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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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을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읽지 않는 책'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흔히 한다. 내게 찰스 디킨스 또한 그랬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등으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그때 읽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조금이라도 더 매력 있었다면 그의 작품을 내리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일 뿐 이야기 자체는 크게 매력이 없었던 터라 영 심드렁했었고 찰스 디킨스도 그렇게 관심 밖의 작가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영감을 『두 도시 이야기』에서 얻었다고 언급했고, 때마침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도 시작돼 다시 한번 찰스 디킨스에 도전해볼까 싶어졌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히익, 하고 질겁했지만 다행히도 초반의 지루함을 넘기자 나도 모르게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두 도시로 이동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두 도시 이야기』는 짧게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느 정도 개인의 삶이 보장되고, 다소간의 갈등은 있을지라도 전반적으로 안정된 분위기의 런던. 그런 런던과 반대로 파리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얼굴은 찌들었고 목소리에는 근심이 배었으며 얼굴에는 굶주림의 고랑이 깊어져만 가는 도시다. 가난과 배고픔, 지배계급의 압제에 사람들은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이 상황을 더는 견디지 못한 그들은 조금씩 '그날'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물밑에서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이 이 혁명에 휩쓸린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으나 민중을 향한 폭압을 더는 용인할 수 없어 자신의 모든 지위와 권리를 버리고 런던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찰스 다네이를 비롯해, 1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며 정신적으로 무너져 어둠 속에서 구두 만들기에만 골몰하나 친구인 로리의 도움으로 딸 루시를 만나며 '되살아난' 마네트 박사, 아버지 마네트 박사와 남편 다네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루시를 중심으로 영국 은행에 근무하는 로리,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시드니 카턴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혁명에 휩쓸린 사람들 반대편에 오랫동안 혁명을 준비해온 드파르주와 그의 부인이 있다. 런던과 파리라는 두 도시가 대비되듯이 인물 구성에 있어서도 크게 두 축으로 대비된다. 각각의 축에 그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 나름의 개연성을 가졌기 때문에 쉽사리 이들의 대립을 선과 악의 대립이라고 선을 그을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시대를 둘러싸고 어쩔 수 없는 만남이 하필 그곳에서 벌어진 것일 뿐이다.

 

  장소와 인물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는 탄탄하고 극적으로 진행된다.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용서와 복수 등 온갖 감정의 변화를 읽어가다보면 어느샌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워낙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있어 한 가지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지만, 꼭 짚고 싶은 것은 대중의 광기다. 애초에 품은 혁명의 취지를 잊은 채 그저 피에 굶주려 한 사람의 죄과를 제대로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더 많은 사람들을 기요틴에 보내려는,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광기에 취해가는 '애국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대체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결국 이들은 그들이 쫓아낸 귀족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라는 자조가 들었다. 두 번 재판석에 오르는 다네이를 보면 '애국시민'의 이같은 태도는 극명히 드러난다. 첫번째 재판에서는 그의 무죄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두번째 재판에서는 그의 유죄 선고에 환호하고 그의 처벌을 촉구한다. 이미 광기에 휩쓸린 '애국시민'에게는 대의도 명분도 유무죄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은 복수와 피에 목말라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어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혁명이라는 혼돈의 시기에서만 유효한 이야기일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늘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사리분별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라인상에서 그 상대만 바꿔가며 끊임없이 벌어지는 마녀사냥도 '애국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내면에 잠재된 광기의 변형은 아닐까? 인간이란 누구나 이렇게 타인을 향한 잔인한 폭력성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요틴에 잘려간 머리를 세는 낙으로, 붉게 물든 땅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섬뜩했지만,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본 것만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지금 하려는 행위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행동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어느 길보다 훨씬 더 평안한 길이리라"라는 문장과 함께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시드니 카턴. 그리고 그가 마지막을 함께해준 한 소녀. 그들의 죽음과 함께 『두 도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사리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때문에 읽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영화와의 연관성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찰스 디킨스라는 거장이 만들어낸 이 놀랄만큼 가혹하고도 숭고한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라고 훈훈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시드니 카턴의 희생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랑도 과연 숭고하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자조 섞인 탄식을 할 뿐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몇백 년 전 파리와 런던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제는 끝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지구 반대편의 이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니 말이다. 

 

 

덧1)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두 도시 이야기』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잘 정리하신 분이 계셔서 링크로 갈음한다.

