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 책의 509쪽에서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라고 쓴 샌드위치 광고판을 둘러쓰고 조금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종말이 임박했다”라든지 “심판의 날이 온다” 따위의 말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종교를 전파하는 광신도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리라. 인공지능 분야의  선도적 연구가, ‘커즈와일 신시사이저’를  비롯하여 걸출한 발명품을 여럿 내놓은 발명가, 수많은 기업을 일으킨 성공한 사업가, 지적 깊이와 폭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상가인 레이 커즈와일은 과연 과대망상에 빠진  기술낙관주의의 광신도일까? 아니면 어수룩한 사람들의 눈앞에 첨단과학이라는 마법 모자에서 가짜 토끼를 꺼내는 일종의 지적 사기꾼일까? 그도  저도 아니라 진짜로 선견지명을 지닌 현인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이 두꺼운 책을 펴들었다.

 

그가 임박했다고 말하는 ‘특이점’은 무엇일까? 원래 특이점은 수학에서 어떤 수를 0으로 나눈 값이라든지, 물리학에서 블랙홀 내의 밀도와 중력이 무한대인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매우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이다. 그러니까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가는 기술 발전의 그래프에서 기울기가 무한대에  가깝게 뻗어나가는 지점이 되겠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도래한다는 근거로 단기적으로는 무어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의 발전 추이를 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지구와 인간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진화의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우주 만물은  질서와  정보가 축적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데   과거에는 DNA와 뇌의 신경패턴이 정보 저장과 질서 창조의 주역이었으나, 이제 그 주도권이 기계와 기술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인간 지능과  기계 지능이 융합되는 시기를 거쳐 궁극적으로 둘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온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이  지적 과정과 지식으로 포화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그 같은 미래 예측의 거시적 틀 안에서 구체적인 뼈와 살을 붙여나갈 증거들은 GNR, 즉 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의 연구 성과에서 찾는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유전학 또는 생명공학의 발달로 질병과 노화가 정복되어 인간의 수명이 놀라울  정도로 연장될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에 기초한 수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은 나노기술의 혜택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정도에 불과하다. 분자수준에서 활동하는 나노봇이 탄생하면 우리 몸속을 돌아다니며 손상된 기관과 조직을 복구하고, 신경계에 작용하여  가상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한편  포글릿이라는 나노봇의 무리가 자유자재로 온갖  사물을 창조하고 변화시키게 되어,  사실상 모든 물리적 현실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나노봇은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고 굶주림과 빈곤을 퇴치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로봇공학은? 로봇공학은 인공지능, 생물학적 지능의 한계를 넘어선 초지능, 궁극의 지능을 의미한다. 엄청난 혜택과 위험을 지닌 양날의 검 같은 나노기술을 비롯한 미래의 첨단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계지능의 도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커즈와일의 이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까? 나는 그의 주장의 학문적, 기술적 측면을 분석할만한 입장은 못 된다. 나노기술이나 로보틱스 쪽은 문외한이고, 생명공학 기술에 대해서도 비전문가이다. 다만, 몇 년 전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의학, 생물학 관련 기사를 번역한 일이 있는데 그때 접했던 수많은 연구가 이 책에서 낙관적 기술진보 사례로 인용되었음을 목격했다. 그 연구들의 상당수는 임상시험 승인조차 나지 않은 갓 돋아난 새싹 같은 단계일 뿐인데 전도 유망하고 현실적인  대안인 양 부풀려 포장한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사실 나노기술에 대한 커즈와일의 전망은 1986년 에릭 드렉슬러가 『창조의 엔진』에서  내놓은 주장에 그대로 기댄다. 그런데 드렉슬러의 주장은 1986년에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 나노미터 수준의 미세한 구조를 다루는 현실적인 나노기술과 분자제조니 나노봇이니 하는 궁극적 나노기술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마치 오늘날 커즈와일이 만든 여러 기계들에 적용되는 ‘약한  인공지능’과 인간 이상의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기계를 일컫는 ‘강한 인공지능’ 사이에 거대한 심연이 버티고  있듯이. 그가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을 지지하는 근거는 나노튜브, 3차원 분자 연산, 양자 연산 등 새로운 연산 패러다임이 도래해 하드웨어의 연산 용량이 인간의 뇌 수준을 뛰어넘게  될 것이고, 또한 인간 뇌의 역분석을 통해 자기조직적이고 카오스적인 뇌의 특성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가 기존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이론적  기반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 같은 세계는 적어도 아직은 이론과 몽상에 속하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커즈와일은 기하급수적 발전에 의한 ‘수확 가속의  법칙’이 마치 마법의 양탄자 같이  이런 몽상과 현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를 테크노유토피아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 예측은 그 미래가 오기 전에는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커즈와일은 자신만만하게도 구체적인 시기까지 못 박는다. 나는 그가 틀릴 것이라는 쪽에 내기를 걸겠다. 설사 기술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뻗어나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회, 제도, 관습, 심리적 장벽 등은 같은 속도로 발맞추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기는 했지만 공정하게 주의를 기울였다고 보기 힘든, 첨단 기술의 비관적이고 위험한  측면들 역시 발전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편 마음 깊숙이에서 나는 그의 예언이 맞기를 바란다.  그가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 해리 포터의 세계, 어린 과학자 톰 스위프트의 세계, ‘충분히 발달한 기술이 마술과 구분되지 않는’ 모험과 낙관주의로 충만한 세계야말로 너무나 되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꿈이 아니던가! 내가 ‘성장’이라는 관문을 거치며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추방당한 그 세계를 커즈와일은 바위 같은 의지력과 마법사 같은 능력으로 꽉 붙들고 지켜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커즈와일이 괴짜라고 하더라도 외톨박이는 아니다. 과학기술계의 엘리트들, 세계에서 가장 명석하다고 할 사람들이 이 해괴한 신념을 종교처럼 믿고 있다. 누가 알랴? 그들이 우리보다 한 발짝 먼저 미래를 살고 있는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기획회의 11월호, 전문가리뷰-과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밍아웃하련다. 그렇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 책을 통해 도킨스가 의도한 바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는 나 같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신론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당당하고 주저함 없이 그 사실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수십 년 전 동성애자들이 그러했듯 21세기 개명천지에도 손해보고 배척받는 무신론자의 사회적 지위를 각성하고 사회를 종교의 해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맞서 투쟁하라고 은근히 부추긴다. 그런데 과연 무신론자가 신앙인으로부터 그토록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종교가 무신론자, 아니 인간 전반의 삶에 진정 피해를 주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개인이 속한 사회, 그를 둘러싼 환경, 상황과 운에 따라 각기 다를 터이다. 나에게 종교는 어떤 것일까? 종교는 나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나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동화와 결별하고 어른들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신을 버렸다(또는 잃어버렸다). 기독교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름대로 종교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고 나서는 한 번도 종교가 거치적거린 적이 없었다. 종교적 강요는 악몽 같은 체육시간과 함께 학창시절의 괴로운 추억으로 영원히 벗어던질 수 있게 된 듯했다. 그 후 나는 종교에 별 관심도 없지만 유감 또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상대주의적이고 포스트모던한 세계 속에서, 온통 모든 관심이 단 한 번 주어진 짧은 삶 속에서 최대한 잘 먹고 잘 살고 잘 쓰고 가자는 이기적이고 물질적이고 탐욕스럽고 부박한 사회 분위기에서, 종교가 주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일종의 향수나 동경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종교는 적어도 그걸 믿는 사람에게는 도덕에 '절대'의 추를 달아주고, 세속적 갈증을 잠재울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선행과 봉사를 권유하지 않던가?

