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신간평가단에 들어오기 전의 리뷰들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퀄리티있도록 쓴 글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여 한 편, 한 편 작성했고 그것을 여러번 읽어보고 수정했기에 눈에 거슬리는 곳도 얼마 없는 글들이 나왔었다. 비록 그것들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겠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뿌듯했던 글이었다. 하지만 신간평가단에 들어오면서 나는 점점 내 글에 탐탁치 않음을 느꼈다. 신간평가단으로 인해서 알라딘 서재에 입성하게 되었고 수많은 애장가분들의 글을 읽게되었다. 내공이 탄탄하신 분들의 놀라운 글들을 많이 접하게 되자 나는 내 스스로가 작아져감을 느꼈다. 그것이 굳이 알라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글에 자신도 없어져서 어느샌가 대충대충 글을 쓰게 되더라. 전에는 쓰지않던 다이어리도 몇줄 간단히 적고 끝낼때도 많고. 그렇다고 작아져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이어리를 끄적이는 내 스스로에게 아직 청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전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일을 통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시도때도 없이 도서실을 드나들며 책을 읽고, 빌리고 한 탓에 매번 다독상 1위에 올라 한 번은 사서 선생님께서 너는 많이 해먹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하고 말씀하신적도 있었다. 그랬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중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책 구입의 맛을 알아버린 필자는 도서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게되었다. 새책의 부드러우면서 텁텁한 종이냄새와 빳빳한 새 표지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눅눅해진 책꺼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평소에,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성격이기에 어떤 일에 제한을 두면 그 시간내에 절대 어떠한 일을 완수해내지 못한다. 절대 자랑은 아니지만(이런 성격탓에 미술수행평가를 항상 늦게 냈지만 후에는 미술선생님께서도 포기하시고 그림으로만 보았다.) 이 성격이 책을 빌려보는것에도 적용되더라. 초등학교때의 습성을 물려받아서 중학 입학 초기에는 줄창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게일포먼의 책도 몇권 빌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빌리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물론 그때는 작가들은 몰랐고 그저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골랐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안 읽히는거다. 분명히 제목은 흥미로운데 도저히 책 표지로 손이 가질 않더라. 그래서 한 문장읽고 반납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항상 책의 반납일은 연체되기 일쑤였고. 이래선 안되겠다, 하고 생각해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 후부터 책 수집을 시작하면서, 프리한 독서생활을 하는 방법까지 깨닫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주로 어린이를 위해 쓰여진 책이나 성적호기심을 다룬 책을 읽었다면 중학교에 들어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진 책들을 읽었다. 책이라기 보다는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많이 접했다. 책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작가와 그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그로인해서 눈과 입으로만 독서에 대한 지식들이 늘어갔다. 이상하게도 책을 구매하면 할수록 마음은 뿌듯하고 편해지는데 책은 안 읽히더라. 그저 책장에 빼곡히 들어앉은 책 먼지냄새만 맡아도 좋다. 지금도 그렇다. 마음 내키면 읽고 그렇지 않을때는 안일하게 지낸다. 나는 책읽을 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또 그것이 엄청난 시간의 갭을 두고 떨어져 있기에 요새는 책을 많이 못읽고 있다. 내가 내키지 않을 때 책을 펼쳐들면 엄청난 잡생각으로 단 한글자도 읽지 못하고 덮기 일쑤이기에 꼭 내킬때만 읽었다. 요새는 신간평가단이 겹치며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들지만 역시 억지로하는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성숙된 작품들을 읽으며 문장력 또한 성장해 나갔다. 늘 작문대회에 출전하면 선생님들께 듣는 이야기는 "문장력은 좋은데..."였다. 한번은 군에서 주최하는 창작 작문대회에 나갔는데 글감이 '교실'이었다. 대회 출전 얼마 전에 동성애를 다룬 작품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나도 교실을 배경으로 동성애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한국 작품보다는 번역된 작품, 그리고 고급스러운 인터넷 소설(이모티콘이 전혀 쓰이지 않은 진짜 소설다운 인터넷 소설)만 읽던 내게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전개 방식은 물론이고 줄거리 정렬의 방식은 어렵기만 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엄청나게 잘 썼다고 생각했고 당당하게 냈다. 사실 1분을 남기고 3줄이 남은 상황에서 검토할 생각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고. 결과는 참담했다. 장려라고는 하지만 못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내가 못썼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로 선생님께 항변했다. 선생님께서 심사위원을 하셨기에 따지고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창작은 심사를 안해서 모르겠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하더라. 이진이는 문장력은 좋은데 이야기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정신없다고" 아, 나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 스스로 내 글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유리심장이 탁하고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여러번의 고비를 겪으며 꿈을 국어교사로 잡게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글을 좋아하는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장래희망이 시인인 자가있다. 참 많은 면에서 나와 닮은 아이인데 책을 좋아한다는 것, 글 쓰는 일을 즐긴다는 것,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피아노를 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등등 이것말고도 오랜시간동안 친구로 지내온 탓에 서로 비밀을 터울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 둘이서 들어간 동아리는 수학반이었는데 인원도 적고 친한친구들끼리 모였기에 선생님께서도 우리 이야기에 가끔 동참하시고는 한다. 선생님께서 참가하실 때마다 우리는 항상 미래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저는요 시인이 될건데요. 엄머는 계속 음악쪽으로 가라고 하시네요""선생님, 제가 수의사가 괜찮을까요 국어교사가 괜찮을까요. 정말 수의사하고싶은데 도저히 이과쪽으로는...(접니다, 후후)" 하는 둥 선생님께서 우리 말을 경청해주시고 답변해주시고는 한다. 그리고 이 동아리 선생님과는 미래이야기를 하는 반면 국어 선생님과는 문학 쪽 미래이야기를 한다. 선생님께서는 너희 둘처럼 글 쓰는일에 대해 의욕을 가진 사람은 요즘 시대에 별로 없다며 한 번 투지를 가지고 신춘문예같은 곳에 글을 내보라고 했다. 시인이 꿈인 친구는 당연히 그러리라 하였고, 나도 결코 꿈꾸어 보지 않은 일은 아니었기에 마음에 새겨들었다. 국어선생님께는 작문 특강도 받으리라 예약해둔 상태인데 연락이 없다.

