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공연은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옆지기는 삼성역에서 기다리고 정부관계자와의 간담회는 퇴근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진행중이다. 블루스퀘어까지는 적어도 3~40분은 걸릴 텐데 몸이 바싹 타들어간다. 간담회는 7시를 조금 지나서 끝났다. 부랴부랴 책상정리 하고 삼성역에서 옆지기를 만난 것이 7시 15분경, 이대로라면 공연시간을 맞추기 촉박하다. 올림픽대로를 들어서자 차가 꽉 막힌다. 다행히 한남대교를 올라 섰을때의 교통흐름이 좋다. 공연시작 10분 남짓만에 가까스로 도착, 자리를 찾아 앉고나니 다리에 맥이 풀린다. 1층 4열 정가운데 옆지기와 나란히 앉았다. 이 정도면 배우들의 숨소리와 미세한 동작, 이마에 맺힌 땀방울까지 하나도 놓칠 것이 없을 듯 하다. 5분정도 여유가 있어 공연장을 둘러보니 1~3층까지 관객이 빼곡하고 자리를 찾아 앉느라 분주하다. 숨한번 고르고 나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시장끼가 몰려왔다. 190분 공연이기에 고스란히 굶었다.
무대엔 뮤지컬 '조로'를 상징하는 "Z"자가 씌어진 커튼이 불타는 모습이다. 불이 꺼지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발자욱 소리가 들린다. 무대를 주목하고 있는 데 객석 양쪽으로 등불을 든 남녀 집시들이 애닮은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고 오프닝 자체부터 신비롭고 신선했으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집시들의 춤과 노래가 이어진 후 배경이 바뀌면서 19C초 캘리포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귀족의 아들 디에고(조로->조승우)가 익살과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등장한다. 가까이서 본 조승우는 미소년과 청년사이의 외면이었고 체구는 의외로 작았다. 마라톤과 타짜를 통해 본 그는 왠지 키도 크고 노숙해 보였는 데 이곳에서는 천진난만한 개구장이 청년이었다.
19세기 초 스페인이 지배하던 캘리포니아. 귀족의 아들이지만 자유로운 영혼 디에고가 어릴 적 친구 라몬의 폭정에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조로로 변신해 활약한다는, 알만한 영웅 이야기다. 우리에겐 TV 만화를 통해 '쾌걸 조로'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뮤지컬에서 비장한 영웅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지루했을 텐데 조승우의 조로는 아주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조로(여우) 보단 퓨마가 더 좋다며 투덜거리고, 마음에 드는 의상을 버렸다며 친구 이네즈에게 앙탈 같은 짜증을 내는가 하면, 옛 친구였지만 악당이 돼버린 라몬에게 ‘너의 하인이 돼도 좋다’며 엉겨 붙는 능청스러움까지. 정형적인 영웅의 모습을 살짝 비껴간 캐릭터는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190분간의 공연중 2막 후반부 라몬의 폭정에 찌든 시민들의 몽환적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약간 지루한 느낌이 들었지만 대부분이 역동적이고 흥겨워서 즐겁고 신났다. 스페인 전통의 정열적인 플라멩코 군무, 집시 여인 이네즈의 매력, 뛰고 구르고 날아다니는 조로가 작품의 재미를 높여 줬다. 좁은 공간에서도 밧줄 하나에 의지해 객석 위를 가로지르는 액션은 조로 역을 맡은 조승우가 직접 해내 감탄을 이끌어 낸다. 플라멩코 군무는 <조로>의 신명 나는 풍미를, 때론 군중들의 고통을 비장하게 전달했다.
아쉽다면 조로와 숙적인 악당 라몬의 존재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은 점이다. 주인공의 오랜 친구에서 천하의 몹쓸 악당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리가 거의 설명되지 않아 그의 폭정과 그의 최후도 애매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조로역 조승우의 못 말리는 재치와 때론 경쾌하고 애절함으로 표현한 노래와 검투사보다 날렵한 칼솜씨, 서커스단원 뺨치는 줄타기 등의 곡예는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순간순간이 상쇄되었고, 루이사 역의 조정은님의 뛰어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게 했다.
특히 집시로 환생한 이네즈역의 김선영 님은 쌕쒸함과 집시여왕다운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압도하고 전체적인 극의 흐름에 에너지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슴이 반쯤 드러난 의상은 남성 관객들에게 엔돌핀을 무한정 생산시켰고 쿵쾅거리는 호흡을 더욱 가쁘게 했으며, 집시들과 함께 한 플라멩코의 경쾌하고 정열적인 춤사위와 노래에 신명이 절로 났다.
포악한 라몬(문종원역)과 정직한 가르시아상사(박성환역), 중후한 스페인 귀족 돈알레한드로(김봉한역)의 깨알 같은 섬세한 연기와 재치가 뮤지컬 조로를 더욱 탄탄한 극 구성이 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10여분간의 커튼 콜은 강도 높은 액션들이 많았는데도 관객의 심장을 뒤집어 놓는 플라멩코의 흥겨운 선율과 매혹적인 리듬이 가미된 춤사위로 집시의 열정을 느끼고 흥분하게 함으로써 매력적인 뮤지컬의 완결판을 선물받게 해주어 아쉬운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박건형, 김준현 조로 역시 놓치기 아쉬운 이유다.
조로=> 루이사=> 이네즈=> 라몬=> 돈알레한드로=> 가르시아상사
여우꼬랭지>
1. 10여분간의 커튼콜시 기립박수가 뜨거웠고 내내 흥겨움에 취했다. 플라맹코의 경쾌함과 정열적인 리듬에 한몸
되어 춤추고 노래(?)했다. 옆지기가 부끄럽다고 자꾸 바지를 잡아내리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끄집어 올리면서
흔들고ㅋㅋ 아무리 말려도 나는 집시 속에서 그들과 동화되어 노래하며 흔들거렸다.
그대로 몸을 맡기면 또한 즐거운 것을 왜그리 말리는지......헤헤^^
2. 무대와 너무 가깝다보니 춤과 칼싸움할 때, 백작과 조로가 지하로 사라지며 뚜껑을 닫을 때 먼지폭풍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이럴 때는 VIP석이 그리 좋지만은 않더라ㅠㅠ
3. 공연안내(www.zorrothemusical.co.kr/index.php)
뮤지컬 조로는 한남동 "블루스퀘어삼성전자홀" 에서 2012. 1. 15일까지 공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