한편 칼 세이건, 마틴 가드너, 마이클 셔머 같은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목소리에 마음 깊이 동조해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조직화된 종교 자체에 싸움을 걸기보다는 창조론을 유사과학, UFO 광신도, 그밖에 엉터리 신비주의적 믿음과 같은 선상에 놓고 그 세부적인 주장을 조목조목 비난하는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아브라함의 신을 믿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계의 세 가지 주요 종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다. 인격신을 믿는 종교에 대한 개인적 혐오를 넘어서서 공들인 지적·논리적 반박과 거센 사회적 비판의 총공세를 펼친다. 또한 과격한 근본주의자의 해악에 대해 지적하는 것과 똑같이 좀더 온화한 얼굴을 지닌 종교, 특히 과학자와 지성인의 신앙 역시 비난한다. 도킨스는 분명 내가 가장 존경하고 경탄하는 저자 중 한 람이다. 그의 학식과 통찰력, 번뜩이는 명석함과 재치, 글재주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과연 종교는 도킨스가 그 재능과 영향력을 발휘하여 공격하고 비판할 만한 그런 대상일까? 정말 나의 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신마저도 다 깨부수어야 마땅한 것일까? 그것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답을 찾고자 했던, 스스로 부과한 숙제였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논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교(특히 야훼를 믿는 기독교와 천주교)의 추악한 면을 벌거벗기기. 둘째,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셋째, 종교를 세상에서 몰아내는 구체적 실천과제로 어린아이들을 종교적 세뇌로부터 해방시키기.

도킨스는 1장과 2장에서 종교와 과학의 해묵은 논쟁 배경을 설명한 다음 3장에서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을 하나하나 논박한다. 4장에서는 비개연적인 복잡한 존재가 생겨난 배경에 '설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논박하면서 그 비개연성과 복잡성을 자연선택과 인본원리로 설명한다. 그 다음 5장에서 종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이론 및 밈 개념 등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6장에서는 도덕을 종교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신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 인간의 도덕의 기원을 찾는다. 앞부분에서 신가설을 논박하면서도 종교인의 추하고 비겁한 사례를 풍부하게 선보였지만, 성서 속 신의 사악함과 종교의 해악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7장과 8장에서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 어린이들을 종교 교육에서 해방시킬 것을 주장하고, 10장에서는 종교가 차지하는 자리를 대신할 대안을 모색한다.

