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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3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 갈무리 / 2011년 11월
평점 :
#1. 자본주의는 노동에 위계/차별을 만들며 발전한다는 것.
최근에 읽은 기본소득 책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으로) 알게 된 ‘달라코스타’의 이름을 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웠다. “임금 노동자의 착취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위에 세워졌다”는 너무나 단순하여 읽자마자 진리(!)처럼도 느껴지는 이야기가 자본주의가 생겨나고도 아주 오랜 뒤인 1970년대까지 이론화되지 못했다는 건.. 참, 어이가 없다. 그때까지 남자 지식인들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엄마가 차려준 밥먹고 엄마가 빨아준 옷 입고 학교가면서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만’ 공부한다고 생각했나보다.
“(13)맑스의 분석은 노동의 위계와 차별의 여러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수단의 파괴만큼이나 자본주의의 구성 및 영속에 중요하고, 실제로 계급관계 규제에서 생산수단의 파괴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대부분이 생산수단으로부터 이미 분리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는 노동안에서의 위계와 차별(cf. 정규직-비정규직/성별 임금격차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노동자에게서 생산수단을 앗아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해보인다. 달라코스타와 페데리치 등 70년대 여성운동가들은 맑스가 간과한 부분들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에 위계를 설정하며 발전해 왔다는 것, 그 시작은 노동 안에서의 성별분업화(임금노동에서의 여성배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의 평가절하 등)였다는 것.
<캘리번과 마녀>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여성의 재생산노동(흔히, 집안일이라고 하는 가사노동, 출산·육아·돌봄 등 일상생활의 노동)이 어떻게 ‘보이지 조차 않는 노동’으로 ‘자연화’되어버렸는지를 16~17세기의 ‘마녀사냥’을 분석하며 밝히고 있다.
너무 큰 ‘힘’은 그것이 압도적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난 요즘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뒤돌아보게 된다. 무언가가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당연히’ 즉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면에 어떤 압도적 힘(폭력, 노력 등등)이 작용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된 달까.
#2. 마녀사냥의 숨은 목적은 여성(&여성노동)의 지위 하락이었다는 것.
전(前)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 –시초축적(생산수단을 파괴하여 노동자계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맑스는 남성 임노동자와 상품 발달 과정의 관점에서‘만’ 검토했다. 그의 반쪽짜리 시초축적은 페데리치의 시각을 추가했을 때 더 온전해진다.
“(17) 페데리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적 계약과 새로운 가부장적 시대를 개시하면서 여성에 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임금의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 마녀박해와 신체의 규율과 관련된 역사에 뿌리를 둔 페데리치의 주장은 여성의 종속이 어째서 토지 인클로저와 ‘신세계’의 정복 및 식민화, 노예무역만큼이나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에 중요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생산수단으로 부터 쫓겨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유일한 생산수단으로 ‘노동력’ 만을 갖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노동력은 ‘노동력’의 범주에 조차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을 화폐와 상품으로 치환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들의 노동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이었다. 있는 노동이 '없는 노동'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3세기에 걸친 여성비하(마녀사냥)가 필요했다.
“(157)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인클로저 때문에 남성 노동자가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이자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수단이 되었으며, 또 누구나 뜻대로 전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가 되었다. ... 일단 여성의 활동이 비노동으로 정의되자 여성의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는 역사적인 패배였다.”
유럽의 (남성)농민들은 토지로부터 쫓겨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었다. 그 시기 여성들은 토지뿐만 아니라 공장과 조합장(임금노동)에서도 쫓겨났다. 법적권리도 침식당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억압되었다. 임신과 출산을 조절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 노동하는 여자를 드센 여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아내의 소득은 법적으로 남편에게 귀속되었다. 섹슈얼리티를 아는 여성은 창녀가 되었다. 피임방법을 알고 낙태를 하는 여성들은 마녀가 되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여성은 결국 그 자신들의 신체로부터 쫓겨난다.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168) 유럽에서는 인구위기에 대응하여 여성이 재생산에 종속되었던 반면, 식민지 건설로 원주민 인구의 95%가 사라진 아메리카에서는 노예무역이 나타나서 유럽의 지배계급에게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진정한 부는 노예무역을 통해 축적된 노동이었으니 이 덕에 유럽에서는 불가능했던 생산방식이 아메리카에서는 가능했던 것이다.
(191) 이처럼 여성과 시초축적의 역사를 개괄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즉 여성을 남성 노동인구의 하인으로 만든 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중요한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국제적 분업과 마찬가지로 성적분업은 무엇보다도 권력관계였다. 즉 그것은 노동인구 내부의 분할임과 동시에 자본축적을 어마어마하게 촉진시켰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노동생산성의 괄목할만한 증가를 오로지 직무 전문화의 공으로만 돌리는 경향을 생각해 볼 때, 위 관점은 충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자본가계급이 농업 노동과 산업노동 간의 분화와, 아담 스미스가 옷핀 제조업의 예를 들어가며 찬미했던 산업노동 내부의 분화로부터 얻은 이익은, 여성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킴으로써 얻은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상의 논증에서 드러나는 바, 남녀간의 권력차이와 (자연적 열등함이라는 핑계하에 이루어진) 여성의 부불노동의 은폐덕택에 자본주의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었고, 여성 노동을 축적하는 방편으로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 시초축적은 무엇보다도 차이, 불공평, 계서제, 분할의 축적이었으며, 그것은 노동자들을 서로 소외시키고 그들 자신으로부터도 소외시켜왔다. ....”
