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

 - 안 도현 -


부서지렴.
글썽이는 가을볕
풀씨 날려 울음 타는
슬픈 언저리
아이들 꿈의 향기만큼
부서지렴.
수수깡 안경으로 엿 본
가을의 속살.
강아지풀 같은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를 뵈지 않게 미끄러지며
부서지렴. 울면서
울면서 어린 생각을 빗질하고
다시 어린 꿈을 닦아내고
그 맑은 눈물무늬
글썽이는 가을볕
부서지렴.

================================================================================

비가 그치고 참 여유로운 가을 하늘입니다. 사무실 창문 안으로 눈물처럼 글썽이는 가을햇볕이 쏟아지고 살며시 내다본 창가로 한적한 구름 몇점 위에 가을 하늘이 높아만 가는 가을날 오후입니다.

콘크리트 투성이인 이곳에도 살랑살랑 찾아오기 시작한 가을바람이 참 푸르른 언덕배기에서 동행한 들꽃의 향기를 안겨줍니다. 황금 벌판에는 노란빛으로 빨간 사과위로 빨간빛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볕이 이곳 사무실 한 구석에도 회색빛이 아닌 노란빛을 던져주었으면 합니다.

풍성한 가을, 모두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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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9-0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잉크냄새님은 너무 낭만적이세요... 오늘도 예쁜 글 읽고 갑니다.. ^^

물만두 2004-09-0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 본지 오래 되었네요. 비 온 뒤라 더 푸르겠지요? 요즘은 새벽 하늘밖에 못 봐서리...

호밀밭 2004-09-0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오기를 참 기다렸었는데 아직 제가 기다리는 가을은 안 온 것 같아요. 안도현의 시는 맑아서 좋아요. 하늘도 보고 싶고, 가을 바다도 보고 싶네요. 정말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계절이 잘 안 느껴져요. 제가 창가에 앉지 않아서 더 그런지 모르겠어요. 님은 가을과 잘 어울리는 분인 듯해요. 행복한 가을 맞이하세요.

Laika 2004-09-09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글을 읽고 나니 내일은 점심먹고 나가서 광합성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잉크냄새 2004-09-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가을 햇볕이 유혹하는 오후입니다.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확 떠났다 오고 싶게 만드네요. 주중에는 그러다가 주말만 되면 우중충해지니 가을의 시샘도 대단한것 같아요.
아 그러고보니 라이카님 광합성 시간이 지금쯤이겠네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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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라는 가곡 사월의 노래의 한 구절로 기억되는 베르테르를처음 안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데미안과 더불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그는 결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서글픈 결말마저 그토록 아름답게 만든 폭풍과 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의 자살마저도 순수함의 극치로 여겨졌다. 그는 결코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베르테르를 다시 만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시 만난다.그의 편지를 하나하나 다시 읽어본다. 아마 그때의 나는 작은 행복 뒤에 찾아온 절망의 선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서야 로테를 사랑하기 전과 후의 시공간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허락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는 그의 고뇌를 느낀다. 로테와 함께하는 작은 행복감과 그 뒤에 찾아오는 폐부를 내리누르는 절망감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이해할수 있다. 동조하지는 않지만 결국 고뇌의 방아쇠를 당기고만 그의 마지막 절규를 듣는다.

아홉명의 여인과 염문을 뿌린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 상처받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에 상처받아 권총 자살을 한 일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쩌면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베르테르를 통하여 그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르테르를 죽임으로써 괴테는 절망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절망과 시련의 중압감을 베르테르에게 무거운 삶의 무게로 지우고 고뇌에 찬 총부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마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죽고 우리는 남는다.그리고 남겨진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이다.

삶이든 사랑이든 패배와 실패에 한 조각의 여백조차 남겨두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는 말이다. 일단은 살아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운으로 맞이하게 되는 작은 행복이어도 좋고 가슴을 난도질하는 시련이어도 좋다. 결국 다시 사랑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절망의 선율과 시련의 중압감을 벗어버릴수 있는냐 없는냐의 문제이다. 다시 살아가고 사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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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9-0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 때 이 책을 읽긴 읽었는데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쯤 다시 읽으면 읽혀질려나?^^

파란여우 2004-09-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노란조끼를 즐겨 입었던가요?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잉크냄새 2004-09-0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노란조끼. 그 당시 베르테르로 인하여 독일 사회에 노란조끼 열풍이 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고전은 지금에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네요.