많은 논쟁적 글들이 그러하듯 도킨스 역시 공격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적에게 퍼붓는 조롱과 야유는 그야말로 '신 내린' 솜씨를 보여준다. 하지만 부수기는 쉽지만 만들기는 어려운 법. 아쉬움도 있다. 종교의 기원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접근은 진짜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변죽을 울리는 느낌을 주었다. 도덕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다윈주의적 도덕의 진화 과정과 신을 배제한 도덕철학의 요점을 소개하기는 하지만, 좀더 예민한 윤리 문제(미끄러운 비탈길 논쟁 등)에 대한 논의가 배제된 아쉬움이 있다. 또한 종교가 주는 위안, 영감, 소속감 그밖에 모든 긍정적 감정들을 내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종교가 이러이러한 이점이 있다고 해서 신의 존재가 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논쟁의 전개를 막아버리는 방식은 거슬리기도 했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던져버리는 논박이어서다. 그는 아시모프를 인용해서 모든 미신적인 것들을 들춰내다 보면 결국 어린아이가 위안을 얻고자 빨아대는 손가락이 나온다고 말했는데 굳이 어린아이의 입에서 그 손가락을 빼야만 할 이유가 무얼까? (도킨스는 이런 의견을 생색내는 태도라고 비난하지만, 글쎄….)

서문에 도킨스가 인용한, "무신론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고양이 떼를 모으는 일과 같다"는 비유가 예측하듯, 나는 무신론의 깃발을 치켜들고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킨스에게 설득되지는 않았다. 종교에 대한 내 입장을 다시금 정리해보자면 나 자신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따라, 그리고 합리주의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도덕 원칙이라고 여겨지는 공리주의적 원칙에 따라, 나는 다수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사회가 종교를 품고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또한 진화론적 생존가치를 지닌 팃포탯tit-for-tat의 도덕 전략에 따라 나는 다른 이에게 무신론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그들이 먼저 강요하고 들이대고 '전도'하지 않는 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0-1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번역 잘하시는 이나파벨님 글도 잘쓰시네요 ^^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동화와 결별하고 어른들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신을 버렸다(또는 잃어버렸다)

-->> 오오오 이네파벨님 우리 악수라도...
신에 대한, 제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을 이렇게 명료하게 정리해주시다니...
이 책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 사지도 못하고 있어요. 돈이 없어서... ㅋㅋ

리뷰 정말 잘 읽었어요!!!

그런데 그냥 한 마디 덧붙이자면
어린아이가 빨아대는 손가락, 빼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손가락, 아주 애기때 빠는 것은 몰라도, 버릇 되게 놔두면 뻐드렁니 돼요.
종교도 마찬가지...

대부분 사람은 애기 때 지나면 손가락 빼는데,
종교는 희한한 손가락이어서, 그걸로 막 남 찌르지 않나요

이네파벨 2007-10-1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 찾아주셔서...칭찬해 주셔서...감사해요 *^^*

딸기님, 역시 감사~
이 책은 읽어볼만 해요. 일단...유쾌상쾌통쾌한...현란한 글빨의 향연만으로도...책값이 아깝지 않지요. 그런데요.....저는 도킨스의 논리에 수긍하고 거의 동조하지만...꼭 그렇게까지 전투적으로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그 최고의 재능과 영향력을 사용해서..)..하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더군요. 사실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종교를 퍽이나 싫어하는 사람인데도요..

그건...진중권씨의 디워비판이 구구절절 맞는 얘기지만...
꼭 그의 지식과 재능을 사용해서 용가리를 공격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그런...
(말론 브랜도의 왕팬으로써...심감독의 영구가 나오는 대부 속편 계획만은 제발 이루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랬지만.....그 속편이 안만들어진다면 그건 미국흥행 성적이 저조하기때문이지 진중권씨의 공격때문은 아니었으리라 생각...)

뭐랄까....남보다 뛰어난 능력, 지식, 통찰력, 말솜씨,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은...자신의 그 무기를 사용하는데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그냥 아주 개인적인 바램 내지는 취향이지요....예전에는 시원한 말솜씨 글솜씨 지닌 사람 보면 마구 반하곤 했는데...다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재승박덕"이라는 말을 연상케하는 뒤끝을 보이는 경우가....

