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평점 :
이미 오래 전에 종영된 방송이지만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제목의 방송이 기억이 난다.
흔히 이야기하는 기구하다는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재연하는 다큐식 방송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는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해 전처의 아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운 어머니의 이야기나 여러 남자에게 버림받은 기구한 여인의 이야기,
또는 고아로 힘든 삶을 살고 나이들어 번 돈을 남에게 기부하는 사람의 이야기 등이 방송이 되었다.
한 때는 그 방송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곧 나의 교만을 후회했다.
말 그대로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때로는 우리 눈에 기구해 보이고, 비루해 보여도 그것이 인생이고,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집 [강산무진]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본 이 방송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생들 역시 모두 비루하기 때문일까?
첫 소설에 [배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IMF 이전에는 식품납품공장을 운영하며 그런저럭 사장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부도난 후에는 택시를 운전하며 사납금 몇 만원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산다.
그런 그에게 공장을 운영할 때 같이 경리로 일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윤애'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윤애를 만나는 과정, 헤어지는 과정, 그리고 다시 만나서 이별하는 모든 과정에 비루함이 뚝뚝 묻어난다.
몇 만원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안절부절하던 그가 일식집에서 윤애의 밥을 사주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두 번째 소설 [화장]에 묻어 있는 비루함은 거이 압권이다.
(비루함과 압권이라는 말이 같이 쓰일 수 있을까?)
주인공은 꽤 잘나가는 화장품업체 상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것껍대기일 뿐이다.
그의 아내는 오랜 기간 뇌종양으로 투병한다.
음식을 토하고, 설사를 하고, 악취를 풍겨낸다.
그리고는 초라하고 말라 비틀어진 몸으로 세상을 떠난다.
주인공 역시 전립선염으로 하루에 한 번 꼴로 소변을 빼내야 한다.
병원에 가서 생식기에 호수를 연결하는 비루한 과정을 통해야 겨우 소변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회사 부하직원인 '추은주'라는 여인을 사랑한다.
그녀의 머리카락, 목선,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젊음과 생명력을 사랑한다.
네 번째 소설 [뼈]라는 작품에서 주인공은 대학 교수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보다 '오문수'라는 자신의 조교에 대한 묘사가 더 많이 등장한다.
오문수는 10년 가까이 조교로 있으면서도 아직 박사학위를 따지 못하고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젊은 여성들과 동거하며 대책없는 뜬 구름 잡는 논문만을 쓰려 한다.
여섯 번째 소설 [언니의 폐경]의 주인공은 이혼 당한 50대 여인이다.
자신의 늙고 생명령이 사라져 가고 있을 때 출장 갔다 온 남편의 가방 안에서 생기있는 여성의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패경을 경험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는 여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본다.
마지막 소설 [강산무진]에서 주인공은 간암판정을 받는다.
주인공은 담담히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준비한다.
그가 마지막 생애를 준비하는 것은 '노킹 온 헤븐스 도어'라는 영화에서처럼 죽기 전에 바다를 보러가는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니다.
조금의 퇴직금을 더 받기 위해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숨기고 퇴직하고, 손해를 보고 적금을 깨고, 이혼한 아내에게 아직 주지 못했던 위자료를
준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딸은 덤덤히 반응하고, 미국의 아들은 남은 재산을 욕심낸다.
주인공은 그렇게 비루하면서도, 또 담담하게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비루하게 죽어가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비루하게 묘사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비루함을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
사실 이 과정을 평론가도 아닌 일반 독자인 내가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비루함과 아름다움이 교차되는 그 작가의 묘사에 감탄을 느낀다.
[화장]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아내의 상태나, 전립선염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접대와 로비로 얼룩져진 그의 일을 묘사하다가
추은추라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아름답고 신비롭게 그리고 있다.
[강산무진]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돈과 거처를 정리하며 비루하게 보내는 주인공이 강산무진이라는 작품을 바라볼 때 작가는 그 비루한
인생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화가가 이 세상의 강산을 그린 것이지, 제 어미의 태 속에서 잠들 때 그 태어나지 않은 꿈속의 강산을 그린 것이지, 먹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이지 종이 위에 숨결을 뿜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거기가,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인 것처럼
보였다. - [강산무진] 중에서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인생이 비루할까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그것을 돈과 육체에서 찾는다.
돈은 인생을 비루하게 만든다.
돈 몇 만원을 채우려 무리하게 택시 운전을 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들이 돈으로 비루하게 묶여 있는 것이 인생이다.
육체의 생명이 사라지면서 인생이 초라해진다.
자신의 생리현상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구린내와 섞는 냄새 속에서 쪼그라 들어간다.
그런데 작가는 그 비루함 속에서 빛나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마치 해가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그리듯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정말 비루한 인생 속에 아름다움이 있을까?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