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서른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에는, 혁명을 꿈꾸기에는 너무 늦은 / 그냥 그냥 묻어있기에는, 절망하기에는 너무 이른 / 그 사이에서 절뚝거리며 저기 서른들이 걸어간다."
이등병의 편지로 군입대전의 청춘의 눈시울을 붉게 물든인 김광석은 서른즈음에로 가뜩이나 서글픈 가슴을 울리곤 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십대 중반에 입사한 후로 한두살 많은 동기들의 서른을 이 노래로 놀려주곤 했었다. 그때 먼저 서른이 된 녀석들이 말하기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이 묘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십대에서 이십대로의 변화는 거의 들뜬 기분으로 반겼지만 이십대에서 삼십대로의 변화는 서글프다는 표현외에는 달리 말할길이 없었다.
이십대에 난 내 육신과 영혼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않았다. 곪아터져 고름이 흥건할지라도 시간이 나를 치유하리라 위로했다. 지친 영혼이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더라도 그것은 청춘의 특권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시간을 열정이라는 거짓된 포장으로 감싸안고 서른을 맞았다.
서른이 넘어서 스스로를 청춘이라 칭하여 본들 그 단어에는 이미 이십대의 싱긋한 푸르름이란 자취를 감춘 뒤였고, 세상을 향한 거친 반항에도 자기 방어적인 보호본능이 농후한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광석이 형의 서른즈음에를 안주삼아 기울인 술잔속으로도 서른은 깊이 잠수하지 않은채 술잔 곁을 쓴 소주맛으로 곁돌고 있었다. 어느 날 숙취에 잠이 깨어 옆을 바라보니 서른은 어느새 내 곁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서른은 다가왔다.
요즈음은 초반/중반/후반에 의미를 둔다. 아직 초반임에 감사하며 살 줄 아는 겸손(?)을 배우고 있다. 서른을 기점으로 아직 숨쉬고 있는 내 안의 청춘과 내 밖의 가혹한 현실 사이에서 비틀거릴지라도 나의 나이를 찾아가고 있다.
고로, 난 현재의 나의 나이를 사랑하고 책임지며 살고 있다. 청춘의 잔재들을 밑거름 삼아 나를 가꾸어 가고 있다. 인정하기 싫었던 나이 3 는 내 인생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