 

 

               그렇게 시인이 꿈인 친구와 친해지다보니 그가 쓴 시도 많이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에는 두각을 나타낸 아이였기에 대회만 나갔다하면 장원은 식은 죽 먹기였다. 시를 새발의 때만큼도 모르는 나에게는 꼬부랑 글자 몇 개 조합해 놓은 듯한 글처럼 보였지만, 또 그냥 단어 몇마디 씨부리면 되는 글처럼 보였지만 그에게는 오랜시간 고민을 해가며 썼던 글이리라. 시를 쓰기위해서 시인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쓴다고한다. 최명희 작가는 글을 쓸 때 바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마음으로 임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소설가뿐만이 아니라 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것이다. 아니, 오히려 시가 소설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소설은 공지영 작가가 말하기를 구상만 끝내면 글이 술술 나오는 때가 많다고 하였다. 그 구상이라는 것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한 번 탄탄히 짜두면 결코 틀어질 일이 없다. 하지만 시는 그렇지 못하다. 구성을 다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함축하기 위해 어떠한 단어를, 어떠한 비유를 써야할지 또 고민하여야 하고 또 그것에 생각과 사상을 담아내기 위해 또 고민해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를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어쨌든, 그의 시 중에 [시작始作]이라는 시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예전에는 약간의 질투심으로 그의 시마다 뚱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 작품은 아주 걸작이더라. '보라/그리하면 느낄 수 있다/느끼라/그리하면 경험할 수 있다'하는 식의 시였는데 외우고 있지는 않은터라 일단은 내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너무 좋은 나머지 그 친구에게 이 시를 액자에 넣어서 내게 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웃으며 알아서 해라고했고. 그리고 한가지를 더 물었다. "대체 이 시는 어떻게 쓴거니?"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나의 진지한모습에 웃음이 터졌는데 입에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해주었다. "시는 생각해야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고 얕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어. 그러면 시를 쓸 수 있게 되는거고. 그렇게 해서 쓰인 시는 소위 망작이 나올수가 없지."

 

 

               그렇다. 어떤 사물에 대해서 깊이, 혹은 얕게 생각한다는 것은 깊이 파고든다는 것이며 깊이 파고든다는 것은 그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느껴야만이 나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다. 작가는 한 가지 사물만으로 책 한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 꾼이어야 한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이야기꾼을 판별하는 척도가 아닌 얼마나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파악하고 느꼈는가의 정도를 판별하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훌륭하다. 글을 쓰기위해 그 사물을 엄청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파악하고 느꼈는지 단번에 느껴진다. 첫 글인 '남자와 여자'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사용하여 남성이 모성에 대한 향수를 갖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하였고, 여성의 남성성또한 설명했다. 이 글 외에도 여러곳에서 성경말씀이 인용되어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또 작가는 자신의 여러 지식들을 사용하고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서 글을 좀 더 고급스럽게 꾸몄다. 하지만 전혀 멋을 내려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작문 초보자라면 쓸데없이 미사여구를 사용하거나 고급 어휘를 사용한다고 글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이 작가는 그렇지 않다. 역시 프랑스 최고의 지성답게 어려운 단어로써도 우리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알린다.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도 무척이나 돋보인다. 버드나무와 오리나무를 통해서, 그리고 돈후안과 카사노바를 통해서 이토록 수준 높은 글을 써냈다는 것은 작가의 사고력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방증해주는 것이며 상상력또한 무한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롱과 찬양'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를 생각해내는가 하면 '샘물과 가시덤불'로 성경의 모세를 생각케한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모든 생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작가와의 수준차이가 너무 클 뿐더러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는게 이리 좋은지는 몰랐다. 요새는 생각하는 것, 창의력이 중요시되고 있다.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 첫 줄을 써낼 수 있는 논술이 판을 치고 있는 사회의 흐름에서 이 책은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의 중요성을 밝혀준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되기는 힘들지만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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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1-27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썼군요. 이 책 근데 어려워보여요.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이론서군요. 음.. 국어 선생님은 문장력 안좋아도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상관이 없는 거지만 소이진님은 벌써 잘쓰는데?^^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쌓아지는 건지 모르겠어요. 좀 알려줘요. 히히히히.

이진 2012-01-27 10:31   좋아요 0 | URL
막상 접해보면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제가 리뷰를 너무 못써서 어려운것일뿐 ㅋㅋ 언젠가 아이리시스님이 리뷰는 다른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지요.
저도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 무지무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에도 과감히 도전을 못하겠다니까요.. ㅠ

2012-01-27 0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7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1-27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국어교사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국어교사가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을 선택해도 잘 할것 같지만요. 그런데 국어교사를 하면, 나중에 소이진님 같은 제자를 만났을 때, 그 제자에게 너는 문장력은 좋은데 이야기는 산만하구나 그것을 보완하렴, 하고 말해줄 수 있잖아요. 더 늦기전에 그것을 알게 된다는 것도 아이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

이진 2012-01-27 12:05   좋아요 0 | URL
하지만 저도 그제껏 산만한 문제점을 고치지 못한다면 제자에게는 더없이 못난 선생님이 되겠지요. 성격상 남앞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 자체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국어교사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끌리지만 고민중에 있어요. 수의사도 하고싶거든요

