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어 공부

- 수학과 영어에 이어 마지막 푸념 ; 국어

 

며칠 전 안해가 내게 물었다. “당신, 국어 (공부) 잘 했어요?” 좀 뜬금없어 이유를 물었더니, 지인이 안해를 통해 내게 자기 중학생 아이의 국어 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물은 것이다. 그야말로 헉! 수학이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수학에 대해 물어왔어도 답을 준다고 장담은 못한다. 내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이 아이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고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수학을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국어를 못하는 것이 포함된다. 문제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이다.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본적이 있다. (수학도 아닌 것이, 산수도 아닌 것이, 유치원생용) 수리?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나는 아이에게 항상 문제를 먼저 읽으라고 한다. 아이는 문제를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한 직후 문제 아래에 있는 그림과 숫자를 보더니 ‘아, 이렇게 풀라는 뜻이구나’라고 말하면서 답을 맞혔다. 최소한 이 문제에 관해서 딸아이는 수리적으로는 문제를 풀 능력이 되었지만, 국어 능력은 그에 못 미친 예다.

 

신문기사에서 ‘실질 문맹률’이라는 글을 읽었다. 글을 읽지만 그 글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학과 영어는 비교적 잘하고 못하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공부하는 방법도 (비록 잘못된 방법이라고 해도)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국어는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누가 국어를 잘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게다가 공부하는 방법도 명확하지 않다. 내가 아는 한, 단시간에 국어를 잘 할, 그리고 단시간에 국어 성적을 올리는 방법도 없다. 누군가는 독서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독서가 답에 가깝지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답이라면 유사 자폐의 하나인 ‘초독서증 hyperlexia’, ‘책 중독 증세’나 ‘실질 문맹률’이라는 용어가 있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국어 성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어 독해에 대한) 답은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잘 이해 안 되는 문장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듣기, 말하기, 글짓기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다.)

 

새로 인사를 나눈 알라디너의 글에서 ‘어떻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나도 아이에게 독서에 관해 압박을 전혀 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만, 항상 조심스럽다. (겨울왕국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머리의 상처는 어렵지만 치료 가능하고 심장의 상처는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단 하나의 방법을 제외하고) 치료가 곤란하다.)

 

‘스스로 생각하라.’ 이것을 어떻게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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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4-12-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생각하라_ 하고 자꾸 제 생각을 주입시키는 건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기만 해요. 부모가 똑바로 서야 자식도 똑바로 선다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건 좋지 않노라 선배맘들이 이야기하던데_ 워낙 태생이 귀가 얇아서 그런가 쉬이 고쳐지지는 않네요.

`초독서증`은 처음 듣는 말이라서 메모해놨어요. 마립간님 블로그 차례 이제서야 제대로 훑어봤는데 와_ 놀랍습니다. 세세하게 나눠서 분류, 정리해놓는 것도 아름답구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마립간 2014-12-19 15:24   좋아요 0 | URL
독서를 하라고 하는 것도 압력이지만, 스스로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압력이 되겠지요. 저는 부모로서 무오류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생이겠지요. 가능한 한 모범을 보이는 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 서재는 알라딘 서재 시작부터 꾸려 왔던 것이라 10년 넘는 동안 쌓아온 글들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과찬이고요. 주제가 조금 무겁고 무미건조한 서재입니다.

세실 2014-12-1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 사회 잘하는 비법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마구잡이식 독서보다는 체계적인 독서가 필요하겠지만요.
일단 책을 많이 읽으면 이해력, 독해력이 좋아집니다. 책을 읽고 가벼운 느낌쓰기하면 더 좋겠지요.

이에 더해서 신문 사설 읽고 밑줄 긋기, 모르는 단어 찾아보기......확실히 좋아져요. ㅎㅎ

마립간 2014-12-19 13:25   좋아요 0 | URL
저도 독서 이외의 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독서에 대한 압력과 공부에 대한 압력을 같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과제가 적절하겠죠.
 

