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9
로버트 러들럼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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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본 시리즈의 4편인 <본 네거시>가 한국에서 촬영되었다는 기사가 뜬 적이 있다. 맷 데이먼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은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007처럼 새로운 본이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 바로 본 시리즈의 원작인 로버트 러들럼의 <본 아이덴티티>의 출간 소식이었다. 1980년대 스릴러 붐의 중심에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90년대에 소개되었다가 절판된 비운(?)의 작가 로버트 러들럼. 그와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흔히 영화가 먼저 개봉된 뒤에 출간되는 책을 접하면 '어차피 영화로 봤는데 뭘 새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몇 번 원작 소설과 영상화된 작품을 함께 접하면서 분명 원작과 영화는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같을지 몰라도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요소이고, 최근 방영한 <신기생뎐>처럼 원작 소설을 왜곡하는 작품도 적지 않다. 시간 제한 때문에 몇몇 에피소드를 생략하는 것은 기본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각색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면에서 <본 아이덴티티> 또한 그랬다. 영화가 사고로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은 남자의 자아 찾기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면, 원작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전설의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과 본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가 그려진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는 올해 초 개봉했던 <언노운>과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언노운> 영화평에도 <본>을 언급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그만큼 <본> 시리즈는 이후 스파이물, 스릴러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은 것은 달랑 몸뚱이 하나지만 그 몸뚱이가 비밀첩보요원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인간병기이나 다름 없으니 누가 그의 앞을 가로막을까 싶지만 여기서 자칼이 등장한다. 최고의 킬러 자리를 두고 대립각을 세운 본과 자칼. 만들어진 킬러 본과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쟁취한 자칼. 보이지 않게 벌어지는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결은 본의 아이덴티티 찾기라는 큰 줄거리에 재미를 더한다.

  첨단기기가 등장하거나 엄청난 기술이 등장해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릴러 소설의 고전답게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져 읽는 내내 가벼운 흥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원작을 읽으면 영화보다 원작이 훨씬 낫다, 라는 평을 내리게 되지만 <본 아이덴티티>는 영화도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인지 영화만큼이나 책도 멋지다라는 말을 해야할 것 같다. 이어질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 또한 영화와 원작이 어떻게 다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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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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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회귀천 정사>라는 의미가 단번에 와닿지 않는 제목. 반쯤 드러나 있을 뿐이지만 어딘지 섬뜩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여인의 모습. 아무런 기본 정보도 없이 이 책을 고른 것은 순전히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표지 때문이었다. 작가 스스로 어디까지나 꽃이 주인공이라고 밝히고 있는 화장(花葬) 시리즈.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났다가 스러져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집 <회귀천 정사>는 그 향기를 은은히 떨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조용히 풀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의 편지 등을 대필해주며 살아가던 대필가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이야기 <등나무 향기>를 비롯해 도라지꽃을 손에 쥔 채 죽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라지꽃 피는 집>처럼 홍등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비롯해, 야쿠자의 이야기를 다룬 <오동나무 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누군가를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야기를 다룬 <흰 연꽃 사찰>, 천재라 불린 가인의 정사 미수 사건을 다룬 <회귀천 정사> 등 이 책에서는 밝음보다는 어둠의 세계를 더 많이 다루고 있다. 물론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서로 죽음으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정사'라는 소재가 태생적으로 밝음과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도 하겠지만, 짓밟힌 꽃, 시들어버린 꽃이라는 화장 시리즈의 내용적인 측면도 고려한 설정인 듯하다. 

  미스터리적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중심에 분위기를 놓아야 한다. 시각, 후각, 청각을 곤두세우며 이 책을 몰입해 읽다보면 어느새 코끝에는 등나무 향기가, 귓가에는 연꽃 피는 소리가, 눈앞에는 하얀 도라지꽃이 스쳐간다. 어쩐지 몽환적이면서도 은은한 분위기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저마다 죽음과 맞닿아 있기에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섬세한 묘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그보다는 선 굵은 매력을 기대하고 읽었던 터라 아쉬움이 들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한 이야기. 얼마 전 화장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이 수록된 <저녁싸리 정사>가 나왔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저녁싸리 정사>까지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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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매지님 리뷰를 보니 마구 읽고 싶어지는데요^^

이매지 2011-07-13 13:5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지는데요 ㅎㅎ
 
샤바케 4 - 더부살이 아이 샤바케 4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규은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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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무려 4년만에) 도련님이 돌아왔다! 비슷비슷한 패턴에 자극 없는 사건들. 하지만 <샤바케> 시리즈를 읽을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만날 골골거리지만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마음을 갖춘 도련님, 그런 도련님을 충실하게 보좌하는 요괴인 두 행수. 그리고 항상 귀욤귀욤한 매력을 뽐내는 야나리들까지. <샤바케> 시리즈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따스함'이 주가 된다. 간만에 만난 이들의 이야기. 여전히 변함없이 정이 넘쳤다.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어, 어느덧 도련님도 훌쩍(?) 자라 요시와라를 찾기에 이른다. 요시와라 출입도 충격적인데 유녀와 함께 도망치겠다는 선언까지 하는 도련님. 이런 놀람도 잠시, 유곽 주인과 짜고 건강이 좋지 않은 아가씨를 빼돌리려는 이야기를 다룬 <아린스코쿠>를 비롯해 불행의 씨앗이라고 불리는 '고와이'라는 요괴가 직인에게 궁극의 기술을 전해준다는 신비의 비약을 갖고 있다고 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고와이>, 오히나가 두꺼운 화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룬 <분접지>, 도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 <움직이는 그림자>와 야나리의 모험을 다룬 표제작 <더부살이 아이>까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또 한 번 그려진다. 