그리고...개인적으로..........종교가 생겨난 원인을 추론하는 장은 상당히 맘에 안들었습니다.
종교의 원인에 대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분석한 책이나 글이 많이 있을 것이고..
일반 대중의 상식도 그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직 자신의 ammunition안에서 종교의 근원에 대한 주장을 펴나가려는 의도에서였는지...진화심리학적 설명을 한두가지 나열했을 뿐인데....그건 정말 곁다리를 건드리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진화심리학에 약간 수상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어요.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과학비슷하지만 진짜과학은 아닌 한때 유행하는 사조가 아닌지...어차피 프로이트처럼 검증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

도킨스의 생물학 관련 책들은 영원히 남겠지만 이 책은 어쩌면 그냥 몇년, 길어야 한 세대에 읽히고 소비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하지만 이 책의 어마어마한 상대적 장점은 도킨스의 다른 저서들보다 엄청 쉽고 잼있다는 점!!!

일독을 권합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설명을 들으니깐 어떤 스타일인지 대략 추측이 되는 것도 같고요.
말씀하신 부분 정말 공감합니다. 그냥 이러저러한건 안좋다 하면 되는데 굳이 칼갈아 찌르는 경우...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이 원고를 쓰는 일에 벌써 꾀가 난 걸까? 처음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든 것이 고민, 고민이었고 시간도 엄청나게 걸렸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번역 원고 마감까지 겹쳐서 시간의 압박이 너무나 심한 까닭에 일단 좀 빨리, 쉽게 읽을 만한 책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사실 바쁘고 바쁜 우리의 삶에서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기본적인 알맹이가 충실하다는 전제하에) 커다란 미덕이고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나의 예상대로 책은 전체 분량도 가볍고, 짤막한 에세이들이라 오랜 시간의 집중 없이도 틈틈이 읽기에 좋았고, 청소년을 주요 대상층으로 잡은 만큼 쉽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꼭 쉽게 가려는 이유에서만 이 책을 고른 것은 아니다. 먼저 이 책의 기획자인 정재승 교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있었다. 몇 년 전 『과학콘서트』를 읽은 이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거기다 스물일곱 명의 현직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 또는 관심 분야를 차례로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서 제2, 제3의 정재승 교수 같은 스타 과학저술가의 후보를 점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짧은 시간에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맛볼 수 있는 그런 독서 경험이 될지도 모를 터였다.

이런 종류의 책, 특정 주제에 대해 여러 저자들의 에세이를 모은 앤솔로지anthology 형식의 책들은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기 소르망의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한국경제신문)이라는 책이 맨 처음 이런 책에 대한 구미에 불을 댕겼던 것이다. 기 소르망이 20세기의 최고의 사상가들을 선정하고 직접 인터뷰하여 글로 엮어낸 이 책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읽으면서 감탄하고 기뻐서 흥분했던 보석 같은 책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단 한 권으로 수많은 석학들의 알짜배기 세계를 한꺼번에 맛보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나는 존 브록만의 『앞으로 50년』(생각의나무), 『우리는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는가』(사이언스북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소소) 등의 책을 찾아 읽었다.

현대 과학자들, 특히 나의 관심 분야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브록만 사단의 과학자들이 쓴 글을 모은 이 책들은 나올 때마다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쳐 들게 했다. 여러 저자의 글 가운데는 옥석이 섞여있고 때로는 유명한 저자의 성의 없는 소품 같은 글이 실려 있어 실망한 적도 있지만, 보석 같은 글을 몇 개만 발견해도, 이전에 몰랐던 뛰어난 저자를 한두 명이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되어도, 나머지 그저 그런 글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서가 되고도 남는다. 이 책,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를 처음 접했을 때도 브록만 시리즈(?)가 떠올랐다. 정재승 교수가 뛰어난 식견과 인맥을 가지고 한국의 존 브록만 같은 역할을 맡은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과학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뛰어난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와 같은 시도는 결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도 손뼉을 쳐주고 싶다. 최신 과학의 흐름을 간략하게나마 한 눈에 살펴보고 과학 주변의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훑어보면, 1부 '우주, 그 거대한 물음표'에서는 우주에 관련된 현대 과학 이론들을 소개한다.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우주 대폭발의 흔적, 별의 일생과 종류, 암흑 에너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자연법칙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2부 '자연, 과학의 시선이 머물다'에서는 지구 내부에 대한 최신 지질학적 설명, 자연의 수학적 패턴, 우주만물이론으로 대두되는 초끈이론, 시간의 다각적 의미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3부 '생명, 그 경이로움을 해부하다'에서는 최초 생명체의 정체, 우리 삶에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 생명공학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 단백질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 진화의 경향성에 관련된 오래된 논쟁, 공룡에 대한 최신 과학 등을 다룬다. 4부, '과학, 논쟁 속에서 진검승부를 하다'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 서양과학에서 찾은 불교적 세계관의 진리,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의학의 독특한 상황, 초심리학의 세계,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둘러싼 논쟁, 생물정보학에 대한 소개 등 과학의 주요 분야에서 살짝 비껴있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모아놓았다. 5부, '인간, 그들의 발자국을 더듬다'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하여 추적한 한국인의 뿌리, 마음의 기초가 되는 뇌과학 개론, 과학이 인간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네트워크 과학, 예술 활동이 인간의 전유물인가 하는 도발적 질문, 인공지능 연구의 현주소와 미래 예측, 정신병에 대한 최신 과학적 접근 등을 담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라는 제목에 맞게 우주에서 시작해서 과학의 여러 주제들을 두루 거친 다음 인간에서 끝나는 구성을 보여준다.

