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공들여 힘들여 말씀하시다가...
중간중간 목소리가 떨리고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시더군요.

발표문은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모든걸 다 솔직히 인정했고...
더 이상이랄 수 없을만큼 몸을 낮추고 모든걸 버린 고백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과학과 윤리는 인류를 이끌어온 두 개의 수레바퀴이다. 앞서나가는 과학을 윤리가 미처 쫓아오지 못해 벌어진 혼란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더랬죠...

윤리..윤리...하는데 황교수 연구가 처음부터 윤리의 타겟이 된것은 사실 인간복제 가능성 때문 아니었던가요?

웬 난자가지고 갑자기 난리난리들 치는지...

그보다 비윤리적인 일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 아닌지???

어차피 절대적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삼척동자도 아는 세상에서
윤리는 사람들의 합의...."상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물론 생명과학법이니 과학자 커뮤니티의 윤리 규정을 포함 윤리의 embodiment인 법규 역시 중요한 것이고 지키라고 만들어놓은 것이지만...
매매에 의한 난자공급은 우리나라 생명과학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시행된 일이고
연구원의 난자제공 역시 사후에 알게된 일인걸...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고 소크라테스도 말씀하셨듯 "법"을 어겼으면 벌을 받아야 할거고 "규정"을 어겼으면 국제 과학계에서 배척을 당하실수도 있겠죠.
암튼 받을거 다 받고 다 털고 용기 잃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나가셨으면 합니다...

지분이 어떻고 특허가 어떻고 하지만 황교수님이 돈이나 명예를 쫓으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이런 순진한 믿음마져도 개박살을 내야 속이 시원한 인간들도 꼭 있죠.)

또 돈을 쫓으면 또 어때서요???? 돈을 안쫓고 보상을 안바라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여하간의 이유로 난자를 제공한 여성들이 그 대가를 받는 것이나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보이고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던 프로젝트의 초기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병원 이사장이 특허의 지분을 받는 것이나
그걸 가지고 딴지거는 인간들은 내킨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휘젓고 흠집내고 다니면서 그 대가로 잘난 회사에서 월급은 안받는지 물어보고 싶더군요.

(전 모 프로그램을 봤는데...폭로니 뭐니 그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멘트 하나하나가 수준 이하에 명백하게 "의도"를 가지고 흠집내는 방향으로 나가는데다가 전반적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더군요.)

너무 흥분했습니다. 황우석박사님 부디 지금 시련 이겨내시고 보란듯 다시 일어서셔요...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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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5-11-2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 짝! 짝! (박수소리) ^ ^

야클 2005-11-2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태우스 2005-12-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싸이언스 논문이 조작 의혹을 받는거군요!
 

아이들과 점심을 먹는데 장래희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큰 아이 수형이는 과학자가 될거라고 하고 작은 아이 소민이는 의사가 될거라며 어느 직업이 더 좋은지를 놓고 둘이서 설전을 벌였다. (참고로 큰 놈 일곱살 작은 뇬 다섯살)

둘이 뭐라뭐라뭐라 떠들더니 나에게 심판질을 요청했다. "엄마, 의사랑 과학자랑 뭐가 더 좋아요?"

난 원만하게 두 직업을 화해시켜주고자..."의사도 과학자나 마찬가지야. 사람 몸이랑 병을 연구하는 과학자."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수형 said...."에이.......목에서 가시빼는건 별로 어렵지 않을거 같은데? 그게 무슨 과학이예요?"

(ㅋㅋㅋ 애들아빠가 이빈후과인데 생선먹을떄마다 하도 가시조심 가시조심 잔소리를 해서 수형이 머리에는 "의사=가시빼는 사람"으로 각인된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거 같아서 나름대로 의사라는 직업의 훌륭한 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다시 수형이....

"난 그래도 의사 되기 싫어. 환자가 입 쩍 벌리면 입냄새날거 같아!"

난 속으로 박장대소했다. 과연 너는 내 아들이다. 욘석아!!!!

쿤데라의 불멸에서...아녜스가.....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더라도 만일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그의 콧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면....(이었던가...아무튼 그의 코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와 함께하기를 포기하겠노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

쿤데라가 편애한 여주인공들은......"몸"과 화해하지 못하고....자신의 몸이든 타인의 몸이든...... "몸"을 당혹스럽고 때론 혐오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마주했다.