:D
 
버레스크
스티브 앤틴 감독, 셰어 (Cher)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찬양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치 쪽으로나 깊이 파고든다면 나도 미국은 싫다. 괘씸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딴 나라' 언급해가며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하지만 미국 가수와 노래는 나의 가슴을 무척이나 뛰게 만든다. 초등학교 6학년 켈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를 친구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쭈욱 팝송이라면 환장을 하고 덤벼든다. 비록 여성 가수, 노래 잘하는 가수에 한정되어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내가 아는 가수에 한해서 좋아한다. 평소 도전은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굳이 모르는 가수의 노래를 찾아들어 보려 하지도 않고 첫 느낌이 좋지 않다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겐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그러한 존재였다. 지금이야 팝의 여왕, 세계 최고의 디바라고 내가 칭하고 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아길레라는 내게 있어서 별 거 아니었다. 그때는 한창 세계 3대 디바에 미쳐있어서 그 분들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거기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는 글을 썼더라.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셀린 디온에 대한 찬양도가 극에 달했던 그때의 나로서는 "흥,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하면서 그녀의 곡을 검색해서 들어보았다. 결과는 역시 이상했다. 귀와 마음을 닫고 들어서인지 곡도 영 이상했고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Fighter이라는 곡이었는데 지금은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역시 사람 마음이란,

 

 

 

 

               그런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어준 계기가 바로 '더 보이스'였다. 일단 곡은 싫더라도 외국 프로그램에 내가 아는 사람이 출연하니 반갑더라.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기했던 것은 그 오디션의 출연자들은 (여성 출연자) 대부분 아길레라를 여신이라도 떠 받들다시피 대하더라.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새로웠고 급기야는 그녀의 곡들을 유투브로 찾아 들어보았다. 와우, 그녀를 여신으로, 세계 최고의 디바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풍부하고도 허스키하고 파워풀한 목소리가 내 귀에서 울리는데 나는 처음에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그동안 그토록 등한시하던 가수가 이런 사람이었단 말이야? 그러다가 한 곡을 찾았는데 전부터 내가 흥겹게 듣던 노래였다. 가수는 모르고 있었는데 아길레라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녀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래미상을 5번이나 수상했다. 이혼한 가정 밑에서 썩 좋지 않은 환경으로 자라왔지만 9살이라는 적은 나이에 그녀는 가수의 재능을 인정받고 세상에 발을 딛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살도 되지않은 나이에 디즈니 사의 눈길을 끌어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 일을 계기로 첫 데뷔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데뷔앨범에서부터 빌보드 핫차트는 물론 여러 국가의 정상을 차지하며 최고의 가수로 떠버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제치고 그래미 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5년 결혼에 성공하며 2008년에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이혼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나의 우상 셀린 디온마저 그녀를 세계 최고의 가수라고 인정했으니 내가 어찌 이 여자를 싫어할 수 있겠는가.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겨우 156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스키함과 목소리와 카리스마는 무시할 수가 없다. 무대에만 오르면 자신의 본능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고 하는 그녀는 굵고 터프한 목소리지만 남들은 쉽게 소화하지 못하는 높은 음까지도 부를 수 있는 정말 최고의 목소리인 것이다!

 

 

 

 

     

 

 

 

 

 

 

 

 

               버레스크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앤 헤서웨이

 

 

 

 

               버레스크는 가수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준 영화이다. 아길레라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영화인데 '드림걸즈 이후의 최고의 영화'라는 평을 보고는 한 눈에 반하여 보기 시작했다. 앨리라는 이름의 아길레라가 시골을 나가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월급조차 제때 주지않는 가게에서 일을 하던 앨리는 가게금고를 털어(터는 것 까진 아니고같이 일하는 동료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월급을 챙긴 것이나 마찬가지) LA로 떠난다. 막상 떠나고보니 일자리가 없어 하루종일 돌아다니던 중 '버레스크'라는 멋진 간판이 붙어있는 클럽을 발견하게 된다. 홀리듯 클럽 안으로 들어가게 된 앨리는 신세계를 보게 된다. LA로 떠나기 전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왔던 그녀였기에 관중들 앞에 서서 노래하는 것은 그녀가 어릴때부터 가져온 꿈이었다. LA로 떠나온 것도 사실은 노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녀에게 매력적인 얼굴의 여자 쉐어가 노래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멋있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클럽 버레스크의 주제곡인 듯한 노래를 부르는 쉐어의 모습은 너무나도 감명깊었다. 오죽하면 크리스티나를 따라 그녀에게 가고싶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크리스티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진 않았다. 결국 이 카리스마에 한 눈에 반해버린 앨리는 무대 뒤로 들어간다. 무대 뒤에는 화장하는 여자들과 수많은 옷들로 혼잡한 상태. 그곳에서 '악마는 프라타를 입는다'에서 디자이너인 나이젤로 출연했던 스탠리 투치를 발견하고는 테스(쉐어)의 위치를 묻는다. 그는 가르쳐주지만 타이밍이 안 좋다며 나중에 다시 오라며 연락처를 남기라고 한다. 정중한 일본식 거절의 한 형태로 보였다. 하지만 앨리는 저돌적이다. 무대 뒤에서 쫓겨난 뒤 그녀는 처음에 호감을 보였던 바텐더 '잭'에게 다가간 뒤 쟁반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빈 잔을 치우고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그녀만의 발악이었지만 아직 테스는 그녀를 탐탁지 않게 보는듯한 눈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으로 겹쳐들어왔다. 비록 패션과 음악, 장르는 다르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헤서웨이가 떠올랐다. 버레스크도 자신의 꿈을 찾아서 점차 좋은 직장을 만나 성공해간다는 이야기이고 악프다도 이와 비슷한 전개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상사는 비록 친구같은 구석이 있다면 앤 헤서웨이의 상사 미란다는 차갑고 냉랭한 면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앨리는 아주 순탄하게 자신의 꿈을 이뤄나간다. 오죽하면 영화를 보면서 불안하게 보았다. "아, 이때쯤이면 사건이 하나 터지겠지? 터지겠지?"하는 심리였다. 하도 이런 류의 작품들은 비슷한 전개로 극이 진행되다보니 어느샌가 그런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앤드리아(앤 헤서웨이)도 비교적 순탄해 보이지만 그녀는 하루하루 힘들었다. 악마같은 상사 밑에서 매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해내다 보니 어느덧 그녀는 최고의 자리의 미란다의 신임을 받는 어시스턴트로 성장해 있었다. 엄청난 자부심의 선임 어시스턴트 에밀리를누르고 파리 콜렉션에까지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그녀로서는 꿈에도 꾸지 않았을 일이었다. 패션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촌스러운 여자, 1년만 버티면 그 어이든 취직이가능하다는 말에 뉴요커에 들어가기 위해 시작한 일이건만 어느새 최고의 패션 잡지 편집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패션에의 조예도 깊어갔다. 옷이 날개라 했던가, 여자가 예술 작품이라 했던가. 날이 갈수록 그녀는 더욱 예뻐져만 갔고, 일도 능수능란하게 잘 해내었다. 약간 아쉬운 끝맺음을 맺긴 했지만 앤 헤서웨이 그녀가 보여준 여성상은 정말 멋진 것이었다.

