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황당한 뉴스가 계속된다.
세월호 참사를 책임지고 물러난다던 총리는 돌아왔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이야기했던 전교조 교사들은 처벌하겠단다. 입으로는 자신의 탓을 말하던 대통령은 아직도 물속에 있는 11명은 이미 잊었는지 애초에 안중에 없는지 모르쇠다.
김추자님의 새앨범을 들었다. 곡 자체도 좋았지만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나오는 목소리다. 이런 목을 가진 사람이 왜 노래를 안했을까? 이른 아침 커피집에서 김추자의 목소리를 듣다 눈물이 핑돌려고 한다. 재능이 있는 인간에게도 인생은 쉽지 않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방문한 바에서 지긋한 나이에 성악가가 U raise me up을 부르는 것을 듣고 딸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더니... 온갖 것에 감정 이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본 수사물을 꽤 즐겨본다. 수위도 높고 스토리도 정교한 경우가 많아 취향에 맞다. 최근 즐겨보는 것은 모즈 mozu인데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는 니시지마 히데토시를 평소 무척 좋아해서 보게됐다. 이 중년남자가 소년처럼 수줍게 웃는 모습이 왠지 좋다. 일본 내에서는 보더에 밀린 모양인데 초반에 너무 복잡하고 느리게 전개된 탓이 아닌가 싶다. (시즌2 1화까지 본 현재 뭔가 루즈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일본 공안의 에이스 였던 쿠라키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오직 아내를 죽게한 사건의 진실를 찾고자 하는 집념만 남았다. 폭탄테러, 기억을 잃은 청부살인업자, 공안, 경찰, 사람들의 꿈속에 찾아오는 달마라는 존재, 시즌 1이 끝나도 미스터리는 아주 조금 밖에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고자 만든 시스템은 어떤 것이고, 그 시스템을 탈취하러 갔다 실패한 공안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흥미롭다. 십여년 내 아이로 키워온 딸이 내아이가 아니란 사실을 아는게 좋을까 모르는 채로 있는게 좋을까? 어쩌면 아내가 아이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면 진실을 알아내는게 좋을까 그저 덮는게 좋을까? 아내를 극단적 우울상태로까지 몰고간 사건, 추악하더라도 그 진실을 밝히는 게 좋을까? 쿠라키는 밝히고자 한다. 살아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어서.
내가 홀아비들의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아내의 죽음을 집요하게 추척하는 드라마에 이어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잃은지 오년만에 내놓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도 읽었다. 그가 잃은 것, 자신을 온전히 증명해주는 존재를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쯤 상상해버렸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아내의 관에 손을 얹고 삼십년전 자신이 쓴 소설을 읽었다.
그런 후, 광기가 찾아온다. 그다음엔 고독이 찾아온다. 그것은 당신이 예상했던 비장한 홀로됨이 아니라, 아내를 잃었다는 사실이 가져온 흥미로운 순교자적 고통이 아니라, 그냥 고독이다. (중략)그것은 다만 하나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비참한 상태이며..... [사람들은] 당신이 그 아픔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고 말하고 .... 실제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와, 다운스를 돌파해, 쏜살같이 덜컹거리며 햇빛 속으로, 영국해협을 향해 내닫는 기차처럼 벗어나는 게 아니다. 기름막을 뒤집어쓴 갈매기 같은 꼴로 벗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한평생 타르 범벅이 된 깃털에 뒤덮여 살 것이다. (189~190쪽)
고통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따위를 나역시 믿지 않는다. 우린 그저 다른 사람이 된다. 삶은 어느순간 우리의 약한 고리를 턱턱 치고 들어온다. 무력하고 그저 겪어내는 수밖에 없는 종류의 일들이다. 내가 좀더 어렸을 때 삶을 행복의 문제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의 문제로 바라본다. 요즘 어느때 보다 모두에게 왠지모를 동지애가 느껴진다. 무의미 속에 죽지말아야할 이유를 발견하고,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면서.
덧글 : 애초 계획대로 로맹가리의 여자의 빛 리뷰와 함께 쓰여졌다면 로맹가리식 삶의 의지가 조금은 들어가서 결론이 달라졌을텐데 너무 끌었더니 임시저장 상태에서 사라졌다. 그렇지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