아녜스는 죽은 뒤 육체를 남기고 떠나는 세상, 우연과 몰개성의 집약으로서의 얼굴을 혐오했고....몸과 자아와의 어색하고 부조리한 동거관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순간으로 섹스를 탐닉했다.

테레사에게 몸은 어머니의 세계였고 토마스의 정부들의 세계였고 그녀의 영혼을 꽁꽁 가둔 감옥이었고.....그녀는 그 몸의 세계에 대한 일종의 반항 내지는 결전의 심정으로 낯선 남자와의 성적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들은 영혼이니 정신이니 하는 공중누각을 쌓아올렸던 심신이원론적 사상의 희생물들이었을까?

글쎄......

나는 마음이 몸의 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치의 여지도 없이 굳게 믿는 사람이지만...그렇다고 해서 몸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거나 "나의 몸=나"라는 공식에 더 익숙해지지는 않더라....

나는.....

몸이 주는 기쁨(오르가즘? runner's high?? 온천욕????...일단...몸땡이를 움직여서 얻는 기쁨에 한정하자. 시각, 청각, 미각 등등은 빼고...)보다 몸이 주는 고통(웬갖 잔병치레..통증들...공포의 체육시간...)에 더 민감하고

몸의 아름다움(어리고 젊고 탐스러운 몸들....)이 몸의 추함(늙고 추하고 냄새나는 몸들...그리고 뭣보다 죽은 몸.....게다가....당혹스러운 몸의 내부는 어떻고...)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몸들은 추한 상태로 귀결된다.)

엄밀하게 말해서.....지금 이런 생각하는 바로 이 주체가...단지 이 몸뚱아리의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이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는 멍청하고 요령부득이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제 주인을 마구 씹어대며 한 평생 갈 것이다...아마....

이런저런 이유를 붙였지만 몸에 대한 태도는 아마 기질적인 듯 하다.

수형이가 나를 닮았다면 아마....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녀석을 핑계로 난다긴다하는 수학학원 설명회들은 빠짐없이 찾아다니고 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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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ㅋㅋㅋ 이 글 너무 재밌어요. ^^

이네파벨 2007-10-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넘 오래되어 저도 낯선 글을...
(아들녀석 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2년은 됐네요..)
바쁘신 딸기님이 누추한 제 서재의 먼지나는 구석의 글까지 뒤적여 읽어주시다니...
그저 영광입니다요~ *^^*

딸기 2007-10-04 13:17   좋아요 0 | URL
ㅋㅋ 영광이라니요 저 이런 짓 잘해요, 남의 집 가서 속속들이 뒤지고 노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부자도 되고 날씬해지고 하루 48시간으로 효율적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성취하고 보람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 못할 일이 없을거라고..

얼마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일도 무쟈게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줄이고...

돈도 스쿠루지가 울고 갈 정도로 이것저것 사고픈 유혹을 잘 견뎌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일까?

지독한 몸살이다. 

몸살의 전주곡으로 컨디션과 기분이 너무너무 나빠져서 토욜날 애들델꼬 나가서 지갑 열어놓고 지름신을 온몸으로 영접했다. 모처럼 간만에 비싼 외식도 시켜주고...(하지만 맛이 더럽게 없더라...이미 입맛이 달아났으니) 옷도 내꺼 가족꺼 지르고...그동안 애들도 제대로 안먹이며 돈 아낀걸 보상하고자 식품 매장에서도 카트가 미어져라 장보고 카드를 벅벅 긋고 돌아왔다.

그리고나서 일요일날은 몸이 너무 아파서 애들과 남편만 내보내고 집에서 끙끙 앓았다.

그리고 주말 내내 엄청 먹어댔다. 그동안 안먹어서 허해서 병이난게야...먹고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머 그런 심정으로...

지금도 점심 잔뜩 먹고 허쉬 아몬드 초콜렛 커다란거 하나를 혼자서 다 처먹으며 이걸 쓰고 있다.

차.라.리. 아무런 결심을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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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절기마다 기침을 하면 시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아가 뭐 먹고싶냐? 못 먹어서 기침난다." 어서 맛 난것 사 먹으라던...
고향이 이북이라 피난살이 할때 못 드셔서 한 이 맺혔다며 하시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이네파벨 2005-11-1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따뜻하신 시어머님이시네요...

