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저장 상태로 있다 사라지는 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금도 로맹가리의 <여자의 빛> 리뷰를 거의 써 놓았는데 줄리언 반즈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구입하고 보니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거 같아 미뤄두고 몽환화에 대해 쓴다. (이렇게 완성을 미뤘다 사라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보다야 소명의식 쪽이 좀 더 쉽다... 긴세월 함께보낸 짝을 잃은 사람의 심정에 대해 내가 뭘 얼마나 이해하겠으며 영혼의 반쪽 같은거는 전혀 감도 안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망설이게 되는 작가다. 망설이는데 보통은 읽어보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성실한 작가라 꾸준히 작품을 내고 또 나는 꾸준히 읽어왔다. 한 절반쯤은 성공이고, 나머지 반의반 정도는 그저그랬고, 그 나머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도 새책이 나오면 읽는다. 플롯이 이렇든 저렇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만큼은 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묵직하고 성실하며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곁에 두고 힘들고 지친날 퇴근길에 만나 같이 별말없이 맥주 한잔 하고픈 사람들이다. 현실속에선 참으로 찾기 어려운 이들인데 몽환화 속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모두 성실하며 소명의식에 불타고 있다. 살해당한 할아버지, 형사도, 주인공의 가족 전부, 주인공의 첫사랑 가족 전체, 종국에는 두 아마추어 탐정 콤비마저!


 몽환화는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 소설은 현재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쫓아가는 와중에 여러가지 과거의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시간순서 대로 이 소설에 나온 주요 사건은 네가지다. 첫째는 오십년전 한남자가 동네에서 일본도를 들고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다, 두번째는 십년전 중학생이던 남자주인공은 갑작스레 여자친구에게 결별통보를 받는다, 세번째는 한 아마추어 뮤지션이 아무 이유없이 자살을 한다, 마지막으로 자살한 뮤지션의 할아버지가 뮤지션이 자살한 얼마후 살해된다. 할아버지 살해현장에서 사라진 노란 꽃과 일련의 사건들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두 아마추어 탐정이 밝혀간다. 원자력을 공부했는데 원자력 사고 발생이후 진로가 막연해진 대학원생과 국가대표급 선수였다 심리적 영향으로 수영을 못하게 된 수영선수인 두 백수 아마추어 콤비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일을 물고늘어져 보기로 한다.


후다닥 읽히는 이야기의 끝에 작가의 속내가 드러난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원자력이라는 엄청난 폭탄은 너희의 책임이 아니지만, 영광과 권력 뿐만 아니라 빚도 물려받는 것이라고, 최선을 다해 이 빚을 끝까지 청산하기위해 노력하자고, 반짝반짝 빛나는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면 소명을 다해 지켜보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축 쳐져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어깨를 툭 하고 쳐주며 니가 소명을 바칠 일 하나쯤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슬픔을 넘어 무기력과 체념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대선후도 그랬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1%만큼은 좋아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인터넷 글이라도 퍼나르다보면 도움이 될지 아는가... 뭐든 안하는거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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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4-05-2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너무 많고 빨리 출간되서 따라잡기도 힘들어요...ㅎㅎ
그리고 뭐든 안하는거 보다는 하는게 낫긴 합니다...질긴 놈이 이긴다면서요..^^

2014-05-22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시점에서 1세기 전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가 각각 발표한 '민족 개조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족 개조의 접근 방식이나 전제도 다르지만 (그래서 비판과 옹호가 엇갈리기도 하지만) 두 선각자(先覺者)가 제창한 것은 '우리 민족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우리 민족의 정신과 의식에 일대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족 개조론은 오늘 다시 읽어도 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 쓴 것 같은 절절한 현실감을 갖는다.]

일단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개조론을 재창했다는 주장에 황당하며 세월호 참사를 보고 대표 친일파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생각났다는 점이 경악스러우며

개조 대상이 마음을 가진 보통사람들이라는데 절망스럽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의 역사인식 대중인식이 저지경이니

수백을 죽여놓고도

대통령이라는 자가 해경이 문제라며 없애라고 혼자 주절이더니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모양이다

(하기는 윤창중 성추문 사건이 불거지자 여성인턴을 없애자는 이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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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4-05-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를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

무해한모리군 2014-05-21 08:51   좋아요 0 | URL
뉴스를 보고 정말 저렇게 말했나 싶어서 전문을 찾아봤는데 전문을 보고나니 더욱 황당.... =.=

blanca 2014-05-2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찾아 보니 일제의 역성을 들어주는 이야기네요. 우리 민족의 열등함을 이야기하고, 이것 참, 더운데 열이 확 오르네요.

무해한모리군 2014-05-22 08: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네..... 저런사람이 우리나라 대표 신문 고문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절망스럽습니다..... 만일 독일에서 나치협력자를 두둔하는 발언을 어느 신문 주간이 했다면 자리를 내놓아야했겠지요... 이런게 굳이 말하자면 미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를 왜곡 망각하는 것 말이지요.
 

연휴의 마지막날 아이는 내가 잠자리에서 읽어준 동화책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동진님이 읽어주는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들었다. 혼인전에 담담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기억되었던 이야기가 몇번이고 멈추고 싶을만큼 힘들게 읽힌다. 의식불명 상태인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속 지옥이 듣기 괴롭다.