 

 

 

 

 

 

 

 

 

 

               악프다의 앤드리아가 상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앨리는 동료들의 질투와 시기를 견뎌내야 했다. 늘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대는 테스에게 무작장 오디션을 본 뒤 결국엔 그녀는 버레스크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비록 아직 메인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장자리에서도 그녀는 매우 빛났다. 하지만 함께 무대에 오르는 동료들은 그녀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자를 먹으러 갈때도 소소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녀는 늘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앨리와 다른 흑인 댄서 둘 과 함께 무대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곡명은 tough love라는 곡. 그 때 앨리의 입단을 가장 경멸적 눈치로 쏘아보던 니키라는 댄서가 음악당담자를 어디론가 불러내더니 자신이 그 자리에 가서 앨리의 파트 때 노래를 꺼버렸다. 버레스크의 무대들은 라이브가 아닌 립싱크와 춤으로 이루어진다. 단장인 테스는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이끌어 나가지만 다른 댄서들은 그저 노래에 맞추어 입모양을 흉내내고 춤을 추는 것이다. 노래에는 그 누구보다 자신있던 앨리는 입단과 동시에 테스에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안되나요?"하고 수십번 간청했지만 테스는 물론 다른 댄서들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의 춤을 보러오는 것이지 노래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면서. 그렇기에 니키가 노래를 꺼버렸을 때 다들 당황했다. 니키까지도. 무대 뒤에서는 커튼을 내렸고 손님들은 클럽을  빠져나가고자 했다. 그 상황에서 이 동영상의 노래가 시작된 것이다. 직접 노래 부르는 것을 반대했던 테스까지도 커튼을 올리라며 적극 동참해주었다. 이 때부터 버레스크에서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일로 메인댄서 급이었던 니키가 후방으로 밀려나고 모든 공연이 앨리의 위주로 진행되었다. 확실히 앨리의 위주로 공연히 진행되자 무대의 격이달라진 것이 보였다. 재치있는 춤과 내공이 느껴지는 노래실력까지 합해진 무대로 승승장구하다가 그녀는 신문 1면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관객들은 더 이상 댄서들의 춤을 보러오는 것이 아닌 크리스티나 중심의 공연을 보러 클럽에 출입하고 있었다. 그녀의 최대과제까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니키의 질투는 더욱 심해지고, 또 클럽은 은행에 팔릴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앤드리아가 순응적이라면 앨리는 저돌적이다. 버레스크 무대에 서겠다는 그녀의 열정만큼은 앤드리아를 연기한 전문배우 앤 헤서웨이도 쉬이 따라잡진 못할것이다. (연기 말고, 열정말입니다)

 

 

 

 

               미란다 프리스틀리와 테스

 

 

 

 

              

 

 

 

 

 

 

 

               테스는 멋진 단장이었다. 극 초반에는 약간 까칠하게 등장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사람임을 그려냈다. 팀 동료에게 소외당하고 혼자 화장을 시작하려는 앨리에게 다가가 엄마의 모습으로 대해주고 새 화장품을 건넨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앨리를 따스한 눈빛으로 보아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외모는 메릴 스트립 못지않은 매서움을 지니고 있지만 그녀의 카리스마는 부드럽다. 그녀가 들고 있는 칵테일을 함께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상대다. 하지만 때에 따라 다르다. 자신의 클럽이 넘어갈 상황에 처할 때는 절대 넘기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것에 대한 애정을 표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시키는 대신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클럽을 살리기 위해 힘쓴다. 그녀는 메릴 스트립의 모습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더한 것 같은 모습이다.

 

 

 

 

 

 

 

 

 

 

               미란다와 테스는 자신의 위치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미란다 프리스틀리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런웨이 사의 편집장이고 수백만의 여자들이 그녀의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한단다. 하지만 테스는 길거리 클럽이다. 그것도 바와 함께 있는 클럽. 어쨌든 미란다는 초반부터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책에 따르면 어릴 적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왔기에 더 독한 것 같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그녀 홀로 패션 쪽으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났고, 급기야는 프랑스어를 3년간 독학해서 프랑스로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가족들와 연을 끊고 6년 째 런웨이 사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전 직원의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녀의 말 한마디면 무직장이 되어버릴 수 있기에 직원들은 말 돌리기를 잘한다. 미란다가 없는 장소라도 그녀에 대한 약간의 험담이라도 내 뱉었다가 다시 그것을 허둥거리며 만회한다. 또 미란다는 자신이 회사에 없더라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도미니크로 휴가를 떠나 갑작스레 '스커트가 필요해' 한 마디만 하고 끊어버리질 않나, 아직 출판도 되지 않은 책을 4시간 만에 구해서 자신의 딸들 품에 안기고 최고급 스테이크와 테이크 아웃 스타벅스 커피를 대령하라고 하지않나 앤드리아는 그녀 밑에서 참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그런 그녀의 속내도 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편과는 항상 싸우고 그녀도 역시 여자다. 겉은 강하게 내비비치만 여리다. 이것은 테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앨리와 함께 자신의 어릴 적 아픔들을 이야기했다. 두 여자 모두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로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있었다.

