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점심을 먹는데 장래희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큰 아이 수형이는 과학자가 될거라고 하고 작은 아이 소민이는 의사가 될거라며 어느 직업이 더 좋은지를 놓고 둘이서 설전을 벌였다. (참고로 큰 놈 일곱살 작은 뇬 다섯살)

둘이 뭐라뭐라뭐라 떠들더니 나에게 심판질을 요청했다. "엄마, 의사랑 과학자랑 뭐가 더 좋아요?"

난 원만하게 두 직업을 화해시켜주고자..."의사도 과학자나 마찬가지야. 사람 몸이랑 병을 연구하는 과학자."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수형 said...."에이.......목에서 가시빼는건 별로 어렵지 않을거 같은데? 그게 무슨 과학이예요?"

(ㅋㅋㅋ 애들아빠가 이빈후과인데 생선먹을떄마다 하도 가시조심 가시조심 잔소리를 해서 수형이 머리에는 "의사=가시빼는 사람"으로 각인된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시각이 너무나 왜곡되어 있는거 같아서 나름대로 의사라는 직업의 훌륭한 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다시 수형이....

"난 그래도 의사 되기 싫어. 환자가 입 쩍 벌리면 입냄새날거 같아!"

난 속으로 박장대소했다. 과연 너는 내 아들이다. 욘석아!!!!

쿤데라의 불멸에서...아녜스가.....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더라도 만일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그의 콧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면....(이었던가...아무튼 그의 코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와 함께하기를 포기하겠노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

쿤데라가 편애한 여주인공들은......"몸"과 화해하지 못하고....자신의 몸이든 타인의 몸이든...... "몸"을 당혹스럽고 때론 혐오스러운 느낌을 가지고 마주했다.

아녜스는 죽은 뒤 육체를 남기고 떠나는 세상, 우연과 몰개성의 집약으로서의 얼굴을 혐오했고....몸과 자아와의 어색하고 부조리한 동거관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순간으로 섹스를 탐닉했다.

테레사에게 몸은 어머니의 세계였고 토마스의 정부들의 세계였고 그녀의 영혼을 꽁꽁 가둔 감옥이었고.....그녀는 그 몸의 세계에 대한 일종의 반항 내지는 결전의 심정으로 낯선 남자와의 성적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들은 영혼이니 정신이니 하는 공중누각을 쌓아올렸던 심신이원론적 사상의 희생물들이었을까?

글쎄......

나는 마음이 몸의 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치의 여지도 없이 굳게 믿는 사람이지만...그렇다고 해서 몸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거나 "나의 몸=나"라는 공식에 더 익숙해지지는 않더라....

나는.....

몸이 주는 기쁨(오르가즘? runner's high?? 온천욕????...일단...몸땡이를 움직여서 얻는 기쁨에 한정하자. 시각, 청각, 미각 등등은 빼고...)보다 몸이 주는 고통(웬갖 잔병치레..통증들...공포의 체육시간...)에 더 민감하고

몸의 아름다움(어리고 젊고 탐스러운 몸들....)이 몸의 추함(늙고 추하고 냄새나는 몸들...그리고 뭣보다 죽은 몸.....게다가....당혹스러운 몸의 내부는 어떻고...)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몸들은 추한 상태로 귀결된다.)

엄밀하게 말해서.....지금 이런 생각하는 바로 이 주체가...단지 이 몸뚱아리의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더라도...이 시종이고, 그림자이고, 부록에 지나지 않는 무언가는 멍청하고 요령부득이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제 주인을 마구 씹어대며 한 평생 갈 것이다...아마....

이런저런 이유를 붙였지만 몸에 대한 태도는 아마 기질적인 듯 하다.

수형이가 나를 닮았다면 아마....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녀석을 핑계로 난다긴다하는 수학학원 설명회들은 빠짐없이 찾아다니고 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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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0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냄새도 몸냄새도 전혀 날 리 없는....고도로 추상적인 세계에서 참된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ㅋㅋㅋ 이 글 너무 재밌어요. ^^

이네파벨 2007-10-0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넘 오래되어 저도 낯선 글을...
(아들녀석 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2년은 됐네요..)
바쁘신 딸기님이 누추한 제 서재의 먼지나는 구석의 글까지 뒤적여 읽어주시다니...
그저 영광입니다요~ *^^*

딸기 2007-10-04 13:17   좋아요 0 | URL
ㅋㅋ 영광이라니요 저 이런 짓 잘해요, 남의 집 가서 속속들이 뒤지고 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