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별장, 펜션 비슷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아마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던 것 같은 분위기이다.
발코니에서 보면 마치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또 반대쪽 현관을 나서면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욱한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을 마주하게 되는 자못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아름다운 집이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더니....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변해서 솟구치더니 어느 쪽으론가 빨려가듯 이동해버렸다. 일종의 용오름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물기둥을 형성하면서 쭉 빨려올라간 것은 아니고 바다의 거대한 한 구획의 물이 철~썩 하고 일어나 다른 구획으로 옮겨가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용오름 이상으로 신비스럽고 멋진 장관이었다.

엄청난 덩어리의 물이 사라지고 난 구획에는 여기저기 작은 물웅덩이만 남아있었다.
물웅덩이에 검은 잉어같이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 물고기 중 일부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모래에서 딩굴더니 그만 거대한 바다사자 비슷한 동물로 변신했다. 곧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는 바다사자 같은 동물들이 잔뜩 뛰어 놀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바다사자들을 잡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식칼같은 걸로 바다사자의 뒷통수를 재빨리 찔러서 죽이더니 끌고 갔다. 나는 육중하고 천진난만한 동물들의 행복한 놀이터가 피튀기는 살육의 현장으로 급변하는 광경에 경악해서 벌벌 떨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에게 뭐라뭐라 말을 한 것 같기도 한데 이 부분의 기억은 벌써 흐릿해졌다.) 환경보호기관같은데 전화를 해서 저 불법적 도살을 신고해야 하는데...고립된 섬 같은 집에서 내가 신고하면 뻔히 누가 했는지 알 것이고 그럼 저 식칼 든 살육자들이 나에게 해꼬지를 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 집은 꿈의 앞부분에서는 작은 별장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덧 제법 커다란 호텔 내지는 콘도 같은걸로 뒤바뀌어 있었다. 건물 안을 이리저리 헤매는데 조금 아까 바닷가에서 잡았던 바다사자의 고기를 매대같은데 놓고 무게를 달아 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끔찍하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바다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고기 덩어리같이 느껴졌다. (먹고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 * *


구성 자체는 단순하고 별 얘기거리랄 것도 없는 꿈이다. 달콤한 사랑 얘기도 아니고 그리운 사람이 등장하거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가 펼쳐지는 드라마도 아니고....

하지만 이 꿈이 마음에 남은 것은 꿈속의 감각적(특히 시각적) 경험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다. 잔잔하던 바닷물이 거대한 파도로 돌변해 순식간에 이동해버리던 그 광경....
꿈틀거리던 물고기가 점점 커져서 바다사자로 변신하던 광경....
눈앞에서 벌어지던 살육의 공포...

그리고 뭣보다 중요한건 꿈이 한참 진행되던 순간에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대서 잠에서 깬 바람에 꿈의 한 토막이나마 온전히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통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을 안 꾸는게 아니라....꿈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아마 수면 습관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잠이라는 검고 어두운 포장지에 완벽하게 밀봉되어 꿈이 조금도 새나올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좀 더 어릴 때....학창시절 시험 때라든가 새벽에 억지로 깨곤 했을 때 유난히 꿈을 잘 기억하곤 했다. 한 동안 일기장에 꿈 일지를 적기도 했다. 남루하고 지루한 현실보다 꿈의 잡힐 듯 말 듯한 기억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꿈을 꾸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꿈은 나의 삶에서 만나온 수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대상이다. 이 나이를 먹어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 같은건(음..잘 때 꾸는 꿈 말고 장래희망의 그 꿈..ㅡ,.ㅡ) 더 이상 꾸지 않지만 뭐가 못되어서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생각들도 차례로 다 접어버리고 휘발되어 버려 없지만...
유일하게 지금도 뼈저리게 부럽고 한이 남을 정도로 해보고픈게 있다면....꿈을 연구하는 일이다. 대리만족으로 일평생 꿈을 연구하고 그 분야에 일가를 쌓은 과학자의 책을 하나 번역할 귀중한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그 책은 여전히 나에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갈증과 동경만 부풀려주었다.

왜???? 그토록 꿈이 나를 매료하는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명해보겠다...하지만 나중에.....

꿈에 천착했던 사람들... 화가든(달리! 이 글의 제목도 물론 그의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작가든, 과학자든...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과 공감을 느끼곤 하지만 프로이트는 예외이다. 그의 꿈 해석은 너무나 사변적이고 근거없음에도 너무나 독단적이고 심한 영향력을 행사해서....거의 적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라면 나의 꿈에 나오는 한 줌도 안되는 대상 속에서도 뭔가 망측한 상징들을 찾아내겠지만 (이 경우 너무나 obvious해서 세살 먹은 꼬마도 프로이트가 뭔 해석을 할 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세살은 뻥이고 열세살이면 충분 -)

꿈의 소재는 아마 최근 기억에서 빌어온 듯 하다. 일요일날 남당리에 대하 먹으러 갔었다.  그곳은 바닷물이 빠져나가 거무튀튀한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사실 그 갯벌이 멋지다거나 별다른 감흥을 준 것은 아닌데........오히려 집에 올 때 차에서 아이들 보라고 틀어준 <리틀베어> DVD에 father bear가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기억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만화영화는 정말 아름답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차분한 그림-사실 그림은 모리스 샌닥의 펜으로 그린 흑백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조금 어색하게 컬러로 살려낸 느낌이 들지만 보다보면 점점 정이 든다. 너무 장점이 많아서 단점이 눈에 안들어오게 되는 케이스....그리고 배경 음악이 쥑인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 그리고...바다사자의 살육은...얼마전 번역한 책에서...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바다사자인지 그 비슷한 동물을 몽둥이로 때려죽인다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 아닐지....

그리고...바다사자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서는 충격과 경악을 느끼고는.......돌아서서 죽인 짐승의 고기를 파는 장면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마주한 느낌이 드는 그 아이러니...너무나 현실적인 인간조건의 상징이 아닌지....

내가 번역한 책 중에서 각별히 애정을 느끼는 앨런 홉슨의 <꿈>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으면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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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5-11-08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nemuko 2005-11-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전 꿈과 기억을 자주 혼동하는 편이거든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도 그게 꿈속에서 들었던 말인지, 혹은 어제 저녁 누군가가 내게 건넨 말인지 구분이 잘 안되요. 한때는 제가 꾸는 꿈을 매일 기록하던 꿈 노트도 썼었답니다^^
조만간 꼭 구해볼께요..

이네파벨 2005-11-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님, 전 해몽을 안 믿지만...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생각하는건 언제나 재미있어요. 꿈의 실용적 측면(해몽, 예시 등등)보다...그냥 꿈을 꾸는 그 경험 자체가 놀랍고 신비스러워요...아...할 얘기가 많지만 정리가 잘...

네무코님, 꿈 일지를 적으셨다니!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언제 기회 닿으면 도서관 같은데서 함 빌려 보세요. 사실 건조하고 학술적인 책이어서 꿈의 신비감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책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네무코님이라면...(과학책 즐겨 읽으신다는걸 눈치챘지용~) 아마 재밌게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stella.K 2005-11-1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일지를 쓰시는군요. 저도 이걸 한번해 볼까 생각 중이었다는...전 요즘 잘 생긴 남자들이 저를 쫓아다니는 꿈 꿔요. 특히 다니엘 헤니가 꿈에 나타났다는...그런 꿈은 뭘까요? <죽은 자는 말이없다>를 쓴 작가는 30년 간을 계속 꿈일기를 썼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