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더
폴라 데일리 지음, 최필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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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카페에 가면 여성 잡지나 인테리어 잡지 등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유럽풍 구조와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배경으로 가족이 함께 행복사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다. 그리고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의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한 인터뷰 기사의 글들을 실려 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면 과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일 뿐 이들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에 어두운 부분이 한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어두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퍼펙트 마더]라는 소설은 영국의 호숫가의 부유한 별장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러 소설이다. 리사는 이 별장 마을 외곽에서 큰 딸과 두 아들을 키우며 사는 맞벌이 부부이다. 남편은 택시 운전을 하고 리사는 동물보호소에서 일을 한다. 둘이 정신없이 살지만 생활은 항상 적자이다. 리사에게는 케이트라는 마을 친구가 있다. 그녀는 부유하며. 깔끔한 성격의 남편과 완벽해 보이는 두 자녀를 키운다. 케이트는 살림에서부터 양육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완벽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훨씬 생활수준의 격차가 나는 리사의 가족과 친근하게 지낸다. 리사와 케이트의 자녀들 역시 사로 또래여서 친구로 지낸다.

그런데 어느 날 케이트의 딸 루신다가 사라진다. 루신다가 사라진 날은 리사의 집에서 자고 오기로 한 나리었다. 루신다가 오지 않자, 케이트는 일이 있어 오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간 루신다는 사라진다. 마을에는 13세 소녀들만을 납치해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는 범행이 발생하고 있었다. 리사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루신다가 오지 않은 것을 케이티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루신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 후 소설은 루신다를 찾는 수사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완벽해만 보이는 케이트의 가정에 이상한 부분들이 드러난다. 젠틀해 보이던 케이트의 남편은 마을 외곽의 별장에서 자신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완벽하고 따스한 엄마인 케이트는 정신과 치료와 약물을 받고 있었다. 엄친아 딸의 전형이 사라진 루신다는 알지 못하는 남자 어른을 만나고 있었다. 리사의 가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풍요롭지 않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사와 남편 조 사이에도 무언가 문제가 드러난다. 오로지 리사만을 사랑하는 조에게 가끔씩 나타나는 무관심과 신경질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평온하고 완벽해 보이는 가정들 속에 드러나는 미세한 균열과 그 균열 속에서 보이는 어두운 모습들이 읽는 사람을 소설 속으로 점점 빨아들인다.

소설은 스토리보다는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더 압권적이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니, 고요한 호수가 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런 미스터리한 분위가 물씬 풍기는 드라마가 될 거라고 예상을 해 본다.

스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작가는 여러 가지 떡밥을 던지면서 모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결된다. 소설을 읽은 후에 알았지만 작가가 살고 있는 곳도 소설의 배경인 마을이고, 그곳에서 남편과 세 자녀와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에 나오는 스피키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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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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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가 인기이다. 고아라가 연기를 하고 있는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는 어렸을 때 성폭력을 경험한 후 판사가 되었다. 그녀는 법조계의 여성에 대한 부당한 현실과 자신들이 재판하는 억울한 일을 당한 여성들의 현실과 싸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한 인터 여직원이 자신을 성희롱하는 부장을 고발했다. 부장을 중심으로 한 회사와 조직은 철저하게 여직원을 왕따시키고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사소한 일로 한 가정의 가장의 밥줄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여직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팀은 매우 좋은 팀워크를 가졌고, 여직원은 예민한 성격이기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사원들은 여기에 동참한다. 결국 한 여직원의 폭로로 재판은 반전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여성 혼자 힘으로 조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조직과 싸우는 것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직 구석구석에 숨어있고, 가정과 사회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관습의 힘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 것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아랫사람은 이래야 한다! 세상은 다 그런 것이다! 그런 당연하다는 생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한 개인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 일일까.