 

 

 

 

               덧붙임

 

 

 

 

              버레스크는 마치 여러 뮤직비디오를 묶어놓고 중간중간 연기자가 들어간 듯한 최고의 노래들을 선보인다. 쉐어의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와 크리스티나의 최고의 목소리가 만나 영화는 잠시도 눈 돌릴 틈을 안준다. 노래도, 무대도, 연기도 너무나 멋지다. 결국은 크리스티나는 달달한 사랑까지도 쟁취해가며 자신의 버레스크 무대를 가진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크리스티나, 연기 참 잘하더라. 미국이라서 다른건가? 하고 나의 미국 찬양도가 더욱 높아지려 하고있다. 보려는데 절대 반대 안한다. 되려 보지 않으려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보고있노라면 노래에 흠뻑 취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하하 웃으며, 몸을 들썩대며 즐길 수 있는 영화니 간단하게 영화 한 편 보고 싶을 떄 꼭 찾길 바란다!

 

 

 

 

               그러고보니 2011년의 마지막 글이다. 한 해(?)도 아니고 4개월 동안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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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2-3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살 더 먹지만 새해 복 많이 받고 즐겁게 보내요.
소이진님 성숙한 모습 내년에도 기대할게요. 안녕.

sslmo 2012-01-0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우리 아들 생각이 나고,
우리 아들이랑 비교가 되어서 말이지요~
샘나고 심술쟁이가 돼서 오고 싶지 않지만...^^
새해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해피 뉴 이어~^^

울아들은 내일부터 학교를 간다는데,
소인진님은 지방이었죠?
방학동안 뭘 할 계획이예요?

무스탕 2012-01-0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40, 총 6688 방문

한 해도 아니고 4개월동안 많이 사랑을 풀고 다니셨기에 그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으신거지요 ^^
올해부터 신분이 중에서 고로 상승됐는데 상승된 신분만큼의 고민과 수고로움과 바쁨이 따르겠지요.
젊다고(라고 쓰고 어리다고 읽는다) 건강에 너무 무심하지도 말고 자신하지도 말고 운동 틈틈히 꾸준히 잘 해서 체력을 잘 다져둬야 공부도 장시간 할수 있어요.
올해엔 '여친이 생겼어요' 라는 페이퍼를 기대해 봅니다.ㅎㅎㅎ

이진 2012-01-02 16:15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의 진심이 듬뿍담긴 덧글 감사해요 ㅎㅎ
맞아요, 운동해서 살도빼고 체력도 좀 길러야지...
이래가지고서는 영 여친도ㅋㅋㅋ

크하, 여친이라 ㅎㅎ
 
[소울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추웠다. 거리의 나무들은 가지가 잘려나갔다. 가로수 정리 중이었다. 시끄러운 전기톱 소리와 함께 가지들은 떨어졌다. 황량한 기둥만이 남았다. 이파리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추운 냉기가 닥쳐왔다. 나무마저도 추운 날이었다.

 

  나는 꽤 들떠있었다. 지겨운 7교시도 이제 10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곧 마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마친다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라면 폴폴 끓여 먹는다. TV와 함께 깔깔대면서 먹는다. 내 방은 난방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이처럼 추운날  따뜻한 거실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다. 비록 벗은 라면과 TV뿐이지만 좋다. 어중간한 오후 시간이라 볼만한 프로그램도 없지만 그래도 좋다.

 

  오늘따라 나는 가방을 두 개 들고 갔었다. 잡다한 프린터, 영어 자습서와 단어장, 몇 권의 소설책과 에세이집, 다이어리와 여러 권의 공책들을 넣은 본 가방 한개. 그리고 악보만 잔뜩 넣은 가방 한 개 더. 문제는 이 악보가방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게 무겁다는 것이다. 책으로 출판된 악보만 5권 정도 있다. 또 악보 파일집만 여섯 권, 그냥 쑤셔넣은 악보만 합해도 곡의 총 수는 거의 300개 정도. 그래도 다 종인데 얼마나 무겁겠어?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학교갈 때 무심코 들고 뛰다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결국 뛰지도 못하고 지각. 이때부터 이 악보가방과 나의 악연 시작.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나는 룰루랄라 휴대폰을 받아들고 가방을 챙겼다. 책상서랍에 넣어둔 다이어리 꺼내서 본가방으로, 영어자습서 꺼내서 본가방으로, 악보가방 챙기고. 넣을 공간 없어서 그냥 들고갈 바로 이 [소울푸드] 팔로 받쳐들고. 그리고 3일동안 묵혀둔 우유 3곽 책 위에 얹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여자친구들과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왠걸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었다. 이런 낭패가! 마침 빨래한 옷을 허겁지겁 입고 나온터라 호주머니에 열쇠도 없었다. 가방 옆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스테이플러 심에 손만 찍혔다. 할아버지는 컴퓨터 교육 받으러 가셔서 족히 40분은 있어야 집으로 오신다. 이런.

 

  혼자 낙담하여 풀이죽어 서 있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가며 "뭐해~"하며 묻는다. 나는 대답대신 물기 머금은 눈빛 보낸다. 5분이 지났다.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다. 아직 종례를 다 안 마친듯 하다. 2초씩의 간격을 두고 계속 전화를 했다. 전화 목록을 보니 무려 스무통. 그런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슬슬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 문자를 보냈다. 격렬한 말투로 보냈다. 10초 뒤 답장이 없길래 다시 전화하니 그제서야 받는다.

 

  "야, 열쇠 갖고 튀어온나"

  "없는데, 내도"

  "아~씨..."

