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보아야 할 전시인데...그동안 벼르고 미뤘다가...

고마우신 분의 티켓 선물에...큰 아이 학교 숙제 (놀토 현장학습 보고서쓰기..주제는 자유..)를 핑계로...하던 일도 미뤄놓고 애들 양손에 잡고 길을 나섰다. 눈오고 비오고 바람 엄청 부는 궃은 날씨에 우산 들고, 애들 우비까지 가방에 넣어서....내심 날씨가 이모냥이니 관람객이 좀 적겠지...하는 기대를 가지고 미술관을 향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나의 기대는 곧 무너졌지만.....전시회 내용 자체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꽤 있었고...그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이 전혀 질적으로 떨어지거나 그저그런 것이 아니라....오히려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졌다는 점......

그동안 화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했던 그림들도 실물을 보니............새삼.........감동스럽고 더 큰 호소력을 느꼈다는 점.....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그리트의 삶의 역사...작품 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1940년대 초의 외도....에 가까운 화풍의 실험이 재미있었다.  마그리트는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도 썩 잘 그려냈고 약간 냉소적으로 그린 야수파적 그림들도 선보였고...연도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큐비즘의 공식대로 그려낸 작품도 하나 있었다- 그 어느 것이든..참...잘~ 그렸다. 마치 나는 맘먹으면 이런 식의 그림도 저런 식의 그림도 얼마든지 그려낼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

그런 것들이 전시회 관람에서 나의 기대를 뛰어넘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실 나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화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나 애정은 없었다. 그냥...그림을 참...잘 그리는 화가구나...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고......사람들에게 작은 충격을 선물해주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고....자신의 작품세계...테마를 집요하게 가꾸어나가고 완성해나가는 의지와 노련함을 가진 화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과연 그는 거장이고...오늘 전시회를 보면서...나는 그를 "천재"였다고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마그리트의 세계로 안내해준 또 하나의 "천재"가 자꾸만 마음에 떠올랐다. 그 사람은 "살바도르 달리"이다. 내가 초현실주의 미술에 어마어마한 관심과 애정을 느낀 것도.....미술 전반에 관심과 애정을 느낀 것도...따지고보면 모두 달리와의 첫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달리와의 첫 만남.......중학교 1학년 미술책에 실린 손바닥 반의 반만한 "기억의 고착"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느낀 충격......홀린 듯한 느낌....갑자기 그동안 알지 못했고 상상도 못했던 신비한 세계의 문이 잠깐 열렸다 닫혀서 짧은 순간 그 너머를 흘낏 바라볼 기회를 얻은 듯한 느낌........일단 그런 느낌을 맛보고 난 후......그 문 너머 세계에 대해 느끼는 엄청난 갈증...욕구......

왜? 왜 그토록 달리의 그림에 매혹되었을까...........나 자신에게 묻는다면...그냥....뭔가...그와 나 사이에 주파수가 맞았기 때문이라고밖에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 무렵 (그리고 그 후 내내) 나는 꿈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꿈의 세계...무의식의 세계를 포착해서 현실의 화폭에 표현해내는데 있어서 달리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가의 솜씨를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달리가 그토록 꿈의 세계를 잘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은...그의 천재성이 물론 더 큰 몫을 했겠지만...그가 말 그대로 "꿈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책에선가...달리가 잠이 들 무렵 어지럽고 기괴하며 생생한 꿈이 시작될 때-hypnagogic hallucination- 스스로 잠을 깨워서 꿈에서 본 이미지를 그렸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중심적 기법인 automatism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달리에게 마치 번개라도 맞은것 같은 사랑을 느낀 것은........

어쩌면 그냥 내 인생에서 참으로 적절할 때 그를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13살 무렵....예술적, 심미적 자극이라고는 거~~~의 전~~~혀 받아본 일이 없는 순백의 설원과 같은 경험의 빈곤상태..........그 때 만난 "아름다운 것들"은............이를테면 비틀즈의 음악, 카뮈의 소설과 에세이, 심금을 울린 영화들은...........얼마나...얼마나...상상을 초월할만큼 아름다웠던가................