#3. 마녀는 빈곤한 계급의 과부나 독신 여성이었다는 것. (나, 그때 태어났으면 마녀될 뻔?ㅋ)
보통 마녀라 함은 ‘공주의 새엄마’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화형당한 마녀들의 대부분이 빈곤층 독신여성이었다는 것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읽으면서 당시의 ‘마녀사냥’ 모습이 궁금해 넷플릭스를 뒤졌고 ‘악마의 신부’라는 핀란드 영화를 찾아냈다.
영화는 ‘마녀사냥’이 시작되던 중세의 유럽의 한 어촌 마을이 배경이다. 책에서 “‘마녀박해’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의 움직임은 바스크의 지방의 어부들의 저항이 유일하다”라는 구절을 읽은 후 였기에 혹시나 이 영화가 그 실화를 다루고 있나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녀사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축에 속했다. (책읽고 보기 딱 좋은 영화다. 추천. 청불이라 자극적으로 잔인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그런 장면은 없었다.)
영화를 통해 그 시절 ‘마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맨처음 추방당하는 ‘마녀’ 발보리는 허브와 약초지식에 능통한 마을의 치료사이자 산파이다.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처녀의 유산을 돕고 그녀를 거두어 함께 살기도 한다.
“(270) 마녀사냥은 출산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 특히 자궁을 인구증가와 노동력의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분명 부분적으로나마 존재한다.. [일단] 이것은 가정이다. 분명한 것은 인구 감소에 집착하는 정치계급이 마녀사냥을 촉발했고, 인구 규모가 국부를 좌우한다는 확신이 이를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 많은 마녀들이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식과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던 “현명한 여인들”이거나 산파들이었다는 점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먼저 박해당한 여성들은 밀려난 여성들이었다. 혼자인 여성들이 삶을 꾸릴 수 있는 자원이란 결국 같은 여성들과의 연대-여성들을 돌보는 것-였을 터, 그들이 가진 임신과 출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지식은 인구를 통제해야하는 지배계급에게 위협이 되었고, 현실에서 그녀들이 공유하는 ‘비밀(주로 그남들의 강간)’은 마을 남성 기득권들의 죄의식을 건드렸을 게다. 가난한 독신 여성들부터 제거하며 마녀박해는 시작되었고, 두세기 동안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화형당했다.
그럼 그렇게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남자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책에는 없는 데, 영화에는 나온다. 남자들은....... 아.무.것.도. 안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진실에 관심이 없는 남성인물들은 그녀들의 부탁들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꼭 영화가 아니라도 ‘온전히 내 것’ 일 수 있을 때만 사랑의 능력이 발동되는 남자들을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한 일이다. 반면 ‘내 것이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여성들의 능력은 영화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동안 그녀들은 부지런히 돌보고, 또 저항한다.
“(249) 마녀사냥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과 피소자들의 젠더와 계급, 박해의 영향 등을 살폈을 때 우리는 유럽의 마녀사냥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권력을 공격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한다.”
‘저항’하는 여성들에 대한 보복. 마녀사냥으로 여성들의 모든 저항을 진압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는 정착될 수 있었다.
#4. 중세 유럽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반봉건 투쟁’과 ‘공동체주의적 사회운동’들이 있었다는 사실.
덧붙여 중세 장원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평가절하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중심에 숱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253) 마녀사냥과, 그보다 앞선 이단에 대한 박해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암흑기’라고만 알고 있는 중세에 ‘이단운동’으로대표되는 반봉건투쟁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으며 이 운동 안에서의 여성은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고 때로는 남성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는 건 정말 몰랐던 부분이다. 마녀박해는 반봉건운동의 기억을 가진 여성들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수십만의 여성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는 것은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페데리치는 이렇게 쓴다.
