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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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는 아니지만 가끔은 맛을 음미해가면서 먹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음식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음식은 바로 한 입에 털어 넣지 않고, 한 입 한 입 먹으며 맛을 음미한다. 소설도 그런 소설이 있다. 한 번에 읽기 아까운 소설, 그래서 조금씩 읽으며 맛을 음미하는 소설이 있다. 내게는 매년 출간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그렇다. 예전에는 많은 단편소설을 읽었지만, 최근에는 몇 권의 수상 작품집을 읽는 것이 전부이다. 그중 매해 빠지지 않고 구입해서 읽는 책이 바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아직 올해 수상작은 구입하지 못했고, 먼저 작년에 읽은 단편소설들을 리뷰로 정리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년 수상한 소설들에 호불호가 갈릴 때가 있다. 어떤 해에는 수상한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한 편 한 편 음미해서 읽을 때가 있고, 어떤 해에는 내게는 별 감흥이 없는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데 작년 이상문학상 대상과 우수상 작품집들은 한결같이 읽으면서 무척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소설들이 많았다.

 

 

우선 대상 수상작은 손홍규 작가의 [꿈을 꾸었따고 말했다]이다. 손홍규 작가는 소설보다는 산문으로 익숙하다. 그의 산문집인 [다정한 편견]과 [마음이 다쳐서 돌아가는 저녁]이라는 책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었다. 실력 있는 단편소설 작가들의 특징은 인간의 내면의 감정의 변화를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있다. 그런데 손홍규 작가는 단순히 인간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형성을 둘러싸고 있는 인생이라는 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 사람이 느끼는 내면의 깊은 감정과 그 감정을 형성하게 한 그 주변의 인생을이라는 것을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한다.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세밀한 묘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세밀하다가는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시각으로 인생을 묘사한다. 그런 인생에 대해 묘사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 이번 수상작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어느 도시의 골목집의 선술집에 장례식의 상주인 듯한 젊은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술집에는 인생의 거친 풍파를 다 겪은 듯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거친 그들이지만 이 젊은이에게만은 따스한 연민을 보낸다. 소설은 한동안 이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다가, 그 젊은이가 술집을 나간 후 그 술집에 있었던 한 중년 남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인생의 모진 풍파를 거친 그는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아내는 그를 외면하고 아들은 그를 떠났다. 중년 남자의 모진 삶에 초점을 맞추던 소설은 다시 남자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삶 역시 남편 못지않게 거칠다. 그렇게 소설은 초점을 이동해 가며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잃어버린 인생을 개인의 실수로 보기보다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끌려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으로 묘사한다.

 

 

"청년은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지금도 여전히 서투른 그와 비슷해 보였다. 그는 물 컵을 만지작거렸다. 이 물 컵조차도 순수한 강철은 아니었다. 니켈과 크롬이 포함된 합금이었다. 그의 감정도 언제나 합금이었다. 순수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살아야 했고 어떤 감정이 엄습하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감정을 쥐어짜낸 뒤 엄습하는 감정을 방어했다. 그런 과정에서 감정들은 뒤엉켜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전혀 다른 무엇이 되었고 이렇게 합금처럼 태어난 감정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그것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괴물일 거시며 이런 방식으로 그는 서서히 괴물이 되어갔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이 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니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버렸다." (P 69)

 

 