그런 의미에서...콩알만한 녀석들을 데리고 이런 미술관에 다니는게 잘 하는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미적 감각이 좀 더 발달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문화적 지식이야 좀 더 풍부해지겠지만......아주 어릴때부터 이런 자극에...이런 귀하디 귀한 보물에 서슴없이 노출되다보면...모든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지는 않을지...무뎌지지는 않을지...귀한줄 모르게 되지는 않을지....뭐가 진정 나와 주파수가 맞는지.....헷갈리게 되지는 않을지...

하다못해.....13살의 엄마가 느꼈던...번개처럼 찌릿찌릿한 그런 충격을 맛볼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건 아닐지...................................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번개맞는 것같은 경험...심미적 epiphany의 경험은.........그 이전의 모든 빈곤과 결핍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멋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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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번역가의 괴로움

한겨레의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번역가의 괴로움'이란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 자체가 최근에 문제된 '대리번역' 파문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건 칼럼을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가브리엘 마르케스 전문 번역가로 유명하다는(아마도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에도 일조했을 듯싶다) 그레고리 라바사를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다.

 

 

 

 

<백년의 고독> 혹은 <백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의 그의 작품이라는데(국내에도 여러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마시멜로보다는 라바사에 흥미를 느껴서 몇 가지 검색을 해보았다. 한겨레의 칼럼과 함께 재작년 뉴욕타임즈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0. 24) 번역가의 괴로움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의 대리번역 또는 이중번역 논란으로 모처럼 번역가들한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덕분에 번역가들의 어려운 처지도 약간 드러났으나, 아무래도 나쁜 인상이 더 클 것 같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번역가들이 주목받는 건 흔히 부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서다. 독자들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고 느낄 때나 ‘도대체 누가 번역했어’ 하며 이름을 확인하는 게 보통이다. 번역의 어려움을 알 만한 학자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원전을 강조하고 번역서와 번역가를 낮춰보는 경향이 꽤 있다.

하지만 훌륭한 번역가가 문화에 이바지하는 바는 셈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점은 미국의 유명 번역가 그레고리 라바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22년 쿠바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초부터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쓰는 작가 약 30명의 작품 60권 정도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미 문학이 이렇게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70년에 번역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은 또하나의 훌륭한 창작품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 말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라바사에게도 번역은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책 전체를 미리 읽지 않고 읽어가면서 번역하기로 유명한 그는 지난해 쓴 회고록 <이것이 반역이라면>에서 번역을 모순적으로 규정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저 ‘단어들을 따라가기’로 묘사하다가, 다른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선택에 근거한’ 아주 주관적인 작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번역은 미묘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독자들이 이런 어려움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잡을 때 ‘이름 없는 봉사자’인 그들을 한번 생각해주는 정도의 관심은 필요할 것이다.(신기섭 논설위원)

A Translator's Long Journey, Page by Page

By ANDREW BAST

Published: May 25, 2004

On Gregory Rabassa's crowded bookshelves is a first edition of "Rayuela," the experimental 1963 novel by the Argentine novelist Julio Cortázar. Mr. Rabassa had just finished his Ph.D. in Portuguese in the mid-1960's when an editor at Pantheon — who had noticed his work editing a failed literary magazine at Columbia University — asked him to translate Mr. Cortázar's book from Spanish into English. Without having read what has been called a "fiendishly esoteric" novel, Mr. Rabassa sat down and typed a draft in English, word by word. In 1967 Mr. Rabassa's work, titled "Hopscotch" in English, won the first National Book Award for translation.

"I've got 50 of them behind me," Mr. Rabassa said, reflecting in the Upper East Side apartment he shares with his wife, Clementine. He has a slight build and white hair that he wears like a crown. He is surrounded by novels written by literary giants like Jorge Amado, Mario Vargas Llosa, José Lezama Lima and Gabriel García Márquez, the original Spanish or Portuguese edition beside his published English translation.

Now, at 82, Mr. Rabassa is finally going to publish his own first full-length book, "If This Be Treason: Translation and Its Dyscontents," a playful reflection on his life's work that New Directions is planning to bring out next spring.

"My thesis in the book is that translation is impossible," Mr. Rabassa said. "People expect reproduction, but you can't turn a baby chick into a duckling. The best you can do is get close to it."