水巖 2004-09-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 시절 1955년인가 54년인가 그때 읽은 책입니다. 완역본은 생각도 못했을 시절,
시인 김용호님이 번역을 했으니까 일본책 중역 했을거에요.
모방 자살이 유행했을때 꾀테는 시 한편을 썼지요. 그 시 마지막 연이
' 사나이일진데 나의 길을 밟지마라 ㅡ ' 그랬던가요.

진주 2004-09-0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를 입었다죠....
유행을 선도할 만한 패션감각^^

잉크냄새 2004-09-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이 읽으셨다는 50년대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을 보고 싶군요. 무슨 냄새가 날까 궁금하네요. 푸른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 정확합니다. 어떻게 그런걸 다 기억하시나요?

진주 2004-09-1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 팬이었거든요. 4월의 노래도 그래서 좋아했고요 ^^*
잉크냄새님을 직접 못 봐서, 내겐 어쩐지 베르테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제임스딘을 조금 섞은 듯한.......그딴 생각이 듭니당^^;;

수련 2004-09-14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를르의 보리밭에서 탕!!하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죽게한 고흐....베르테르와 어떤차이가 있을수 있겠는가? 그의 자살은 여러설이 분분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절망감이 아니었을까? 그의 분열적인 방아쇠 당김은 진정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고 받고 싶어했던 열망의 끝이였는지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실연의 아픔을 이길수 있는 면역성도 함께 생기기에....상실의 아픔을 이길수도 있을법한데.....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잉크냄새 2004-09-1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수련님의 글을 조금만 빨리 읽었다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없었을것 같군요. [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랑끝엔 죽지 않을 희망도 있지 않은가 ] 깊은 울림이 있는 말입니다.

* 2004-09-22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련님... 진정한 사람을 해보았다면, 실연의 아픔도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이 반드시 함께 생긴다고 할 수 있나요...??? 저는,,, 아닌 것 같은 데....요....
 


비가 내린다. 아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려나 보다. 올해는 여름이 그 끝자락을 유독 놓지 않은것 같다. 무엇이 그리 아쉬웠던가. 사상 최고의 낮기온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성실한 여름이었다. 사계절중 유독 짧은 가을의 원성을 어찌 감당할라고. 여름아! 이제 그만 움켜잡은 끝자락을 슬며시 놓아줘! 내년에 또 시원한 소나기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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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9-0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비오는 소리 들으며 잠들었는데, 밤새 그쳤나봅니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에 이제 진짜 여름이 가는가보다 생각해봅니다. 빗방울이 너무 예쁘네요...

진주 2004-09-06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아직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이 흐려요.
바람에 비냄새가 묻어와 오늘은 긴팔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송다"가 이름처럼 예쁘게 사뿐이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이젠 모두가 느끼는 가을이겠죠?

파란여우 2004-09-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비오면 안됩니다. 첫째는 농작물이 열매 맺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고, 둘째는 제가 외로워지거든요..흑흑..그나마 햇살이 비춰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 월요일 아침인지 몰라요^^

물만두 2004-09-0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다가 온다지요. 아무탈 없이 지나가야 하는데... 울 엄마 "송자"가 온단다 이러셔서 웃었지만 웃을일이 아닌듯.. 여우성님 말씀대로 비 그만 오고 곡식 여물게 태양이 따땃하게 비췄으면 합니다...

ceylontea 2004-09-0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비.. 사진 너무 예쁘네요.. 이 사진 보고 여름도 기뻐서 내년을 기약하지 않을까요?
퍼갑니다.. ^^

stella.K 2004-09-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진짜 예뻐요. 어젯밤 비가와서 오늘 아침은 더 선선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름 기운이 남아있긴 하네요. 비가 한번씩 더 올수록 가을은 더 가까이 오겠죠. 여름에 덮었던 얇은 이불대신 좀 두꺼운 이불 내려덥고, 방에 보일러 한번씩 돌려야 감기 안 걸려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가을이. 아, 가을 오는 거 정말 싫다.ㅜ.ㅜ

잉크냄새 2004-09-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은 지금 화창합니다. 한낮의 열기도 어느덧 수그러진듯도 싶군요.^^
가을비는 왠지 좀 서글프죠?

