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폭염이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만 같다. 너도나도 폭염을 피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향한다. 그야말로 피서의 최절정인 시기이다. 이번 주 이틀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옆지기도 아이들도 없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양산의 골프장을 1박 2일로 찾았고 그 곳에서 생뚱 맞은 피서를 했다. 골프장이 워낙 고지대이다보니 태풍이 지난 후의 날씨와 맞물려 구름 속에서 골프를 쳐야 했고, 덥기는 커녕 춥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참다운 피서였던 거다. ㅋㅋ 문제는 구름 속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음에 이틀간의 골프는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며, 결국은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애꿎은 날씨 탓만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거다. 달콤한 휴가를 꿈꿨던 이틀간 계획이 물 건너 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만 가니까 그렇지 쌤통이다.' 하겠지만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점을 안다면 조금 더 참고 읽어 주기 바란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현재 이 나라에 없다. 내가 양산으로 출발하던 날 그들은 모스크바행 러시아항공을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종착지인 터어키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어키는 알다시피 이슬람문화의 중심이자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차점이 아닌가.

올해 초 옆지기와 여름휴가를 의미있게 보내자는 의견을 모았고 계획했던 것이 해외였다. 대신 아무런 의미없이 휴식차원으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화탐험 형식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을 했다. 그 전에도 해외여행에 대한 의견이 있었으나 재정적인 문제를 떠나 아이들이 과연 인식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 지가 가장 큰 고려대상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범석과 6학년인 해람에게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기에 결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행지의 선정인 데 우선 고려대상이 문화체험에 적합한 곳, 아이들이 자라면서 쉽게 가기가 어려운 곳을 택했다.  우리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아 감흥이 적고 단순 놀이여행에 치우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장 먼저 제외된 것은 동남아, 중국, 일본 등이다. 결국 최종 선택된 곳이 유럽이었다. 문제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이 주로 많이 가는 코스였지만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기에 다시 간다는 것이 내키질 않았고 경험상 짧은 일정에 여러 나라를 수박 겉 핡기식으로 여행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 결정된 곳이 형제의 나라 터어키였다.   



옆지기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선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들에게도 의미있는 첫 해외여행겸 문화 탐방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행복해 하는 옆지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문제는 내가 제외됐다는 것이다.ㅠㅠ 유럽을 우선 선정하다보니 프랑스 등을 간다면  내가 또 갈 필요가 없어서 빠지겠다고 했더니 터키를 최종 선택하면서까지 나를 제외시킨 것이다.
고의일까? 실수일까? 쩝 ㅋㅋ

어제 밤에 옆지기와 아이들의 전화를 받았다. 마냥 신이 나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옆지기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그리움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8일간의 일정으로 갔으니 5일이 지나고 있다. 텅 비어 버린 집에서 5일 동안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지만 늘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잠자던 옆지기와 아이들이 옆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쓸쓸하다. 남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왔으면 좋겠다. 

다시 만날 월요일까지 건강하고 행복과 추억으로 가득한 시간 만들어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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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8-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에 관심 많은 범석군에게 특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듯 합니다.
돌아오면 멋진 사진 올려주세요^*^


전호인 2009-08-19 09:32   좋아요 0 | URL
넵, 그러겠습니다.
범석이가 세계사에도 많은 관심이 있는 지라 아마 좋은 추억과 학습의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후담을 들어보니 옆지기가 범석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네요.

Arch 2009-08-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 옆지기님과 아이들이 정말 좋은 경험을 하길 바랄게요. 전호인님은 세분 덕분에 간접 터키 여행을 하고! ^^ 그런데 제목이 추리물을 생각나게 하는걸요!

전호인 2009-08-19 09:33   좋아요 0 | URL
간접여행은 싫어요. 직접 경험을 했어야 하는 데....쩝 ㅠㅠ
ㅎㅎ, 그런가요?

꿈꾸는섬 2009-08-15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져요.^^ 저희도 아이들 크면 이런 여행 계획하고 싶어요.
옆지기와 아이들이 사라져서 한 며칠간은 자유로우셨나봐요. 근데 그것도 며칠이군요.ㅎㅎ 가족들 다시 돌아오시면 너무 반갑고 소중하시겠어요.^^

전호인 2009-08-19 09:34   좋아요 0 | URL
자유롭다못해 조금만 더 길어지면 우울증 걸리기 십상이었답니다.
돌아와서 옆지기가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남편만 두고 해외여행을 장기간 떠나보면 우울증 걸리는 남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ㅠㅠ

프레이야 2009-08-1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일간의 터키여행에 왕따 당하신 전호인님^^
3일만 참고 계시면 반가운 재회가요~
터키, 가보고 싶은 나라에요.

전호인 2009-08-19 09:35   좋아요 0 | URL
네, 완전 왕따예요. ㅠㅠ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을텐데 혼자놀기가 이렇게 힘든줄을 미처 몰랐네요.ㅋㅋ
네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고 하네요.
 