[그녀 이름은]이라는 소설은 [82년 생 김지영]과 [현남 오빠에게]라는 소설로 인기를 얻은 조남주 작가의 신작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맞딱드리고 있는 수많은 현실들을 마치 짧은 수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 아내와 며느리, 엄마 로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사회의 차별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두 번째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소진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 보다 10살 많은 사수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그것을 인사팀에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사팀은 오히려 소진을 나무라고, 결국 소진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한다.

"팀장이 소진을 불러 화를 냈다. 알아듣게 얘기했는데 꼭 이렇게 일을 키워야 했느냐고 사회 부적응자, 또라이, 사이코패스라고 말했다. 이 얘기도 녹음하고 있느냐며 녹음당할까 무서워 소진 씨하고는 말도 못 하겠다고 비아냥거렸다. 소진이 뻔히 보고 있는데 과장을 위로했다. 어쩌다 이렇게 지독하게 걸렸니, 액땜했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라 (P 16)"

그러나 소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용노동부와 인터넷에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로 인해 이제 그녀의 적은 단순히 회사가 아니라 사회가 된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읽는 내내 그녀가 혼자 감당해야 할 싸움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소진의 신상이 나돌았고 인터뷰 기사마다 심각한 수준의 악플이 달렸다. -중략- 회사는 그 와중에 합의를 종용했고 과장은 고소를 준비 중이라고 전해왔다.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 않느냐면 사실이 아니다. 소진은 매일, 매 순간순간 후회한다. 빗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고 음식이 들어가기만 하면 토해서 수액과 영양제로 버티고 있다. 소진이 혹시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엄마가 밤마다 소진의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잔다. 소진은 변호사에게, 선배에게, 가족에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묻곤 한다. 모두들 피해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너무 힘들다면 여기서 멈추어도 된다고 말하는데 정작 소진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P 20)"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어린 여자 혼자서]라는 소설이다. 서울로 상경한 한 직장인 여성인 겪는 현실이다. 그녀는 서울 직장에 취직해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며 원룸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와 그녀의 집을 창문을 연다. 그녀는 너무 놀라 소리치고, 놀란 침입자는 아래로 떨어진다. 경찰은 오히려 그녀를 나무라고, 피해자는 술김이었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별거 아닌 일로 몰고 간다. 소설은 한 여성이 경험해야 하는 도시와 사람의 냉혹함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세상에 발가벗겨 던져진 것 같은 그녀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졌다.

"근데 잡고 보니까 글쎄, 그 남자는 내 방이랑 같은 라인 일층에 사는 남자더라.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전과는 없대. 경찰에서는 술 마시고 실수한 거라고, 특히 나를 노린 것도 아니고 이 방에 여자가 사는 것도 몰랐다고, 자기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그랬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만취한 사람이 좁고 위태로운 가스관을 딛고 올라와서 그렇게 치밀한 손놀림으로 창문을 연다는 게 가능한가. 나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는데 경찰은 그 말을 믿는 것 같더라. (P 47)"

최근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적응해 간다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부당함에 적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녀 차별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에는 너무나도 부당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젊었을 때는 그것을 볼 때마다 분노하고 그것과 맞서 싸웠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에 순응하려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때로는 자신이 찢기고 상처 입지만,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이들이 부럽다. 오늘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홀로 외롭게 세상과 싸우는 그녀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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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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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라는 영화 속의 주인공 네오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어느날 모피어스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말한다. 우연곡절 끝에 만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매트릭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 속에 길들여 있기에 이 세계의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알고 싶냐고 묻는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 약을 주며 선택을 하게 한다. 파란약을 먹으면 그동안 네오가 가졌던 모든 의심을 잊어버리고 다시 평범하게 시스템 속에 적응하며 살게 된다. 반면 빨간약을 먹으며 시스템 속에 벗어나 실제 세계를 보게 된다. 네오는 빨간약을 먹고 그 순간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 시스템에서 깨어나서 현실 속의 세계를 보게 된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네오가 매트릭스 밖의 현실 세계에서 눈을 뜨는 장면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이게 뭐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가상세계였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비슷한 충격을 다시금 받았다. 지난 해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그 후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실체가 점점 밝혀지기 시작했다. 비선실세라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움직이는 세계, 권력과 대기업의 유착관계, 정보기관에 의한 여론조작, 언론과 방송계를 움직이는 검은 손들. 결국 그동안 우리가 알고 믿었던 세계는 소수의 몇 명에 의해 조작된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조작된 세계의 시스템 속에 살고 있던 또 다른 네오가 아니었을까.

