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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ㅣ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열린책들에서 매그레 경감 시리즈가 출간된다고 했을 때 처음엔 갸웃했다. 세계문학전집, 도끼 전집, 프로이트 전집 같은 무게 있는 전집을 주로 출간해왔기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재 장르문학 가운데 열린책들에서 수키 시리즈를 펴내고 있긴 하지만 이건 75권이나 되는 대장정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어쨌거나 어딘가에서 내주길 기대했던 엘러리 퀸 전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또 하나의 장르문학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설렜다. 4월 출간예정이었던 것이 밀려 5월에 4,5월 분의 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을 때도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것도 바로 그 설렘 때문이었다.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 그 첫만남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시작됐다.
11월의 어느 날, 기동 수사대의 매그레 반장은 라트비아인 피에트르의 이동에 대한 전보를 받는다. 외견 연령 32세, 신장 169, 미간 좁음, 비배 직선 등으로 그의 신체적 특징이 나열된 구술 몽타주를 통해 라트비아인 피에트르에 대해 입력 후 그가 도착할 듯한 기차역으로 나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에트르와 똑같은 인상착의의 남성이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또 한 명의 피에트르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호텔로 향한다. 이에 특유의 감이 발동된 매그레 반장은 미행을 시작한다. 라트비아인과의 보이지 않는 대립 속에서 자신이 아끼던 부하가 살해당하고, 자신 또한 총에 맞기까지 하지만,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균열 이론'을 가지고 범인이 틈을 보이는 순간만을 끈질기게 기다리는 매그레 반장. 끈질긴 그의 추격 앞에 결국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는데...
신장 180센티미터, 몸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큰 덩치의 바윗덩어리 같은 남자. 쉴 새 없이 맥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강인한 모습이지만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남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도 시리즈물을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리즈물을 계속 '읽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처음 만난 매그레 반장은 따뜻함과 우직함을 두루 갖춘 정감가는 캐릭터였다.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가 전형적인 경찰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외교상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범인을 제대로 체포하기 위해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는 면도 있지만,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고, 권총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절망에 빠진 범인이 자살하게 방조하기도 한다. 선과 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범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모습을 보며 시리즈 첫 권이라 어느 정도 캐릭터가 확립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섣부른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약간은 갸웃한 면도 있었지만 '삶을 수사한다'는 버즈북의 제목처럼 우직하게 삶을 수사하는 매그레 반장. 앞으로 이어질 대장정이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