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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 - 보통의 두뇌로 기억력 천재 되기 1년 프로젝트
조슈아 포어 지음, 류현 옮김 / 이순(웅진)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신문 서평에 났을 때부터 묘하게 끌렸던 이유는...예쁜 표지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삶의 이 굽이에서.........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때......"기억"이라는 것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화두이다.
원래 기억력이 좋지 않았지만 건망증이 심해져 거의 장애 수준에 근접한 나.
생활의 불편도 답답한 일이지만.......
가족들이 같이 경험한 일, 여행, 사건 등에 대해 나만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할 때는....존재론적 절망감마저 문득 들곤 한다.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
시어머니를 뵐 때마다 "기억"이라는 것이 사람의 인격과 존재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참으로 복합적인 감정이었지만....기억을 급격히 잃어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변해가시는 모습을 보면...그 어린아이같음에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연민과 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낯설고 서늘한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이 책이 아이들과 나의 삶에 직접 도움을 주는 기억의 비법을 잔뜩 제공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평생 지금까지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던 조금은 생뚱맞은 주제에 대한 책을....모처럼 얻은 자유시간(일과 일 사이의 휴식기)에 다른 책들 제쳐놓고 맨 처음으로 잡아들었다.
책에 대한 느낌은...
일단 재미있다.
저자가 우연히 기억술사들의 지력대회(엄청나게 긴 자리의 숫자, 무작위로 섞은 카드 한 벌, 시, 사람얼굴과 이름 따위를 누가 빨리 정확히 암기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경연,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를 취재하고 나서 대회에 참여했던 영국인 에드 쿡과 만나 개인적으로 그의 제자가 되어 1년 동안 그에게 지력 훈련을 받는다. 그 결과 그는 이듬해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고 거기에 자료 조사, 전문가 취재 등의 살을 붙여 이 책을 내놓아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일석이조, 일타이피..........
정말 영리한 저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1년간 훈련으로 누구나 챔피언쉽에 오르지는 못한다. (비록 미국 대회의 위상이 유럽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고 하지만.)돌같은 의지력과 엄격한 자기관리와 집중적 노력 없이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례가 바로 나.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책 읽는 여정의 즐거움은 덤이나 부록 같은거고 기억술이 나의 삶을 구원.........까지는 못해주더라도 유용한 도구 한두 개쯤 선물해줄거라는 기대가 충만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책에 등장한 기억술을 적용해서 암기한 것이라고는.........아무리 노력해도(과연?) 외워지지 않던 딸냄의 핸드펀번호 가운데 네 자리 (앞의 세 자리는 010이고 뒤의 네 자리는 남편번호와 같고...=,.=)뿐이다.
무작위적인 숫자가 외워지지 않을 경우 숫자를 문자로 (영어의 경우 알파벳, 우리말은......친절하게도 역주를 통해 소개해준 방법에 따르면 자음을 순서대로 1234...에 ㄱ ㄴ ㄷ ㄹ 식으로 붙여서) 치환하고 모음은 적당히 넣어서 말이 되게 해서 외우는 거다.
딸냄 핸펀 가운데 네 자리를 외우고 고무되어.....역시 죽어도 외워지지 않는 은행 계좌, 카드 번호 따위를 암기하려고 시도했으나...
ㅋㅋㅋ 무작위적인 자음에 적당한 모음을 붙여 말이 되게 단어나 문장 따위를 만드는 엄청나게 어렵고 복잡한 두뇌활동에 몰두하느니..........그냥 지금처럼 못외우는 채로 살다 죽쥐 머.............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에서 누누히 강조하는 기억술의 알파요 오메가는.......기억할 대상을 이미지화 시켜서 머릿속의 가상의 공간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리스시대 이래로 전해져온 기억술의 기초 중 기초라는데.........기억술 대회 등에 출전하는 지력 선수들은 모두 이 정형화된 방법을 이용해 암기를 한다.