If that is true, then Mr. Rabassa has gotten about as close as one can. He is widely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practitioners of his craft. "Rabassa's great gift is to find the music in English that is true to the language of a wide range of writers in Spanish," said Dan Simon, the founder of Seven Stories Press, which has published some of Mr. Rabassa's translations. "Had Rabassa become a diplomat or brain surgeon, we could easily imagine not having readable translations of Cortázar and García Márquez."

Yet for all the accolades, translation is still a difficult and poorly understood art. Often the translator's name will not even appear on the cover of the book, Mr. Simon said, yet "a poor translation of a text kills it in the market."

Walter Benjamin, the German literary critic, once wrote, "No translation would be possible if in its ultimate essence it strove for likeness to the original."

Mr. García Márquez has said that Mr. Rabassa read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sat down and then rewrote it in English. (He also said that Mr. Rabassa's translation improved on the original.)

But Mr. Rabassa contends that rewriting is not at all what he does: "I'm reading the Spanish, but mostly I'm reading it in English, and it comes out that way.

"When I talk about it, I say the English is hiding behind his Spanish. That's what a good translation is: you have to think if García Márquez had been born speaking English, that's how a translation should sound."

In the case of Cortázar, Mr. Rabassa developed a relationship with him, and they became good friends, spending days and nights listening to 78's of Count Basie and Lester Young. Mr. Rabassa translated Luis Rafael Sánchez and lounged with him on the beaches of Puerto Rico. And after translating "Seven Serpents and Seven Moons" by Demetrio Aguilera-Malta, a former Ecuadorian ambassador to Mexico, he ended up with one of the author's paintings hanging on his apartment wall.

Yet Mr. Rabassa has also produced brilliant translations without developing any relationship with the author. Jorge Armado and Mr. García Márquez wanted nothing to do with their books in English.

Mr. Rabassa said he typed his translation of Mr. García Márquez's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page by page, just as he did with Cortázar's novel. Yet unlike his blind excursion with "Hopscotch," Mr. Rabassa had already read Mr. García Márquez's magical epic about the Buendía family, before he tried the translation. "I knew it was a damn good book, but it wasn't as much fun knowing all about it," he said.

Sitting in his armchair, nibbling on a greek pastry, Mr. Rabassa explained that titles pose their own challenge. He translated the 19th-century Portuguese classic "Memórias póstumas de Bráz Cubas" by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which literally means "The Posthumous Memoirs of Brás Cubas." When Noonday Press issued the novel with the title "Epitaph of a Small Winner," Mr. Rabassa complained.

"You don't mess around with a classic," he said. "That's like calling `Madame Bovary' the story of a middle-class adulteress." (Oxford University Press published the book with Mr. Rabassa's translated title in 1997.)

Half of Mr. Rabassa's book will consist of reflections on each of the many authors he has translated, and half will be a memoir of how he ended up as a translator. The epilogue, he said, will be printed unfinished, as "translation is never finished."

Mr. Rabassa was born in Yonkers in 1922. His father was a Cuban sugar broker, but, he said, "the old man didn't speak much Spanish around the house." The young Mr. Rabassa studied French and Latin in high school; then at Dartmouth, he said, he "began collecting languages." There he studied Portuguese, Russian and German. In conversation, his voice wanders seamlessly among the five he still speaks.

"I'd dabbled in Italian," Mr. Rabassa said. "But then I bought a beautiful edition of Dante. I used Spanish and Portuguese — they're so similar to Italian — as I went along, substituting the real Italian words, and finally I was talking Italian."

In 1942 Mr. Rabassa volunteered for the Army and, because of his language skills, ended up in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Mr. Rabassa translated encryptions, or what he called English into English, and he also conducted interrogations.

When he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after spending time in Italy and Northern Africa, Mr. Rabassa lived on Morton Street, watched Charlie Parker play in Greenwich Village and wrote poetry. He studied for his master's in Spanish at Columbia, then, tired of the language, kept on with his studies but finished his doctorate in Portuguese. At a cocktail party Mr. Rabassa met an administrator at Queens College and he ended up being hired as a professor there. He still teaches the freshman lecture course Hispanic Literature in Translation.

"When I began teaching," he said, "I was the same age as my students, and I still labor in the delusion. So it's a good, youthful operation."