어떤 책이든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쉽고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몇몇 글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교과서식 개론 형식이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명과학 쪽이 친숙한 분야라 1부나 2부에 실린 글들이 좀더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아쉬움이 있다면 각 글의 분량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하나의 글이 대개 7-8쪽 정도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야말로 어떤 분야, 어떤 주제에 대한 맛보기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참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다가 제목 그대로 질문 한 마디 던져놓고 사라지는 저자도 있었다. 사실 깊이 들어가지 않고 가볍게 읽기 위해 고른 책이기는 하지만 채널을 휙휙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볼 때처럼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파티에 초대받아 여러 사람들을 소개받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멋진 인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잠깐 인사와 한두 마디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곧 헤어져버리는 아쉬운 기분이 남는다. 이 책에서 훌륭한 글 솜씨를 선보인 많은 과학자들이 좀더 깊이 있고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와 만나게 된다면 그것 역시 멋진 일일 듯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7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리뷰 앞부분 읽으면서 '이 책 찜해야지' 했는데
각 글의 분량이 너무 짧다는 얘기를 들으니 망설여지네요. 어쩔까요, 사서 볼까요, 말까요?
이네파벨님이 알려주세요. ^^

이 시리즈 리뷰는 무조건 추천.

이네파벨 2007-10-1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딸기님께서는 약간 따분하거나 본전생각 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중고생이나 과학서에 입문하는 분들에게는 참 좋을 듯 해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책값 많이 들어가는데(읽지는 않으면서 쟁여두는;;)
한권이라도 안 살수 있으면 안 사야지요. ^^

이네파벨 2007-10-1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읽지도 않으면서 쟁여두는거...거의 병 수준이예요.
집도 좁은데 책들은 자꾸만 늘어나니.....
언젠가 남편이 제 책들과 함께 저를 쪼까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눈...^^
며칠 지나면 도서정가제인가 해서 신간 할인폭이 줄어든다고 해서(아마 마일리지 등이 없어지는 건가요? 또 이 디테일에 약한...특히나 금전적인 세부사항에 대해 알고싶지도 않고 알려들지도 않는 이 허술함...ㅠ.ㅠ)
암튼 대략 며칠 지나면 책값 비싸진다더라~로 접수하고..
지금 10만원 살짝 넘게 지르고 알라딘 현관을 나서던 참이었어요~
(아이 문제집 두권이랑 아이책 몇권이 포함되긴 했지만...)

저는 요즘 더 두려운게.......책사는 병보다 더 심각한 음반 모으는 병이 도질것같아서 걱정이예요. 대학 다닐때 아르바이트해서 한달에 몇십만원씩 버는 족족........음반 사모으는데 다 써버리곤 했다죠...지금 저의 경제규모에서는 이런 취미(책, 음반수집)도 패가망신의 지름길인뎅...

게다가 요즘 세상에 누가 구리게도 CD를 사서 모으냐구요...

근데 전 mp3니 이딴거 적응이 잘 안되더라구요. 구석기인이죠...ㅠ.ㅠ

재즈를 좋아한지는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갑자기 요즘 Be-bop의 세계에 지대로 꽂히면서...고리짝 재즈 연주가들의 음반을 아주 세트로 모으고 싶은...(그게 왜 그렇잖아요. 책도 그렇지만..음반은 반짝 팔다가 절판되면 구하기도 힘들공...) 욕망을 누르느라 애먹고 있답니다...ㅠ.ㅠ

딸기야놀러가자 2007-10-2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머나... 신간 할인폭이 줄어드는... 그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는 건가요?
전 디테일에 약한게 아니라... 뉴스에 좀 약해요 ^^;;
그 대신 뒷북에 강하지요 ㅎㅎㅎ
그런데 음악 좋아하시는군요. 전 음악 영화 문화예술 뭐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자랑이다 -_-)
비밥의 세계는 뭔가요? 저는 카우보이 비밥 좋아하는데...