 

  늘 이런식의 대화다. 끊는다는 말도 없이 끊었다. 이제 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이럴 때가 제일 외롭다. 춥고 집문은 잠겨있다. 그 누구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정류장에 왁자지껄 모여있던 친구들은 벌써 차 타고 가버린지 오래. 이 짜증을 털어놓을 사람만 있어도 좋을텐데 없다. 전화해서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보가방과 손에 든 책, 우유가 슬슬 몸까지 힘들게 만든다. 본가방이 너무 커서 악보가방은 어깨 한 쪽이만 걸쳤는데 장난아니게 무겁다. 식은땀이 뻘뻘난다. 우유는 계속 미끄러진다. 한 개 땅에 떨어트렸는데 떨어지게 전에 발로 한 번 차서 터지지는 않았다. 결국 우유는 집앞에 던져놓기로 결정. 도저히 가방은 길바닥에 놓아둘 수가 없어서 메고 있기로 결정.

 

  그런데 마침 교문을 나오는 친한 여자무리 발견. 얼른 달려갔다. 집에 안가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나는 "집문 잠겼어"하며 흑흑대는 행동을 취한다. 내 모습에 깔깔대는 그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기에 익숙하기도, 재밌기도 했었겠다.

 

  그들은 붕어빵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돈 없는데, 하면서도 따라갔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여러개 사서 하나는 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갔는데 다들 치사하게 하나씩만 사먹는다. 처절하게 "꼬리만...꼬리만 주라"라고 해도 못 본척 돌아선다. 에잇, 치사한 것들아 하면서 집으로 갈려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 한 명이 다가온다. 불쌍한 오빠 붕어빵 하나만 사주라 하고 부탁하니 흔쾌히 허락한다. 그녀도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놓은 상태라 그 보답으로 사주겠노라 했다. 고맙게도 1,000원 어치 3개를 사준다. 그리고는 내 손에 쥐어준 뒤 "꼭 내 부탁도 들어줘"하며 쌩하니 지나간다. 바쁜일이 있나보다 하고 나는 붕어빵 봉지를 들고 여자무리를 향해갔다. 역시 쥐떼까지 모여든다. 범석아 한입만, 꼬리만 주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싫다고 말하며 끝내 꼬리 하나씩 떼줬다.

 

  그 친구들도 보내고서는 혼자 집앞으로 왔다. 그리고 악보가방을 집앞 땅바닥에 내팽겨쳐 버리고 붕어빵 하나를 꺼내들었다. 슈크림으로 속이 꽉 찬, 꼬리가 없어진 괴상한 모양의 붕어빵이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입 안에 부드럽고 달콤한 슈크림이 퍼져나갔다.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다. 갓 구운 빵과 슈크림의 조화가 어찌나 맛깔나던지. 그 추위에 떨던 내 속이 단번에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30분 정도의 설움이 붕어빵 하나로 해결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붕어빵은 내게 손난로 였으며, 온풍기였다. 붕어빵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날 하루종일 스트레스 쌓인 채로 밤 지새웠을 거다. 내가 다리뻗고 푹 자게 해준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붕어빵. 슈크림 붕어빵.

 

  나의 필력이 훨씬 못 미치기는 하지만 이러한 형식으로 [소울푸드]는 전개된다.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 겪었던 이야기를 음식과 연관지어 이야기한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젊고 그들은 나이가 꽤 있다. 나는 현재형이고 그들은 과거형이다. 나는 아직 세상을 많이 겪어보지 못했고 그들은 겪을대로 겪어봤을 것이다.

  초반에는 끼워맞춘다는 생각이 들어 쉬이 글이 읽히질 않았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정말 끼워맞추기 식이었다. "연애는 카레라이스다"라는 문장이 특히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는데, 은유법을 사용했다고 해도 아직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는 끼워맞추기 식 밖에는 되질 않았다.

 

 

 

  [소울푸드]를 읽으며 내내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대체 소울푸드가 뭐야?"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시간도 없었고 해서 그냥 읽긴 했지만 이 궁금증 때문에 집중이 안되었다. 그러다 '황교익'씨의 글에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닌 거의 '개념'에 가까운 설명이었다.

 

 

  현상이나 사물을 글로써 표현해야만 개념이 생기고, 그 개념이 정립되었을 때에야 그 현상이나 사물이 뚜렷하게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인간의 지적 활동이란 대체로 이런 식의 '조작'을 바탕으로 한다. 소울푸드는 음식에 대해 인간들이 보이는 특정의 기호를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조금 느슨하게 말하면, '인간은 어릴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해 강한 기호를 나타내는데 그 기호가 집착 수준에 이른 것'정도가 될 것이다.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울푸드란 것이 과연 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낱낱의 현상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  (164p)

 

 

  아하, 이것이 소울푸드라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아까 쓴 붕어빵은 내겐 소울푸드가 아닌 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붕어빵을 소울푸드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붕어빵은 내게 온기를 불어넣어 준 음식이 될 테니까.

 

  이 개념대로라면 나의 소울푸드는 아마 '치킨'이 될 것이다. 어릴 적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그 수제 치킨을 엄마와 마주보고 먹었던 일, 아빠가 돌아오는 길에 사오기를 손 모아 기도했던 일, 지금까지도 그것이 먹고 싶어 환장하겠고 또 먹으면 다음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이 글도 그렇게 무거운 주제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내가 말한 붕어빵이나 치킨보다 더 흔한 라면으로 [닥치고 정치]와 나꼼수로 무서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어준씨는 글을 썼고 성석제 작가님은 우리 고유의 장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외에도 술이나 커피, 카레, 주먹밥, 소세지 등의 음식들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가 끓여주었던 된장찌개에 대해 무한사랑을 표출하는 이충걸 작가, 이탈리아에서 소 내장 스프를 먹고 감동을 받은 박찬일 작가 부터 빨계떡(빨갛게 맵고 계란과 떡이 들어간 라면)이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박상 작가에까지 소소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또 웃음 터트리는 글들이 가득하다. 우리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가 가득하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아들에게 커피의 이 맛만큼은 꼭 가르쳐주고 싶다. 원래 커피는 그런 거라고, 매일매일 마시는 거라고. 매일매일 마셔도, 또 또 생각나서 마시고 싶은 그런것, 힘들고 지칠수록 더욱 뜨겁고 달콤하게 나를 깨우는, 마치 소설처럼, 사랑처럼, 바로 너 처럼. (182p)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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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올라왔네 ㅋ..ㅋ
도장 꽝! (대체 무슨 자격으로?)
정성스런 리뷰 잘 읽었어요 :)

Arch 2011-12-16 16:45   좋아요 0 | URL
두분 다 신간평가단이에요? ^^ 소울푸드란 개념이 좋아요. 책은 어떨지... 여러명이 한 주제에 대해 쓴 글은 몇 꼭지만 좋은 경우가 있어서.

