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싶은 날이다.

1.
어제 사건의 여파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2.
오전에 실장님과 개인면담을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로운 조직개편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속한 실의 인원은 3개 부서로 찢어지는데, 나의 경우는 아예 상관이 바뀐다.
또한 내 직속 상관으로 차장, 부장, 이사까지 모셔야 하는 층층시하일 뿐 아니라
부장, 이사로 모셔야 하는 분들과 우리 실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지금은 아래로 1명뿐인데, 옮기게 되면 아래로 2명이 생긴다 하나
이는 신입교육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지 승진과는 거리가 멀어 역시 곤란중첩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업무분장이다.
말이 좋아 기술전략이지, 아차하면 운영으로 전락하기 딱 좋은 업무다.
****이나 기술전략은 기술적인 기초가 있는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현재의 실 구성상 나와 S가 각기 한 명씩 찢어져야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기존 업무분장을 고려한다면 나보다 S가 기술전략에 적합하다.
더욱이 S는 개발자 출신이고, 공학 박사까지 앞두고 있지 않은가.
왜 S와 내가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추측을 듣고 있자니, 절로 입술이 깨물어진다.

3.
퇴근하는 길에 문득 생각난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병원이란다.
하아, 어머님이 췌장암이란다. 길어야 6개월...
5일 전에 당뇨 합병을 의심하여 종합검진차 입원한 것이었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울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사흘 꼬박 빈소를 지키며 온갖 궂은일을 다해주던 후배인데.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버벅대니 밥이나 한 끼 사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만 울음이 새어나올 뻔했다.
다음달에 휴가를 내서라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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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3-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하시겠어요. 임산부는 우울하면 안되는데.... 에휴... 그래도 힘내세요. 아자 화이팅!!!

아영엄마 2006-03-2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직장 다니느라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은 편하게 지내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ㅜㅜ

水巖 2006-03-2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의 일이란 언제나 마음에 들 수 없는것이지만 왜 자꾸 어려워지나요. 그래도 용기잃지말고 힘내세요. 강인한 의지를 가르쳐주는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좀 마음이 가벼워 질까요, 힘내세요. 태교라고 생각하세요.

ceylontea 2006-03-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웃으세요... 사는 것이 그렇지요.. 웃다보면 웃을 일만 생기겠지요...

2006-03-22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3-2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닥치면 또 어떻게든 하겠죠. 그런데 마지막 소식이 워낙 대흉이라 우울해지네요.
아영엄마님, 전 정말 상관 복이 없나봐요. 이전 회사에서도 여자는 문서작업이나 하라는 상관 때문에 무척 속 끓였는데, 새로운 보스는 한 술 더 뜰 듯. ㅠ.ㅠ
수암님, 좋게 생각하면 기술적 전문성을 더 갖출 수 있는 기회겠죠.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실론티님, 도통하셨군요. ㅎㅎ 노력해야죠, 저도.
속삭이신 분, 예, 선생님 중 한분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적이 있어서 저도 조금 알아요. 그래서 차마 후배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지 못하겠더라구요. ㅠ.ㅠ

paviana 2006-03-2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사촌언니도 췌장암으로....암 중에서 가장 늦게 알고 아는 순간이 거의 말기라는...후배에게 맛있는 밥 사주세요..에고에고..
글구 보스가 시키는 대로 맘 편히 가지고 하세요. 그렇게 혼자 끙끙 대면서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없어요.그저 그래 니회사고 니돈 나가지 내돈 나가냐...이런 식으로 -_- 안 그러면 속 터져서 회사 못 다녀요..지금은 스트레스 안 받는게 제일 중요해요.

水巖 2006-03-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우리 어머님도 췌장암으로 돌아 가셨거던요. 한 1년 아프시다가 떠나셨죠. 이번 일요일에 동생들과 어머님께 다녀 올려고 합니다.

반딧불,, 2006-03-2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임산부를 제일 힘든 부서에 넣는 법이 어딨답니까.
속이 상해서 죽겠습니다. 저도 지금 힘들어서 죽겠습니다. 일이 너무 많은데 인원보충 할 생각을 안하네요. 정말 죽을 맛입니다ㅠㅠ

반딧불,, 2006-03-2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힘내세요. 할 수 없는 일은 접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조선인 2006-03-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이번달 휴가는 이미 썼고 다음달에나 가볼 수 있을 듯 해요. 속상해요.
수암님, 1년... 많이 안 아프셨기만 바랄 뿐입니다.
반딧불님, 아직 회사에선 아무도 몰라요. 워낙 보수적인 회사다 보니 연봉협상 끝날 때까지 말 안 하려구요. 조직 개편과 연봉협상이 동시에 종결될 터라 2주는 더 숨기고 살아야 합니다. 쩝.