 

* 身邊雜記 141216

 

선의 善意가 항상 환영을 받거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 좋은 결과가 아닌 것 즉 나쁜 결과는 선의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측과 행동의 대상이 되는 양측 모두에 가능하고 이런 일은 ‘자주’보다는 드물고 ‘가끔’에 가깝지만, 그보다는 발생 빈도가 조금 높은 ‘때때로’에 가까운 것 같다.

 

생물 응용학과를 졸업하고 영어에 기반을 둔 지식노동자로서, 알라딘에서 나의 직업과 관련된 조언이나 상담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직접적인 원인되는 계기도 있지만, 선행된 사건들의 축적으로 내린 판단이다. 이 글은 과거와 타인을 향해 쓴 글이 아니라 혹시 모를 앞의 일을 두고 나의 다짐을 위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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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身邊雜記 141211

 

* 친구의 아들이 대학 진학을 했다. 친구의 자녀들은 내 아이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친조카만큼 친밀감이 있다. 많은 친구 자녀들 중 이번에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수학’ 전공으로 학자의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친구)의 영향으로 수학을 전공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니, 친구와 친구 아내는 의대로 진학하기를 내심 바랐다. 하지만 아이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끔 나의 의견을 물어올 때, 나는 당연히 아이의 뜻대로 진학시키도록 격려했다.

 

나의 격려는 사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은 학과로 진학하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약간은 나의 꿈을 대신 실현시켜 줄 것을 기대하는 투사 projection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 아들은 이번 대학 입시에서 원서를 딱 세군데만 넣었다고 한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KAIST 수리과학과, Postech 수학과. 그리고 세군데 모두 초합 初合으로 붙었다고 한다. (초합과 추합 追合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친구로부터 8일에 세 대학 중 한 대학을 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생이 쉬운 길이 어디 있으랴마는 ‘학자’의 길, 쉽지 않을 것이다. 인생 마지막까지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 이 아이는 내가 정의하는 광의의 (예를 들어 유치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도장을 포함한 것 그리고 통상적이지 않은 교육 기회를 포함하는) 사교육을 의미한다면 사교육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상적인 의미에서 (학과 공부 학원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협의의) 사교육은 받지 않았다. 이 아이의 예는 학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다. 인생을 협의俠義의 공부로 승부하겠다면 공부에 대한 내적 동기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 나의 감회를 쓰는 글이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분명히 합격한 사람보다 불합격한 사람이 많을 테니. 협의의 공부는 인생에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광의廣義의 공부와 성적, 학벌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주위에 내적 동기를 통해 협의의 공부 이외의 다른 곳에 승부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른 친구들의 자녀들을 보면서 학교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실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명시적 지식을 취득하는 것은 보통이지만, 암묵적 지식을 획득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 성적이나 학벌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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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4-12-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조카도 이번에 시험을 치렀는데..성적이 안나왔다는것같더군요. 모의고사 점수로는 일등급이라했지만 지금은 인서울만되어도...인듯. 대안학교를 다니고 검정고시를 보고, 일년 캐나다 친척댁에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 평점이 백오점정도였다들었거든요. 수학과목에서 만점에 보너스점수까지 받아서. 그런 애가 수학자가 되고 싶어 수능을 봤지만 학교는 점수따라 가야하고.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실망은 제 조카의 미래를 생각할때마다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마립간님이 말씀하신 그 아이는 정말 훌륭한 수학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직업전망이 좋다고 다른학과를 추천해도 꿋꿋이 수학전공이 아니면 대학이 무슨 의미냐는 울 조카에게도 희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컴이 안되니 괜히 북플에 들어와 주절대다가네요 ;;;;

마립간 2014-12-11 11:33   좋아요 0 | URL
수학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미국 기업에서 수학자를 많이 채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하는군요.), 직업 만족도를 조사하면 이 직군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가 나옵니다. 수학은 정말 남이 시켜서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chika 님의 조카의 입시에 관해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수학자를 키울 수 없는, 어짜피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본인의 의지와 능력이 제일 중요하죠.