비로그인 2004-09-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글 남기는 듯 하네요. 사진 퍼갑니다^^

미네르바 2004-09-0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방울이 튀기는 모습이 정말 멋져요. 어떻게 저렇게 찍는다요?
저도 파란 여우님처럼 가을에 비오면 안된다요. 쓸쓸해서 안된다요.
그냥 가을 바람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요.^^

잉크냄새 2004-09-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최 헌의 < 가을비 우산속 > 이 떠오르네요.
올 가을이 모든 님들에게 풍성한 가을이 되기 바랄께요.
 
 전출처 : 파란여우 > 알베르 카뮈-브레송


브레송(Herri Cartier-Bresson)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47년 작품


바로 이 사람이 카뮈이다. 외투 깃을 올리고 담배 한대를 피워 문 남자는 이쪽을 응시한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브레송이 찍은 이 사진은 카뮈의 몇 안 되는 사진 중의 걸작으로 뽑힌다. 또랑해 보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그가 그토록 괴로워한 실존과 허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성실한 우리의 샐러리맨 이웃 가운데 한 명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감성 풍부하지만 때로는 예리한 '잉크냄새'님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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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9-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멋진 깊은 눈을 가진 사진속에서 나를 떠올려 주시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난 또랑해 보이는 깊은 눈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저 성실한 우리의 샐러리맨 이웃 가운데 한명이죠.^^

水巖 2004-09-05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멋진 사진 갖고 싶네요. 그 젊은 시절 좋아하던 카뮈, 이방인, 반항적인간, 페스트....... 아, 그러다 보니 요사이 반항적 인간이 안보이네. 다시 찾아 보아야겠네.

갈대 2004-09-05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 전집을 읽는 게 제 작은 소망입니다. 정말 '작가'라는 말이 잘 어룰리 얼굴이네요.
파란여우님 말씀처럼 잉크냄새님도 실제로 뵈면 저 사진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Laika 2004-09-0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의 사진을 본적이 있긴한데, 이 사진 보니 너무 멋져서 할말을 잃습니다.
잉크님 정말 좋으시겠네요...까뮈를 보며 잉크님을 떠올리다니...
간만에 까뮈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잉크냄새 2004-09-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실여부를 떠나서 참 기분좋은 일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갑자기 까뮈의 책이 읽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미네르바 2004-09-0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알베르 까뮈... 대학 시절 제 일기장에, 생떽쥐베리, 보들레르, 랭보와 함께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인물이죠. 그리고 까뮈라는 인간에게 참 많이 열패감을 느꼈더랬죠. 어쨌든 그땐, 저도 피끓는 청춘, 20대 초반이었으니까요. 까뮈와 사르트르는 함께 실존주의 철학자로 묶이지만 사실 노선은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인간은 무익한 정열이다'라고 정의 내리죠. 사실 전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해도 까뮈에게 훨씬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어요.

<이방인>의 '뫼르소'나 <시지프스 신화>의 '시지프스' 모두 부조리의 영웅이죠. 사실 <이방인>의 가치는 <시지프스 신화>가 집필되고 나서 빛이 났다고 할 수 있겠죠? 그 전까지 뫼르소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무뚝뚝하고, 음울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하고, 반항하고 그러면서 온순해지는 이 인물을 통해 까뮈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몰랐거든요. 말하자면 <시지프스 신화>는 철학에세이이지만 뫼르소라는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죠. 자기의 영원히 계속되는 노력의 헛됨을 알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그것을 되풀이하는, 저주받은 영웅 시지프스... 그는 분명 위대한 인간이라고 봅니다.

