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커스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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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6년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 2015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6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2016 서점 대상 노미네이트 등 2년 연속 미스터리 3관왕을 달성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왕과 서커스>. 사실 앞서 읽었던 <야경>이 재미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터라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터. 그랬기에 장편소설인 <왕과 서커스>가 더 기대됐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2001년 네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왕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집필된 <왕과 서커스>는 때마침 답사차 네팔에 와 있던 다치아라이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인 기자가 네팔 왕실 살인 사건에 접근하기란 녹록지 않은 법. 영리한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를 살해당한 정보원 사건에 대한 추적이라는 설정으로 풀어나간다.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왕과 서커스>의 초반부는 '본격 미스터리'라고 보기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보기도 살짝 애매해서 사실 초반에는 살짝 갸웃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자 숨쉴 새 없이 이야기가 몰아쳤고, 그러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도 꽤 꼼꼼하게 그려냈다. 주된 미스터리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은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에 대한 다치아라이의 고민이었다. 자신이 발디딘 세계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세계에 대한, 자극적인 이야깃거리에 목말라 하는 대중. 그런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며 타인의 비극을 파고들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는 기자. 네팔에 가서야 이 경계선에 서게 된 다이차라이의 고뇌가 정보원 살해를 추적하는 일보다 더 깊이 있게 담겨 있었다. 

  네팔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물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한 인물이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던 작품. 간만에 꽤 몰입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본격 미스터리 소설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던 터라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어울리는 작가라기보다는 나오키 상과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읽고 나서 많은 여운이 들었던 작품이지만, 이 정도 작품이면 미스터리 마니아뿐 아니라 대중 소설 독자까지 끌어들이겠다 싶었던 잘 짜여진 오락 소설.

 

* 네팔 정부는 정보를 조금씩 흘리고 있다. 왕궁에서 살인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이 도시의 모두가 알고 있는데, 공식 발표로는 국왕을 포함한 여덟 명의 왕족이 사망했다는 말뿐이다. 그런 점이 애초에 네팔 정부는 왕궁 사건에 대해 아무 발표도 할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제대로 된 설명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부르고 있다. 이런 불신감이 사람들의 불만을 초래하는 게 아닐까? _182쪽

 

* <월간 심층>의 기사는 네팔을 구하지 못한다. 물론 영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읽겠지. 하지만 제로보다 조금 나은 힘으로 당당하게 구는 것을 성실한 태도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네팔에 도움이 되니까 말해달라는 접근 방식은 잘못되었다. 내가 라제스와르에게 왕궁 사건의 진상을 듣고, 그것을 일본어 기사로 쓰는 것은 네팔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다. 앎은 고귀하다고 믿어왔다. 상관없는 일은 알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침묵할 수는 없었다.
"일본어로 쓴 기사가 네팔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말로 써도 진실은 진실, 기록되어야만 합니다."
앎은 손이 닿는 범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언정 알고자 하는 정신 자체는 옳을 터다. _222쪽

 

* "진실만큼 어이없이 왜곡되는 것도 없지. 그보다 다면적인 것도 없어.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당신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대로 일본인이 네팔에 품는 인상이 돼. 여기서 내가 국왕이 자살했다고 말하면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겠지. 나중에 진실이 유포된다 해도 그걸 읽고 첫인상을 바꿀 사람이 얼마나 될까?" _223쪽

 

* "분명 신념을 가진 자는 아름다워. 믿는 길에 몸을 던지는 이의 삶은 처연하지. 하지만 도둑에게는 도둑의 신념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신념이 있다. 신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옳고 그름은 별개야." _225쪽

 

* "자기가 처할 일 없는 참극은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이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끔찍한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말하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 오락인 거야." _228쪽

 

* 기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중립이라고 주장할 때, 기자는 덫에 빠진다. 모든 사건에서 모든 이들의 주장을 제한 없이 다루기란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기자는 항상 취사선택을 한다. 누군가의 주장을 글로 씀으로써 다른 누군가의 주장을 무시한다. 그 과정이 지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선택으로 기자의 견식이 드러난다. 주관으로 선택하면서 중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_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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