chika 2014-12-11 11:46   좋아요 0 | URL
의지와 능력. 거기에는 부모의 의지와 능력도 포함되더군요. 의지는 있지만 후원히기에는 재력도 있어야하고.
그래도 이땅에서 본인의 의지로 하고싶은것을 찾아 노력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어 희망을 가져야겠죠. ^^

마립간 2014-12-11 11:58   좋아요 1 | URL
제 주위에는 자수성가한 지식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자녀들에게 후원할 재력도 없지만, 그런 마음 가짐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은 대학 입학 후 자립하라고 하죠. 저는 대학 등록금도 이자 쳐서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수학에 대한 교만일지 모르겠는데요. 수학은 부모의 후원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조카가 승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의집 2014-12-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 아들냄이 본인이 원하는 곳에 가고 싶어한다니...저도 응원해주고 싶네요. 요즘 애들은 뭐하고 싶은 게 없던데..맨날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게임만 하면서 그게 인생의 즐거움으로 아는 애들이 대부분이라..울 아들도 그렇거든요. 아 한심해서 정말. 저도 자식 키워보니 친구분 아들처럼 뭔가 목표가 있어 매진 하는 자식 두는 거 쉽지 않아요. 응원할께요~

그렇죠. 인생사 다들 공부 잘하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이 있고(우리 아들이 후자 쪽이라 이렇게라도 위안을 하며 삽니다!) 인생이 십대나 이십대에 결정되는 게 아니니...


저도 다락방님이 수학자들 관심 없다가 다락방님이 페이퍼에 사진 올려주셔서 그거 보고 반해서 샀네요. 아 언제 읽으려나요. 수학자들책에 나온 수학자들 포즈 멋지더군요~

마립간 2014-12-11 12:04   좋아요 1 | URL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의사 부부, 변호사 부부, 의사와 외국 대기업 직원 부부, 서울대 부부, 서울대 포항공대 부부 등 여러 가지 지식노동자의 조합이 있는데, 부모 세대의 중산층과 비슷합니다. 지식 노동자 세상의 종말을 앞두기 있기 때문에 딸아이의 성적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아는 세상이 지식 노동자의 세상이라서 그것에 대해서만 안내를 할 수 있죠.

유치원 제 딸아이의 경우 공부에 재능도 있어보이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는데, 자기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학自虐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아빠인 저와 비교하면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성격이 인생 전체로 볼 때 더 위험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습니다.
 

 

* 映畵短評 141205

 

<The Road> (2010)

 

나는 영화를 볼 때 좌뇌로 감상을 먼저 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그렇게 착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 시절, <Point Break 폭풍 속으로> (1991)을 보면서 친구가 내게 한 말 때문이다. “네가 영화를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냐?” 영화를 보면서 감탄했다. “아! (자유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볼 때, 무표정하게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The Road>를 보면서 오랜만에 우뇌로 영화를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줄거리가 중요하지 한다. 중간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영화를 멈췄다. 하지만 그만 볼 수가 없었다. 영차 영차 영화를 다 봤다. 주제도 줄거리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막막함. 그런데 이 영화가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것을 소설로 쓸 수 있었을까. <Point Break>와 <The Road>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의 영화가 <Le Grand Bleu 그랑 블루>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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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2-0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안 봐서 모르겠는데 소설은 압도적 걸작`입니다.

마립간 2014-12-05 12:19   좋아요 0 | URL
흥미롭네요. 대부분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면 대부분 원작이 뛰어나지만 저는 영화를 먼저 본 상태라서 저와 친하지 않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12-0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랑블루는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아요. 다시 보고 싶네요. 저도 바닷속으로 가고 싶어서 그런지..
로드는 영화화 했다는 것 만으로 참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립간 2014-12-05 12:22   좋아요 0 | URL
`그랑 블루`는 제가 볼 수을 때마다 보는 영화입니다.^^

다락방 2014-12-0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말씀에 저도 한 표. 소설이 절대적으로 훌륭합니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요.

