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도 없고 볼 생각도 없었던 <재벌집 막내 아들>이 시청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끝났나 보다. 포털뉴스 사이트에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몰입하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난 그것, 참, 고소하군 이라고 생각한다. 보지도 않고 또 이런 소리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를테면 ‘회귀물’ 장르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로 남아들이 보는 웹툰에 많은 장르라고 하던데 ‘이생망’한 주인공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미리 알게 된 선견지명을 가지고 성공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나 재밌을지 안봐도 뻔하지만...
그래서 재미 없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전능할테다. 언제 외환위기가 올 줄 알고, 언제 코인이 떡상 할 줄 알며, 하다 못해 로또 번호라도 외울테다. 그러니까 그 전능함. 그들이 바라는 그 전능함. 세상 모든 것을 발 아래 두고 통제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의 시대를 우리가 견디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지독한 무력감에 대해서 함께 통탄할 수 있는 종류의 마음에 내가 공감하더라도 그렇다.
존재는 무겁다.
감당은 어렵고.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은 열망과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갈망 사이에서
나는 자주 괴롭다.
무겁고 어렵고 괴로워도 혼자만 쉽게 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게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라고 지금에 와서는 생각한다.
좋아하는 언니는 그런 말을 했다. 엄마가 되는 것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그때의 나를 말렸을 거라고. 그런데 그때의 자신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걸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었고, 그걸 감당하고 있다고. 다시 태어나도 나는 감당할거야. 라는 말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는 언니가 어떤 엄마인지 조금 아주 조금 옆에서 보았다. 나도 나는 지금도 가끔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건 그게 쉬워보여서는 절대 아니라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두 존재가 되게 아름다워 보이는 데, 그건 보이기에 그런 거고 그 자세함은 내가 모르는 거지만... 난 언니들을 보면서 좀 배웠다고. 그러니까, 음. 가끔 나는 나의 낡아가는(?) 생식력 혹은 이제 사용 불가능(?)하게 될 재생산력에 대해서 생각하면 좀 슬프다. 지금의 상황을 내가 선택했냐면 선택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지금의 상황에 내가 이르게 된 거고 거기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선택은 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구조주의자이고, 그럼에도 그 안에서 좋은 동기를 우선으로 둔다는 데에서는 칸트주의자며, 나의 수준과 알려고 하지 않았음이 저지른 것들에 대해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지식을 대하고 싶어하는 데에서 만큼은 실존주의자이며, 그래서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훗날에는 꼭. 이 생을 다시 한 번!살고 싶었으면해서. 결국 니체주의자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영화를 봤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개봉관이 거의 사라져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조로 봤다. 친구가 제발 봐 달라고 했다. 보고 글 써 달라고. (-_-) 생일 선물이다. 이 몸이 이토록 성실하게 영화 리뷰를 써준다. 잘 봐라. 친구는 영화의 중반부터 미친 듯이 울었다고 했는 데, 나는 정말 이 영화가 정신없고 시끄럽고 또 시끄럽고 너무 투머치하고 또 너무 투투머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ㅋㅋㅋㅋ 이건 완전 엔뿌삐ENFP영화잖아!!! 투덜대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엉엉 우느라 힘들었다. 뭐냐. 이 영화. 왜 나를 다정하게 만들어. 왜. 나를. 왜 나를 F로 만드느냐.
아 나. 이런 거 싫은 데... 하지만... 역시... 난..... 시골 출신인 거다.... 내 안의 시골스러움. 초코파이 정이 최고여.
양자경이 엄마이며 주인공이다. 미국 어느 변두리 도시에서 이민 온 동양 가족으로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밥줘아빠를 봉양하느라 바쁘고, 유약한 남편이 못하는 일까지 해내느라 바쁘고, 사춘기 반항아 딸과 다투느라 바쁘다. 그러니까 현생의 양자경은 아주 억척스런 엄마다.
이 영화 역시 멀티버스(다중우주)가 소재인데 요즘의 영화들을 보면 이 개념을 다들 알겠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좀더 적자면. 그녀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다른 선택들을 하기에 따라 계속해서 우주가 여러 개로 쪼개지는 멀티버스다. 다른 선택에 맞는 다른 삶들이 다른 차원의 우주에 또 있는 것. 그리고 그 우주들이 겹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벌집 막내 아들>이 ‘이생망’해서 다시 생을 돌려서 산다면 <에.에.올>의 엄마는 다른 선택을 했을 다른 자신들을 여러 우주들이 겹치면서 볼 수 있게 된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있음*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의 지금 모습은 어떠할까? (사실 나는 22살 무렵부터는 이런 종류의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 무렵부터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원체 신중한 성격임 내가. ㅋㅋㅋ 상담을 하면서 수백번의 복기(?)를 해봐도 그렇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지점에 나의 생겨먹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22세 이후부터 아마도 내 우주는 이거 하나다.)