waits 2006-03-2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은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기운 내시길..^^

조선인 2006-03-2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고마워요.
표범님, 만배라면 참을게요. *^^*
 
 전출처 : 프레이야 > 조영래평전의 허와 실

<조영래 평전>에는 조영래가 없다 블로거 기자단 뉴스에 기사로 보낸 글
2006.03.20

안경환 교수의 근거없는 사실 왜곡을 비판한다

 

“허명(虛名)이 실명(實名)을 능가하는 사람은 단명(短命)한다.”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에 이만큼 경종이 되는 경구는 드물다. 대학의 수석 입학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엄청나다.(86쪽)

 

안경환 교수가 쓴 〈조영래 평전〉의 ‘법대생 조영래’라는 장을 시작하는 글이다. 물론 안경환은 서울대 수석입학으로서 누린 명성의 허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단명한 사람을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하면서 인생 전체에 대한 평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할 수 있을까? 짧은 인생이었지만 깊은 성찰과 실천적 삶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었던 조영래 변호사의 삶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모독적 평가이다. 허명(虛名) 또는 실명(實名)은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개념이다. 겉으로 알려진 명성보다 실제의 모습은 더 훌륭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통찰력과 사람의 약점과 단점을 감싸안는 소박함과 관대함, 그리고 지도자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히려 안경환 교수가 쓴 〈조영래 평전〉을 읽으면서 이 책 자체를 평가하기 위해 허명과 실명보다 더 적절한 개념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유족과 추모사업회는 출간 자체를 반대했다


이 책의 허명적 요소는 출판되어서는 안 될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초고를 읽어본 사람들은 저자와 가까웠던 사람이든 면식이 없던 사람이든 일치된 의견을 냈었다. 평전 집필을 위한 최소한의 취재도 하지 않은 채 쓰여졌기에 조영래에 대한 내용 자체가 별로 없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 왜곡과 조영래에 대한 왜곡이 심각하여 ‘조영래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일치된 의견이었다. 이러한 의견은 조영래추모사업회(대표 홍성우) 측의 정영일 변호사와 유가족 측의 이옥경 선생을 통해 분명하게 안경환 교수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영래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평전이 안경환에 의해서 나왔다는 소식은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소설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알려진 공인을 기념하는 의미가 큰 평전을, 그것도 첫 평전을, 사실 왜곡이 너무 심각하기에 출판되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조영래추모사업회와 유족들의 강력한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왜곡된 사실을 수정하려는 어떠한 적극적 시도도 없이, 유족과 기념사업회에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발간한 이 행위가 벌써 이 책의 허명적 측면을 웅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 책의 출판사에서 배포한 언론 보도자료는, 여러 신문 등 언론 매체가 왜 이 책을 조영래추모사업회 공식평전으로 보도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보도자료는 기념사업회 활동의 연속선상에 이 평전 출판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고, 누가 보기에도 기념사업회의 사업으로 보기 쉽도록 쓰여져 있다.


최소한의 취재,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안경환의 〈조영래 평전〉은 ‘조영래 평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형식과 내용 면에서 평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다. 저자는 조영래와 함께 일했고, 조영래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거의 인터뷰하지 않았다. 조영래 변호사와 가깝게 지냈던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평전의 한 장을 할애해서 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경우 그 사건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들 누구와도 인터뷰하지 않았으며, 그 사건의 당사자인 나에게도 아무런 인터뷰 요청도 없었다. 다른 장(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족 중에서 조영래 변호사 큰누님과 1시간, 사모님과 2시간 정도 인터뷰한 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평전 작가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취재도 하지 않은 채 책을 쓴 것이다. 책 후반부의 조영래 변호사가 담당했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조영래추모사업회에서 발간한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에 포함된 각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설을 많은 부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적어놓았다. 이 책의 저자가 인터뷰한 것 같이 그려진 부분은 상당부분 추모사업회에서 제작한 다큐 <진실의 불꽃>에서 인용없이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반적으로 평전에서 기대하는 (평전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공인의 사회적으로 드러난 행적 속에 숨겨진 인물과 사상에 대해 충실한 기록적 의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조영래와 관련된 부분도 조영래의 이름을 내건 평론으로서 의아할 정도로 적다.  책 전체에 걸쳐 조영래와 관련된 사실은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자유언론실천운동’ 부분에서 조영래에 대한 내용은 단 3줄이다. 인권변론의 부분도 총 11쪽 중 조영래 관련 내용은 총 10줄이고, 조영래 변호사가 세웠던 새로운 개념의 법률사무소였던 ‘시민공익법률사무소’라는 제목의 부분에서는 총 10쪽 중 조영래 관련 내용은 2쪽뿐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안경환의 서울대 법대와 관련된 스케치를 산만하게 적어놓은 것으로 메워져 있다. 서울대 법대와 관련된 분량은 대략 훑어보아도 150쪽(책 전체의 1/3) 정도의 분량이다.