그나저나 아플때마다 첫째로 중요한건 건강, 둘째로 중요한 것도 건강, 셋째로 중요한 것도 건강...(나와 가족...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건강...건강..건강...)이라는걸 깨달아요.

정말 건강이 없으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죠.

그동안 잠줄여 일하고 먹는거 줄여 다요트하고 운동도 안하고 그러느라...몸에 과부하가 걸렸었나봐요....아픈 동안 잠시 pamper myself하고...(먹고픈거나 마구 먹고..) 다시 일어나면 매일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신경쓰고 그러려구요.

따개비님도 건강하세요!

2005-11-14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파벨 2005-11-1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분, 따뜻하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리운 시간들이 되겠죠...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이리스 2005-11-2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결심따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외쳤던 기억이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댓글 한자락 올리고 가요~
힘내세요! *^^*

이네파벨 2005-1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감사합니다!
감기 떨쳐냈어요. 이제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뎅....게름피고 있네요.
시지프스처럼...다시 바위를 밀어올려야겠죠. 또 굴러 떨어지더라도 말예요.
추운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바닷가의 별장, 펜션 비슷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아마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던 것 같은 분위기이다.
발코니에서 보면 마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또 반대쪽 현관을 나서면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욱한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을 마주하게 되는 자못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집이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변해서 솟구치더니 어느 쪽으론가 빨려가듯 이동해버렸다. 일종의 용오름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물기둥을 형성하면서 쭉 빨려올라간 것은 아니고 바다의 거대한 한 구획의 물이 철~썩 하고 일어나 다른 구획으로 옮겨가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용오름 이상으로 신비스럽고 멋진 장관이었다.

엄청난 덩어리의 물이 사라지고 난 구획에는 여기저기 작은 물웅덩이만 남아있었다.
물웅덩이에 검은 잉어같이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 중 일부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모래에서 딩굴더니 그만 거대한 바다사자 비슷한 동물로 변신했다. 곧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는 바다사자 같은 동물들이 잔뜩 뛰어 놀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바다사자들을 잡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식칼같은 걸로 바다사자의 뒷통수를 재빨리 찔러서 죽이더니 끌고 갔다. 나는 육중하고 천진난만한 동물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피튀기는 살육의 현장으로 급변하는 광경에 경악해서 벌벌 떨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에게 뭐라뭐라 말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이 부분의 기억은 벌써 흐릿해졌다.) 환경보호기관같은데 전화를 해서 저 불법적 도살을 신고해야 하는데...고립된 섬 같은 집에서 내가 신고하면 뻔히 누가 했는지 알 것이고 그럼 저 식칼 든 살육자들이 나에게 해꼬지를 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 집은 꿈의 앞부분에서는 작은 별장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덧 제법 커다란 호텔 내지는 콘도 같은걸로 뒤바뀌어 있었다. 건물 안을 이리저리 헤매는데 조금 아까 바닷가에서 잡았던 바다사자의 고기를 매대같은데 놓고 무게를 달아 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끔찍하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바다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고기 덩어리같이 느껴졌다. (먹고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 * *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별 얘기거리랄 것도 없는 꿈이다. 달콤한 사랑 얘기도 아니고 그리운 사람이 등장하거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가 펼쳐지는 드라마도 아니고....

하지만 이 꿈이 마음에 남은 것은 꿈속의 감각적(특히 시각적) 경험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잔잔하던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돌변해 순식간에 이동해버리던 그 광경....
꿈틀거리던 물고기가 점점 커져서 바다사자로 변신하던 광경....
눈앞에서 벌어지던 살육의 공포...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건 꿈이 한참 진행되던 순간에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대서 잠에서 깬 바람에 꿈의 한 토막이나마 온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통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을 안 꾸는게 아니라....꿈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아마 수면 습관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잠이라는 검고 어두운 포장지에 완벽하게 밀봉되어 꿈이 조금도 새나올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좀 더 어릴 때....학창시절 시험 때라든가 새벽에 억지로 깨곤 했을 때 유난히 꿈을 잘 기억하곤 했다. 한 동안 일기장에 꿈 일지를 적기도 했다. 남루하고 지루한 현실보다 꿈의 잡힐 듯 말 듯한 기억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꿈을 꾸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꿈은 나의 삶에서 만나온 수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대상이다. 이 나이를 먹어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 같은건(음..잘 때 꾸는 꿈 말고 장래희망의 그 꿈..ㅡ,.ㅡ) 더 이상 꾸지 않지만 뭐가 못되어서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들도 차례로 다 접어버리고 휘발되어 버려 없지만...
유일하게 지금도 뼈저리게 부럽고 한이 남을 정도로 해보고픈게 있다면....꿈을 연구하는 일이다. 대리만족으로 일평생 꿈을 연구하고 그 분야에 일가를 쌓은 과학자의 책을 하나 번역할 귀중한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그 책은 여전히 나에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갈증과 동경만 부풀려주었다.