영화에서 엄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선택. 이민을 오지 않았을 선택...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우주에서 온 남편에게 이 모든 멀티버스를 구할 사람이 ‘자신 뿐’임을 지목 당하는 데. 이게 좀 웃기다. 왜냐면 다른 우주의 다른 선택을 한 양자경은 완전 능력자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배우에, 쿵푸 선수에.... 그런데 현생의 엄마 양자경만... 아주 엉망진창인 것이다. 나는 이 모냥 이 꼴에 아무 능력이 없는 데, 내가 다른 나 들을 다른 우주 들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여기서 좀 슬픈 진실이 드러나는 데. 이 멀티버스를 구하기 위해 다른 우주에 있는 나들과 연결이 수월하게 이뤄지려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건너가고 싶은 열망이 강해야 한다. 즉... 현생의 양자경은 부모 봉양하랴, 남편 챙기랴, 자식 케어하느라 바빠서 자기 좋을 선택들을 하나도 안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우주의 최악의 선택의 결론이 현생의... 엄마.....양자경..... ㅠㅠ
아무튼. 그런 최악의... 선택의 총합물인 막장 우주의 엄마는... 멀티버스를 넘나들면서 빌런과 싸우는 데. 이 빌런이.... 다른 멀티버스에서 엄마의 통제에 못 이겨 흑화한 딸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엄마와 딸이 온 우주를 넘나들며 죽어라 싸우는 영화다. 양자경이 액션배우 이므로 아주 볼만함ㅋㅋ.......
영화의 구조만 놓고 보면, 딸은 엄마보다 먼저 멀티버스의 모든 삶을 겪었다. 그걸 다 모두 보게 된 어떤 무의미의 세계를 겪은 후 ‘존재’라는 저주를... 자신을 존재하게 한 엄마에게 겪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 역시 딸이 본 세계를 어쩌면 되풀이해서 다 겪게 된다. 엄마 삶의 경우의 수에는 당연히 지금의 남편을 아예 만나지 않는 선택. 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선택들도 있다.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엄마는 그 선택에서 화려한 자신의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같다. 딸 역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우주들을 보여주면서 하는 질문은 내 추측으로는 대충 이런 질문인 것 같다.
* 내가 본 것들을 엄마도 같이 봐줄 수 있나요? 그 모든 것을 다 본 뒤에도. 엄마는 나를 존재하게 할 건가요? *
영화를 보는 나는 누구에게 이입할 수 있었을까.
딸?
엄마?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단한 적은 없지만, 이런 시절에 태어나서, 남들보다는 한 스푼 더 책임감이 있는 유형인 성정을 가지고, 과계몽(?)이 되어버린 까닭으로. 엄마가 되는 선택을 하기에는 나 자신조차 지키기 어려운 취약한 경제적 환경과 체력적-정신적 허약함에 처해 있는 나는. 그저 선택을 유예한 대가로. 아마 이대로는 엄마가 되지 않을 예정이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가끔 울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에바 일루즈는 결혼 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을 생산하는 매커니즘으로 생식력에 대한 ‘한정된 여성의 생물학적 시간’과 그에 비해 상대적인 ‘남성의 초연함’을 분석한다. 나는 그 초연함이 너무도 꼴비기 싫어 한동안 동년배의 남자들을 멀리했다. 지금도 나이 차이 많이나는 연예인이 커플 정말 너무 싫다. 그렇다. 도태녀는 도태남들의 초연함이 싫다. 그래봤자 신자유주의-우리들 안에서의 여남 따지지 않는 계급 투쟁이고 별 수 있나. 그남들이 미래의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피 나게 노력할 동안 나는 열심히 현실의 노동을 바쳐 현재의 나 하나와 지금을 잘 먹여 살리고 조금은 더 건강하고 지금 당장 명랑하게 사는 데에 힘쓸 뿐이다. 초연 할 수 없으니까. 지금이 중요함!! 하지만 그래도 자주 빡칩니다...)
아무튼 하나밖에 없는 나의 우주에서는 낳지도 않게 될 나의 딸. 나는 그녀를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결과를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얻은 다른 기회나 훌륭한 삶을 위한 불가피한 투자로 구성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나의 나이가 나이인지라ㅋㅋㅋ 영화를 보며 딸에 이입함과 동시에 엄마에 이입했더니,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더이다.