조영래 변호사의 삶에서 서울대 법대라는 틀이 차지한 비중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의 그를 알고, 그와 함께 일했던 주변 사람들을 조금만 인터뷰했더라도 이러한 식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영래에게 법대는 형식이고 틀일 뿐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할 공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주의 또는 특권의식 등에 경계심을 많이 가졌던 조영래의 삶의 방식과 지향성에 얼마나 어긋나는 방향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저자의 사상적 틀에 짜 맞춰진 평전

 

이 책의 초고를 보기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안경환의 이미지는 일정 정도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학자였다. 적어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의 민주화운동 정신에 공감하고, 노동자·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진보적’ 지식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조영래 평전〉을 읽으면서 겉으로 드러난 안경환의 이미지가 허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조영래 평전〉에 나타난 안경환의 관점과 입장은 신보수 내지 뉴라이트에 가까웠다. 박정희에 대한 우호적인 관점, 1970~198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과 부정적 시각, 심지어는 조영래 변호사가 평생을 바친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자 하는 시도,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여성 비하적 관점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책이 평전으로서 최소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안경환은 조영래의 인물됨과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성장기부터 시작해서 학생운동을 거치고 수배생활 이후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조영래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삶을 구성하려 노력했는지 갈등요소는 무엇인지 안경환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삶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사회변화의 방향에 대해서 남달리 깊은 고민을 늘 하던 조영래의 모습은 단 한 차례도 그려져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안경환이 조영래의 인물됨을 이해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경환 자신의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 근거도 없이 조영래를 뜯어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안경환 교수 자신의 사상적 틀에 조영래를 끼워 맞추고자 하는 작업은 여러 군데에서 반복된다.

 

실인즉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면서도 조영래는 노동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익명으로 노동자의 투쟁을 촉구하는 시를 쓰고 전태일 정신의 확대 계승에 깊은 정성을 쏟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적 상식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의 명령에 따랐던 것뿐이다. 대학생 출신으로는 장기표만이 비교적 일찌감치 노학연대를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꾸면서 노동자의 친구인 대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일생의 승부를 걸었다.(219쪽)

 

이런 부분은 평전에서는 핵심적으로 논의가 되어야 할 부분이다. 평전의 저자가, 평전의 주인공 인물의 삶에서 중요한 활동영역을 차지했던 부분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객관성, 타당성을 실으려 노력해야 한다. 조영래 자신이 어떤 글에서 이런 사상적 측면을 비추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증언하는지 등 다양하게 접근을 해서 내려야 하는 결론이다. 이런 조심스러움 대신 안경환은 다른 장에서 주장했던 조영래가 노동자라는 특수계급(무엇이 특수계급인지? 안경환이 ‘계급’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시키려 한다. 아마도 조영래도 안경환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며 그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에 타당성과 정당성을 키우고 싶었던 것도 같다.


“불행한 최후를 맞았던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자고 말하여 주변의 빈축과 경탄을 샀던 조영래”(448쪽)라는 대목도 그렇다. 박정희 시해 당시 수배 중이던 조 변호사가 누구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불분명하고 누구에게 빈축과 경탄을 샀는지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밝히지 않고 있다. 안경환이 원하는 조영래의 모습이 박정희에게 조의를 표하는 조영래였던 게 아닌가 싶다.

 

조영래가 가부장적?


자신이 그리는 인물을 안경환 자신의 수준에 맞추고 싶었던 그의 의도는 조영래 변호사가 담당했던 변론 활동을 그리면서도 나타난다. 변론 선집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가져다 쓴 ‘여성 조기정년제’를 다룬 장을 보자. 여성의 평생노동권을 거부하는 당시 현실에 큰 변화를 유도했던 1985년의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안경환은 그 장의 시작단계에서 다음과 같이 조영래를 그린다.

 

같은 시대의 여느 남성이나 마찬가지로 조영래에게 여성은 남성과 다른 존재일 뿐이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공고한 가부장제의 틀 속에 갇혀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이 깊은 조영래라고 하더라도 시대적 상식과 여건의 제약을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 옥경을 만나서 여성에 대해 크게 개안했고, 〈전태일 평전〉을 쓰면서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목도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보통사내였다.(352쪽)

 