덧2) 근래에 읽은 책 중에 정말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탈자가 많았다. 영화와 뮤지컬 등에 맞추느라 일정이 급했겠거니 이해는 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에 옥의 티처럼 오탈자가 있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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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수전 힐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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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공포소설이자 영국에서 롱런한 연극 <우먼 인 블랙>의 원작소설 『우먼 인 블랙』. 작년에 한국에서도 무대에 오른 바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봐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해리포터>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원작소설이 함께 출간되었다. 운 좋게 시사회 당첨이 되서 영화로 먼저 접한 이야기는 음습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냥 어리게만 느꼈던 해리포터 군이 애 아빠로 나온다는 설정이 익숙지 않았고, 소리로 놀래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괜찮긴 한데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영화와 비교하며 읽은 『우먼 인 블랙』은 얇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촘촘하게 이야기가 짜여 있어 오싹함으로 조금씩 마음이 죄어들었다. 

  젊고 패기 있는 변호사 아서 킵스. 상사의 명령으로 고객이었던 드래블로 부인의 장례식 참석과 유산 정리를 위해 크라이신이라는 작은 마을을 찾는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왔다는 얘기를 듣자 호텔 주인은 경계심인지 의혹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인다. 그저 외딴 곳에 살았던 여자였으니 마을에서 마녀 취급을 받았던 것이리라 하고 가볍게 넘어간 아서.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 그곳에서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수척한 한 여성을 본다. 그리고 조수 시간에 맞춰 노부인이 살았던 일 마시 하우스에 문서 정리를 하러 들어갔다가 그 여성을 다시 만난다. 그녀를 다시 만난 아서는 "그 여자는 육체가 있는 산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전통적인 '유령'에 다한 흔한 상상과는 달리 투명하거나 흐릿해 보이지는 않았다. 진짜 사람처럼 그곳에 있었고, 또렷이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만질 수도 있을 듯했다"라고 회상하면서 그녀가 유령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갖지 않는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자꾸 아서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검은 옷을 입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왜 마을 사람들은 공포스러워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뭍과 물의 경계에서 아서는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와 호기심의 경계를 몸소 체험한다.

 

  누구나 유령 이야기를 하나쯤은 알고 있다. 유령이 나온 수많은 문학작품을 논외로 하더라도 '전설의 고향'류의 귀신 이야기는 얼마나 많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분위기 잡으며 나누는 도시괴담류의 이야기도 꽤 많다. 하지만 『우먼 인 블랙』의 아서를 평생 괴롭힌 유령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도, "피가 고이거나 스멀스멀 기어들거나 그런 단순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이야기라면 어쩌면 오싹할긴 하지만 식상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우먼 인 블랙』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아서는 "그래, 나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것도 진짜 이야기가. 유령과 악귀, 두려움과 혼란, 공포와 비극의 실화가.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벽난롯가에 둘러앉아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이 간직한 이야기에 대해 운을 뗀다.

 

