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폭염이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만 같다. 너도나도 폭염을 피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향한다. 그야말로 피서의 최절정인 시기이다. 이번 주 이틀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옆지기도 아이들도 없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양산의 골프장을 1박 2일로 찾았고 그 곳에서 생뚱 맞은 피서를 했다. 골프장이 워낙 고지대이다보니 태풍이 지난 후의 날씨와 맞물려 구름 속에서 골프를 쳐야 했고, 덥기는 커녕 춥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참다운 피서였던 거다. ㅋㅋ 문제는 구름 속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음에 이틀간의 골프는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며, 결국은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애꿎은 날씨 탓만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거다. 달콤한 휴가를 꿈꿨던 이틀간 계획이 물 건너 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만 가니까 그렇지 쌤통이다.' 하겠지만 우리나라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점을 안다면 조금 더 참고 읽어 주기 바란다.
옆지기와 아이들은 현재 이 나라에 없다. 내가 양산으로 출발하던 날 그들은 모스크바행 러시아항공을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종착지인 터어키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어키는 알다시피 이슬람문화의 중심이자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차점이 아닌가.
올해 초 옆지기와 여름휴가를 의미있게 보내자는 의견을 모았고 계획했던 것이 해외였다. 대신 아무런 의미없이 휴식차원으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화탐험 형식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데 공감을 했다. 그 전에도 해외여행에 대한 의견이 있었으나 재정적인 문제를 떠나 아이들이 과연 인식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 지가 가장 큰 고려대상이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범석과 6학년인 해람에게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기에 결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행지의 선정인 데 우선 고려대상이 문화체험에 적합한 곳, 아이들이 자라면서 쉽게 가기가 어려운 곳을 택했다. 우리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아 감흥이 적고 단순 놀이여행에 치우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장 먼저 제외된 것은 동남아, 중국, 일본 등이다. 결국 최종 선택된 곳이 유럽이었다. 문제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이 주로 많이 가는 코스였지만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기에 다시 간다는 것이 내키질 않았고 경험상 짧은 일정에 여러 나라를 수박 겉 핡기식으로 여행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 결정된 곳이 형제의 나라 터어키였다.
옆지기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선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들에게도 의미있는 첫 해외여행겸 문화 탐방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행복해 하는 옆지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문제는 내가 제외됐다는 것이다.ㅠㅠ 유럽을 우선 선정하다보니 프랑스 등을 간다면 내가 또 갈 필요가 없어서 빠지겠다고 했더니 터키를 최종 선택하면서까지 나를 제외시킨 것이다.
고의일까? 실수일까? 쩝 ㅋㅋ
어제 밤에 옆지기와 아이들의 전화를 받았다. 마냥 신이 나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옆지기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그리움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8일간의 일정으로 갔으니 5일이 지나고 있다. 텅 비어 버린 집에서 5일 동안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지만 늘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하고, 잠자던 옆지기와 아이들이 옆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쓸쓸하다. 남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왔으면 좋겠다.
다시 만날 월요일까지 건강하고 행복과 추억으로 가득한 시간 만들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