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순구고(不順舅姑)거

남편이 장인장모에게 불효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재산의 반만 주고 내쫓을수 있다. 물론 남편이 자기 친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자기 집안 내력이다.

2. 무자(無子)거

남편 때문에 자식이 생기지 않으면 아내는 바람을 피워서 임신을 할 권리가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남편에 대해서는 그 아내가 재산의 반을 주고 내쫓을수 있다

3. 음행(淫行)거

아내는 남편의 허락없이도 체팅을 하거나 바람을 피울수 있으나 남편은 아내 몰래 체팅을 한다거나 방송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우다 들키면 그 아내는 재산의 반 중에서 위자료를 뺀 금액을 주고 내쫓을수 있다.
물론 옷은 홀라당 벗겨서 내 쫓는다 ㅋㅋㅋㅋ

4. 투(妬)거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핀다고 질투를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계속 질투를 할 경우 아내는 재산의 반을 주고 남편을 내쫓을수 있다. 물론 위자료같은건 주지 않아도 된다.

5. 악질(惡疾)거

음주 흡연등으로 건강을 해친 남편이 정력감퇴등으로 아내를 줄겁게 해주지 못할시에는 군말없이 재산의 반과 위자료와 살든 집을 아내에게 주고 나가야 한다.

6. 구설(口舌)거

여자는 수다스러운 것이 자연스러운것이나 남자는 말이 많으면 안됨으로 어떤경우에도 처가집 식구들 흉을 봐서는 안된다. 그런 남편은 아내로부터 재산의 반만을 받고 쫓겨나도 이의를 제기할수 없다.

7. 도(盜)거

아내는 남푠의 비상금을 뒤질 권리가 있으나 남자는 여자와 달리 손버릇이 나쁘면 안된다, 도벽이 있는 남편은 그 아내로부터 재산의 반을 받고 쫓겨나도 항의할수 없다.

*. 부칙
이 가족법은 호주제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함과 동시에 발효되고 남녀 역평등이 이루어져 정부조직내에 여성부가 폐지되고 남성부가 신설되면 자동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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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2-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칠거지악은 말도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 칠거지악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이건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 뿐이잖아..(여자의 입장이지만.)라고 생각을 했는데.. 옛날 우리나라의 여성분들은 이런 말도안되는 항목들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라는 것이 떠오르더군요...
요즘은 이런 것들은 사라졌으니^-^;(아직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잉크냄새 2004-02-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말이 안되는 항목입니다. 신칠거지악이라고 비꼬아 가부장적인 세태를 풍자하고 있지만 현실은 아직 이런 잔재가 사회 곳곳에 형태를 달리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거지요.

겨울 2004-02-0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크게 웃고 갑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나름대로 가부장적 가정에서 핍박을 받고 자라서인지 이런 것만 보면 가슴이 뻥 뚫립니다.

waho 2004-02-0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고 갑니다. 이런 게 실제로 효력 발휘한다면 제대로 살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요?
 


알렉산드리아 - 파로스(Pharos) 등대 

BC 25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항구 부근의 작은섬 파로스에 세워진 등대로, 높이 솟아 있는 석조건조물의 정상부분에 불을 태우는 장치가 있으며, 렌즈나 거울이 쓰였다고도 한다.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나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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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파로스의 등대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군요. 세계7대 불가사의라고 하지만, 역시 그리스로마, 이집트 쪽에 많이 치우쳐있어서, 지금은 많이 바뀐거 같네요. 저 유적들이 다 보존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잉크냄새 2004-02-0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라미드가 외계인의 흔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끔은 이런 불가사의들이 인간의 작품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전출처 : icaru > 발자국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분주하게 오가던 때가 있었지.

바쁜 게 좋은 걸까? 다시 바빠져야 할까?

아.....

아무리 바빠진들 삶의 짐은 가벼워지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한곳에만 지독히 머물러 있는 듯한  내가  참 무겁다...

 

 

 

사진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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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0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어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이는 내 누이뿐만은 아니다. 젊음의 방황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그림이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러스 영묘(靈廟) - Mausoleum

BC 350년 무렵 소아시아의 페르시아인 총독 마우솔로스의 죽음에 즈음하여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건축하게 한 거대한 능묘이다.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 m, 높이 50 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역시 자료가 넘 부족하다ㅠㅠ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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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 한 것이다.

Rhodes항구의 크로이소스 거상(巨像) - Colossus
BC 3세기 무렵 소아시아 가까이에 있는 로도스섬에 세워진 청동으로 만든 큰 상으로, 태양신 헬리오스를 표현한 것이다.
거상(巨像)은 원래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불행히도 로도스 항구의 거상에 관해서는 자료가 너무 없다.... 

 - iresys님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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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름을 들어본듯도 하구 아닌듯도 하구...^^; 7번까지 다 읽어야되는데, 왜 이렇게 속도가 느린거죠 알라딘~~ 심장이 터질꺼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