  그의 말처럼 분명 『우먼 인 블랙』 속의 이야기는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원한(혹은 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 존재가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악의'를 품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뒤 분노와 복수심, 상실과 절망, 그리고 광기와 비통함의 화신이 된 한 여인.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마을에는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는다. 자신에게 닥친 절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우먼 인 블랙』 속의 여인은 절망을 복수로 뒤바꾼다. 가끔 자신의 에너지를 적의로 표출하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다. 별일 아닌 것 같은 것에 분노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태도가 옳고 그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먼 인 블랙』을 읽으며 과연 그녀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해도 누구도 그녀에게 다른 사람의 삶 또한 파괴할 권한을 주지 않았는데 그녀는 멋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침범해 그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태도에 분개할 필요는 없다. 그저 '검은 옷을 입은' 이 여인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초래하는 일련의 사태와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우먼 인 블랙』의 몇 가지 설정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서의 지위의 문제다. 영화에서 아서는 네 살 난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약혼녀는 있지만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바로 이 설정 때문에 전체적인 골격은 똑같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결말이 다르게 전개된다. 소설이 으스스하면서도 말단을 조금씩 자극하면서 전개된다면, 영화는 소리와 분위기로 공포감을 전달한다. 영화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나 아서에 대한 이해도는 역시 원작이 영화보다 더 농밀했다. 그저 무언가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의 등장 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서 도출되는 공포를 다룬 이야기니만큼 한 개인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데 영화에는 이 부분이 너무 가볍고 광기로 처리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영화가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 같은 것으로 말단을 자극했다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일 머시 하우스라는 낡은 저택을 상상하게 하고, 그 안에 들어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했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방법론적인 차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침대 안에서 혼자 상상하면서 오싹오싹하는 것이 더 좋았다. 얇아서 가볍게 읽었는데, 영화에서 만나지 못한 심리묘사와 치밀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래서 세계 5대 고딕소설이라는 평을 듣는구나 싶었던 책. 짧지만 강렬한 공포를 원한다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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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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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아이돌 가운데 가장 애정하는 그룹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아라시를 꼽을 것이다. 다섯 멤버 모두 나름 매력적인 음색을 갖췄고, 거침없이 망가지는 예능감을 갖췄으며, 겸업인 배우로서도 빼어난 연기력을 보인다. 그 중 연기에 있어서 아라시뿐만 아니라 동년배의 배우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것은 역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로 베를린 레드카펫까지 밟은 바 있는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아닐까 싶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좋아 그가 출연한 드라마, 영화를 보고 실망한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그가 주연한 <프리터, 집을 사다>도 보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원작과 영상물을 비교해보는 걸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낚여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를 읽은 뒤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고만고만한 대학을 나와 고만고만한 회사에 취직해 고만고만하게 다니다가 석 달만에 회사를 그만둔 주인공 다케 세이지. 회사가 이상하다며 기세 좋게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적당히 돈을 벌며 적당히 재취업 자리를 알아본다. 하지만 세이지는 자신을 받아주는 회사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아버지의 호통과 어머니의 배려가 싫어 방 안에 틀어박혀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중증 우울증을 앓게 된다. 결혼한 누나가 달려와 가까스로 상황을 수습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을 두고 오래 치료해야 하는 병. 게다가 어머니의 우울증의 원인이 이웃의 따돌림 때문임을 알게 된 세이지는 어머니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내 집 장만을 목표로 삼는다. 하루하루 빈둥거리며 살던 세이지는 어머니를 위해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취업난은 일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20대 대학생들이 읽어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이지가 취직에 성공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해서 맥이 빠질 수는 있겠지만.)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는 단순히 취업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머니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두 발을 세상에 단단히 내딛은 한 청년의 이야기다. 늘 고압적인, 전형적인 가부장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세이지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는 어머니. 어머니에겐 친구처럼 아버지에겐 아내처럼 동생에겐 엄마처럼 대하는 든단한 누나. 세이지네 가족은 그 자체로 그런대로 안정감이 있지만 조그만한 틈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철 없이 지내던 세이지가 가족 관계를 다시 쌓기 위해 힘들고 괴롭지만 차근차근 시작해가는 모습은 분명 희망차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가 세이지의 성공기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프리터, 집을 사다>는 원작과 몇 가지 설정을 바꿔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도 함께 전개해간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 미나미는 세이지가 채용한 신입사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현장 감독으로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 세이지를 가르쳐주며 그와 티격태격하며 애정을 키워간다. 그 외에도 아버지에 비밀에 대한 이야기, 누나네 집의 고부간의 갈등 등은 모두 드라마에만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다소 밋밋한 듯한 원작을 드라마에서 좀 더 극적으로 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동안 재미 있기도 했고, 내 삶을 돌아보기도 했지만 정작 책을 놓고서는 동화 같이 익숙한 이야기로 끝난 것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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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마게 푸딩 -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특별한 이야기
아라키 켄 지음, 오유리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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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타임 슬립'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테르마이 로마이> <리피트> <JIN-仁> 등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여럿 눈에 띈다. <촌마게 푸딩> 역시 그런 타임슬립 류의 연장선이다. 표지에 떡 하니 자리 잡은 푸딩과 그 주변에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사무라이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촌마게(에도시대 무사들의 머리)로 상징되는 사무라이가 현대로 타임슬립해와 파티시에가 되는 모습을 그린,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이다.

  싱글맘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히로코. 어느 날 아침 아들 도모야를 데려다주다가 길가에 앉아 있는 사무라이 복장을 한 한 남자를 본다. 일단은 바쁜 와중이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를 그냥 지나치지만 퇴근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직도 옛날 복장을 한 사내는 그 자리에 있다. 엉겁결에 그와 얽혀서 이곳이 어드메이냐는 둥 횡설수설하는 야스베를 집에 데리고 오게 된 히로코. 믿기 힘들지만, 전후 사정으로 그가 에도시대에서 타임슬립 해온 사무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은 자신의 집에서 그를 데리고 있으면서 다시 그쪽으로 건너가는 방법을 찾아내길 바라는 히로코. 하지만 야스베는 그저 신세만 질 수 없다고 하며 가사나 육아를 돕기 시작하고, 점점 요리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혼자 아이를 키우며 고생해온 히로코는 야스베 덕분에 잊고 지낸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세 사람은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야스베가 TV 요리 대회에 출전하게 되며 새로운 전개가 이어지는데...

