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身邊雜記 141211

 

* 친구의 아들이 대학 진학을 했다. 친구의 자녀들은 내 아이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친조카만큼 친밀감이 있다. 많은 친구 자녀들 중 이번에 대학에 진학한 아이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수학’ 전공으로 학자의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친구)의 영향으로 수학을 전공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니, 친구와 친구 아내는 의대로 진학하기를 내심 바랐다. 하지만 아이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끔 나의 의견을 물어올 때, 나는 당연히 아이의 뜻대로 진학시키도록 격려했다.

 

나의 격려는 사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은 학과로 진학하고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그렇다고 그렇게 불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약간은 나의 꿈을 대신 실현시켜 줄 것을 기대하는 투사 projection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 아들은 이번 대학 입시에서 원서를 딱 세군데만 넣었다고 한다. 서울대 수리과학부, KAIST 수리과학과, Postech 수학과. 그리고 세군데 모두 초합 初合으로 붙었다고 한다. (초합과 추합 追合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친구로부터 8일에 세 대학 중 한 대학을 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생이 쉬운 길이 어디 있으랴마는 ‘학자’의 길, 쉽지 않을 것이다. 인생 마지막까지 행복하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 이 아이는 내가 정의하는 광의의 (예를 들어 유치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도장을 포함한 것 그리고 통상적이지 않은 교육 기회를 포함하는) 사교육을 의미한다면 사교육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상적인 의미에서 (학과 공부 학원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협의의) 사교육은 받지 않았다. 이 아이의 예는 학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다. 인생을 협의俠義의 공부로 승부하겠다면 공부에 대한 내적 동기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 나의 감회를 쓰는 글이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분명히 합격한 사람보다 불합격한 사람이 많을 테니. 협의의 공부는 인생에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광의廣義의 공부와 성적, 학벌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주위에 내적 동기를 통해 협의의 공부 이외의 다른 곳에 승부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른 친구들의 자녀들을 보면서 학교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실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명시적 지식을 취득하는 것은 보통이지만, 암묵적 지식을 획득하는 데는 약점이 있다. 성적이나 학벌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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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4-12-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조카도 이번에 시험을 치렀는데..성적이 안나왔다는것같더군요. 모의고사 점수로는 일등급이라했지만 지금은 인서울만되어도...인듯. 대안학교를 다니고 검정고시를 보고, 일년 캐나다 친척댁에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때 평점이 백오점정도였다들었거든요. 수학과목에서 만점에 보너스점수까지 받아서. 그런 애가 수학자가 되고 싶어 수능을 봤지만 학교는 점수따라 가야하고.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실망은 제 조카의 미래를 생각할때마다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마립간님이 말씀하신 그 아이는 정말 훌륭한 수학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직업전망이 좋다고 다른학과를 추천해도 꿋꿋이 수학전공이 아니면 대학이 무슨 의미냐는 울 조카에게도 희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아침입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컴이 안되니 괜히 북플에 들어와 주절대다가네요 ;;;;

마립간 2014-12-11 11:33   좋아요 0 | URL
수학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미국 기업에서 수학자를 많이 채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고 하는군요.), 직업 만족도를 조사하면 이 직군에서 가장 높은 만족도가 나옵니다. 수학은 정말 남이 시켜서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chika 님의 조카의 입시에 관해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수학자를 키울 수 없는, 어짜피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본인의 의지와 능력이 제일 중요하죠.

chika 2014-12-11 11:46   좋아요 0 | URL
의지와 능력. 거기에는 부모의 의지와 능력도 포함되더군요. 의지는 있지만 후원히기에는 재력도 있어야하고.
그래도 이땅에서 본인의 의지로 하고싶은것을 찾아 노력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어 희망을 가져야겠죠. ^^

마립간 2014-12-11 11:58   좋아요 1 | URL
제 주위에는 자수성가한 지식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자녀들에게 후원할 재력도 없지만, 그런 마음 가짐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은 대학 입학 후 자립하라고 하죠. 저는 대학 등록금도 이자 쳐서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수학에 대한 교만일지 모르겠는데요. 수학은 부모의 후원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조카가 승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의집 2014-12-1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 아들냄이 본인이 원하는 곳에 가고 싶어한다니...저도 응원해주고 싶네요. 요즘 애들은 뭐하고 싶은 게 없던데..맨날 스마트폰이나 보면서 게임만 하면서 그게 인생의 즐거움으로 아는 애들이 대부분이라..울 아들도 그렇거든요. 아 한심해서 정말. 저도 자식 키워보니 친구분 아들처럼 뭔가 목표가 있어 매진 하는 자식 두는 거 쉽지 않아요. 응원할께요~

그렇죠. 인생사 다들 공부 잘하면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하는 사람이 있고(우리 아들이 후자 쪽이라 이렇게라도 위안을 하며 삽니다!) 인생이 십대나 이십대에 결정되는 게 아니니...


저도 다락방님이 수학자들 관심 없다가 다락방님이 페이퍼에 사진 올려주셔서 그거 보고 반해서 샀네요. 아 언제 읽으려나요. 수학자들책에 나온 수학자들 포즈 멋지더군요~

마립간 2014-12-11 12:04   좋아요 1 | URL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의사 부부, 변호사 부부, 의사와 외국 대기업 직원 부부, 서울대 부부, 서울대 포항공대 부부 등 여러 가지 지식노동자의 조합이 있는데, 부모 세대의 중산층과 비슷합니다. 지식 노동자 세상의 종말을 앞두기 있기 때문에 딸아이의 성적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아는 세상이 지식 노동자의 세상이라서 그것에 대해서만 안내를 할 수 있죠.

유치원 제 딸아이의 경우 공부에 재능도 있어보이고,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는데, 자기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학自虐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아빠인 저와 비교하면서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성격이 인생 전체로 볼 때 더 위험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