Mr. Rabassa says that although he is translating a new generation of Hispanic writers, little has changed since he translated the giants. Despite the differences in writing styles, the way he approaches the text is essentially the same.

"They're all so different, the ones I did," he said. "I think it works because I don't think I have a translation style. It's a positive feeling I have about them. I find a lot of instinct in what I do. You have to just hit it right. I'm never sure whether something is right, but I know damn well when something is wrong."

0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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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에덴의 용> 칼 세이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197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간 실제로 읽어볼 기회는 없었다. 1990년대 초에 한글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고 하나 번역본을 구할 길이 없었고, 또 30년 전에 쓴 뇌과학 책이라고 하니 미덥지 못하게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몇 주 전 해외 출장을 위해 ‘지상 10킬로미터 상공에서 13시간을 버티게 만들어 줄 책’을 책장에서 찾다가, 몇 달 전 재출간된 <에덴의 용>을 짚게 됐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펼쳐든 책은 네 시간 만에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이 책은 시작이 매우 흥미롭다. 150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한다면, 9월14일에 지구가 탄생했고, 9월25일에 생명이 탄생했으며, 인간은 12월31일 오후 10시30분 즈음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의 우주력 계산은 지난 30년간 과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인용되던 것인데, 처음으로 원전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이 나오던 무렵에는 뇌영상기법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해서 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고, 아직 학습과 기억의 정보처리 과정이나, 감정과 욕구의 생물학적 원리, 의식의 기원 등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서 하고 있는 주장, 그러니까 ‘인간의 뇌와 마음은 빅뱅 이래 시작된 장대한 물질 진화의 산물이며 뇌와 마음이 단일한 원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인 유래를 가진 다양한 충동과 논리들이 서로 충돌하여 만들어낸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그가 인용하는 폴 매클린의 뇌 삼위일체설은 논리적 비약이 심해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이론이다. 인간의 뇌를 포유류의 뇌, 파충류의 뇌 식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알고보니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하나의 기능도 여러 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현대 신경과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뇌를 발달시켰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지금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특히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위험할 수도 있는 수면은 칼 세이건이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대목이었다. 포식자가 수면을 취하는 틈을 타서 인간도 수면시간을 늘리면서 지능을 발전시키고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잠을 활용했다는 그의 주장은 재미있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그의 아름다운 문장과 책의 구조에 있다 (번역가가 매우 뛰어나서인가?). 이 책을 읽노라면 누구나 인류 최고의 지성이 들려주는 유려한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정재승/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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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10-2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주문했어요. 천천히 조금씩 읽어볼게요. 원문 보다 더 나을 님의 번역이 기대됩니다. ^^

이네파벨 2006-10-2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따뜻한 야클님의 배려 감사드립니다...

이 서평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책들의 저자이신 정재승님이 쓰신 것이고 (예전에 정재승님께서 제가 번역한 다른 책 <꿈>에 대해서도 어느 일간지에 서평을 쓰신 일이 있습니다...저로서는 그저 감격...감격..) 번역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주셔서 (하지만 분명 과찬이십니다...번역자들 사이에 "원판 불변의 법치"이라는 말이 있지요. 번역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영 아닌 원판을 뜯어고치거나 더 훌륭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말...그저 원본의 얼굴을 깎아먹지나 않도록-아니 되도록 적게 깎아먹도록- 옮기는게 번역가의 최대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제 서재에 간직하고 있는 글이랍니다...

참, 혹시 정재승 교수님의 책들 안읽어보셨다면 추천 드립니다. 재미있고 정보가 가득하고..또 정재승님이야말로-칼 세이건 처럼- 책 하나를 건축물을 쌓듯, 아니면 교향곡을 작곡하듯 구조의 아름다움을 고려하며 쓰시는 듯 합니다...

딸기 2007-01-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도 지금 갖고 있어요.

비로그인 2007-03-13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책 번역하셨어요? 오호 이거 몇일 전에 읽었는데 번역이 참 잘되있다고 생각했었어요!(저 왠만해선 이런 소리 안합니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던데..

이네파벨 2007-03-1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감사드립니다.
과찬이세요...더욱 열심히..노력하겠습니다.
 

 

 

 

 

나와 재즈....