“(p.45) ‘자본주의 이행기’의 여성과 재생산의 역사는 소농, 장인, 날품팔이와 같은 중세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온갖 방식으로 봉건권력에 맞선던 투쟁들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봉건제의 위기에서 여성이 수행한 역할이 무엇인지, 또 어째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3세기에 걸친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권력을 파괴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투쟁들을 그 다양한 요구, 사회ㆍ정치적 열망, 적대적인 관행과 함께 불러내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구질서의 태내에서 발육하고 있던 경제세력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진화’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수세기에 걸친 사회적 갈등은 봉건영주, 도시 귀족, 주교와 교황의 권력을 흔들고 진정으로 ‘온 세계에 큰 충격을 한방’줬다. 자본주의는 이것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었다. 자본주의는 반봉건투쟁에서 등장한 가능성을 파괴해 버린 반혁명이었다. ... 이것은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로부터 ‘진화’해 나왔으며 한 차원 더 높은 사회생활의 형태를 상징한다는 믿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진화의 산물’로 보는 관점은 알게 모르게 “정복, 노예화, 약탈, 살인 즉 폭력”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인류의 지금과 지난 시기의 살육을 합리화하게 한다. 맑스 조차 자본주의 발달과정의 폭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필연으로 보았다. 이후에 그의 반대자들과 그의 후계자들 역시 자본주의 유지vs저지에 관심을 돌렸을지언정 ‘폭력’자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 책의 초반에서 언급된 중세의 사회적 투쟁들을 읽으면서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은 자본주의였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한 것을 억지써서 가능하게 만들려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무리하게 폭력을 써야했고 지금도 쓰는 중 이구나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역사에 ‘만약’을 대입하는 것이 무망하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만약’을 여러번 떠올렸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어마무시한 자연파괴 · 인클로저 · 식민지 경영 · 세계대전 · 사회주의 혁명 · 마녀사냥(여성에 대한 구조적 멸시) 등등 이 없는 역사, 즉 자본주의가 아예 나타나지 조차 않은 역사.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지구에서 나고 자란 인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만약’ 중세의 반봉건투쟁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주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미세먼지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고, 여성혐오도 없고, 아우슈비츠-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핵무기도 없는 대신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난할지도 모르는 세계. 가져본 적 없는 역사에 대한 향수가 생겼다. 어차피 여기서도 가난한데 좀 더 가난해지더라도 폭력이 적은 세계, 아픈 기억이 적은 세상이면 좋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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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총평 :
전투력 갑!! 부르주아는 물론이고 봉건영주, 교회, 남성, 국가까지 신나게 패시는 페데리치 언니는 비겁한 남성 노동계급을 때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시며 맑스와 푸코의 뚝배기까지 깨버리신다. 시초축적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페데리치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기염을 토했던 부분은 “새로운 공유재산이자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로서의 여성”이라는 소제목 이었는 데 비유 너무 적확해서 정말인지 부들부들.
오랜만에 내 머리위에 얹어진 것이 우동사리가 아니라 '두뇌'라는 걸 깨달은 두뇌풀가동 책읽기였다. 어디서 주워 읽은 대로 “자본주의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이 인류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이 시대에 자본주의 출생의 비밀을 ‘여성의 역사’와 함께 읽게 된 것은 너무 귀한 독서경험이었다.
내용이 어렵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들기도 했고,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다시 검토할 개념들도 많아서 혼났다. 어찌저찌 읽었고 나름 치밀하게 읽어냈다.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책이라 더 소중하다. ㅠㅠㅠ
모처럼 마이리뷰에 별 다섯 개를 박아 넣으며 저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신 실비아 페데리치의 다음 책 <혁명의영점>을 읽으러 갑니다~ 함께 읽어주시고 읽기를 제안해주신 알라디너분들게 고마움과 (늦게 읽어)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마지막은 고양이 사진투척 #고양이는역시마녀와어울리죠
덧, 혼자사는 가난한 독신여성에 드세고 반항적이고 여성주의자이며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고양이까지 키우는 나는 아마 16세기에 태어났으면 제일 먼저 화형 당했을 것같다..ㅜㅜ 흑..
임금노동과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맑스주의적 시각은 재생산의 영역을 은폐하고 자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 P22
그러므로 시초축적은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의 단순한 축적과 집중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차이와 분할의 축적이기도 했으니, "인종"과 나이 외에도 성별에 따라 세워진 계서제가 계급지배와 근대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 P103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상층계급의 남편이 부인과 자식에게 휘두르는 권력의 원천이 재산이었던 반면, 노동계급의 경우에 그것은 여성의 임금으로부터의 배제였다는 인식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선대제 하에 있는 가내수공업 노동자들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남성들은 결혼과 가정꾸리기를 피하기는커녕 그것에 의존했다. 결혼하면 자신의 노동에 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다, 집안일도 해결되고, 성욕되 해결되고, 자식도 생기는데, 자식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베틀을 돌리거나 잡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감소기에도 가내수공업노동자는 그 수가 곱절로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 놀라운 것은, 부인이 남편과 나란히 서서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도, 그에 대한 보수는 남편이 독차지 했다는 것이다. - P159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계는 증기엔진이나 시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신체였던 것이다. - P218
두세기도 안되는 기간동안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화형이나 교수형, 혹은 고문을 당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자들이]대량살상에 의혹을 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다. 또한 마녀사냥이 신세계의 식민화 및 원주민 말살,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노예무역의 출현, 부랑자와 거지들에 대한 "피의 법률"제정과 동시에 일어났고, 봉건제가 종식된 후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전 무주공산과도 같던 시절에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유럽 농민들은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곧 완벽한 역사적 패배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와 관련된 시초축적의 양상들은 그야말로 비밀에 부쳐져있다. - P239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계몽주의적 관점이 제시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은 죽어가던 봉건세계의 마지막 불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미신에 사로잡힌" 중세는 그 어떤 마녀도 박해하지 않았다. "마녀의 사술"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도 중세말엽이었고, "암흑기"에는 대규모 재판과 박해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 P240
마치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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