왜???? 그토록 꿈이 나를 매료하는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명해보겠다...하지만 나중에.....

꿈에 천착했던 사람들... 화가든(달리! 이 글의 제목도 물론 그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든, 과학자든...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과 공감을 느끼곤 하지만 프로이트는 예외이다. 그의 꿈 해석은 너무나 사변적이고 근거없음에도 너무나 독단적이고 심한 영향력을 행사해서....거의 적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라면 나의 꿈에 나오는 한 줌도 안되는 대상 속에서도 뭔가 망측한 상징들을 찾아내겠지만 (이 경우 너무나 obvious해서 세살 먹은 꼬마도 프로이트가 뭔 해석을 할 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세살은 뻥이고 열세살이면 충분 -)

꿈의 소재는 아마 최근 기억에서 빌어온 듯 하다. 일요일날 남당리에 대하 먹으러 갔었다.  그곳은 바닷물이 빠져나가 거무튀튀한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사실 그 갯벌이 멋지다거나 별다른 감흥을 준 것은 아닌데........오히려 집에 올 때 차에서 아이들 보라고 틀어준 <리틀베어> DVD에 father bear가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기억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만화영화는 정말 아름답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차분한 그림-사실 그림은 모리스 샌닥의 펜으로 그린 흑백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조금 어색하게 컬러로 살려낸 느낌이 들지만 보다보면 점점 정이 든다. 너무 장점이 많아서 단점이 눈에 안들어오게 되는 케이스....그리고 배경 음악이 쥑인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 그리고...바다사자의 살육은...얼마전 번역한 책에서...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바다사자인지 그 비슷한 동물을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 아닐지....

그리고...바다사자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서는 충격과 경악을 느끼고는.......돌아서서 죽인 짐승의 고기를 파는 장면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마주한 느낌이 드는 그 아이러니...너무나 현실적인 인간조건의 상징이 아닌지....

내가 번역한 책 중에서 각별히 애정을 느끼는 앨런 홉슨의 <꿈>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으면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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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5-11-08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nemuko 2005-11-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전 꿈과 기억을 자주 혼동하는 편이거든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도 그게 꿈속에서 들었던 말인지, 혹은 어제 저녁 누군가가 내게 건넨 말인지 구분이 잘 안되요. 한때는 제가 꾸는 꿈을 매일 기록하던 꿈 노트도 썼었답니다^^
조만간 꼭 구해볼께요..

이네파벨 2005-11-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전 해몽을 안 믿지만...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생각하는건 언제나 재미있어요. 꿈의 실용적 측면(해몽, 예시 등등)보다...그냥 꿈을 꾸는 그 경험 자체가 놀랍고 신비스러워요...아...할 얘기가 많지만 정리가 잘...

네무코님, 꿈 일지를 적으셨다니!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언제 기회 닿으면 도서관 같은데서 함 빌려 보세요. 사실 건조하고 학술적인 책이어서 꿈의 신비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책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네무코님이라면...(과학책 즐겨 읽으신다는걸 눈치챘지용~) 아마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stella.K 2005-11-1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일지를 쓰시는군요. 저도 이걸 한번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는...전 요즘 잘 생긴 남자들이 저를 쫓아다니는 꿈 꿔요. 특히 다니엘 헤니가 꿈에 나타났다는...그런 꿈은 뭘까요? <죽은 자는 말이없다>를 쓴 작가는 30년 간을 계속 꿈일기를 썼다는데요.^^
 

지난주 곰국 끓여먹고 작은 냄비로 하나 정도 남은거...
아침에 애들이 안먹겠다고 해서...(질릴만도 하쥐 ㅡ,.ㅡ)
생각나면 끓여두었다가 낼 신김치 우려낸거라도 넣고 사골우거지국 끓여야쥐...생각했다가..