[고요한 밤의 눈]이란 책은 이런 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약간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저자가 만든 상상의 세계일뿐인가. 아니면 저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카프카와 같은 비틀기를 통해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세계일까. 최근에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현대소설 중에서 같은 소설을 두 번 읽는 경험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이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 속의 세계가 단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소설이 예언적 소설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저자는 묘한 상징과 은유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은 X라는 남자가 십 개월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X는 15 년간의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마지막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었다. X는 잃어버린 자신이 누군지를 찾는다. 그가 발견한 자신은 유명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이자, 동시에 스파이였음을 알게 된다. 또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 준 Y와는 대학시절에 연인사이였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스파이소설과 비슷하다. 영화로 더 유명한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본 아이덴티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스파이라는 직업은 참 특이하다. 이 소설 속의 스파이는 보통 스파이 소설의 스파이처럼 국가를 위해 타국에서 자신을 숨기면서 암살이나 기밀을 수집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수의 엘리트층으로서 자신을 숨기며 자신이 속한 세계가 유지되도록 일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나누어진 세계를 유지하고, 대다수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소수의 지배자들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시스템을 만들어간다. 그를 위해 언론과 여론, 문화 등을 조작한다. 이들은 철저한 비밀 속에서 점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스파이의 조직의 리더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X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X는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스파이 일을 관두려 했고, 조직은 그런 자신을 잡아두기 위해 Y라는 스파이를 통해 그의 기억을 조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X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Y를 옆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스파이의 일을 계속한다.
이와 함께 D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어느 순간 사라진 언니를 대신해 정신과 의사의 역학을 대신하다가 X와 상담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떤 조직에 의해 조작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스파이 조직의 중간 간부인 B라는 남성도 등장한다. 그는 Y의 상사이기도 하다. 그는 소수의 몇 사람이 세상을 조작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조작된 세상을 당연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점차 그 일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다. 처음 그가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 것은 너무나 강압적인 정책은 반드시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 온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시스템에 반대하기 위해 조직에 반대를 든 게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의 정책에 반대한 것이었다.

"세상은 지배하기 더 쉬워졌다.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원망해야 하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뿐이다. 그래서 자살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자꾸 일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먹이사슬의 바닥을 장식할 인간들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고려하지 않은 생지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세계는 굳게 유지되리가로 믿는 근거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P 209)"

그러나 B의 이런 생각은 감성주의자라는 비판과 함께 무시된다. 그리고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B는 조직에서 배제되고, 그와 함께 자신의 일에 점차 회의를 느낀다. B가 스파이 조직에 회의를 느낄 때 쯤 X와 Y 역시 은밀히 스파이 조직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이들은 스파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스파이에 의해 세계가 어떻게 조작되기 시작되었는지 그 시초를 찾아나간다.

