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공지사항에 금연규정이 올라왔다. 지정된 휴게실의 흡연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서 흡연 발각시 1차는 시말서요, 2차는 징계위원회 회부라고 한다. 몇년전 금연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이후로 금연규정에 관하여 몇차례 올라온 적은 있었다. 그 이후 사무실에서의 흡연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회의실과 화장실의 흡연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거기에 한몫했다. 하지만 이번건은 분위기가 심상찮다.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꽤나 고생할것 같다.
이제 흡연이 가능한 공간은 휴게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흡연실이다. 너구리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공간에 들어앉아 피우는 담배는 맛이 없다. 그렇다고 학생들처럼 화장실에서 몰래 피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애연가들의 주장처럼 담배피울 권리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금연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아직 시작은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담배와 관련된 일들이 살포시 떠오른다.
1. 어디서 담배연기는 남의 애을 끊나니
흡연자들이 담배를 가장 애타게 떠올리는 곳이 화장실이다. 이번 금연규정에서 화장실을 가장 크게 언급한것도 그런 이유이다. 엉터리 의학 상식인 담배 연기의 흐름과 대장운동의 연동작용이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흡연자들에게 담배는 휴지와 동일하다. 화장실에 들어앉아 휴지가 없을때의 황당함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흡연자들의 화장실 흡연욕구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성웅 이순신조차도 그런 욕구를 시조로 남겼다고 한다. 몇백년의 세월을 초월하여 애연가들의 가장 선호하는 시조로 자리잡았다.이 시조는 한산대첩을 하루 앞두고 변비에 걸려 찾아간 화장실에서 애타게 읊조리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수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변기에 홀로 앉아
큰 신문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담배연기는 남의 애를 끊나니
2. 식후연초는 불로초라
화장실의 흡연 욕구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 식후에 피우는 담배이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엉터리 의학이 담배 연기와 소화 촉진제 분비의 상관관계이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후식정도라고나 할까. 국없이 밥을 먹은 경우나 식사후 이를 닦지 않은 기분을 상상하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
불로장생을 애타게 원했던 진시황이 마지막에 사용한 방법이 식후연초라는 얼토당토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김삿갓 또한 방랑시절 십여차례 찾은 금강산에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통제에 의하여 뒷부분이 삭제된 명언을 소개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요
식후연초는 불로초라
3.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참을 인자 석자면 살인도 면한다고 한다. 붓과 벼루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을 인자 석자의 노릇을 하는 것이 담배이다. 담배를 피우는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문제를 돌이켜보고 흥분한 마음을 추스릴수 있는 것이다. 내뿜은 담배연기에 내부에 들어앉은 불만의 덩어리들을 그렇게 날려보내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그 곳에서 친구처럼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담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픔도 서글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어차피 담배연기처럼 허망한 것임을 후우~ 하고 품어내곤 했다. 나쁜 친구라고 표현해도 좋을것이다. 가끔은 기대어 울수 있는 어깨를 대신해주곤 했으니까. 그래서 아마 나에게는 이것이 금연의 가장 큰 적일것이다.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이다. 그의 호를 꽁초라고 잘못 알고 참 지독한 애연가인가 보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 문학가들이 지독한 애연가인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들도 담배에서 허망하고도 작은 행복을 떠올렸을까. 여기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의 작은 행복을 한구절 올린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9월 1일부터 단속이 시작된다. 추잡스럽게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에 금연을 다시 시도하고자 한다. 금단 증상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나 오랫동안 사귀던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는 기분이 든다. 나쁜 친구지만 그래도 어렵고 힘든 시절을 같이 걸어온 그림자같은 친구, 이제는 안녕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