조영래가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의 행적을 통해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내가 아는 조 변호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가부장적 틀에 매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알았던 그는 사회활동을 하는 부인을 고려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아들을 평일이나 주말의 각종 행사나 모임에 자주 데리고 다니면서 종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그런 남자를 나는 조영래 변호사말고는 경험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주변의 누구도 그를 가부장적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당시 기준에서는 놀랄 만큼 여성문제에 진보적이었던 사례만이 무궁무진하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여성 조기정년제 같은 선구적 사건을 기꺼이 맡고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균열을 시도한 인물을 평가할 때, 무엇이 그를 가부장적 편견에서 벗어나게 했는지를 살펴보는 게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 인물의 실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그리는 것은 안경환이 조영래를 자기 기준이나 수준으로 맞추기 위한 것이거나, 조영래라는 인물을 폄하하고자 하는 시도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조영래의 삶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

 

근거 없이 허한 주장이 너무 많은 이 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어떤 대목에서는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조영래와 불교라는 장에서 김동리의 등신불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뒤 그는 이런 주장을 한다. “후일 영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불교의 역사를 더듬으며 분신의 미학을 탐구하곤 했다.”(143쪽) 이 위험한 발언을 하면서 그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조 변호사가 쓴 글이나 행적 또는 주변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은 없고, 본인의 무리한 추측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적어놓았을 뿐이다. 물론 조영래 변호사는 분신의 미학을 연구한 적이 없다. 안경환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형태의 투쟁방법에 대한 책임을 묻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조영래 변호사는 그러한 죽음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고 그러한 투쟁방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어떠한 의도로 안경환은 이러한 ‘사실 조작’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대목이다.


‘분신의 미학’ 외에도 그가 무엇을 조영래에게서 보려 했고 그리고 싶었는지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은 여럿 있다.


〈조영래 평전〉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실제 내용에 비해서 명성이 헛되게 화려하게 쌓여진 이들이 단명하듯 쉽게 사라지는 데 있지는 않다. 적어도 사필귀정의 정의는 이루어진 것이니까. 오히려 실제 내용은 없으면서 겉으로 쌓여진 명성이 과한 이들이나 작품이 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내용에 맞지 않는 평가에 의지하여 이득을 취하고 힘을 휘두른 데 있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가 허(虛)가 실(實)을 누르는 일이 빈번해서 이번 일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어떤 이는 체념적으로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허명과 실명의 간극이 극도로 큰 책이 바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조영래 변호사의 첫 번째 평전이라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무엇보다도 서울대 법대교수라는 무게의 저자가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에 대해 쓴 글이라는 이유로 쉽게 ‘좋은 책’이라 인정받고, 대접받게 되는 현실이 두렵다.


실(實)이 허(虛)를 눌러, 안경환이 쓴 〈조영래 평전〉이 그 내용에 걸맞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요즈음 가장 절실한 나의 소망이다. (이 글은 월간 〈인물과 사상〉 4월호에도 송고했습니다.)

-명지대 권인숙 교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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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길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4명이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길래 보니 그 중 한 아이 강아지가 차에 치어 그만...
특히 개 주인이 되는 사내아이가 어찌나 몸부림을 치며 심하게 우는지 걱정이 되어
그 집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 나와달라고 했지요.

잠시 후 아이 어머니가 오길래 안심을 했는데, 웬걸, 아이에게 다짜고짜 상욕을 퍼붓는 거에요.
게다가 아이 보고 강아지를 죽였다며 어떻게 죽인 거냐며 귀싸대기까지 때리려 들었습니다.
교통사고였다고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했지만 제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계속 심한 욕을 하는 거에요.
결국 아이는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버렸고,
저는 다시 한 번 자초지종을 아주머니에게 설명해봤지만 대꾸도 없이 강아지를 안고 가버리더이다.

할 수 없이 저도 마로를 찾으러 어린이집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뒤늦게서야 어찌나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제 팔에 가볍게 안길 정도로 어린 강아지였는데, 아직 따뜻했는데.
어쩌면 강아지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잘못 될 수도 있었는데.
자기 강아지가 죽어 아이가 더 슬플텐데, 그 아주머니는 어쩜 그렇게 모질게 구시는지.
차라리 욕하는 거, 손찌검하는 건 억지로 이해하는 척 할 수도 있는데,
아이보고 강아지를 죽였다고 몰아붙이시는 건 아이 마음에 대못을 박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마로를 찾아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길에 아까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부모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려 잘 말씀드려 보겠다고, 아니면 집에 같이 가주겠다고 달래 보았지만
대꾸 없이 계속 고개만 저으며 울기만 하고 꼼짝을 안합디다.
할 수 없이 아이 몰래 그 집에 다시 전화해 봤지만,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아직 안 들어왔다며 아이 형만 전화를 받길래
아이 있는 곳만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조금 서성대다 결국 마로랑 집에 왔는데, 마음이 쓰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집에 들어간 거 같은데(좀전에 아이 아버지랑 통화했음),
아주머니가 또 아까처럼 아이에게 심하게 굴까요?
아버지 목소리는 평탄한 거 같은데,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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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6-03-20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놀라셨겠네요,,
정말 너무하는 엄마네요, 아무리 애지중지 하던 강아지라도 아이가 먼저 아닐까요,,,그 아이마음은 지금쯤 배신감과 두려움과 무서움이 교차하고 있을텐데,,,,조선인님 너무 놀라셨겠어요,,그래도 부모인데 괜찮겠지요,,,

물만두 2006-03-2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뭔가 사연이 있겠지요...