암튼간에 오전 내내 꿈지럭거리다가
12시 다 되어갈 무렵 전광석화처럼 밀린일(이불개기, 아침설겆이, 청소 등등) 해치우고 애들이랑 햄버거 사먹으러 나갔다.

설겆이 할 무렵에 곰국 냄비에 불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길건너 Freshness Burger에서 햄버거랑 샌드위치랑 감자 튀김이랑 사이다를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널려있는 잡지도 들춰보며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애들 남긴거까지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곰국 냄비가 떠오른거시였다......

나: "얘들아, 어떡하지? 엄마가 까스불 안끄고 나온거 같아.."
아이들: (합창) 어떻게~ 어떻게~
소민: "119에 신고해요."
수형: "우리집 다 타버리면 새 집을 사야겠네요? 어쩌죠? 돈이 많이 들텐데?"

그 때부터 집까지 1km 남짓 거리를...애들 끌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아...뱃속에서 햄버거가 곤두선 느낌...ㅡ,.ㅡ)

소민이는 따라오기 힘들어 울먹울먹하다가...엘리베이터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얘들아, 너희는 집 안에 들어가지 말고 기다려. 유독가스가 있을지 모르니까."

하고서....

집 앞에서는 핸드백을 아무리 뒤져도 집 열쇠가 안보여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결국 청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ㅡ,.ㅡ)

문을 연 순간!!!!

갑자기 드라마같은데에서 기억상실증 걸렸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해내듯!!!
불현듯 기억의 한 조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이런 기억이었다.

수형 "엄마, 이 냄새 뭐예요? 지독해~"
나 "어엉 곰국이야. 점심으로 곰국에 밥말아먹자." (-> 놀려주려고 한 말. 이미 햄버거 사준다는 미끼로 집 청소 다 부려먹어놓고...)
수형 "시러시러...난 곰국이 정말 싫어요. 햄버거 먹을래~"
나 "엄마가 뭐라그랬지? 아프리카엔 먹을게 없어 굶어죽는 아이들도 많다고 뭐든 감사히 먹으랬지?"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누며 까스렌지 불을 끄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굳이 부엌으로 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까.스.불.을.껐.던.것.이.었.다.

아...........어떻게 그걸 까.....맣.....게.....잊어버릴 수 있지?

허탈....

허탈....

집이 홀랑 타버린거보다야 낫지만....

슬프다...

너....... 왜 이렇게 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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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 안 잠근 것 같아서 2시간 거리를 돌아왔던 기억이... ㅠㅠ
물론 잘 잠겨 있더군용.

부리 2005-10-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행동 중 패턴화가 되어버린 건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지요. 현관을 나설 때 열쇠를 잠군 일도 비슷한 예입니다. 나가다가 현관문 잠궜나를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건 그때문이구요, 그냥 잊어버리고 가던 길을 가는 게 현명한 길이지요^^ 물론 거리가 가깝다면 한번쯤 확인하는 것도 괜찮지만요. 근데 이 곰국은 현관문과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암튼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어요^^

이네파벨 2005-10-2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전 문 정도면...걍 무시해버릴수 있을만큼 대범한 성품인데...(쿨럭) 이번 건은 집을 태워먹을 초유의 사태인지라...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하더군요.
BTW, 제 서재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려요. ^_____^
부리님, 해피엔딩이어서 정말 다행이고 말고요~근데 엉덩이 춤이 너무너무 귀여워요.

딸기 2007-10-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녁때 먹은 국 남은 것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해놓고 절대로 -_- 안 넣는 버릇이 있어요. 어제도 집에 가보니깐 아까운 오뎅국이 쉬어서... ㅠ.ㅠ
근데 저는 대개 늘 그렇기 때문에(비서를 두고 살아야 하는 체질 ㅋㅋ) 그냥 제가 절 이해하고 수용하며 살아요. 푸하하

이네파벨 2007-10-0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딸기님 저도 그건 전문이었죠~
그런데 애들 좀 크니까...
국이고 뭐고 남아나지가 않더군요.
육개장도 한 솥 끓여도 두끼면 다 없어지구요..
저번에는 카레(한번 끓여 며칠씩 두고먹는 대표식품) 5~6인분을 만들었는데 남편도 없이 애들 둘이랑 저랑 한 끼에 다 먹어버리고 퍽 당황스럽던 기억도...
큰 놈이 대식가인데다가
저 역시.....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