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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 지음, 박경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월
평점 :
체슬러는 함께 한 모든 여성들이 백인이었음을 담담하게 시인하고 있으나, 내게 보이는 것은 이제는 미치거나 죽어버린 70년대의 그녀들 거의 모두가 글을 읽고 책을 썼다는 것.
내가 읽었던 미국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책들 대부분은 자신을 치장하거나 누군가(특히 남성)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이해해 보고 자기 자신이기 위해서 스스로를 치열하게 분석한 작업들이었다.(읽으면서 징징대자.) 보이지 않는 억압을 기어코 보겠다며 긁어내는 모두에게 가혹한 문장이라, 어렵다기 보다는 아리지. 못 보는 위치에선 안 보임. 그런 글들이 내게 닿는다는 기적이 항상 감사하지만, 그래서 읽는 것이 매번 도전이었다. 너무 천재였고 너무 뜨거웠고 너무 똑똑했고 또 너무 정치적이었고 올바르지도 않았던 그녀들. 여성의 사랑을 질병이라고 썼지만, 이제는 내가 사랑하게 되어버린 슐리.(당연히 그녀 역시 사랑에 미친 여자였고. <성의 변증법>) 또 타인들이 아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여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전투에서 지지 말고, 절대 미치지 말라고 했던 체슬러.(미치기 직전에서 한 연구 맞는 듯. <여성과 광기>) 그때 내가 왜 그 관계를 떠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문장까지도 나는 왜 알 것 같은 건가.지적 오만 어쩌고를 떠벌리는 나는. 내가 미친 걸까?라는 물음표보다는(실제로 어떨 때는 광인마즘) 나는 너무 천재이고 왕 똑똑해!라고 (근거없는) 주문을 걸 때야 간신히 이다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분명한 건 함께 똑똑해지자고 하는 여성들이 없었다면 가다 말았을 거란 거.어떤 사람의 삶을 단시간에 섭취하는 일(독서)는 확실히 잔인한 데가 있는 취미인 것 같다. (취미라고 하기는 실례스러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난폭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하고 싶은 붕대 푼 다음 날 아침이다. 걍 다 덤벼라 싶은데 실은 꾸물꾸물. (혼남) 그래도 나는 나다. 그게 뭐냐고?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나는 나다. 나 라는 주어가 너무 많아서 거슬릴 정도로 나는 나다ㅋㅋㅋㅋ 안미쳣슴.
나는 지금 역사적인 영웅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들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해낸 일이지, 그들이 저질렀던 지독한 실수가 아니다. 여성들은 대부분 성차별적 가치들을 내면화한다. 하지만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런 가치들이 아니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자들은 여성 해방에 남자들만큼이나 큰 걸림돌이었다. 가령 우리는 너무나 근사하게 "자매애는 힘이 세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런 자매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서로에게 친절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여성이고 페미니스트라면 다르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했지만, 페미니스트라고해서 늘 서로를 존중과 연민으로 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점차 깨닫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걸 1967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 P58
흔히 여자는 남자보다 연민이 많고 공격성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 2세대는 아주 거세게 싸웠다. 이투쟁을 본질주의에서 볼 것인가 사회구성주의에서 볼 것인가,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개혁인가 혁명인가, 음란물을 포르노그래피로 볼 것인가 검열할 것인가, 성매매는 성을파는 것인가 ‘성 노동자‘가 될 수 있는 여성의 권리인가, 여성을순진무구한 피해자로 볼 것인가 일의 행위자이자 책임 주체로 볼것인가, 적(남자)과 동침하는 여자가 정말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을 두고 싸웠다. 페미니스트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헐뜯거나 따돌렸다.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 대부분은 지독하고 노골적인 싸움에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모든 갈등을 정치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겪어 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때로 사람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했다. - P59
이제야 우리는 *모든 여성, 즉 백인 여성이든 다른 인종의 여성이든, 인종 차별을 내면화해 왔음을 이해한다. 또한 여성 역시 성차별주의자들이며 호모포비아라는 사실도. 그러나 성차별 반대 입장을 계속 고수하려면 매일 의식적으로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완전한 극복은 없으리라는 사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래전에 나는 모든 여성은 친절하고 다정하고 용감하며, 공격을 받아도 우아하게 대응하고, 엄마의 자질을 가진 존재라고믿었다. 또 모든 남성이 여성들의 압제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소수 페미니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듯, 이는사실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남자들과 마찬가지로여자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잔인함과 질투심을 가졌음과 동시에 관대함과 연민을 지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쟁할 수도, 협력할 수도 있는 인간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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