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38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5개의 크고작은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한 단편영화이다. 워낭소리가 단편영화의 흥행에 시발점이었다면 똥파리는 후속작이라 할만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다. 욕이 아니면 대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나이든 어른에 이르기 까지 욕설의 향연(?)이다. 실컷 욕을 듣고나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런 욕이 나온다.

야이, 씨발놈들아!! ㅋㅋ 

수시로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줄거리다. 주인공 상훈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자란다. 어느날 아버지의 폭력을 말리려는 여동생이 아버지가 잘못 휘두른 부엌칼에 찔려 상훈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옮겨지고 이를 급히 쫓아가던 엄마는 마주오던 트럭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숨을 거둔다. 병원으로 옮겨진 여동생마저도 끝내 죽고 만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엄청난 일을 사춘기에 맞이한 상훈은 감옥에 간 아버지없이 인간말종의 불량배로 자라면서 욕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용역폭력배의 리더로 어두운 생활을 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상훈은 출소한 아버지와 살면서 보복성 폭력을 행사하는 후레자식이 된 것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당찬 여고생 연희와의 인연은 우정인지 사랑인지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나이차이를 떠나 자신의 속마음을 울음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의지처가 된다. 여고 3년생인 연희 또한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정신적인 결함으로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불량 청소년인 남동생 영재와 생활한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지 못한 결손 폭력가정에 대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면서 그 속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의 단면이 마음 한편을 씁쓸하게 한다.

상훈이가 유일하게 찾아가는 곳이 있다. 남편을 여의고 어린 조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이복누나의 집이다. 그곳에 들러 혼자 외롭게 놀고 있는 조카를 애정있게 보살피기도 하고 용역폭력으로 번 돈을 가져다 주기도 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받기도 한다.  



가끔 뜬금없이 연희를 불러내어 괜한 시비를 걸기도 하면서 우정과 사랑사이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모처럼 상훈은 연희를 누나네 가족에게 소개하고 함께 재래시장에서 외식(?)도 한다. 재래시장에 비춰지는 여러군상들은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게 되고 서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 욕설과 폭력으로 점철된 이 영화를 그나마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다. 홀로사는 누나와 조카에 대한 상훈의 애틋한 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선한 천성을 끄집어 냄으로써 자라난 환경에 따라 인간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 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결국 상훈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동맥을 끊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상훈에게 발견되어 회생하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헌혈을 마다하지 않는 상훈을 보면서 혈연이라는 것이 운명일 수 밖에 없음을 일깨워 준다. 

상훈과 연희는 동병상련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둘의 처지를 결합시켜 놓음으로써 사람사는 세상에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여린 단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강한 것 같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과 의지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줌으로써 처량함과 불쌍함을 동시에 해결해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연민의 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사채업자 친구인 정만식은 비록 고아로 외롭게 자라면서 고리 사채업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것을 외로워하면서 가족이 있는 상훈을 부러워한다. 상훈이 아버지에게 잘 할수 있도록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부각시켜준다. 상훈이가 조카의 재롱잔치에 연희와 만식을 초대하고 우연히 꼬붕이 된 연희의 동생 영재와 함께 채무자에게 빚독촉을 하는 과정에서 영재의 분노에 가득한 린치를 당한다. 상훈은 재롱잔치에서 누나와 만식을소개해 가족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뜻밖의 허접한 폭력앞에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만식과 누나는 재혼을 하고 갈비집을 개업하며 상훈을 중심으로 불안하게 이어졌던 가족이란 결실을 완성하고 행복을 엮어가는 영상과 상훈이 한많은 삶을 끝내는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폭력의 끝과 행복한 가족의 시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덤도 맛볼 수 있다. 

연희는 그곳에서 잠시의 행복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를 상대로 또다른 용역폭력을 행사하는 남동생 영재와 마주치면서 아쉬운 막을 내린다. 결국 폭력은 끊이지 않는 악연으로 이어지게 되고.......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의 중요성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을 통해 행복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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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들이 사는 세상, 똥파리
    from 엑스캔버스 블로그 2009-08-14 11:36 
    아주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를 뭐라고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히더군요. 남이 쓴 글 잘 읽어보지 않는 오만한(!) 제가 오랜만에 관련 리뷰며 평점, 기사들을 실컷 찾아 헤맸습니다. 왠지 제 마음에 확 와 닿는 내용이 하나도 없더군요. 평가는 아주 극단적으로 갈려있었습니다. 작품이 정말로 워낙 좋아서인지 아니면 각종 해외영화제를 휩쓸고 난 후라 그런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말마따나 저예산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합리화인지는 몰라도 대부..
 