이진 2011-12-16 18:32   좋아요 0 | URL
ㅎㅎ 수다쟁이님은 소설이구, 저는 에세이입니다!
진작에 소설로 갈걸... 지금 후회중 ㅠㅠ
소설 대상도서가 무척무척.. 심하게 부럽거든요 ㅋㅋ

이책도 그래요
몇꼭지는 영 별로인 게 많답니다..
많지는 않은데.. 쩝

Arch 2011-1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도 신간평가단에 들어가는거라면 저도 신청할걸, 아쉽네요.

이진 2011-12-19 16:10   좋아요 0 | URL
ㅠㅠ 저는 소설신청할 것을.
저는 에세이가 저와 맞는 줄 알았는데,
역시 읽다보니 소설이더군요. 쩝
 
[소설 읽는 방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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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한 적이 없다. 책에 사용된 어휘나 문장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집중이 어려웠고 내용 파악이 힘들었다. 원래 '~하는 방법'이라는 패턴의 책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 책은 좀 더 심하다. 

  책을 받아들고는 솔직히 기대를 많이했다. 꽤나 준수한 외모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또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일본의 당찬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도 기대했다. 작가의 외모에 따라 글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는 없을테지만 처음 보는 작가이니 만큼 외모가 주는 첫인상이 너무나 강했다. 

    

  얼마 전 우리 나라의 작가님이 쓰신 이 비슷한 에세이를 읽었다. 한국인이다보니 우리에 맞는 소설들로 소개를 하셨고, 또 자신이 직접 쓴 소설을 가끔 인용해서 우리의 이해도를 높였다. 또 꽤나 연식이 있어보이시던 작가분이셨는데 말을 쉽게 쓰셨고,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 점을 속 시원히 적어 놓으셨다. 예를 들어, 꽁트와 장단편 구별법 같은 것 말이다.  

  하여튼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은 탓인지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에 기대치가 컸었다. 하지만 높은 기대치만큼 실망도 배로 컸다. 첫 장부터 내게는 어렵게 다가왔다. 소설 읽는 것과 새가 우는 것을 연구하는 학자의 네가지 발표가 비슷하다는 사실은 꽤 새롭고 흥미진진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번역 문제인가? 하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좀 이해가 간다. 매커니즘, 발달, 기능, 진화로 나누었는데 작가는 이 네가지가 어떻게 소설과 연결되는지 친절히 말해준다. 다만 독자가 친절하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게이치로는 9편의 소설을 인용하여 소설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런데 정말 가르쳐준다. 어찌 감상하라, 이런 부분은 어떻게 읽어라가 아닌 정말 수업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책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건만 작가는 우리가 이 책을 읽은 전제하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듯한 내용이다. 전 문장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알지못하는 문장들이 나오기도 하고, 이건 뭐 9권 전부를 구해서 읽어봐야 하겠다. 

  또, 그의 전작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오는데 그것 또한 힘들다. '슬로 리딩'을 제시했다는데 당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이 에세이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 한권을 읽는데 필요한 준비물이 책 10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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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1-18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리뷰는,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겠네요.
솔직한 감상평과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진 2011-11-18 17:41   좋아요 0 | URL
우왕우오아 ㅠㅠㅠ 정말인가요! 마감시간이 촉박해서 정말 정신없이 써내려갔는데 괜찮다니 정말 좋네요 ㅠ

stella.K 2011-11-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마음에 들어요!ㅎ~

이진 2011-11-18 17:42   좋아요 0 | URL
ㅎㅎ 뭐로 할까 생각도 안하고 바로 마지막 문장을 제목으로 삼았답니다.. 정신이 없었어요 ㅋㅋㅋ

cyrus 2011-11-1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도 에세이 분야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하시는군요. 학교 수업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을거 같은데, 방금 전 글에서 님이 중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더하면 정말 대단하네요 ^^

그런데 방금 전에 스텔라님의 리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책의 내용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가가 없네요 ^^;;

이진 2011-11-18 21:10   좋아요 0 | URL
하하, 마감시간이 너무 촉박한지라 일단은 저의 솔직한 평들만 적었습니다. 딱 읽었을 때 호의적인 내용이 눈에 팟하고 들어오지 않고 또 생각해내려면 책을 뒤적뒤적 해야하는데 마감...마감시간이요 ㅠㅠㅠ

노이에자이트 2011-11-20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로 리딩은 문자 그대로 천천히 읽어라 그겁니다.정독을 권하는 것이죠. 정독을 해도 알 듯 말 듯 한데 슬슬 읽으면 더 모르는 책이 부지기수지요.히라노 게이치로가 쓴 대하장편<장송>을 읽다 보면 이 작가는 자료를 엄청나게 많이 수집한 뒤 집필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진 2011-11-20 22:4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이 작가의 면모는 이 책 한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ㅎㅎ 꽤나 공부를하고 지식이 축척되지 않으면 쉽게 읽지 못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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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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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오노 후유미(小野 不由美)에게 빠졌었다. 아니 미친듯이 좋아했다. 사람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작가의 신비로움과 그 작품들의 맛에 미쳤었다. <고스트헌트>라는 애니메이션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몇 번이고 돌려 보았었는데 어느 날 그 만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악령시리즈>. 여덟 권의 책인데 그 저자가 오노 후유미였다.   