파릇파릇하던 시절에 재즈에 매혹되어 열쉼히 음반을 사모으고, 듣고, 공부하고, 사랑하다가...

"아줌마"가 되면서 완전 빠이빠이.....(젖병이랑 똥오줌 기저귀랑 씨름하면서 재즈가 귀에 들어오랴..)

애들이 조금 커서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애들 학교에 태우고 다니면서..차에서 귀가 허전해 그 옛날 사모은 음반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치만 취향이 아줌마스러워져셔인지...온리 보컬곡만 들었다. 엘라 핏제럴드, 빌리 할러데이의 앨범...혹은 작곡/작사가별로 나온 songbook 앨범들...그런 식으로...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콜 포터의 songbook 중에서...주로 연주곡만으로 구성된 앨범이 있다. (보컬이 들어간 곡도 하나 있긴 하지만) 개성 넘치는 뮤지션들이 콜 포터의 곡들을 무척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한 명반...(알라딘엔 이 상품이 없네염..)

이 앨범의 모든 연주가 다 멋지지만....그 중에서 Bud Powell이 온리 피아노만으로 (unaccompanied) 연주한 "Just one of those things"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곡이 그만....가슴에 푸우우우우욱 꽂혀버렸다!!!!!!

이런 감동..이런 매혹이 얼마만인지...(나이들어보시라......"감동"과 "매혹"을 관장하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줄어들어서인지...그런 경험....정말정말 맛보기 힘들어진다.......)

마력을 지닌 듯한...전광석화와 같은 화려한 기교...
(파웰에 꽂혀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좀 찾아보니..엄청난 속도의 오른손 연주와..간결한 왼손 반주가 파웰 특유의 주법이라고 한다....)

단순히 인간이 피아노를 저렇게 다룰 수가...뭐 그런 감탄만이 절때 아니고(그런거라면 감동의 표면만을 스쳤겠죠.) 그가 연주한 이 곡은...정말이지...아.름.다.웠.다.  그의 독특한 연주와 해석이.....오만 번도 더 들은 콜 포터의 이 곡(Just one of those things)을 너무나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참, 파웰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떠올랐지만...사고를 당하고 마약에 쩔고 인간관계도 좋지 못하고 비참한 말로를 걸었다고 한다......

(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재즈 예술가들은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빌리 할러데이도 그렇고...동성애자였던 천재적 작사가 래리 하트도 그렇고.....자신의 인생 역시 가장 비극적이고 인상적인...기억에 오래 남을 연주로 남기려고 했던것일까...? 아니...버드 파웰의 연주를 들어보면...저런 연주를 하다보면 마약에 의한 도취감에 이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듣는 사람도 high가 느껴지는데...) 그런 도취감에 맛을 들인 다음에는..금단현상을 이기기 위해  마약이든 술이든 찾지 않을수 없겠구나...싶기도 하다. (실제로 파웰은 사고를 당하고 나이 먹어서 손가락이 예전같이 잘 돌아가지 못했다고도 한다....ㅡ,.ㅡ)

 

<-라운드 미드나잇

 참, 이 영화....이게..늙고 비참해진 뮤지션과 너무나 가난하지만 그의 음악을 절절히 사랑한 팬간의 교감을 그린 영화라고 하는데...영화에서는 색스폰 주자인 덱스터 고든이 뮤지션 역할을 했지만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은 바로 버드 파웰과 그의 팬의 이야기라고 한다. 사실 이 영화...예전에 디븨디 숍에서 빌렸다가...느무느무바빠서 다 못보고(거의 못보고) 돌려준 일이 있다. 다시 한번 빌려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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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문제의 본질은 번역자다