가을산 2006-03-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저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드네요. 조선인님 글을 읽으면서 제 가슴도 뛰는데...

ceylontea 2006-03-2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진정하세요... 마로가 그 상황을 보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ㅠㅠ

라주미힌 2006-03-2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싼 개'를 좋아하는 사람 같은데요...

hnine 2006-03-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걱정되네요 그 아이...

Koni 2006-03-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너무나 충격받았을 것 같아요. 저도 개를 키우지만, 그런 일 상상도 하기 싫은데, 그걸 눈앞에서 봤다면...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06-03-2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런 아주머니가 다 있담... 강아지를 아이보다 더 사랑했단 말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저런 반응은 말이 안되죠

水巖 2006-03-2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나도 걱정이 되는군요. 저런 행위가 아이를 망가트리는 지름길인걸 모르겠지. 쯧쯧....

chika 2006-03-2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비연 2006-03-2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랬습니다..사연은 있겠지만..그래도 그렇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욕을...
엄마 아닌 거 아닐까요? ㅠㅠ;; 암튼 아이가 상처받지 않아야 할텐데...

비로그인 2006-03-2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사정이 있는 일일 것 같아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루 2006-03-2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하시네.. 아이는 깊은 상처를 두번이나 받았군요..

조선인 2006-03-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자식처럼 아끼는 강아지였는지, 무지 비싼 강아지였는지, 엄마와 아들 사이에 소원함이 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어제는 정말 놀랐어요. 게다가 엉뚱하게도 자꾸 '안달루시아의 개' 영상이 떠오르면서 어찌나 무섭던지. ㅠ.ㅠ

sweetmagic 2006-03-2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비싼 강아지라도 그렇죠 !!!
어뜩해.....

Mephistopheles 2006-03-2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닉을 가지고 천사같은 조선인님 서재에 계속 들어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왜 그렇게 그 아이의 엄마는 역정을 내실까요.. 상처없이 보듬어 줘야 할텐데..

반딧불,, 2006-03-2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답니까..얼마나 힘들엇을까요.

로드무비 2006-03-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좀 이상한 엄마지만(허걱;;) 진짜 이상한 부모 많아요.
아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가 가슴 아픕니다.

로드무비 2006-03-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래떡 못 드신 것 위로하는 의미에서 추천!=3

비로그인 2006-03-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쯔쯧!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부모인가봐요....

검둥개 2006-03-2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우째 그럴 수가 있어요?
혼을 내지 않아도 아이가 혼자서 얼마나 가책을 할텐데! 저까지 속이 상합니다.

조선인 2006-03-2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가끔 참 어이없는 일들이 있어요. 아직은 따스한 세상이라 믿고 싶은데 말이죠.

호랑녀 2006-03-2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그 아이에게 참 마음이 쓰이는데, 그 엄마는, 조선인님께 뭐 저렇게 할일없는 여자가 다 있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가끔은 그런 모습의 엄마는 아니었나 반성합니다.

조선인 2006-03-2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언니, 안 그래도 회사 동료들은 나보고 오지랖 넓다고 한 소리 합디다. 정말 어째야 쓸런지. -.-;;
 
 전출처 : 돌바람 >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대추리의 봄 1

봄비 오시는 아침입니다. 평온하네요. 집앞 은행나무도, 마른 흙 버석이던 목련 나무에게도 택시회사의 택시에게도 고르고 평등하게 비 오십니다.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앎'에서 왔다지요. 봄은 '보다'에서 왔다지요. 대추리의 봄은 어디에 있나 알기 위해 갑니다. 제가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것은 최근 노무현 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야말로 '너무 쉬운 길'을 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쉬운 길이란 힘있는 편에 서서 그쪽에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갖 아부를 떠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들에게는 평생 땅을 파며 씨 뿌리고 거두어들이며 살아온 사람들의 농토를 빼앗아 힘있는 놈들에게 상납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살 파먹는 짓이지요. 땅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온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을 짓밟아도 된다는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짓입니다.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으며,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어야지요. 내일 모레가 되면 대한민국 군대가 명분 없는 전쟁에 자기 돈 들고 뛰어든 지 3년이 됩니다. 미국 내에서도 레임덕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전쟁광 부시도 그 힘을 잃은 게지요. 그런데도 정신 못 차리고 떡값 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노무현 정부를 향해 침묵하는 대다수는 소리쳐야 합니다.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사실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이 공간에서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주저하며 마음만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하신 분들의 마음을 갖고 갑니다. 끙끙 고민하시다 이번에는 안 되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걸어놓으신 분들의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이미 다녀오셔서 상황보고 해주신 분들의 마음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나도 가겠다고 결단을 내려주신 분들을 오늘 만나러 갑니다. 그분들의 고민과 절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맘껏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고 오겠습니다. 혹, 아직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까지도 담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봄날, 봄비 오십니다.

