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철학이 될 수 있을까.
높은 천장의 200명 학생들. 수요-공급 곡선안의 원자화된 이기적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하면 자극 할 수 있는지에 관한 case by case 연구들을 꾸역꾸역 외워대다가 다른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 하는 것 처럼 인문대에 놀러가곤 했다. 낮은 천장의 낡은 책상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는 작은 강의실에서 교양 강의로 철학 수업을 듣는 것은 즐거웠다. 시간을 미분하고 공간을 우주까지 늘려봤다가 이내 삶을 조망하고 생각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생각하라는 요구들이 엉뚱하게도 그 순간 만큼은 나를 해방시켜줬다. 네가 선 곳. 네가 생각하는 것. 네가 바라보는 방식. 그것에 대해 빈틈 없이 흔들어 볼 것. 나는 나자신을 아예 잊어버리기 위해 철학 수업을 이용했을 지도 모른다.
철학에 매료되었지만 공부할 수는 없었다. 인문학은 죽었고, 철학을 공부해선 먹고 살 수 없었고, 저출생으로 신입생이 줄어가는 전국의 모든 대학교들에서 철학과는 통폐합 1순위였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공부를 평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철학은 공부를 평생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간 보듯 쪼금 쪼금 찍어먹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좋아하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나는 그런 이상한 비합리적 신념에 싸여서 30여년을 살아왔는 데, 철학공부 역시 그랬다. 좋으니까 이건 할 수 없는 것이겠구나. 너무 좋아하지는 말자. 그러나 사람은 변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비합리적 신념을 조금이나마 걷어낸 내가 돌아돌아돌고돌아 혹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하고 싶은 것은 전과이고 철학 공부니까. 그러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리하여 나는 내가 허락하는 한에서 적당히 추구해보고자 하는 데, 어쨌든 나라는 한정적인 자원이 노동 후 피곤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생길 때, 가장 읽고 싶은 책은 페미니즘 책과 함께 철학책이다. 둘이 비슷한데 페미니즘 책은 같이 읽기로 한것이기 때문에 먼저 읽게된다. (그리고 거기에 뇌 용량을 다 투하하고나면 다음 달의 벽돌 책이 기다리네?)
그래서 ‘페미니즘 철학’이라고 하는 데 책을 안살 수가 없었다. 작가님의 이전 책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를 인상깊게 읽기도 했고. 더군다나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건 내가 학교 다닐때 커리큘럼에는 있지도 않았다. 그 뿐인가, 유명한 철학자(라고 불리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페미니즘은 철학이 아니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45) 페미니즘 철학을 기존의 보편 인간을 이야기하는 철학과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에 반대하는 안티철학, 반反철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남성 철학이라면 여기에 반대하는 철학이 페미니즘 철학 아닌가’라고 생각하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을 페미니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저는 둘다 아니라는 거죠. 페미니즘 철학이 기존의 철학적인 사유나 개념 틀에서 시작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는 거죠. 비판적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기존 철학에서 타자라고 해왔던 것들, 기존의 철학에서 무시되어 왔던 것들, 즉 신체, 여성들의 경험, 감정이나 정념 같은 것들을 다시 철학의 언어로 사유해보는 거예요. *기존에는 철학적 재료가 될 수 없었던 것들을 철학적 재료로 다시 다듬어보려는 거죠.* 둘 다 해내는 거예요. 기존의 철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동시에 기존의 철학이 무시해왔던 몸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철학의 재료로 가져오는 거죠. 그렇기문에 페미니즘 철학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포함해요. *본래 철학의 일이 세계를 인식하는 틀거리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철학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명하고 새로운 관점들을 고민해보는 철학*이기도 한 거죠..”
고작 책의 1장을 읽었을 뿐인데, 그동안 어렴풋이 이것은 페미니즘 ‘철학’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들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호들갑을 떨며 페이퍼를 적어보는 중이다. 보부아르와 파이어스톤과 오드리 로드. 저자가 페미니즘 철학의 ‘입문’으로 선정한 인물들도 매우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제대로 페미니즘을 마주했을 때.이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그리고 여전히 내가 누군가가 페미니즘이 뭐야? 라고 물을 때 대답하는 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적어놓고 오늘의 페이퍼를 끝내보려고 한다.