 
치유 2009-08-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깜짝이야 하면서 ~~~~~~!
상훈이 인생에 욕이 나올수 밖에..없었겠구나 싶어 찡해요..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말이죠..
그 환경이란녀석이 참 사람을 이렇게 만드니..

전호인 2009-08-14 14: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죠. 가장 악하게 나오면서도 내면에 숨겨진 선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악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살짝 측은지심도 생기네요

글샘 2009-08-06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 만든 영화였죠. 대본의 절반은 'ㅆㅂㄹㅁ'였던든... ㅋㅋ

전호인 2009-08-14 14: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습니다. 수상경력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보려고 했었는 데 큰일날뻔 했습니다. 우너초적인 것이 욕이라지만 난무하네요 이젠 많이 듣다보니 익수해지기도 하는 걸요.ㅋㅋ

순오기 2009-08-0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영화관에선 안하네요~~
요즘 욕나오게 생겨서 대리배설이라도 해야할 듯...

전호인 2009-08-14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한번 신나게 해봤습니다.
역시 내가하니까 시원하긴 합니다. ㅋㅋ

세실 2009-08-0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네요.
님 리뷰 읽고나니 영화 한편을 본 듯한 느낌.
상훈과 연희도 해피앤딩인거죠?

전호인 2009-08-14 14:03   좋아요 1 | URL
해피엔딩이 될 것으로 예상을 했었습니다만 결국 그렇지 못해 아쉽네요
연희와 상훈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고싶었는 데 그만 상훈의 갑작스런 죽음이 슬프게 합니다

프레이야 2009-08-0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설이 난무한다는 소문에 망설이며 놓쳤던 영화에요.
리뷰 제목부터..ㅋㅋ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욕 좀 하고나면 씨원할 것도 같구요.

전호인 2009-08-14 14:04   좋아요 0 | URL
놀라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ㅎㅎ
한번 시원하ㅔ 욕을 하고나니 왠지 개운해지는 이 느낌을 뭘로 설명해야 할 지....ㅋㅋ
 
오늘 경향신문에 시국선언문이 실립니다
경향신문에 실린 알라딘+네티즌 시국선언
알라딘블로거 시국선언
경향신문 의견광고 - 알라딘+네티즌 시국선언문

이 나라의 현실이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를 분간할 수 없는 어색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한편의 삼류 코메디 같다.

여기에 알라디너들의 정의를 담은 시국선언문이 오늘에야 완성되어 경향신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제목만을 보고 기쁜 마음에 글을 접할 무뇌충 너희들의 가슴에 알라디너들이 보내는 하이~코메디가 꽂히기나 할런지 걱정이 되긴 한다만 밝은 웃음에서 쓴웃음으로의 반전이라도 기대해볼란다. 

너희들이 과연 봉황의 깊은 뜻을 이해는 할런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국선언문 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당신의 ‘배후’에는 우리가 있잖아요!
 
 

우리 국민들은 열렬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운하 사업이다 4대강 정비 사업이다 외치며 죄다 땅만 파고 강만 엎는 대역사의 삽질 말고는, 시장 할머니 부여잡고 목도리 한 장 적선하거나 떡볶이 가게 순례하며 값싼 격려 인사나 던지는 휴먼 드라마와 같은 쇼 말고는, 대통령님이 우리에게 더 이상 보여주실 게 없는 건지. 우리 국민들은 오매불망 한 가지 걱정뿐입니다. 이 기막힌 쇼가 결코 끝나서는 안 될 텐데, ‘경제’를 외치면서, ‘중도’와 ‘서민’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경제’와 ‘중도’와 ‘서민’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흥미진진한 코미디를 5년밖에 볼 수 없다는 건 너무 잔인한 것 아닐까, 우리 국민들은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당신의 배꼽 빠지는 개그를 응원하는 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자들이 있잖아요!

우리 국민들은 매일 감탄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용산에서 타죽은 사람들과 떨어져죽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은 이제 ‘국민’이 아니라고, 단지 ‘불법시위자’이자 ‘범죄자’들일 뿐이라고 명확히 구분해주시니, 그 확실하면서도 공명정대한 국가정체성의 기준에, 죽은 자도 산 자도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 ‘국민’의 자리에서 ‘국민이 아닌 자’의 자리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에, 우리들의 삶이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위한 ‘경찰국가’와 ‘법치주의’의 서슬 퍼런 짜릿함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 국민들은 일찍이 민주주의 시대에는 미처 경험할 수 없었던 스릴을 잔뜩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삼복더위를 싹 날려줄 당신의 납량특집을 응원하는, 너무나 무서워서 반년 동안이나 장례도 못 치르고 있는 죽은 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있잖아요!