최근에 읽은 로버트 해리스의 '어느 물리학자의 비밀'의 뒷표지 광고에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표현을 봤을때, 돈, 가족 등등을 잃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자신의 지성과 기억 조차 의심하는 지경에 빠진다. 미치거나 치매에 걸리는 것도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에서 생존의 위협이니, 책 속의 물리학자는 총체적 생존의 위협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아이의 동화책을 제외하면 누구도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한다 마치 현실이 그렇듯이.


생명의 위협을 제외하면 권태와 허무가 삶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한다. 한달째 계속되는 뉴스속 절규가 나를 무력케한다..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 몸을 부단히 움직여 본다. 흘러가는대로 있지 않을 용기를 만들어본다. 그게 나와 타인의 삶을 나아지게 하거나 상처를 없앨 수 없겠지만, 그저 약간의 위로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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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5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4-05-1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죽음에 상심이 큰 세월입니다... 오랜만에 인사하네요
 


넌 날 - 이소라


죽겠어 니가 뭘 해도 안 해도

따라 해도 싫어 말해야겠어
그 어떤 것도 하지 마
진정 나는 네가 싫어 지겨워

믿겠어 니가 뭐라고 말해도
말 안 해도 믿어 믿어야겠어
이렇게 말은 하지만
진정 싫어해 널

아깝 넌 날 나같이 해도
넌 날 애썼긴 해도 
넌 날 아무리 해도
맨날 그까짓 온갖 헛소리 해도 날

난 됐어 이제 너 착하게
사는데도 다 준대도
뭘 잘해도 니가 하는 게
다 괴롭게 해 날

아깝 넌 날 나같이 해도
넌 날 애썼긴 해도 
넌 날 아무리 해도
맨날 그깟 온갖 헛소리 해도 날

끝까지 해도 날

아깝 넌 날 뭐를 해도


==========================


왠지 모르겠지만 사람 말소리가 들리면 잠이 잘온다

노래가 아니라 그냥 말이여야 한다

혼자 살 땐 주로 라디오 뉴스채널을 틀어놓고 잠들었고,

기분에 따라 판소리나 드라마 음성녹음 파일을 듣고 잠들기도 했다

(내가 모 배우의 팬이된건 그의 수려한 외모 때문이라기 보다 자기전에 그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핸드폰 밧데리를 회사에 두고와서 가장 불편한 것이 잘때까지 조잘거려줄 매체가 없어서라니

뭔가 첨단 매체를 아날로그적으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간당한 밧데리가 견디는 한 이소라 8집을 들었다

넌 날, 난 별 이런 운이 맞는 말놀이가 늘좋다

끊어질듯한 내 신경과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절묘하다.


뉴스는 참담하다


진도해경은 규정상 영내에 들어오면 신고하게 되어있는 배가 신고없이 서 있는데 확인을 안했다

(어민들은 사고났나보다 하고 이장에게 방송케해 나섰다)

이 배는 원래 좀 이상해서 기계직 선원의 이직이 높았으며

구조가 수상한 이 회사는 짐 고정하는 장치 가격이 높아 잘 지급하지 않았다

선원은 운전이 미숙했고

사고당시 선장은 어디서 뭐했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사고신고 당시 주변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공용 16번을 쓰지 않고 제주해경에만 신고해서 11분이상이 허비됐다 

무수한 관행 중 하나로 16번을 쓰면 해경에 신고되는 등 회사에 불이익이 가기 때문이란다

주변 배들이 구명정등을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었으나 탈출지시는 고사하고 탈출등도 누르지 않았으며 배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만 이어졌다

그 이후 상황은 우리에게 재난대책본부 따위는 없었으며

배에 머물던 이들 백명은 이미 사망했고 이백명은 생사가 불투명하다....

살아돌아오지 못한 한여자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몰라볼까 그랬는지 학생증을 손에 꼭 쥔채 발견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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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4-2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쩔 수 없이 곧잘 소식을 들출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04-22 13:00   좋아요 0 | URL
네 함께살기님 저도 하루에 한시간 저녁뉴스만 간신히 봅니다.... 그런데도 잠이 안오네요... 부모의 슬픔은 어떤것인지, 죽음앞의 아이들이 느낀 고통이 어떤 것인지 짐작도 안가네요... 너무 두렵습니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대한 자백이라는 기도가 딱 필요한 순간이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저 큰배가 가라앉기 전에(폭파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무수한 가능성의 망상이 지나간다.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진듯 하다.

씨랜드사고 당시 영상에 창문에 붙어있던 아가들의 손이 꽤긴세월 잊혀지지 않아괴로웠다. 정작 나같은 쓸데없는 인간 말고 기억했어야할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었나보다...

그래도 지금은 그저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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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4-1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디 아이들도
아이들 어버이도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늘바람 2014-04-1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하는것 만도 너무 끔찍한데 부모들은 오죽할까요

꿈꾸는섬 2014-04-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지만ㅠㅠ 남 일 같지 않아요ㅜㅜ

무해한모리군 2014-04-1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했듯이 오늘 하루는 행여나 헛말 나오지 않게 입을 닫고 마음을 모을까 합니다.... 정말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 봄이 고운줄도 모르고 학교에만 갖혀있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미어지네요....

감은빛 2014-04-1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뉴스타파를 보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아까부터 선체에 진입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네요.
부디 한 명이라도 더 생존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04-18 14:42   좋아요 0 | URL
오죽하면 실종자 부모가 외국언론과만 인터뷰를 했을까... 참담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흘러나오네요.... 사실이 아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