“(73) 어머니 억압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20배는 더 오래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과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훌륭한 언어는 아니지만 내게 언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쾌락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물론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겠지만) 내게 언어를 가르쳐준 아버지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언어’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상대화시켜준 여성주의 지식인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딸들은 아버지의 검은 잉크를 엎어버리고 어머니의 젖이라는 흰색 잉크로 어머니에 대해 다시 써야 한다*. 이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사회는 여성과 어머니를 분리하고 ‘성스러운’ 어머니의 일을 남성에게도 부과해야한다. ”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구판)
나는 나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전향(?)을 진지하게 궁금하게 여기는 지인들에 한정하여 저 문장을 말해주면서 내 언어로 풀어서 페미니즘을 이렇게 설명해주곤했다.
“[공쟝쟝] 여기 책이 있어. 이건 책이야. 자, 이건 글씨지? 지금까지 나는 글씨를 읽어왔어.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고 여기며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페미니즘은 나머지야. 글씨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것. 흰 여백,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사이의 공백, 저자가 쓰지 않은 맥락, 종이라는 물성과 이 책이라는 것이 내게 오기까지의 노동까지. 그러니까 텍스트를 제외한 이 책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 또한 ‘책’이라고 페미니즘이 말해줘. 어쩌면 텍스트는 가부장이야. 나는 그걸 읽고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했는 데, 그걸 읽을 수 있었던 건 텍스트 외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나머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어. 텍스트가 아니어서 텍스트가 될 기회 조차 없어서 아직 읽히지 않은, 검은 글씨의 나머지를 포함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러나 그 텍스트야 말로 철저하게 그 나머지 것들에 기대지 않으면 존재할 수 조차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세계가 완전해진 느낌이었어. 텍스트를 가능하게 한 모든 것(그게 여성의 노동이든 존재든)을 인식 시켜 준. 나에게 페미니즘은 그래. 그리고 안타깝게도 텍스트가 아니었기에 한번도 읽힌적 없는 그것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읽히지 않은 그것들을 새로운 텍스트로 부단히 적어내리는. 어쩌면 가능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어려울 그 작업이 페미니즘 인 건 아닐까?”
여자는 어떻게 표시되요? ‘-A’, 즉 A가 아닌 것으로 표시돼요. 이게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자기가 누구인지 표시될 수 있는 것과 자기가 ‘무엇무엇이 아님’이라고 표시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육체적 특징을 ‘고추가 없습니다’라고 설명해야 되는 거잖아요. (중략) ‘아님’의 기호. 그러니까 정상성과 보편성의 기호, 즉 A가 바로 남성이었고, 여성은 비남성의 지위인거죠. *따지고 보면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도 아니고 ‘남성 아님’ ‘비남성’이 여성의 지위*예요. 🤭 타자. 여성. 보부아르. 근대 서양철학이 전제한 보편적 의미의 인간을 쪼개면서, 페미니즘 철학이 시작되다. - P30
20세기 들어서 많은 소수자들 혹은 많은 타자들,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 인식론적 위치를 누군가(억압자)가 대신말해줬던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그 억압자들이 자기를 비하했던용어를 통해서 자신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해요. 자기를 억압했던말들을 이용해서 자기를 설명하려고 하는 지혜를 가져요. 우리가이 세계 바깥에서 살 수가 없잖아요. 여태까지 우리가 배운 언어들은 나를 옥죄던 언어일 수 있어요. 남성들이 만들어왔던 언어일 수도, 이 세계를 지배했던 언어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언어를이용해서 이 세계를 바꾸어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 나를 억압한 것으로 부터 도구를 얻는다. 고쳐쓴다. 다시쓴다. 의심한다. 부수고 창조한다. 사실은 철학이 원래부터 해온 일과 다르지 않은 일. - P42
페미니즘 철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반反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이 아니고, 또 여성만을 위한 철학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게 여성주의적 가치에대해 질문하고 탐구해보는 철학이면서 페미니즘의 내용들과 개념들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보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기존 철학의 주제들, 그러니까 인식론,존재론, 윤리학 같은 것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철학의 활동은 근대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현대 철학과 조우하죠. 🤭 강0주 철학자여, 보고 있나? ㅋㅋ - P46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철학은 이래요. 타자인 여성이 철학 개념과 이론에 명시적이고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절하의 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건데, 여기에 철학의 도구를이용한다는 거죠.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인 거예요. 지워버리고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겹쳐 쓰다보면 새로운 모양이 될 수 있잖아요. 다 지우고 새로운 흰 종이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방식 안에서새로운 운동을 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들, 이게 저는 페미니즘철학인 것 같아요. 🤭만약 페미니즘을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했던 부분을 저자가 말해주어 너무 기뻤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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