소설은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것처럼 모호한 이미지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너무나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B는 어느날 백화점에서 자신이 산 명품을 바꾸러 간다. 매장 직원은 귀찮은 듯이 그를 대한다. 매니저는 규정에 없지만 바꾸어주겠다고 선심을 쓰듯이 말한다. 음지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숨기고 살던 B는 내면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B는 아무렇지 않게 매장의 한쪽 진열장 벽면을 가리키며, 거기 있는 모든 물건을 포장해 달라고 한다. 직원들이 반신반의하자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용카드는 등급을 의미한다. 그의 신용카드의 등급을 확인하고 매니저와 매장 직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이제 B는 귀찮은 존재에서 두려운 존재가 된다. 힘들게 포장한 물건들은 B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서 반품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위 계급들만 할 수 있는 갑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자, 그들은 B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소설 속의 이 작은 에피소드는 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고, 이런 시스템을 소수의 사람들이 조작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소설 속에서는Z라는 소설가도 등장한다. 스파이 조직은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B를 통해 Y에게 감시하게 만든다. 그러나 Y가 보기에는 그는 작품 한 편 제대로 못 쓰는 현 시스템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미 X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의 시스템을 언급하고 있었다. 모두들 당연시 여기는 시스템 안의 세계를 소설을 통해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X는 세계의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의 영화의 네오처럼 자신이 속한 세계가 조작된 세계임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스파이가 하는 일은 그가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 들어와서 시스템 속에 속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스파이 조직은 문화단체를 움직여 Z에게 창작 지원금을 받게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마다 그 지원금의 액수를 줄인다. 결국 Z는 조금씩 시스템 안을 편입되어 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지난 정권의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예견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아무도 모르던 세계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미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속의 Z는 저자였을까. 그리고 저자는 이 세계의 조작된 시스템을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일까.

스파이가 하는 일은 젊은 세대들이 점점 비판의식 없이 세계의 시스템 속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에게서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사색’이다. 그리고 사색의 도구는 소설과 같은 책이다. 그들은 시스템을 통해 이들을 몰아붙임으로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릴 뿐, 자신이 왜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사색이다. 사색은 시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여서 내면에 관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고작 나루 수 있는 대화는 매달의 카드대금과 아파트 대출금, 미래에 대한 건 돈 걱정뿐이어야 한다. 더 깊이 고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 생각하고 생각하면 위험해진다. (P 145)"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우리가 속한 세계를 분석하고, 그 세계 속에 사는 우리의 실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바로 일어날 한국사회의 변혁을 알리는 예언적인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에서 눈을 뜨는 X와 Y, B, 그리고 Z와 같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바꾸고 붕괴시킬 것을 이야기한다.

"요즘 우리의 저항은 어쩌면 안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린 아마 안 될 것야, 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냉정한 비관 속에서 우리는 지지 않기 위해 모른 척 했는지 모릅니다. 미래에 타임머신이 있어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 할 때 결정적인 시점, 최우의 시간이 언제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망입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합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아니, 무엇이 중요한지를. (P 286)"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스파이란 누구일까 라고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 속에서 스파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세계의 시스템을 조작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서 그들 역시 시스템 속에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자신의 진정한 실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시스템 속에 안락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파이란 이 세계의 시스템 속에 안락하게 살면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의 위기라고 한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습을 발견하고, 변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소설은 의식 속의 모호한 세계만을 헤매고 있다. 또한 많은 출판사들이 소설 대신 자기계발서적이나 경제서적을 출판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색과는 멀어진 채 점점 시스템 속에 동화되어가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책이야 말로 우리를 이 세계의 참 모습을 보게 하고 조작된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을 ‘키맨’이라고 부른다. 과연 이 세대에서 우리는 다시금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열쇠와 그런 열쇠를 만드는 ‘키맨’을 다시금 만나 볼 수 있을까. 진정한 변혁은 단순히 정치적인 구호나 운동으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될 때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이런 의식의 변화에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책들이 있었다. 과연 이 시대에 이런 책들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금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위대한 소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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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모든 것 - 2017년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금희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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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많은 문학잡지를 구독하며 읽었었다. 그중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사]라는 두 문학잡지는 매월 정기구독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쌓이던 책을 처지 곤란해서 지금은 고향집 창고 어딘가에 쌓여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매월 읽을 시간과 책을 쌓아 둘 공간도 없이 바삐 살아간다. 그래도 매년 두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구입해서 읽으려고 노력한다.