나만 이렇게 심각한가? 또 나만 이렇게 심각하지. ㅋㅋㅋ.
나는 이렇게도 읽는다. 모든 것을 다 연결시키고 모든 것을 다 발 아래 두고 바라보고 싶은 전능함을 기술에 구현한 스마트폰 미디어의 시대(매번 글에 강조하지만 이건 서양-제국주의-남성들이 만들었다ㅋㅋㅋ 난 뭐 스마트폰에 아이패드, 애플워치까지 아주 잘 쓴다ㅋㅋㅋ 그렇다고 이 알고리즘의 세계를 찬양할 생각은 없는 데, 왜 독서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반다나 시바 언니가 생각나는 것인가... 결국 나는 에코 페미가 될 것인가... 하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다... 더는 미래를 살고 싶지도... 과거에 사로잡히고 싶지도 않아...), 모든 것을 다 봐버리고 알아버려 미리 생의 덧없음까지 보게 된 (메갈을 하지 않았다면 소라넷을 어찌 알았겠는가?) 딸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구조 요청 같기도 하다고. 그 세계에서 엄마와 딸은 정말 심각하게 싸운다. 심하게 싸워. 계속 싸워.
어쩌다 보니 나는 영화에서 엄마에 좀 더 이입을 해버렸는 데 (주인공이 엄마여서인가?) 보기에 따라서는 딸에게도 엄청 이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고요. 암튼 다 보고 나서는 주변의 딸 가진 엄마들한테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백미는. 갑자기 돌이 되는 장면인데. 나는 해러웨이 돋았다고 표현한다.ㅋㅋㅋ 돌이 된 모녀의 대화를...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 개념에 대한 간결한 설명으로 읽어버린 나.... 하... 너무 천재인거 같다(응?) 대사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음. 암튼.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미디어 환경에서 사는 우리는. 사실은 알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조금의 부분적 시각일 뿐이라는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겸손을 모르는 맨스플레인 남자들아, 다 알면 다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안봤지만 재벌집 아들도 결국 통제 못한다고 결론 내고 끝나지 않을까?ㅋㅋㅋ 암튼 그 설정을 즐기는 것 자체가 이젠 별로라고 느껴짐.) 자신의 몸을 떠난 관조자의 시선으로 다 알 수 있으며,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관음증적인/초월적인 의식의 징그러움을 좀. 버려!!! 불법 촬영 하지 말고 포르노도 보지마!! 그리고 모르면 입 좀 다물어!!!! 달고 태어났다고 모든 것에 모든 의견을 가질 권리는 없다!!! 평가할 자격은 더더욱. 으으. 그런 시각 나도 좀 버리자.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우주를 시각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아인슈타인이 몽정자(ㅋㅋㅋ) 하이젠베르크에게 대가리 깨지는 장면을 담은 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읍시다. 초천재 물리학자들도 겸손한데 왜 그 남자들은 겸손할 줄 모르는가? 그것은 고작 생물학적 초연함 초연함 초연함 때문인가? 너희도 늙는다. 물론 밥 숟갈만 들 힘이 있으면... (갑자기 이 글 또 어디로 가나요?)
아무튼. 엔뿌삐 내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하면서 내용을 설명을 못하길래...
내가 이 영화가 뭔데? 한마디로 정리해줘. 그랬더니. 걔가.
- 다...다정함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어.. 그런 거라면 난 안보고 싶은 데. 나 다정함이 우릴 구할 정도의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
하지만.. 정작 보다가 눈물 미친 듯이 터져버린 장면은...
그게 왜 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데
그럴 때, 좀, 다정하면 안될까? 하는 부분였음...
다시 돌아와서.
재벌집의 막내 아들은 다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할지 몰라도,
코인 세탁소 집 외동딸의 엄마는 그 모든 선택들의 최악의 선택의 총체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감당하고자 한다.
그렇게 딸이 본 세상을 모두 본 엄마는.......
이건 너무 스포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엄마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딸이지만 내가 낳지도 않을 딸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 알 수 없는 세계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다른 앎에 자신을 세워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들리지 않았던 혼란스런 목소리가 있다면 이상한 목소리라도 일단은 들어봐야 하는 것 같다.
그것이 다정한 노력인 것 같다.
다정함은 우리를 구하지 않을지라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는 일단 다정해지기.
영화 보고 울고 나니 순해졌다.
당분간 순해질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