이네파벨 2007-10-22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카우보이 비밥은 뭔지 몰라요^^
비밥은....1950년대쯤일까요? 암튼 즉흥연주와 특유의 약간은 전위적인 코드와 주법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의 한 사조인데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버드 파웰이나 아트 테이텀, 텔로니어스 몽크 등 피아니스트..
찰리 파커(색스폰),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등의 연주자들이 유명해요..
음...
이들의 연주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완전한 구상화도 아니고 완전한 추상화도 아닌..
형체와 대상을 묘사하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어딘가 일그러지고 비틀리고 왜곡되고 변화된 모습으로 그려내는...반추상화(반구상화?)...라고 할 수 있는 인상파나 입체파의 그림처럼...

뼈대가 되는 멜로디(기존의 곡 등)를 굉장히 자유롭게...자신의 개성을 담아 재해석해서 연주한다고 할까요.....

전반적인 재즈가 그렇지만...(자유로운 해석)..비밥의 스타일은..특히나 즉흥연주가 강조되고 굉장히 신들린 듯 열정적인 분위기가 담겨있어요...

그러면서도 "감상적인"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뭐랄까...오히려 냉소적이랄까요...

뜨겁고도 쿨..................한 음악이죠^^

버드 파웰의 음반..(대표곡 모음 같은 것) 추천해요~ 전 특히나 피아노라는 악기를 좋아해서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10-2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피아노 살거예요 ^^
피아노 칠줄 모르는데... 실은 별로 구경도 잘 못해봤는데요,
피아노 있는 집에 사는게 로망이었거든요. ㅋㅋ
 

과학책, 정확히 말하자면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과학서를 읽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 음식을 주문해놓고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맛(재미)과 영양(지식)이 골고루 잘 어우러진 음식이라야 먹을 때도 즐겁고 먹고 난 다음에도 뿌듯한 느낌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재미와 지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새롭고 알찬 지식이 가득하고 거기에 읽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희귀하고 신나는 일이다.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가 아닐 경우 그 기쁨은 더욱 특별하다.

이번에 소개할   『현대과학의 6가지   쟁점』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Paradigm Regained’로 수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존 캐스티가 1989년 내놓은 『패러다임 로스트Paradigm Lost』라는 책의 속편이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말도 있고 더구나 전편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편을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하기까지 나름대로  출판사에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전편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고, 전편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한다. 오히려 전편에서 다루어졌을, 각 주제에 대해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은 뭉텅, 뭉텅 생략하고 논점의 최신, 첨단에 해당되는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에 긴장감 넘치면서 꽉 짜인, 그야말로 농축액과 같은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명의 기원, 유전 대 환경, 언어 습득, 인공 지능, 지성을 가진 외계 생명체, 양자적 실재라는 여섯 가지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각 주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관점, 과학의 정의, 우리의 삶 속에서 과학과 과학자의 위상, 그들을 둘러싼 오해와 몰이해, 오용과 악용, 터무니없는 비난, 과학과 종교나 인문학과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 에피소드나  창조론 논쟁 등을 예로 들며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의 논쟁이 ‘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질 것이며 그 경계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다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는 전작을 따라 배심원 재판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각 재판에서 전문가들이 원고 또는 피고가 되어 증거를 제시하고 마지막에 저자 자신이 배심원 중 하나로 나서서 의견을 밝히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지구상의 생명이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는 것이 원심의 판결이다. 우리가 흔히,  막연히 알고 있는 원시수프에서 유기물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찌어찌해서 자기복제가 가능한 고분자  물질이 되고 생물로 진화된다는  내용에서 그 ‘어찌어찌’에 해당되는 부분에 대한 현대 생물학의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또한 생명이 외계에서 유래했다는 방사범종설이나 창조론 등 피고의 목소리도 소개된다.

두 번째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는 인간의 행동 패턴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원고의 주장에 맞서 환경의 중요성이나 라마르크주의를 지지하는 실험결과 등 피고의 증거가 제시되었지만 역시 배심원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증거를 유전자의 영향 쪽 손을 들어준다.

세 번째 주제 언어 능력의 선천성 여부는 두 번째 주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뇌의 고유한 선천적 특성에서 나온다는 노엄 촘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반대 의견, 다른 행동과  마찬가지로 언어도 학습된다는 피아제나 스키너의 주장, 촘스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샘프슨의 반론을 제시한다.

네 번째는 인공지능, 인간과 같이 생각하는 컴퓨터가 나타날 수 있을지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다. 이 부분은 유난히도 매력과 흥미가 넘친다. 캐스티의 전공과 가까운  분야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이 정도의 분량으로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를 이토록 쉽고,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소개한 다른 글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작이 나온 이래로 지금까지 인공지능 연구에는 괄목할만한 진전과 성과가 있었지만 인공지능이 결코 인간의 마음을  흉내 낼 수 없다는 존 설, 펜로즈, 드레이퍼스 등의 피고 쪽에는 새로운 증거나 주장이  전개되지 못한 만큼 역시 원심의 판결을 재확인하여 강한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손을 들어준다.