이상문학상 작품집에는 항상 수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표 작품들이 함께 실린다. 대부분 자전적 소설이 많은데, 이번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가 그리려는 인생을 가장 잘 묘사한 소설이다. [정읍에서 울다]라는 소설은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그럭저럭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며 억척스러웠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 돌봄이 애잔하거나 절절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억척스러운 아내와 살아온 삶을 대면하게 바라본다. 그럼에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애잔하다.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은 순자라는 한 여자와의 추억이 아니었다. 그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혹은 그가 잃어버린 열망과 꿈이 담긴 과거 전체였으며 그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인생의 어느 시기였다. 그가 아름다웠던 시절, 그가 선량했던 시절, 타락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 그래서 순자와 헤어질 때면 자신의 과거가 등을 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 결별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진 듯한 억울함을 느꼈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정말 영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내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가 아내와 결혼하여 일가의 가장으로 삶을 꾸리게 된 순간부터 그가 꿈꾸었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했고 그토록 비장하게 그가 바라던 세계에서 떨어져 왔음에도 결국 초라한 늙은이밖에 되지 못했다는 서러움만은 확실히 그의 감정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23)

 

 

우수상 작품 구병모 작가의 소설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란 소설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은 뜻하지 않게 남편의 시골학교 발령으로 시골로 내려 간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언뜻 시골이라면 따스한 인심이 생각나지만, 그런 따스하다는 말로 포장된 채 자신을 감시하고 타인의 생각으로 자신을 재단하려는 시선들에 대해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다.

 

 

"산후조리원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알지만 그걸 선금 걸고 예약까지 한다는데에 노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개중에는 가뜩이나 계집들이 애를 안 낳아 나라가 망한다는데 실상은 조리원에 줄까지 서야 들어갈 수 있다니 당최 누구 말이 맞느냐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옛날에는 여자들이 일하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낫으로 탯줄을 끊었다니, 집에서 돌보는 게 당연한 것을 무슨 애 낳는 데 호텔씩이나 잡아 들어가느냐 든지, 한 사나흘 자리보전하며 미역국 먹고 나면 으레 다시 밭일하러 애를 업고 나오는 법이라는 19세기 레퍼토리가 한 치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돌림노래처럼 흘러나왔으며, 남편이 피땀 흘려 벌어다 준 돈을 장사치들 아가리에 쏟아부어 되겠느냐는 대목에서 정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가방을 챙기거나 겉옷을 꿰는 등 부산을 떨면서 이제 정말 시간이 없으니 나가 보아야겠는데요, 했다. 그러면 방문객들은 암만 봐도 집에서 살림 돌보는 게 전부인 여자가 어째서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종종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은 자리를 털었다." (P 176-7)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우수상 수상작품은 방현희 작가의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였다. 마치 손홍규 작가의 젊은 버전을 보는 듯한 시각으로 인생을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있다. 사용하는 언어와 묘사는 조금 더 세련되어 있지만, 인생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더 날카롭다. 성공한 친구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주인공이 친구의 죽음과 함께 그가 몰던 클래식은 포르쉐를 얻는다. 그리고 그 포르쉐에 빠져 그것을 수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회피한다. 이 과정에서 포르쉐를 수리하는 과정을 그의 인생과 오버랩시키는 작가의 묘사력이 뛰어나다.

 

 

"친구 녀석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속도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를 들으며 달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도로에서 미끄러질 때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친 녀석을 받아주는 공간은 작은 차체 하나 만큼 일 뿐인 게다. 그 차체 하나로 뚫고 가는 외길 만 큼이었을 테다. 친구는 그 작은 차체로 뚫고 가는 길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들으려 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미친다는 건 그런 거니까. 고장 나는 곳이 또 고장이 나면 그 차는 버려야 하는 것이지. 그러나 녀석은 고장 난 곳이 매번 다시 고장 난다는 것을 모르는 척했지. 미친다는 건 그렇게 남김없이 탕진하는 것이니까. 그는 토크 렌치의 눈금을 정밀하게 맞춰 브레이크 호스를 조였다. 그 역시 두 사람의 뒤를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만둘 수는 없다. 누추한 공업사를 벗어나는 길은 소리를 타고 이동하는 길뿐이니까" (P 224-5)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에는 느낄 수 없는 단편소설만의 맛이 있다. 조금 더 작은 공간에 많은 것을 세밀하게 밀어 넣은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다. 특히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미니어처들만 모아 놓은 느낌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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