꽈배기 반죽은 옅은 브라운 색으로 떠올라 인심 좋은 아주머니의 금속 집게에 잡혀 몇 차례 헤드뱅을 하며 기름을 토해낸다. 그 후 하얗다 못해 반짝반짝 빛을 내는 설탕단지 속에 처박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온몸으로 설탕을 섭취한다.
불과 오 분이 채 안 돼 갓 튀겨낸 꽈배기 하나는 그 뜨거움에 차마 손으로 잡지 못하고 두꺼운 마분지에 말려 내손에 쥐어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꽈배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바스락 거리는 외피의 경쾌함과 더불어 입안 가득히 퍼지는 부담스럽지 않은 촉촉하고 담백한 밀의 촉감이 밀려온다. 아울러 붙어있던 설탕가루가 입안에서 녹아들며 은은한 달콤함까지 선사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서 꽈배기 5개를 먹어치운 나는 배배 꼬인 밀가루 덩어리 음식을 먹고 오히려 꼬일 대로 꼬인 마음이 풀어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간직하게 되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 서비스를 외치며 역시 금방 튀겨낸 찹쌀 도넛 하나를 건네주는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며 난 그 직장에서 적어도 3개월은 더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그 가게가 그대로 있을까. 속이 꼬인 사람들을 하나씩 끌고 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꽈배기를 먹여주고 싶다. 정말 맛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