  그때부터 그녀의 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녔다. <악령시리즈>는 물론이고 그 후속작인 <악령이 깃든 집>, 그리고 <십이국기 十二國記>시리즈와 다른 저서들까지 전부! 그런데 곧 좌절과 절망, 패닉에 빠졌다. 그녀의 대부분의 책이 품절,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두터운 매니아층 때문에 책이 나오면 빨리 품절되어 버린다. 어찌저찌해서 <시귀 屍鬼>는 중고(책표지가 떨어질락 말락하는)로 구입했고 <악령이 깃든 집>과 <17세의 봄>,<녹색의 집>은 운 좋게 새 책으로 구했다.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 중고책방에서 <고스트헌트> 만화책 8권 세트도 합리적인 가격에 구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중고책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된 것이. 원래 나는 매우 좋지 않은 편견으로 중고책을 꺼려했었다. 철저한 책 보존 주의파였던 나는 책에 조금의 낙서라도 생기는 것을 방지했고, 때가 타지않게 이동할 때면 신문이나 종이로 싸서 가방에 넣었다. 책이 구겨지거나 찢어지는 것은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선사해주었고, 그것을 방지케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쫙 펼치지않고 조심스레 읽었다. 친구들에게 책을 빌려줄 때는 그것이 너무 신경쓰여서 꼭 사전에 깨끗히 읽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저자 박균호씨도 나와 비슷한 타입의 사람이었다. 새 책만을 사서 읽다가 자연스레 헌책으로 마음이 빠져버렸습니다. 새 책을 사서 그 포장을 뜯는 것과 책 표지를 만지며 질감을 느끼고, 속 종이의 냄새를 맡는 일은 너무나 즐겁습니다. 헌책 수집가가 아닌 '책 수집사'들에게는 책 냄새가 어찌 그리 좋은지요. 그런데 헌책을 사는 일도 그에 못지 않은 쏠쏠한 재미들이 넘쳐납니다. 

   신간이지만 좀 더 싼 값에 사고 싶어서, 아니면 절판이나 품절로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헌책을 많이 구매합니다. 제가 오노 후유미의 책을 구할 때는 후자의 이유로 책을 샀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일이 참 쏠쏠합니다. 비록 인터넷 중고 책방이지만 이 책을 찾으러 나들이 갔다가 다른 좋은 책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귀에 질리게 들어온 퇴마록이나 오노 후유미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경이문'이라는 만화책. 전부 <시귀>를 찾으러 갔다가 건진 수확물들입니다. 

  헌책을 수집하는 것도 새 책 수집 못지 않은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아, 이럴수가.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이 전부 다 재밌어 보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엽서>라던지, 장정일 선생님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던지 아라키 노부요시의 <내사랑, 요코> 라던지 다 구미에 당깁니다. 한 가지 문제는 저란 사람이 구하기에는 무척이나,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은 아니지만 그정도로 힘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특히 <내 사랑, 요코>라는 작품이 마음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찍은 사진집인데 아내의 예쁜 모습 뿐만 아니라 볼일을 보고 있는 모습이나 배설물까지도 찍어서 사진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해봤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박균호 교사님은 이 많은 책들을, 구하기도 힘들 이 책들을 어떻게 읽으신 것일까요. 그 분의 독서 열정에 감탄의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묻혀져 있던 좋은 책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민중자서전이라던지 비록 묻혀져 있던 것은 아니지만 불온 서적에 대해 처음 읽어 보았습니다. 판매량이 무려 20배나 증가한다는 그 불온서적. 진중권의 '불온 서적 선정 탈락'에 관한 불평글이 무척 재밌었습니다. 

 

   
 

   제 책들이 국방부 선정 리스트에서 제외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네요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십시오.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 왜 그 책이 배제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거 말고도 또 있지요. 체제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출판사(아웃사이더)에서 아예 <<빨간 바이러스>라는 제목으로 낸 책입니다. '빨간'이라는 색깔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거기에 '바이러스'까지 붙여 강력한 전염성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국방부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형평성에 큰 문제가 있지요. 국방부는 23권 선정 과정에서 출판사 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이참에 국방장관께 묻겠습니다. <<빨간 바이러스>>라는 책이 병영에 들어가 병사들의 정신 세계를 감염시켜도 무방하다는 말입니까? 

198p-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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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1-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내 썼군요.
근데 시귀를 샀단 말이죠?
이거 사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사람은 뭔가 한 가지에 미쳐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잘 썼어요.^^

이진 2011-11-18 17:41   좋아요 0 | URL
오오, 시귀 구하는 것이 힘든가요 ㅋㅋ 저는 외숙모가 바로 찾으셔서... 근데 그 전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ㅠ

감사해요 ㅋㅋ

다락방 2011-11-2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안녕.
리뷰 잘 읽었어요. 소이진님의 댓글이나 페이퍼 글을 읽을때마다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싶어요. 전 십대에 이런식의 리뷰및 페이퍼를 절대 쓸 수 없었을 거에요. 유치찬란함이 넘쳐났을 듯. 소이진님은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더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전 소이진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아마도 퍼스나콘의 축구선수에 대한 글이었을 거에요) 20대 중반의 여자사람인줄 알았지 뭐에요. 훗.

그런데요 소이진님, 이 리뷰에서 네번째 단락, 갑자기 반말에서 존대말로 바뀌었어요. 알고있어요?
:)

이진 2011-11-22 17:43   좋아요 0 | URL
후후후... 20대 중반의 여자사람이군요... 제 친구들도 제가 인터넷에 올리는 글보고 너무 여자처럼 쓴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그나저나 미천한 저의 블로그에 들려주셔서 고마워요... 그 지적하신부분은 ㅋㅋㅋㅋ 제가 정말 마감시간에 촉박한 상태여서 정신줄을 놓은 상태로 썼었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