다섯 번째는 은하계 안에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외계 지성체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의이다. 먹고살기 바쁜 나와 같은 보통사람의 눈에는 이  질문이 현대과학의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인가 하는 사실도 의문스럽다. 외계 지성체 탐색 연구(SETI)는 그 활동의 전도사를 자청했던 칼 세이건이 죽은 후 세이건의 존재보다 더 빨리 잊혀져가고 로즈웰 사건만큼이나 희화된 이미지로, 그리고 60년대의 히피문화만큼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몽상적 과거로 남아있지 않은가? 저자 역시 결론적으로 외계 지성체와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결을 내렸지만 이 장을 통해서 지금도 스포트라이트가 비껴간 곳에서 외롭게 이루어지는 외계 생명체 관련 연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고 그 내용은 몹시 흥미진진하고 의미심장해서 6가지 논쟁의 하나로 다루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데에 동의하게 된다.

마지막 주제는 세계의 실체에 관련된  논의이다.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음을 들어 닐스 보어를  비롯한 원고 측은 관찰자에게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는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자연 현상은 우리가 관찰을 하든 말든 늘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피고 측의 주장이다. 결국 저자는  배심원으로서 피고측의 주장을 인정하여 이전의 평결을 뒤집어 원고의 주장을 기각한다. 양자역학 분야에서 전개되어온 논의와 증거들을 담고 있는 이 장은 솔직히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캐스티는 어려운 주제들도 요점만 간추려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돌처럼 단단하고 백지처럼 텅 빈 현대물리학에 대한  나의 무지 앞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  것이다.

존 캐스티는 숨은 보석과 같은 저자다. 『인공지능 이야기』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의 글에 반했다. 수학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지만 나는 수학자 출신 작가에 특별한 사랑을 느낀다. 루이스 캐롤,  마틴 가드너,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에  이어 존 캐스티 역시 수학자이자 ‘최고의’ 책을 남긴 저자들 목록에 망설이지 않고 추가하고자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오늘 이른 아침부터 이네파벨님 서재를 뒤적이는 보람이...
리뷰가 넘넘 재밌네요.
세번째, 네번째 논쟁 특히 흥미롭네요. 갠적으로, 펜로즈 '우주 양자 마음' 읽었지만 전혀 접수가 안 되는 그 난해함과 신비로움... ㅋㅋ '마음의 장소는 어디인가'라는 질문 자체는 아주아주 재미있긴 했어요.
다섯번째 질문은 관심없는 영역이고 여섯번째는 넘 어려워보이지만... 이 책 봐야겠군요. 감사...

이네파벨 2007-10-1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권하고 싶어요.
캐스티는 정보를 충실하게 간추려 쉽게 설명하는데 탁월하고...
중간중간 살짝살짝 엿보이는 우아한 유머도 맛깔난답니다.
<인공지능 이야기>도 아주 좋아요~
사실 제가 민스키의 책을 번역하고 있어서 예전에 나온 <인공지능 이야기>를 찾아 읽어보게 되었고 그 후에 이 책을 찾아 읽었죠.
재미있어요~ 이 책~

딸기야놀러가자 2007-10-19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 봐야겠어요. 심지어는 이 리뷰만 보고서, 과학책 뭐 읽으면 좋을까요 하는 후배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기까지 했답니다. "이거 내가 아는 분(^^)이 좋다고 한거니깐 읽어봐!" 하면서요.
 

 아홉 살 난 아들 녀석의 장래희망이 로봇과학자이다. '휴보'니 '아시모'니 하는 로봇 이름을 주워섬기고, 로봇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고, 학교 특기적성 수업인 로봇공학 시간을 일주일 내내 기다린다. 로봇에 대한 사랑을 품어보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태권브이, 마징가제트, 그랜다이저, 아톰, 이겨라 승리호 등 만화영화 속의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에 열광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로봇과학자를 꿈꾸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역할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이가 바로 로드니 브룩스일 것이다.