이렇게 몇 자 적어놓고 허둥대며 나서느라 제글을 퍼가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주신 바람구두님의 문망에는 정작 다녀오겠다는 편지글도 못 올리고 말았습니다. 아이 아빠 회사에 가서 아이를 맡기고 지하철을 타니 벌써 턱 다리 힘이 빠지더군요. 용산에서는 처음으로 함께 가시겠다고 덥썩 손을 잡아주신 고마운 지안님(에오스님)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함께 가시지 못하겠다던 알라딘의 푸하님이 가리봉동에서 전철을 타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사이 바람구두님이 아주아주 멋지신 구두한켤레님이 가실 거라고 응원을 해주시고, 내민 손을 덥썩 잡지 못하고 고민해서 미안타고 하신 알라딘의 잉크냄새님이 출장 중에 오시겠노라, 이번에는 타인의 삶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싶다고 하셨지요. 출발하기 전 초여름님이 기꺼이 가시겠노라 하시고, 마지막에는 민들레님이 이제 출발하셨다고,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알라딘과 문망 분들을 만나기 위해 평택을 향했습니다.

함께 가신 분들은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알라딘의 잉크냄새님이나 푸하님도 글을 통해서만 간혹 뵈었을 뿐 사실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역시 문망의 파워는 쎄구나, 이틀 동안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다니 속으로 생각했더랬지요. 그런데 이건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가 우리들 각자에게 위기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런지요.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의 야구전으로 도배가 된 거대 언론에 가려진 '평택'의 문제가 그 땅에 살고 있는 농민의 문제만이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고, 되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런지요. 사실, 문제를 느끼고 그 문제 속으로 과감히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가자'고 얘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해서 좀더 다양한 분들이 있는, 모여 있다기보다는 각자의 공간을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방에 걸어놓는 형식의 인터넷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함께 하실 분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3월 초부터 미군 기지 확장 반대와 평택 투쟁 속보들이 연일 빠지지 않고 페이퍼로 걸렸고, 그 글 아래는 답답하다고 혀를 차는 댓글들이 실렸습니다. 구두한켤레님 말씀처럼 "평택에 간다고 회사에서 말했더니, 거기가 고향이냐고 묻더라"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최소한 평택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지요. 그리고 평택은 결코 먼 곳이 아니다. 달려와 달라는 호소도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할 테니 제발 농사 짓다 이렇게 죽게 해달라는 평택 농민의 비명도 들렸지요. 그런데 왜 갈 수가 없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나, 저는 저를 포함해서 이게 궁금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고, 도시에서 각자 일거리로 발목이 잡혀 있고, 가는 길을 모르고, 혼자 갈 용기가 없고, 다칠까봐 무섭고, 결정적으로 내 문제가 아니고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요. 그 중 앞서 몇 가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제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과 혼자 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잡아주면 덜렁 혼자서 어떻게 가나, 실은 제가 더 무서웠습니다만 다행히 다 다른 고민을 담고 일곱 분이 함께 해주셔서 없던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대추리로 향했습니다.



대추리 마을 초입(사진은 구두한켤레님)