한 해가 지났지만 지난해에 다 읽지 못한 [2017년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을 다시 읽었다. 2017년 현대문학상 대상은 2016년도부터 인기를 끌고 있던 김금희 작가가 차지했다. [체스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다. 작품의 분위기는 2016년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수상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와 비슷한 구조이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세상에서 정처 없이 달려가던 한 남자가 실패를 맞본 후 다시금 우연히 대학교 때 만났던 양희를 기억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양희의 연극을 보면서 세상의 흐름에 맞춰 온 자신에 달리,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양희를 보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내용이다.

[체스의 모든 것]의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한 후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 여성이다. 소설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던 노아 선배와 국화라는 친구에 대한 회상이다. 항상 다른 사람과 달리 삐딱하고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노아는 호적수인 국화와 체스판에서 부딪힌다. 둘은 체스판의 룰을 가지고 옥신각신하고 싸우면서도 계속 붙어 다닌다. 항상 자신만의 주장을 굽히지 않던 노아도 웬일인지 국화 앞에서만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이 오랜만에 만난 노아와 국화 모두 자신만의 길을 걷다가 매우 지친 상태였다.

소설집에는 김금희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세실리아]라는 작품도 실려 있다. 이 작품 역시 앞의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더 어둡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혼을 하고, 빚도 많은 한 여성이 대학교 때 요트 동아리 멤버들과 만남에서 세실리아라는 친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세실리아를 만나고 자신과 같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세실리아를 만난다.

시대와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 있다. 윤대녕 작가의 [경옥의 노래]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작가로서 궁핍한 삶을 살고 있던 상욱이라는 주인공이 20여 년 전 통영에서 만났던 경옥이란 여성을 다시 만나면서 시작된다. 경옥은 짝눈이라는 놀림을 당하는 오드아이라는 특유한 눈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로 인해 어려서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 태어나면서부터는 친엄마와 떨어져 계모 밑에서 매를 맞고 자랐다. 그럼에도 노래 실력이 있어 여기저기 떠돌며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경옥은 상욱을 만나 둘이 사랑을 하지만, 무언가가 계속해서 경옥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게 한다. 그리고 결국은 속초로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뉴스는 온통 강남 부동산, 비트코인, 주식 등과 같은 단어들이 되풀이된다. 모두들 살기 위해서 아둥바둥하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집과 돈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실패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 세상이 만든 체스판 룰대로 따라가는 사람들만이 인정받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자신의 룰 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렇게 자신의 룰대로 살아가다가 이리저리 찢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판단하기보다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찢기고 상처 입은 영혼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체스판의 룰에 조용히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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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윗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때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조선시대에 가까운 정치관이라든지,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대해 비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이라든지, 또는 여성에 대한 비하 등의 막말들을 할 때가 있다. 타인들에게 주로 평화주의자로 불리는 나는 대부분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평화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윗사람의 생각과 말이 틀렸음을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 주는 동료로 인해 대신 가슴이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싸늘해진 대화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꼭 그런 기분이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틀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서 넘기고 있던 것들을 이 소설을 들춰낸다. 그리고 읽는 내내 분위기가 불편해진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너무도 예리하게 끄집어 내는 소설로 인해, 그리고 이런 것들에 침묵했던 나 자신에 대해, 아니, 어쩌면 그런 것에 동조했을지도 모를 나 자신으로 인해...

[현남 오빠에게는] 요즘 인기 있는 7인의 여성작가가 페미니즘 관점에서 쓴 소설이다. 그러나 딱히 페미니즘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은 [82년생 김지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이다. 소설은 서른의 한 여성이 10년 동안 연애를 하고 자신에게 청혼을 한 '현남 오빠'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지의 첫 내용은 현남 오빠의 청혼에 대한 거절이다. 현남 오빠는 타인이 볼 때는 자상한 오빠이다. 타지에서 올라와 강의실도 못 찾아 헤매던 주인공을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해 준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그 후 현남 오빠는 수강신청부터 학점관리, 심지어는 자취방 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여러 면에서 배려해 준다. 주인공은 그 배려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점점 자신이 생각과 미래까지도 관여하는 현남 오빠에게 끌려다닌다. 계속해서 독단적이고 타인을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현남 오빠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는 현남 오빠를 떠난 삶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현 남 오빠의 틀린 주장에도 침묵한다.