현재 MIT 인공지능 연구소(현재는 컴퓨터과학과 통합된 CSAIL)의 소장인 그는 답보 상태에 있던 인공지능 연구에 물꼬를 트고, 더 나아가 주류의 물길마저 돌려놓은 패러다임 개척자였다. 선편으로 과학 잡지를 받아보는 데 3개월이 걸리는 호주의 벽지 출신의 소년이 쟁쟁한 세계적인 천재들을 제치고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우뚝 선 이야기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또한 '룸바'라는 청소 로봇으로 글자 그대로 우리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들어온 성공적 사업가라는 경력은 하고픈 일을 하면서 세속적 보상도 누릴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이공계 지망생들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스탠퍼드 대학교 인공지능 연구소(SAIL)에서 로봇공학자로서 경력의 첫발을 내딛은 브룩스는 그곳에서 오늘날 로봇 분야의 리더 중 한 사람이며 기이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한스 모라벡을 선배로 만나 그의 연구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도왔다. 모라벡의 연구가 대표하듯 당시 로봇 연구는 기계의 연산장치를 통해 3차원적 세계의 내적 모델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움직임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실 인공지능 초창기에는 높은 수준의 인지적 활동에 모든 관심이 모아졌다. 그 결과 체스나 미적분, 대수 문제, 수학 증명 등 가장 고차원적인 인지 활동에서 인간의 능력에 필적하거나 그 수준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지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쉬운 작업들, 컵과 의자를 시각적으로 구분하기, 장애물을 피해 방안을 돌아다니기, 두 발로 계단을 오르내리기 따위의 활동에서 연구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바로 여기에서 브룩스는 과감하게 허를 찌르는 전법을 내세운다. "내적 모델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어렵고 소모적이라면, 그 내적 모델을 없애버려라!"가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세계에 대한 상세한 내적 모델의 구축 없이 지각과 행동을 직접 연결해 버렸다. 수많은 천재적 인공지능 연구가들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려고 노력할 때 브룩스는 지능 진화의 역사에서 지질학적 시간 단위를 거슬러 올라가 곤충 수준의 지능에서부터 다시 출발한 것이다. 그가 '캄브리아기 대탐험'이라고 부른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자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꼽는 징기스Gengis는 곤충을 모방한 6족 보행 로봇이다.

브룩스는 그 어떤 장애물도 기어올라 넘어서며 집요하게 사람을 쫓아다니는 로봇의 특성 때문에 징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그 다음 그의 지도학생들은 징기스의 친족 뻘 되는 쌍둥이 곤충 로봇, 아틸라와 한니발을 만들어낸다. 비록 브룩스 자신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이름들이 그의 연구와 그 자신의 행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고하고 콧대 높은 서구 국가들을 침략해 들어와 정교한 문명을 짓밟고 풍비박산 낸, (서구인의 기준으로 볼 때) 단순무식하고 야만스러운 이민족(몽골, 훈, 카르타고)의 수장, 징기스, 아틸라, 한니발…. 브룩스의 혁명은 바로 이들의 정복 사례에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브룩스는 주류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반발과 배척을 받았고 반 세대쯤 앞선 인공지능의 거두 마빈 민스키는 기회 닿을 때마다 브룩스 이래로 판을 치고 있는 이 '작은 로봇들'에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1989년 발표한 브룩스의 논문 제목 '빠르고 값싸게, 그리고 통제 없이'는 인터넷 상에서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구호로 퍼져나갔고 그가 직접 출연한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그는 대중과 소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학자였다. 로봇을 다른 행성으로 실어 보낼 연구를 진행할 때는 관련 아이디어를 영화화해 판권을 할리우드에 팔거나 기업의 광고로 활용해서 연구비를 댈 궁리를 했다. 로봇 장난감을 상품화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의 장난감 회사들을 발로 찾아다니며 제조, 마케팅 등의 경영기법을 제대로 배워나갔다. 너무 상업주의적인 것 아니냐고? 맞다. 엄청 상업주의적이다. 그는 기질적으로 학자이기에 앞서 발명가이고 사업가이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소개란에 레이 커즈와일을 가리켜 '에디슨의 적자嫡子'라는 인용을 실었는데 그렇다면 커즈와일과 로드니 브룩스는 친형제 뻘 되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커즈와일과는 뚜렷한 반목을 드러낸다. 브룩스는 의식을 기계에 다운로드해 불멸을 실현한다든지 인공지능과 로봇이 엄청난 부와 풍요를 가져다 준다든지 하는 커즈와일, 모라벡, 민스키 등의 테크노 유토피아적 미래 예측에 냉소를 보내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브룩스와 다른 과학자들, 특히 민스키와의 미묘한 관계는 재미난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역시도 ―로봇들의 아버지답게― 궁극적으로 로봇이 감정과 의식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그렇다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도 기계일 뿐이라는 철저한 유물론과 지적, 도덕적 상대주의가 결합한 결과이다. 이런 것을 보면 과학의 엄밀한 분석의 한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온갖 가설과 추측이 비온 후 잡초처럼 무성하게 돋아나고, 사람들은 결국 각자 자기 취향대로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룩스라는 인물에 무조건 찬사를 보낼 생각은 없다. 사실 학계를 정복한 그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오랫동안 왕좌를 지킬지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어쩌면 그의 연구방향이 어디선가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고, 그가 조소했던 경쟁자들이 더 큰 광맥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땅에 발을 굳게 딛고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쓴 과학책을 읽는 것은 독자로서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이다. 나처럼 로봇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태권브이에서 졸업해버린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울 만큼 친절하며 태권브이만큼 설레고 재미있는 로봇 이야기라고 감히 장담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쟈 2007-07-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네파벨님의 기고로군요!^^

딸기야놀러가자 2007-07-2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지금 시간이 좀 없어서... 이따가 다시 들어와서 찬찬히 읽어볼께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