결국 실존적 삶이란 부조리와 혼돈, 공허 위에 세워져 있다고 보는 것이겠죠.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존 내부의 치열한 투쟁과 순간 순간의 결단과 고뇌와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까뮈의 저 얼굴을 보니 순간 반가움에 횡설수설했네요. 그리고 저 사진은 책세상에서 나온 까뮈전집의 표지에도 나와 있지요. 다시 보니 참 반갑네요. 책세상에서 김화영씨 번역으로 24권의 까뮈 전집이 나와 있어서 한 권 한 권 구입해서 10여권 정도 있는데, 아직도 사야될 것이 더 많네요. 한 때 나를 들뜨게 했던 이런 작가들을 보면 다시 흥분되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착각을 일으켜요. 지금 잠시, 전 20대 초반으로 갔다 왔습니다요.^^ 아, 그리고 파란 여우님 말씀처럼 왜 까뮈의 모습에서 잉크님을 떠올리게 되는지 ^^*

잉크냄새 2004-09-0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보들레르도 그렇고 까뮈도 그렇고 님으로 인하여 그들에 대하여 조금은 느낄수 있을것 같아요. 왠지 가을에 어울릴것 같은 작가들,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참 많은 길을 다녀보았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부터 시골의 흙먼지 이는 작은 길까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되도록 많은 길을 다니고 싶었다. 예전에는 사진으로 보는 외국의 길들을 동경했는데 직접 차를 끌고 국도를 누비면서 만나는 소중한 풍경에 매료되어 우리나라의 국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국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야생화 같다고나 할까. 자세히 보아주고 오래 보아주어야 그 소중한 모습을 부끄러운듯 살포시 드러낸다.  

1. 그 시절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20대 초반의 2년간은 세상이 암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버리고 돌아설수 있음을, 또 그런 나를 충분히 다독여줄수도 있는 일들을 왜 그리 어려워했던지. 세상이 서글프고 힘들다고 느껴질때는 어김없이 춘천행 통일호에 몸을 실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줄 친구들이 다니던 강원대에 가기 위해서였다. 우연이겠지만 그 날은 꼭 비가 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춘천행 기차의 맨 뒤칸은 막혀있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그곳에서 멀어져가는 기찻길 위로 던져버린 담배위로 난 또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기찻길이 아득히 만나는 그 곳으로 무심하게 던져버린 시선위로 난 또 무엇을 던지듯 버렸던가. 언젠가 세월이 더 흐르면 그때 던진 무엇을 생각하며 한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2. 그때 꼬맹이들은 어느 세상에 살고 있을까

청량리 11:00시발 강릉 7:30분착 기차는 참 많은 꿈을 싣고 달리던 기차이다. 방학때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기차를 타곤 했다. 청량리에서 영주를 거쳐 다시 북상하여 탄광촌을 지나 옥계의 아침해를 맞이하던 기차는 아름다운 풍경 그 자체였다. 책을 읽다 자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서서히 밝아오는 동해의 아침을 맞이한다. 거치는 간이역마다 밤을 싣고 새벽을 싣고 올라탄 세상풍파에 지친 이들의 꿈을 싣고 달리던 기차는 밤을 헤치고 내리는 이들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언젠가 태백에서 폭설로 기차가 연착된 적이 있다. 한참후 다시 출발을 하려는 순간 유리창위로 부딪히는 눈덩이들, 한밤중 눈만큼이나 하얀 가슴을 안고 있을 탄광촌의 꼬맹이들이 기차를 따라 달리며 눈을 던지고 있었다. 그날 밤 온통 하얀 꿈을 꾸었을 그 꼬맹이들은 지금은 어느 세상에서 또 하얀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3. 지금이라면 그대로 풍경이 되었을까

구례의 시골장이 끝나고 시골 할머니들의 다라를 들어주며 같이 올라탄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던 시골버스는 정이 듬뿍 담겨있다. 오늘 장사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얼마전 죽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얼핏 들으며 바라보는 섬진강의 초록빛 물결. 갓 풀리기 시작한 섬진강 위로 땟목이 떠가고 막 길을 나서기 시작한 어느 시골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지나가고 다시 날개짓을 시작한 새들이 날아들던 그곳에서 이대로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번의 발걸음으로 그곳에 풍경이 되고 싶었다. 섬진강변의 아름다움과 시골버스의 이런 정겨움이 김용택 시인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그대로 풍경이 되었을까. 아직은 아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있기에 시선 한번 던지고 다시 길을 나설것이다.