"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어요. 오빠가 헤어지자고 할까 봐 겁이 났거든요, 오빠의 도움 없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강현남 여자친구'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아시잖아요, 캠퍼스 커플이 헤어지면 어떤 소문이 도는지, 어떤 시선을 바다야 하는지요, 여자들은 특히 더하죠." (P 21)

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현남 오빠와 사귀며, 그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그가 원하는 취직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결혼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청혼을 받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현남 오빠에게 종속된 삶을 사고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로 만들어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 38)

소설을 읽는 내내 강현남이란 인물 속에서 한국 남성의 모습을 보게 딘다.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속에 여성을 넣어두고, 자신의 장식품으로 여성을 만들어가는 한국 남성들... 이것이 아마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가 만든 남성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부장적인 폭력은 단지 여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나 사회에서도 자신의 절대적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무조건 맡고, 자신의 생각에 틀린 말과 행동을 하며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때 남성으로서 여성학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이 가부장적인 문화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오랫동안 사회에서 사람들을 경험해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또한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에 순응하는 것은 단지 남성들뿐만이 아님을 느낀다. 여성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남성이 만드는 울타리에 안주하기를 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돌봐주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남자 친구가 만들어준 울타리를 과감히 부수고 나오는 자신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기에 소설 속이지만 주인공의 선택에 응원을 보낸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적은 남성이나 여성 중 하나가 아니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의 피해자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두 편의 소설이 [당신의 평화]라는 소설과 [경년]이라는 소설이다.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라는 소설은 유진이라는 여성의 눈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인 정선의 모습을 본다. 평생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밑에서 굴종했으면서, 이제 며느리를 맡으면서 며느리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하기를 원하는 모습에서 유진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그녀가 보기에 정순은 사람들의 말에 세뇌되어 있었다. 파일럿 남편 둬서 팔자 좋게 산다는 시어머니 말에, 그렇게 능력 있으면서 때리지도, 바람피우지도 않는 남자가 흔하냐는 친정어머니의 말에, 정순은 자기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아무리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해서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유진이 정순을 대신해서 아빠와 할머니에게 대거리를 하면 정순은 당황하며 외려 유진을 흔했다. '할머니 말씀치고 틀린 것이 없다' 정순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정순을 그녀는 이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퇴직 후 정순은 눈덩이 굴리듯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자기감정을 키워갔다. 정순은 살이 빠져 떼꾼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냈고 다른 여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를 잘했다." (P 58)

김이설 작가의 [경년]이란 소설은 폐경기를 맞은 한 여성의 시각에서 가족과 세상을 다시 보고 있다. 중학생으로 항상 전교 상위권에 드는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성관계를 하고 다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남자애니까 그런 건 허물도 아니고, 지들 사이에서는 난놈 된 거야. 자기 놀 거 다 해가면서 공부도 잘하는데 누가 뭐라 할 거냐고."

주변에서도 남자아이는 괜찮고, 오히려 꼬리를 친 여자아이들이 잘못된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말에 수긍하기가 힘들다. 자신도 딸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볼 세상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이미 작고했지만 오래전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방송에서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한국 엄마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자녀들을 키우면 아들을 괜찮고, 딸은 안 된다는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한국의 엄마들도 그렇게 가부장적 문화에 세뇌당한 피해자는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정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다. 물론 가정과 결혼을 통해 여성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가정과 결혼이 모두 안 좋은 것만은 아닐 텐데... 한 사람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아닌, 함께 희생하면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도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일일 텐데... 이렇게 말하면 나 역시 가부장적인 문화의 세뇌된 사람으로 받아들여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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