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시선에 경제학도가 될지 고민하는 여학생에게 쓴 편지가 나온다.
내가 경제학에 대해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만 정치 경제학으로 불리는지 이다. 모든 경제학은 정치적이다.
이를테면 '자유무역을 하면 양국모두에게 이득이다'라는 흔히 알려진 명제를 생각해보자. 지근한 예로 EU내 독일은 비싼 자동차를 그리스에 팔고 그리스의 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와 농산물 등을 수입한다고 하자. 그러면 독일도 싼가격에 농산품등을 이용할 수 있어 좋고,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싼 가격에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이다. 저 관계가 유지되려면 그리스의 국민들은 계속 싼 가격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언제까지나 가난해야 한다. 거기다 이 거래에서 그리스가 얻는 이익은 소소한 반면 독일의 이윤은 점점더 커져간다.
정운영 선생은 200여년의 경제학의 역사를 밥을 만들고 나누는 자유를 독점하려는 집단과 그 독점을 저지하려는 집단이 벌이는 투쟁의 역사로 규정한다.
주류경제학들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우주에 살고있다면' 수준의 가설을 세운 뒤의 온갖 명제를 도출하는 이유는 인간 세계의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돈을 받아야 한다'라는 당연한 이치 같은 것도 어떻게든 뒤틀어 '효율'이니 '경쟁'이니 하는 아리송한 말들 뒤로 자신들이 하는 구린 짓을 가리려는 것이다.
사내하청의 부당성을 인정한 1심판결대로 원청인 기아차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살인적 환경에서 고공농성하던 기아차 노동자들이 363일만에 농성을 해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감옥보다 더 잔인한 환경에서 대답없는 기아차를 향해 농성하던 노동자들은 또 내려오자마자 구속위기다.
아주 지랄 맞은 세상이다. 나는 피해자들이 투사가 되는 세상이 아주 지긋지긋하다. 정치인들, 학자들, 언론인들 고르게 밥나눠 먹을 수 있게 싸워주는게 직업이여야 하는 자들이 어디서 밥을 얻어쳐먹고 누구를 향해 개새끼들처럼 꼬리를 살랑대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하는 사업장이 기아차이면 기아차가 나의 고용주가 되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고용조건을 적용을 받고, 잘못한게 없는데 함부로 사람을 내치면 안되는게 인간의 논리다.
누구는 1달에 수십억원을 버는데 누구는 144만원을 버는 세상은 틀려먹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모두의 시간은 소중한데, 한인간의 삶을 다른인간보다 1000배도 넘게 값어치를 쳐주는게 당연한 세상은 글러먹었다. 그게 옳다고 주장하는 학문도 돼쳐먹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