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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평점 :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본 순간부터 '이 책은 읽어야 해!' 하고 강한 지름신이 왔던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국내에는 이미 몇 권의 책이 출간된 작가인데, 묘하게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만났다.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W의 비극>이나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떠오르게 하는 <제3의 여인> 등 고전 미스터리를 맛깔나게 변형하는 작가인 듯하다는 인상이었는데,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를 읽으니 그런 인상이 영 잘못된 건 아니었던 듯했다. 아무튼 언제나 믿고 보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잘 알려졌다시피 고립된 섬으로 초대된 사람들이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노래 가사에 맞춰 한 명씩 살해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배경도 이와 마찬가지로 항해중인 선상으로 설정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죄로 판결받았지만(혹은 유죄로 의심받지도 않지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살인으로 몰고간) 사람들을 한 명씩 단죄한다는 설정 또한 두 작품 모두 동일하다. 제목이나 대강의 얼개뿐 아니라 디테일 면에서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그리고 누군가 사라졌다>는 닮은꼴이다. 인디언 섬은 인디아나 호로, 하나씩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은 등장인물의 띠와 동일한 십이지 인형으로 변형되는 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클로즈드 서클, 그러니까 폐쇄된 공간에서의 살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 모두 나름의 솜씨를 뽐낸다. '다음엔 내가 살해당할지도 몰라' '대체 범인은 누구지?' 하는 식의 의문을 끊임없이, 최후의 2인이 남을 때까지, 아니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도 그런 긴장과 불안은 유지된다.
까딱하다가는 오마주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아류로 남을 것 같았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는 의외의 전개를 통해 영리하게 유사 설정작이 가질 수 있는 덫을 피해간다. 아니, 오히려 꾸준히 독자에게 '이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몇몇 다른 설정을 간과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독자의 뒷통수를 친다. 단순한 오마주, 패러디가 아니라 원작의 똑똑한 재해석이라는 보기 드문 기교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뿐 아니라 뒷부분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다른 걸작을 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단죄는 얼얼하게 끝이 난다. 마지막 몇 페이지의 사족과도 같은 마무리만 아니었더라면 더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쓰키 시즈코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엔 충분한 마무리였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긴 했지만,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솜씨도 꽤 볼만했던 작품.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그녀의 작품과 비교하며 읽는 맛이 있을 테고, 미스터리 초심자에게는 미스터리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