1. 대추리의 봄

전날 '평화의 논갈이 행사'에서 연행된 인권활동가들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석방된 상황이라 토요일 대추리는 잠시 소강상태였습니다. 안정리 방향에서 언덕배기를 돌아 나오자 마자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K-6 공군 비행장)의 쇠창살과 대치하고 있는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라는 깃발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미군 기지를 따라 난 길은 대추초등학교까지 이어지고 있었지만 미군 기지와 농토를 가르는 길은 삼단 높이로 되어 있더군요. 그러니까 미군 기지 아래 길이 있고 그 아래 농토가 있는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지요. 나중에 민주노동당 경기지부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한 분이 "그러니까 여기까지 다 기지화되면 저기 높이에 맞춰 이곳에 흙을 쌓는 거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 2미터 가량 지면이 올라서는 거지요.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동안 땅을 갈며 땅을 숨쉬게 했던 기운이 다시는 살아나지 않도록 아예 땅의 생명력을 죽이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민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다만 자신의 생계를 위한 일만이 아니라 자연이 순환할 수 있도록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2미터 가량 높아진 미군 기지는 이미 평택에 주둔해 있는 캠프 험프리스 150만 평만이 아니라, 지금 1차 확장 예정지로 공표되고 토지수용을 시작한 대추리, 도두2리 마을 전체인 24만 평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가늠이 안 되더군요. 캠프 험프리스 면적만을 두고 볼 때 "여의도의 2배"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현재 평택 미군 기지 주둔 면적과 확장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이게 도대체 얼만큼의 규모인지 얼른 확인해봤습니다. 여의도 면적이 약 86만 평, 포항제철소는 270만 평, 광양제철소는 450만 평. 현재 평택 내 미군 기지 주둔 면적은 신장동, 서정동, 고덕면, 서탄면, 진위면 일대에 위치한 미공군사령부의 200만 평(여의도의 2. 3배), 캠프 험프리스의 150만 평(여의도의 1.7배), 팽성읍 송화리의 미군사격장, CPX훈련장, 탄약고 등을 합한 나머지 5군데 미군 공여지 104만 평(여의도의 1.2배)을 합한 총 454만 평(여의도의 5. 2배)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평택 내 미군 부대는 광양제철소에 맞먹는 규모인 셈이지요. 게다가 민주노동당 당원인 상주 활동가의 설명에 의하면 평택은 "미군의 후방 재배치 계획에 따른 미군기지에 필요한 땅이 총 649만 평 가량 되고 거기다 추가로 100만 평 정도를 미군의 골프장 설치를 위해 추가 매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 분의 설명에 의하면 골프장 추가(이것도 토지수용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군기지 확장 면적은 총 749만 평! 현재 주둔 면적 454만 평을 빼면 추가 확정 예정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74만 평이 아니라 295만 평이 되는 셈이지요. 2003년 한미협약에 따라 예정대로 토지수용을 끝내고 2007년까지 한강 이북 미2사단(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와 미2사단 사령부인 의정부의 캠프 레드 클라우드가 통합)이 이전하고 용산 미군 기지까지 이전하고 나면 여의도 면적의 약 8.7배에 해당하는 규모의 동북아 허브 군사기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아, 미치겠다)

이는 서해와 인접한 평택이 '21세기 미국에 필적할 만한 경쟁국가'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북아의 기지가 되는 것이고, 아시아 지역 전체를 통틀어 일본의 오키나와 다음으로 큰 기지로 재편되는 미국의 '초대형 기지 프록젝트'로 1990년부터 진행되고 준비되어온 것이라는 점,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한미협약에 도장을 찍음으로써 국가 안보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미국의 신신민지 지배하의 식민지인으로 팔아버린 것이라는 점을 저는 먼 거리를 유지하고 대추리 주민을 감시하고 있는 미군 차량을 보며, 황새울터에 꽂힌 깃발을 보며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대언론은 식량 주권의 저지선인 쌀까지 내놓고(쌀협약) 정신과 문화의 바탕이 되는 문화(한미FTA)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프로그램화된 신신민지 인간을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미국의 하청업체임을 뼈져리게 느끼고 왔습니다. 이제 이라크의 현실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동북아의 군사 기지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 이는 그들의 프로젝트가 현실화된다면 미국이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은 미국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여야 하는 전쟁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겠구나 라는 위기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 어디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여기다(캠프 험프리스K-6 공군 비행장 주변 24만 평) 2003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을 근거로 미7군 공군사령부가 있는 '오산 에어베이스K-55' 주변 50만 평을 합한 74만 평은 한국토지공사의 감정평가를 끝내고 법적인 토지수용 절차까지 마친 상태라 현재 대추리 일대의 땅은 법적으로는 미공군의 땅인 셈입니다. 농민들이 자기 살길을 찾자면 지난 1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열을 올리던 그곳의 평화장로교회처럼 "국제적인 문제인데 사람들이 나선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서야 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하고 얼른 땅 팔아서 먼저 그곳을 떠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인 게지요. 대추리 입구에 있던 '이 땅은 우리 목숨, 끝까지 지킨다'라는 깃발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짜 목숨을 내놓고 '국가 안보'를, 도시민의 안보를, 너 나아가 대한민국 국토를 전쟁기지화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 전략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대추리의 봄은 살길 찾아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시 갈아엎어져도 또다시 땅을 가는 농부들의 생명을 담보로 싹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2.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봄이 되는 사람들-촛불 시위 654회째

