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가 딱 하나 있다. 주소도 적혀있지 않고 우표도 붙어있지 않은, 아예 처음부터 우체국을 통해 전해질 운명이 아닌 그런 편지이다. 내가 직접 전해주기 위해 지갑속에서 근 반년을 보내다 결국은 자신의 본분을 잊은 편지이다.
고등학교 시절, 옆 여학교의 한 여학생을 짝사랑할때 쓴 편지이다. 이런 저런 책들을 총동원해 머리를 쥐어짠 흔적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 대히트를 기록한 홀로서기의 창백한 소녀가 그려진 편지지와 봉투에 심혈을 기울여 쓴 글씨체, 아마 숱하게 썼다가 찢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조르쥬 무스타키의 방랑한 음성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구절을 보면 뭐랄까, 그냥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조르쥬 무스타키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편지 한켠에는 가을 낙엽마냥 방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 시절 왜 그리 수줍고 용기가 없었던가! 결국은 대학진학과 함께 고향을 떠나면서 지갑이 아닌 상자에 담겨 어느날 문득 꺼내보는 추억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그 여학생에 대하여 묻곤 한다. 지금은 아기엄마가 되어있을 그녀이지만 우리 친구들의 가슴속에는 어리석은 친구 한놈이 열렬히 짝사랑한 여고생으로 영원히 기억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