  사무라이가 현대로 타임슬립해서 파티시에가 된다는 설정도 재미있었지만, 단순히 그런 '재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싱글 맘인 히로코의 모습을 통해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의 고충을 담아내기도 하고, 야스베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문제들(예를 들면 아이의 응석을 주위의 시선 때문에 따끔히 혼내주지 못하는 것 같은)에 대한 비판을 담아내기도 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발랄하고 가볍지만 야스베라는 바른생활 사무라이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셈이다. 사무라이의 타임슬립이라는 극적인(?) 소재에 비해서는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마치 지금도 야스베가 어디선가 푸딩을 만들고 있을 것만 같은 묘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언제 달콤한 디저트를 사서 느긋하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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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글뒹글방콕 2011-09-1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오 ! 재미잇겟어요 ㅎㅎ
당장 사서 봐야겠어요 ㅎ

이매지 2011-09-16 14:05   좋아요 0 | URL
영화도 봤는데 영화보다 책이 더 재미있더라구요 :)
가볍게 읽으시기엔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ㅎㅎ
 
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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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텔톤의 예쁘장한 색감도 마음에 들었지만, "용기, 믿음, 정의……지금, 세 여자가 닫힌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린다!"라는 뒤표지에 카피와 백인 여성과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 그리고 100주가 넘게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책이라는 점 등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됐다. 월요일 오전 출근길 읽기 시작한 이 책을 50페이지도 채 읽기 전에 어서 주말이 오기를, 아니 휴가라도 내고 흐름을 쭉 이어가 이 책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친구와의 약속마저도 미뤄가며 오랫만에 '이야기'가 주는 힘에 한없이 매료됐다.

  1960년대 초, 미시시피주 잭슨. 다른 지역에서는 유색인과 백인의 경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남부 지역인 잭슨에서는 KKK단에 대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혀가 뽑히기도 하고, 허위 고발이나 벌금, 감옥에 가거나 집단 린치를 당하는 등 유색인에 대한 억압은 계속된다. 그리고 여기, 속은 썩을대로 썩어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기만 한 잭슨을 살아가는 세 여자가 있다. 목화농장의 딸로, 갓 대학을 졸업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스키터. 베테랑 가정부로 열일곱 명의 백인 아이를 길러낸 아이빌린. 가정부치고는 입이 걸어 문제가 되지만 음식 솜씨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미니. 자라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세 여자. 갑과 을의 관계, 주종관계로밖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 글 쓰는 것과 관련된 경력을 쌓기 위해 지역 신문의 살림 관련 칼럼을 쓰게 된 스키터가 친구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아이빌린의 도움을 받으며 둘은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스키터는 그를 독려해주는 유명출판사의 수석편집자에게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고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을 받는다. 처음에는 백인들이 자신에게 앙갚음을 할까봐 두려워하던 흑인 가정부들은, 아이빌린을 시작으로 하나씩 둘씩 가정부로서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 어렵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흑인 가정부를 위해 스키터는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바꾸고, 지역도 밝히지 않지만 불안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책. 처음엔 조용히 묻힐 것 같았던 책이 지역방송에서 소개되며 잭슨의 핫이슈가 되고, 책에 참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가정부에 대한 마녀사냥도 시작된다. 점점 압박을 받는 세 사람. 과연 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남부가 배경인, 흑인이 등장하는 소설은 많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뿌리> <앵무새 죽이기> 등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그렸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헬프>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백인과 유색인이라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헬프>가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이는 것은 표지에 쓰인 파스텔톤의 색감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여주인 힐리에게 미니는 차마 남에게 떠벌릴 수 없을 재료를 넣어 케이크 두 조각을 보낸다는 이야기나 음식을 비롯한 살림에 전혀 재능이 없는 백치에 가까운 셀리아와 미니의 만담(?) 등은 이 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묵직함을 완화시켜준다. 이런 완급의 조절 때문인지 내용도, 캐릭터도 전혀 다르지만 잭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읽으며 마치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을 때처럼 어쩐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나 힘들다. 하지만 그것은 계약의 만료에 따라 어느 정도 끝날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이 사회를 뒤엎지 않는 한, 혹은 평생을 쏟아도 끝나지 않는 관계도 있다. 끈질기고 위험한 싸움. 마틴 루터 킹 등의 인물이 앞장서 조금씩 유색인들의 목소리를 높여가지만 남부에서 유색인이건 유색인이 아니건 유색인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숨을 건 행위다. 부당함 앞에 늘 무릎을 꿇어야 하고, 보고도 못 본 것처럼 듣고도 못 들은 것처럼 그저 그렇게 자신을 죽여가면서 살아가야 했던 유색인들. <헬프>는 그들이 용기를 내 꺼내는,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보조자로서의 그들의 삶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 5년 동안 60번이나 출간을 거절당했다는 이 소설. 그 세월 동안 분명 <헬프>는 잭슨 마을의 '가정부'들처럼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제법 두툼한 소설이지만 오랫만에 소설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책. 영화로 만나게 될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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