2004년 9월 1일부터 대추초등학교 마당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는 그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654회째 촛불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마을 주민 분들이(거의 할아버님 할머님들입니다) 구부정한 걸음으로 그 안을 가득 메우셨습니다. 한신대와 동국대 농활대 학생들이 모판준비와 흙담기 등의 구체적인 일들을 도와주고 있음을 보고했고, 평화장로교회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기 위해 학교 마당에 '천막교회'를 세운 목사님과 종교인들이 그들의 정신 빠짐을 질타하였습니다. 작년 11월 국회에서 통과된 '쌀협상 비준안'을 저지하던 농부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영화인들이 한미FTA를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신세계 질서가 일제시대의 식민화와 무엇이 다른가를 꼬집어 말하였고, 라디오를 통해 대추리의 현실을 접한 국립국악원의 젊은 소리꾼들이 농부들의 무거운 하루를 노래로 풀어주었습니다. 웹상에서 대추리 문제를 접한 한겨레 블러그 오프 모임 회원도 그곳의 현실을 열심히 알리겠다고 소개를 하시더군요. 그리고 15일 공권력 투입으로 연행되었다 뒤늦게 풀려난 대학생 한 명이 인권 활동가들의 현주소를 말해주었습니다.



마을 벽에 그려진 그림과 낙서

짧은 시간이라 사실 대추리의 봄을 다 담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잠시 비콘(비닐하우스 '콘사이트'라고 해서 그곳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비콘'이라고 부른다고 하시더군요)에서 나와 낮에 둘러보지 못한 마을과 2미터쯤 높은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미공군 기지(캠프 험프리스)와 그 사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싹을 내보내고 있는 황새울터를 빙 둘러보았습니다. 그저 보기만 하였습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던 한 시인의 목소리가 몇 겹의 옷을 입고 2006년 3월 대추리에서도 그대로 느껴지다니. 억울하였습니다. "황형사 개새끼, 빨갱이는 정부이다"라는 어느 집 벽면에 씌어진 낙서처럼 그곳은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현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함께 하셨던 고마우신 분들

촛불 집회를 마치고 함께 그곳에 갔던 지안님(에오스님), 잉크냄새님, 초여름님, 민들레님, 혜경님, 푸하님 그리고 구두한켤레님과 간단한 정리 집회를 하였습니다. 각자 그곳에 오게 된 이유와 온 후에 느낀 점 등을 이야기하였지요. 직접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라고, 쪽수라도 채워주고 싶어서 왔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난 주에도 왔는데 혼자 왔을 때와는 다르다고, 남편에게 허락받는 것이 어려웠노라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어디 갔다 왔는지 알려줄 생각이시라고, 이런 일들은 결국엔 자신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그리고 몸으로 싸우려고 왔는데 실은 좀 싱거웠노라고 말하시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모여서 하나씩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날의 자리를 정리해주신 님들이 있어서 돌아오는 길이 감히 밝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일당 열 명, 아니 일당 백 명씩 책임지고 다시 오자고 우스갯소리를 던졌습니다만, 대추리의 봄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은 다음에 다시 오기 위함임을 함께 해주신 분들을 보며 스스로 새겨넣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 마당에 나오니 어느새 별이 떴더군요. 별 말씀 없이 출장지에서 양복 차림으로 달려오신 잉크냄새님이 허공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시리우스, 그 위에 작은 개자리, 그리고 그 위에 쌍둥이자리, 마차부의 카펠라, 그 아래 황소자리, 그리고 북두칠성의 가장 밝은 점들을 이으면 바로 겨울철 별자리인 육각형의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고 하시더군요. 손가락을 따라가니 정말 하늘의 지도가 보였습니다. 잠깐 미군 기지가 있는 대추리와 신장동, 서정동, 고덕면, 서탄면, 진위면이 별자리를 따라 펼쳐지다 오리온 성좌처럼 반짝이는 그곳에 황새울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반짝여야지요. 어디서 봐도 다 볼 수 있는 별자리처럼 사실만이 아닌 진실을 캐어물어야지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별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다. 반짝일 수 있게 그곳의 현실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촛불 행사는 매일 저녁 7시에 대추초등학교 운동장 내 비콘에서 열리고 있고 매일 그곳에 방문하시는 분들(개인이든 단체든)을 대추리 주민들께 소개하는 자리로 자리매김되어 있습니다. 평택에서 하차하여 평택극장 앞에서 20번 16번 마을버스를 타고 미군기지 정문 앞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들어가도 되고, 혹은 자가용으로 가실 때는 횡성(?) 방향으로 가시다 안정리를 찾으시면 대추리 방향 표시가 보입니다. 평택역에서 15분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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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 물고기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0년 11월
절판


나는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다.

나는 나와 내 물고기가 모두 잠든 줄 알았다.

어릴 적 곧잘 추던 춤이 생각난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발이 사뿐사뿐 움직인다.

나와 나의 물고기는 바닷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이제야 알았다.
나 역시 커다란 어항에 갇힌 보잘것없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을 뿐임을.

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를 보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 집에 갇혀 있는 물고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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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7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4-0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 좋은 정보 고마워요. ㅋㄷ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