4.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가는거다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맥처럼 길게 늘어진 7번 국도는 어느 길보다 아름답다. 차를 때릴듯 달려드는 파도, 산속을 달리다 갑자기 맞이하는 드넓은 바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냥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인다고할까. 절로 와~ 하고 탄성이 나온다. 수많은 솔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로운 바람과 파도가 던져주는 짤짜름한 바람의 어울림. 그것이 7번 국도의 생명인지도 모른다. 작년과 올해 여름휴가는 모두 7번 국도를 달렸다. 확장공사의 진행 사항을 보니 내년에는 길의 모습이 바뀔것 같다. 그러나 서글퍼하지 말자. 어차피 길도 사람과 같아서 또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가는거다.

5. 가보지 못한 길

너무 가보고 싶었으나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송도와 수원을 연결하던 협궤열차이다. 95년 12월 31일 영원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도 가보지 못할 길이 되고 말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학교 시화전마다 빠지지 않는 소재로 등장하던 풍경이 소래포구의 두량짜리 협궤열차였다.  갯내음과 추억을 싣고 달린다던 협궤열차. 얼마전 소래포구의 철길을 보러갔지만 너무 많은 인파속에서 두량짜리의 협궤열차 풍경을 상상하기란 힘들었다.

길을 사랑하려면 길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수줍은 야생화와 작은 짐승과 돌멩이처럼 그냥 우리도 선 자세로 굳어버려 풍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길 위에서 똑똑 노크를 해볼 일이다. 그러면 수줍은 듯이 열리는 그들의 세상을 만날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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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4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4-09-0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발자국따라 저도 지금 이 길에 찾아왔다는 거 아닙니까? 소래포구의 열차에서 만난 그 때의 그 잘생긴 남자가 님이셨군요...^^

잉크냄새 2004-09-0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가보지 못한 길 > 내용을 쓰면서 파란여우님은 분명 협궤열차를 타보셨으리라 생각했답니다.
갯내음에서 삶을 읽어내시는 님을 떠올려봅니다.^^

2004-09-05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네르바 2004-09-0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여행을 하시고 오셨나봐요.
저도 길을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지요. 걷는 것이든, 자동차로 달리는 것이든... 고속도로가 질주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면, 국도는 오래 보아주어야 할 도로...그래서 천천히 여기 저기 보아주어야 할 길 같아요. 그런데 님의 글을 읽으니 갑자기 기차 여행을 하고 싶어지네요.

작년 가을 춘천에 간 적이 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강원대도 다녀왔구요. 깊어가는 춘천의 가을은 참 쓸쓸하던데... 단풍이 든 경춘가도를 달리는 것도...제 마음이 그랬는지도 몰라요. 왜 깊어간다(기본형:깊다)는 형용사는 가을이라는 계절에만 어울릴까요? 봄이 깊어간다, 여름이 깊어간다, 겨울이 깊어간다-음.. 겨울은 조금 어울리는군요 그래도 가을이 가장 잘 어울리네요.(순간, 왜 이 단어가 생각났는지...)
수인선 협궤열차에 대해선 저도 오랫동안 동경만 했지, 실제로는 보지도 못했답니다.
<길을 사랑하려면 길 위에 군림해서는 안된다> 울림을 주는 글이네요. 저도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길을 떠나고 싶어지네요. 멋진 여행기에요.

잉크냄새 2004-09-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 손짓한다. 여름이 무르익다. 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이 저물어간다.
왠지 계절에도 점층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요. 올 가을 건강한 님의 모습으로 느끼는 가을 저도 전해듣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