  <샤바케> 시리즈가 쭉 그래왔듯이 네번째 이야기 역시 비슷비슷하다. 저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요괴보다 인간의 뒤틀린 마음쪽이 더 무시무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 놀라움, 반전, 자극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샤바케> 시리즈를 계속 읽게 하는 것은 인간과 요괴를 아우르는 익살스러움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언제나처럼 반가웠던 도련님. 다음에는 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좀 더 남자가 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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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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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연애. 처음에 이 제목을 접했을 때는 '완전범죄'는 알겠는데, 대체 '완전연애'는 뭐지 하는 생각이 맨 먼저 들었다. 이런 의문을 품은 독자를 위해서였을까. 작가는 친절하게도 "타인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죄를 완전범죄라 한다. 그렇다면 타인이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랑은 완전연애라 해야 할까?"라고 완전연애의 정의(?)부터 내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에서 풍기는 본격미스터리. 이 두 개의 기대를 품고 읽어나간 책, <완전연애>다. 

  쇼와 23년. 2차 대전이 한창인 일본. 연합군의 공격으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은 혼조 기와무는 작은 온천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큰아버지 댁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여관에는 역시 도쿄에서 피신차 내려온 유명한 화가 고보토케와 그의 딸 도모네가 살고 있다. 기와무는 도모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일본이 항복하고 큰아버지는 미군 장교들을 위해 선뜻 여관을 개방한다. 그 중 난폭하고 문란한 제이크 대위가 도모네에게 찝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제이크 대위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후 몇 년이 흘러 도모네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마카리 가문에 팔려가다시피 시집을 간다. 그리고 얼마 뒤, 여관에 불이 나 이것을 계기로 기와무는 고보토케 화백과 함께 도쿄로 나와 그의 제자가 된다. 스승의 후원 덕분에 나기라 다다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기와무. 세월이 흘러 스승이 돌아가시고 자신이 제자를 키우는 상황이 된 기와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도모네를 향한 마음은 식지 않는다. 그리고 기와무를 둘러싸고 계속 이어지는 의문의 사건. 완전범죄, 완전연애.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 

  기구한 운명의 장난, 절절한 순애보. <완전연애>를 덮자마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세 가지 살인사건. 기와무를 둘러싼 사건이라는 공통점만 지닐 뿐, 수법도, 동기도 모두 저마다인 사건. 꼬일대로 꼬여서 '아, 이거 대체 뭐지' 싶을 사건.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들을 모든 가능성을 배제한 뒤에 남는 마지막 한 수를 찌르면서 의외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로맨스다. 얼핏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마지막 반전 앞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본격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읽은 독자라면 생각보다 미스터리적인 부분이 약해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하는 뛰어난 글솜씨와 진국 중에 진국인 사랑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제목처럼 완전연애에 치우치는 이야기. 하지만 그 매력은 책을 놓고도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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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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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에서 매그레 경감 시리즈가 출간된다고 했을 때 처음엔 갸웃했다. 세계문학전집, 도끼 전집, 프로이트 전집 같은 무게 있는 전집을 주로 출간해왔기에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현재 장르문학 가운데 열린책들에서 수키 시리즈를 펴내고 있긴 하지만 이건 75권이나 되는 대장정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어쨌거나 어딘가에서 내주길 기대했던 엘러리 퀸 전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또 하나의 장르문학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설렜다. 4월 출간예정이었던 것이 밀려 5월에 4,5월 분의 책이 한꺼번에 출간되었을 때도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것도 바로 그 설렘 때문이었다. 새로운 캐릭터와의 만남. 그 첫만남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시작됐다.

  11월의 어느 날, 기동 수사대의 매그레 반장은 라트비아인 피에트르의 이동에 대한 전보를 받는다. 외견 연령 32세, 신장 169, 미간 좁음, 비배 직선 등으로 그의 신체적 특징이 나열된 구술 몽타주를 통해 라트비아인 피에트르에 대해 입력 후 그가 도착할 듯한 기차역으로 나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에트르와 똑같은 인상착의의 남성이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또 한 명의 피에트르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호텔로 향한다. 이에 특유의 감이 발동된 매그레 반장은 미행을 시작한다. 라트비아인과의 보이지 않는 대립 속에서 자신이 아끼던 부하가 살해당하고, 자신 또한 총에 맞기까지 하지만,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균열 이론'을 가지고 범인이 틈을 보이는 순간만을 끈질기게 기다리는 매그레 반장. 끈질긴 그의 추격 앞에 결국 범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에 이르는데...

  신장 180센티미터, 몸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큰 덩치의 바윗덩어리 같은 남자. 쉴 새 없이 맥주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강인한 모습이지만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남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도 시리즈물을 읽는 재미를 더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리즈물을 계속 '읽게'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처음 만난 매그레 반장은 따뜻함과 우직함을 두루 갖춘 정감가는 캐릭터였다.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가 전형적인 경찰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외교상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범인을 제대로 체포하기 위해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섣부른 행동을 자제하는 면도 있지만, 법망을 피해가기도 하고, 권총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절망에 빠진 범인이 자살하게 방조하기도 한다. 선과 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범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모습을 보며 시리즈 첫 권이라 어느 정도 캐릭터가 확립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섣부른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약간은 갸웃한 면도 있었지만 '삶을 수사한다'는 버즈북의 제목처럼 우직하게 삶을 수사하는 매그레 반장. 앞으로 이어질 대장정이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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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그레 시리즈 정도면,열린 책들 정도는 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여러가지 추리 소설이 출간되는 일본이 넘 부럽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