필요 때문에 번역 문제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작년 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획회의> 18호(2005년 4월) 특집이 '번역출판의 오늘을 말한다'였다는 걸 알게 됐다. 특집기사들 중에서 한기호 소장의 글 '문제의 본질은 번역자다: 번역출판의 제도적 측면'을 옮겨온다.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내내 나는 <아나 트롤>(창비, 1991)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뛰어난 서정시인이자 정치풍자시의 대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대표적 장편풍자시 <아나 트롤>과 12편의 시사시를 번역 수록한 이  책은 1991년에 시인 김남주의 번역으로  창비에서 출간됐다(*이 책은 현재 절판중이다). 당시 그 회사 영업책임자이던 나는 교정지에서 접한  번역문의 유려한 문장에 반해 <아나 트롤>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나 트롤>을 다룬 석사논문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논문 속의 인용문은 교정지의 번역문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석사논문 속의 인용문은 그냥 뜻이나 통하게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내가 만약 그 인용문 수준의 글부터 읽었다면 과연 <아나 트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게 되었을지, 책이 만약 그런 수준이었다면 책을 구해 읽었을지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날 표면적으로는 번역출판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체 발행종수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5%에서 2003년 29.1%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만화와 아동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두 분야를 제외하고는 역사 분야가 평균 성장률과 비슷하고 나머지는 모두 밑돌고  있다. 결국 출판시장의 성장에 비추어보면 질적으로 상당한 퇴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번역출판을 놓고 단순한 통계수치만으로 ‘상당한 양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없지 않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은 2004년에도 어느 정도 유지됐다. 2004년에  번역서는 전체 발행종수 35만394종의 28.5%인 10만88종으로 2003년과 비슷하다. 만화(3108종)와 아동(2245종)을 합하면 여전히 번역서의 절반을 넘는다. 단지 아동은 늘어나고 만화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번역서의 번역 수준은 우리 출판의 아킬레스건이다. 한 마디로  앞에서 예를 든 석사학위논문 인용문 수준의 번역문을 그대로 담은 책들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영미 문학 대표작 가운데 ‘친숙하게 읽혀온’ 작품의 변역 수준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영미문학의 번역은 양적인 풍요와 질적인 빈곤으로  요약될 수 있다. 대상 작품들의 번역서로 최종 검토 대상이 된 완역본은 총 573종인데 이중 추천할 만한 번역본은 모두 61종(11%)에 불과하다.

-대략 10권  중 한 권 정도가 믿고  읽을만한 번역본인 셈이다. 추천본이 없는 작품도 전체 작품의 3분의 1이 넘는다. 소설의 경우에는 추천본이 전체 번역본의 6%에 불과”했다. “비소설의  경우는 추천본 비율이  높으며(29%), 추천본의 종수가 가장 많은 것도 ‘햄릿’(10종)”이었지만 “검토본 가운데 반수 이상(54%ㅎ310종)이  표절본으로 그대로 베낀 것부터 짜집기, 윤문潤文까지 다양한 형태를 확인” (1)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표절의 책임은 대부분 출판사에 있다. 특히 잘 팔리는 책, 독자에게 친숙하게 읽혀온 문학서적의 경우에는 출판사가 기존에 출간된 책을 적당히 윤문해 중복 출판하는 경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번역출판으로 꽤 명성을  날린 출판사들도 실제로 이런  행태를 자행하고 있음을 수없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영미문학연구회의 평가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책임은 먼저 번역가가 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 평론가 변정수는 그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편집자들이 “번역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거의 ‘공역자’ 수준의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지적한다. “명목상의 역자는 결과적으로 고작해야 초벌 번역의 수고를 해 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고 편집자가 “사실상의 번역자 노릇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내 저작물에  빗대자면 거의 ‘섀도 라이터’에 해당될 정도의 역할”(2)을 하고 있는 셈이다.