마립간 2014-12-05 12:2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말씀대로 이것을 영화로 생각한 감독도 대단하지요. 아마 소설을 먼저 읽으신 분들은 소설이 더 낫다고 평가하시겠지만, 영화의 영상화/영상미를 생각할 때 영화 역시 볼만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Mephistopheles 2014-12-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풍속으로..(포인트 브레이커) 의 감독 작품은 좋은 작품이 많습니다. 전 비교적 초반작인 블루스틸이란 영화가 인상깊더군요

마립간 2014-12-05 12:29   좋아요 0 | URL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블루 스틸`도 봐야겠네요.
 

 

* 身邊雜記 141204

- 질문의 층위와 출제자의 의도

 

* 질문의 층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아주 오래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국어 시험 문제가 ‘“우리”의 뜻은 무엇인가?였다. 나는 ‘나(1인칭)의 복수’라고 답하였다. 물론 ‘1인칭’이니 ‘복수’와 같은 국문법 용어를 쓴 것이 아니고 내용상 그렇다는 뜻이다.

 

나는 이 문제를 틀렸다. 정답은 ‘가축의 집’이었다. 시험 후 담임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틀린 학생이 있다는 것에 대해 엄청 화를 내셨다. (오죽하면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겠는가.) 그렇게 여러 번 이야기를 했고, 강조를 했는데, 틀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화를 내셨다는 것은 나를 지목해서 화를 내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내신 것은 (이 페이퍼에 쓰지 않을) 나를 위한 선의善意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선의가 있었든, 악의가 있었든, 내가 그 문제를 틀린 것에 대해 전적으로 내 책임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우리’라는 단어가 ‘가축의 집’으로 선생님께 배우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문제가 ; ‘농부가 돼지를 우리로 몰아넣었다.’ 이 문장에서 ‘우리’의 뜻은? 이렇게 문제가 나왔다면 나는 그 문제를 맞혔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문제 풀이도 중요하지만,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도 있다. 인터넷에는 초등학생 문제풀이에 대한 것이 유머로 나온다. 한가지 예를 들면 ; 개미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이 문제의 답은 ‘머리, 가슴, 배’이다. 초등학생은 ‘죽는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 해학적인 상황도 초등학생이 오답을 했다가 보다 선생님이 문제를 잘못 냈다고 판단한다.

 

* 초등학교 문제야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대학입학시험의 경우는 문제가 좀 복잡하다. 현재 학교에서는 선행학습을 방지하기 위해 학년 별 수준을 넘는 답은 오답으로 처리한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3’의 정답은 ‘답이 없다’이다. 중학교 1년에게 X**2= -1의 답은 역시 ‘답이 없다’이다. 만약 ‘i, -i (허수)’라고 답을 하면 오답처리하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세계지리 문제는 처리는 일관성을 벗어남으로서 또 다른 오류를 보여준다. 나의 의견은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잘못 출제된 것이고, 학년 별 수준을 넘는 답을 오답으로 처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같은 기준으로 작년 세계지리 문제는 교과서를 바탕으로 답을 구할 것이 아니고, 사실을 기준으로 먼저 정답을 정하고, 교과서의 내용을 차선의 정답으로 했어야 맞고 생각한다.

 

* 지금은 뜸해졌지만, 작년까지 아이가 ‘명탐정 코난’을 즐겨봤다. (구매는 계속하고 있지만.) 아이와 둘이서 범인을 예상하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코난이 사건을 설명하는데도 동의할 수 없었다. 어떤 사건의 가능성에, A와 B와 C가 가능한데, A와 B가 불가능하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C가 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능한 것과 차이가 없어보였다. 지은이가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지, 과학적이지 않았다. (명탐정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건 해결을 몇 번 경험하니, 패턴을 파악했다. 사건 해결을 목표로 삼지 않고, 지은이가 암시하는 사건 해결을 집어내는 것이다. 어떤 사건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범인을 알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명탐정 코난’이 사건 없이 끝난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야기 처음에 저런 것을 보여주는 것은 사건의 복선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저와 같은 복선에서는 저 사람밖에 범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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