우리 국민들은 불철주야 대통령님의 숙면을 기원합니다. 당신의 편안한 잠을 위해 청와대 주위를 전경 버스로 철통같이 꽁꽁 에워싸세요. 우리의 밤이야 어찌 되든 대통령님의 안온한 밤을 위해 당신의 충직한 개들을 항상 깨어 있게 하세요. 그리고 주위를 경계케 하세요. 그러면 그 개들이 당신을 대신해서 두 눈 똑똑히 보게 될 거예요, 진정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를. 그렇게 되면, 모든 충직한 개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고개를 돌려 당신을 향해 짖게 될 겁니다. 그 안온한 숙면은 끝났다고, 주인님, 멍멍, 지금은 주무실 때가 아니에요, 그렇게 외치고 짖으면서 알려줄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귀하게 생각해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세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니까요. 누가 뭐래도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평화고 당신 때문에 잃어버린 민주주의니까요. 대통령님은 우리 국민들이 과거 죽음을 무릅쓰고 얻었던 그 모든 것들을 단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거꾸로 되돌리는 기적을 보여주신 분이니까요. 이명박 대통령님, 제발 힘내세요! 당신의 ‘배후’에는,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잖아요! 타죽지도 않고 떨어져죽지도 않고, 이렇게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서서, 계속 당신을 지켜보고 있잖아요! 당신이 사랑하는 악법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국민들의 민심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대운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랑할 수 없는 역사의 거대한 강물일 테니까요. 힘내세요, 대통령님! 당신의 ‘배후’에는 우리가, 이렇게 든든한 국민들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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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7-2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지붕에서 반드시 읽는다'에 한 표입니다. ^^

전호인 2009-08-03 10:43   좋아요 0 | URL
그러겠죠? ㅎㅎ
웃음이 나와 미치겠습니다.

깜짝놀랐어요 2009-07-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에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을 의심하고 자세히 읽어보고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

뭔가 의미있는 느낌이 가슴에 쫙 번지네요.

전호인 2009-08-03 10:45   좋아요 0 | URL
ㅎㅎ,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쌩유 ^*^

순오기 2009-07-2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각하 이거 보십시오!' 하면서 가져다 주겠죠.ㅋㅋㅋ

전호인 2009-08-03 10:47   좋아요 0 | URL
무뇌충들의 짧은 생각을 뒤집어 엎는다고 생각하면 쌤통입니다.ㅋㅋ

람혼 2009-07-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미소에서 썩소로의 '반전'을 실로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호인 2009-08-03 10:48   좋아요 0 | URL
ㅎㅎ, 맞습니다. 통쾌하고 쌤통입니다.ㅋㅋ

꿈꾸는섬 2009-07-2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그저 웃음만 나네요.

전호인 2009-08-03 10:48   좋아요 0 | URL
글게염. 단 웃음이었으면 좋으련만 이래저래 쓴웃음 뿐이네요
 

 

바보들이 할일  


전     호      인 

 
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너무 아파
눈물도 나질 않습니다. 
너무 원망스러워
증오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한없는 그리움에  
애꿎은 하늘만 쳐다봅니다.   

결국 남은 것은
산자들의 
허망한 의식뿐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바보들의  
사람사는 것이 힘든 세상입니다.  

이제
또 다른 바보들이 할일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 
님께서 
편안하실테니까요  

그렇게 해야 
남은 바보들의 
마음도 편안해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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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전  호  인

 그대에게
향기를 느낄 수가 없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느낄 수 있다.

 그대의
향기가 진하지는 않다.
함께 할 때만 진함을 느낀다.

 그대를
무심코 바라보면
아름다움이 없다.
시간을 품고 바라볼 때
그윽한 아름다움에 취하고 만다.

하나의 꽃잎만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초라하다.
하나 하나의 꽃잎이 어우러지면
더불어 있는 동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넋을 잃는다.

그대가
꽃술과 꽃잎이 어우러지면
빠져 드는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끼며
넋이 나간다.

 그대의
꽃술은 아름다움의 정점이다.
암수의 사랑담은 일체로 잉태하여
흩뿌려지는 새 생명이라서 
창조의 아름다움,
희망을 준다.

 그대가
오직 한줄기만으로
빛내보려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거만스럽고 외롭다.

바람이 찾아와
달래 주는 몸짓에
하늘 하늘 춤추며 화답하는
그대의 
활짝 웃는 아름다운 맵시에
애간장이 녹아 든다.

그대는
함께 있을때 더욱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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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7-2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쓰시는 멋진 전호인님...
옛적에 태어나셨다면 풍류선비로 이름이 높으셨을듯.... ^^

전호인 2009-08-03 10:5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네염. ㅋㅋ
고맙습니다.

무스탕 2009-07-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세레나데를 불러주시는 낭군님이 계셔서 부인님께서는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

전호인 2009-08-03 10:5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이른 코스모스가 피었길래 그녀석을 세심하게 탐구해 보았더니 이런 시가 되네요. ^*^

2009-08-04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9-08-04 15:58   좋아요 0 | URL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