-꼼꼼하게 공들인 번역으로 소문난 유명 역자들은 편집자가 거의 손을 볼 필요가 없는 완벽에 가까운 텍스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겠지만 대부분은 편집자가 ‘공역자’에 준하는 역할을 하거나 심지어 거의 ‘재번역’을 해야 하는 수준의  번역문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편집자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사실상 대다수의 편집자는 원문대조도 하지 않고 오탈자나 잡아내는 수준의 교열에  머무른다. 그래서 전문편집자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그런  편집자들이라도 ‘교수’의 직함을 달고 있는 학자 번역자의 경우에는 십중팔구 재번역해야 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교수들과 일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학자들이 번역에서 그들만이 이해하는 용어로  그들만의 ‘언어게임’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아나 트롤>
수준의 번역보다 못한 번역 원고가 그대로 출판사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편집자들은 ‘교수’가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조교’나 다른 대행자들이 번역을 대신한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상황이 이런데도 편집자들이 ‘사실상의 번역자’ 노릇을 감수하면서 십중팔구 믿지 못하는 교수에게 매달리는 것은 ‘손을 볼 필요가 없는’ 번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능한  몇몇 번역가들은 밀린 일이 많아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 전문번역회사다. 한 출판번역전문회사의  대표는 “국내 산업번역 규모가  1조원 대에 달하고 그리고 영상미디어 번역이 5천억 원, 출판번역시장이 5천억 원에 달한다”고 전망했는데 시장은 이렇게 크지만 양질의 번역을 빠르게  해줄 수 있는 번역가가 많지 않아 이런 업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번역전문회사는 대부분  번역지망생과 출판사를 연결시켜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중간업자에 불과하다. 이 회사들은  보통 번역료의 30% 가까이를 챙긴다.  출판사가 지급번역을 요청할 경우에는 원고를 여러 사람에게  쪼개서 번역한 것을 모아 한두  사람이 죽 읽어가면서 획일성만 기하기 마련인데 이런  원고의 수준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전문번역회사들은 출판사와 번역자들이 만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해 번역자들이 편집자와 만나 번역의 질을 상승시키는 길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번역자가 교열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병폐가 있다. 하지만 속도를 요하는 분야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출판사들까지 이런 전문번역회사를 애용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전문번역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번역료가 낮기 때문이다. 상위 출판사의 경우 영어는 3500-4000원, 일본어는 2500-3500원,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3500-4000원 수준이다. 물론 수준이 보장되는 전문번역가는 이보다  높은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낮은 경우가 더 많다.  일본의 법인 또는 단체가 일본책의  한국어 번역료를 통상 10,000-15,000원 수준에서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번역료가 어느 수준인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의 번역료는 몇 년  전의 수준에 머문 것이어서 물가상승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갈수록 뒤쳐지고 있어 번역에 ‘목숨’을 거는 번역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최근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전 번역 지원사업에서는 번역 원고료를 10,000원 안팎으로 책정하고 있다. 나도 신청중인 과제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의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번역에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구나 인세일 경우 한달 평균 100여 만원 정도의 보상을 기대하면서 번역에 '목숨' 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특히 전문영역에 속하는 책들을 맡아주어야 할 학자들은 번역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명감에 충만하거나 특별한 인간관계가 아니면 일부러 나서려  들지 않는 것이다. 우선 번역료가 너무 싸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여겨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출판사는 고육책으로  번역료와 인세를 병행하는 정책을 쓰기도  한다. 기본 번역료는 보장하되 번역료 이상으로 책이 팔리는 경우에는 인세를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인데 실제로는 추가 인세가 지급되는 경우가 흔치 않아 확실한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사례처럼 인세로 계약한  대중서가 1백만 부나 팔려 평생의 고생을 보상할 수준의 인세가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기는 해도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번역자가 어느 정도 번역에 책임을 지려 들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기본 번역료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인문학, 철학, 과학 분야의 전문분야 출판사인 이제이북스는 지난 3년 동안 60권의 책을 펴냈지만 2쇄를 발행한 책이 단 2종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3)  이 출판사가  나름대로 번역에 매우  많은 공을  들여왔고 초판을 1000부 밖에 발행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출판사의 출혈투자가 없이는 도저히 책 출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제이북스의 경우는 며칠 전에 다룬 바 있다). 15,000원  정가의 책인 경우 1000부가 다 팔린다  해도 매출액은 1천만 원 내외다. 이 금액 모두가 번역료로  지급되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여기에 제작비, 인건비, 일반관리비 등을 부담해야 하므로 출간 즉시 적자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니 대다수 출판인은 출판을 기피한다.

-번역료가 낮은 근본적인 원인을 출판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독자를 탓해야 할까? 물론 탓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독자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독자들은 철학을 쉽게 풀어주고 독해가 가능한 책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부실한 번역이 독자들을 떠나가게 만들었다는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의 뼈아픈 지적을 더 수용하려 들 것이다.


-결국 이 땅의 번역출판 부실은 어느 일방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수시장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후원시스템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선험적인 연구자들이 결론내린 바  있다.