예컨대 모든 카드를 "누가, 무엇을, 어떤어떤 행동을 한다"는 이미지로 치환해 저장하는 것이다. (주어, 목적어, 동사인 셈이겠지.)
이때 아주 기발하고 특이하고 재미있고 잊지 못할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유명인, 특이한(외설적이거나 코믹한) 행동 등을 동원해서....
그런 다음 무작위 카드를 읽으면서...각 카드의 주어, 목적어, 동사에 해당되는 것을 조합하여 세 장의 카드를 한 세트,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이미지를 저장할 공간)에 차례로 심어놓는 것이다.
그 결과..........이 책의 예쁜 표지와 같은....초현실주의적인 미학을 드러내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시각적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다.
기억술사들은 나중에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스캔해서 다시 카드로 치환해 답을 낸다.
일부러 해보지는 않았지만....역시 쉬운 일은 아닌듯 하다.
기억술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고 이 방법을 우리 삶에 적용하는 방법은.........기억할 것을 시각적 이미지로 만들어 자기만의 공간에 넣어두는 것이다.....(예컨대 장보기 목록의 아이템을 최대한 재미있는 이미지로 만들어 공간의 곳곳에 놓아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솔직히 그리 쉽지 않다.
저자도 나중에 에필로그에 말했듯.........기억술의 달인이 된 지금도........메모지와 연필이 있다면 메모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
실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이 책은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곱씹고 파고들게 한다.
현대 사회는 기억력을 경시한다.
문자 발명 이래로, 인쇄술 혁명에서 정보통신 혁명을 겪으면서.......인간의 뇌 이외의 외부저장 수단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한때 지식, 교양, 도덕의 함양과 전달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기억력"은 점점 쓸모없는 것 취급을 받게 되었다.
(미래지향적인 미국의 문화에서 이 현상은 더욱 심하다고. 그래서 지력대회 등도 유럽에서 휠씬 발달되었다고 한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주장하는 새로운 교육 흐름에 따라.........기억력은 지적 능력의 저급한 측면으로 폄훼되는 경향이 심화되어왔다.
이는 나같은(지적 능력 중 암기력이 유난히 떨어지는) 인간에게는 다행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나는 유달리 기억력이 나쁘고 암기도 못하지만...생활에는 불편을 겪어도 공부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던거 같다.
그런데....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미래지향적인 문화 속에서 과거와 역사에 대한 되새김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빛을 발하듯...
인간 지적 능력의 최첨단인(가장 늦게 진화되고 개발된) 고도의 추상화, 논리, 기호조작 능력으로 인간의 지적능력을 판가름하는 (쉽게 말해 수학 잘해야 대학 잘가는) 교육풍토 안에서 자라왔지만.....
살다보면.................보다 원시적이고 뿌리깊은 인간의 능력............기억력과 패턴인식, 직관 (이게 서로 통하는 능력이다. 이 책의 <전문가의 전문가> 챕터, 병아리 감별사 이야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이런 능력이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 더 많인 부분을 차지한다는걸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타고난 것도 크지만, 나도 이런 능력(기억, 직관)을 개발하고 싶다.
그나마 병아리 눈물만큼 갖고 있던 능력도 줄줄줄 새나가 물줄기가 말라붙을 거 같은 두려움에 더더욱........
이 책이 직접적인 해결의 열쇠를 주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억술이라는 실용적이고 자기계발적 주제에 저자 자신의 자전적 경험, 드라마를 곁들이고 풍부한 사색과 통찰을 양념으로 얹은 이 책은 뜻밖에 기분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일종의 <적용편>으로 토니 부잔의 마인드맵 관련 책을 주문했다. 사실 저자는 토니 부잔을 별로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자기계발 분야의 대가,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삶의 구루....이런 종류의.....카리스마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컬트적 아우라를 몰고다니는 인물들을......제대로 정신박힌 저널리스트라면(또 독자라면) 좋아할리가 없겠지. 그래도 헛소리와 과장을 걷어내고 얼마간 유용한 알맹이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