-김선남(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 연구논문(4)에서 “전문 번역가의 부족, 낮은 번역료, 오역 및 중복 출판, 출판사의 과도한 저작권 확보 경쟁 등과 같은 출판사 내·외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번역출판이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번역인 양성 프로그램 개발, 번역활동 지원 단체의 확충, 번역 출판물 기획의 다양성 확보 등을 제시했다.

-이런 결론은 지난 수십 년간 내려졌고 물론 간헐적인 대응책은 있어왔지만 근원적인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문 번역인은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지원자만 모아놓고 교육만 시키면 해결이 될 것인가? 그보다는 전문적인 번역자가 전문편집자와 함께 일을 해가면서 번역의 질적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요 인문출판사와 공동작업을 하면서 번역학교를 따로 꾸리고 있는  것은 모범적인 사례가 된다. 이 단체는 이미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책을 여럿 내고 있으며 고전을 재해석한 ‘리라이팅’ 시리즈처럼 저작의 단계로도 올라서서 인문출판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모임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한데, 이 리라이팅 시리즈도 작년부터는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출판시장이 갈수록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상황에서 상업성이 부족하지만 꼭  필요한 번역출판이 이뤄지려면 공공적인  지원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국가나 기업에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근원적으로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비단 이것은 번역서뿐만이 아니라 출판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도서관의 기본적인 존립목적인 정보 접근 평등성을 위해 도서관 스스로가 양서를 다양하게 구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공도서관은 너무 ‘빈약’하다.

-따라서 소기의 성과를 빨리 이루려면 각급 학교도서관의 활성화가 시대적 소명이다.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고 이를 지역 주민도 이용하는 기초생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다음  공신력 있는 기구가 선정한 우수도서를 학교도서관이 의무적으로 구비할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 양서의 경우 5000-10,000부 정도가 소비될 수 있다면, 출판사들은 구태여 시류에 영합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도 안정된 경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출판뿐만 아니라 기초학문과 교육이 사는 길이고 결국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 일이다. 우수한 번역서를 여기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기에 번역출판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예산타령만을 일삼지만 이런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일 뿐이다.

-다양성은 무척 중요하다. 그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전문성도 중요하다. 지금 구조에서는 번역출판을 통해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어떤 약삭빠른 출판사가 입도선매식으로 저자권계약을 맺어놓은 다음”에 “자격 없는 역자들을 동원하여 오역·졸역본의 출판을 남발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을 보호함으로써  마구잡이 번역을 막겠다는 원래의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역설적 결과”(5)가 수시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물건이나 언어에는 반드시 그 배경에 주류와 계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계통도에서 상위에 올라있는 책을 먼저 계약해놓고 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하위에  해당하는 책을 펴낸 출판사는 고통만 겪을 확률이 높다. 이것은 원저작은 보지 못하고 비평서만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호 협조와 양해를 통해  바람직한 조정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매우 열악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앞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희망적인 사례지만 영미문학연구회가 분석한 책들이 출간된 같은 시기에도 “고전  번역에 가담한 새로운 세대 전문연구자들의 활약은 고무적이다. 또  초기에 나온 번역본이 이후 어떤 번역본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 경우도 적지 않아 우수한 번역진의 층이 얇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더 좋은 번역환경이 마련되고, 다수의 독자들이 좋은 번역을 선별해  읽을 수 있다면 번역 풍토의 획기적인 개선도 기대”(6)할 수 있다는 지적도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 만든다. 따라서 바람직한 비평을 통해 좋은 책을 선별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다양하게 정착되는 일 또한 바람직한 번역출판이 이뤄지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것이다.

(1)「번역 평가 왜 필요한가」<한국일보> 2004.2.16
(2)변정수,「번역 출판의 원숭이들」<기획회의> 8호 2004.11.5
(3)김현미,「우리말로, 철학하기, 출판으로 철학하기 -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
   <기획회의>10호 2004.12.5
(4)김선남,「국내 번역 출판물의 현황과 화성화 방안 연구」<한국출판학연구> 제43호 2001
(5)한정숙,「학술서적 번역 이것이 문제다」<국민일보> 1996.8.12
(6)김영희, 같은 글

06.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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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파벨 2006-08-22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답니다...늘 고맙습니다!

톡톡캔디 2006-08-2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편집자 입장에서 썼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