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아이 - 하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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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작품임에도 뭔가 맞지 않아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절판되버리고 마는 책들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책 중에는 소리소문 없이 간혹 헌책방에서나 만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절판된 후에야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재발간 희망 리스트에 오르는 책도 있다. 일본문학 작품에 있어서 그렇게 많은 이들을 애태운 작품은 '관 시리즈'와 이 작품 <영원의 아이>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붕대클럽> <고독의 노랫소리>와 <애도하는 사람>을 읽으며 언제쯤 <영원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기존에 살림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3권 분량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북스피어에서는 2권의 두툼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영원의 아이>를 읽은 근 일주일. 출퇴근하며 읽으라 어깨도, 손목도 고생했지만, 무엇보다 세 아이들의 아픔과 인생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17년 전 저마다의 사정을 품고 후타미 소아 병원에 모인 아이들. '동물원'답게 저마다의 상처를 드러내주는 동물의 이름으로 서로를 대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구원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으며 살아간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회의 악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한 아이들. 누군가는 그 때문에 어둠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자신이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온 몸에 담뱃자국을 숨긴 채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아이들. 후타미 소아 병원에서 만난 구사카 유키, 나가세 쇼이치로, 아리사와 료헤이는 그렇게 의지할 곳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고 17년 뒤. 간호사, 변호사, 형사로 성장한 이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인연이 닿는다. 여전히 17년 전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 사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속죄'하며 애써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살아가던 세 사람의 재회가 이뤄지며 그들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세상은 흔들리고, 다시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데…. 

  <고독의 노랫소리>에서는 제목 그대로 '고독'에 대해, <애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붕대 클럽>에서는 '상처'에 대해 써내려갔다면 <영원의 아이>는 '아동학대'에 대해 그려낸다. 그동안 접한 텐도 아라타의 책이 성격도, 글의 분위기도 제각각이지만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상처 받은 이들을 다루는 시선만큼은 따뜻했다. 무참하게 짓밟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살아 남았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온다고, 열심히 잘해"왔다고 등장인물들을 가슴에 품어주는 듯한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모든 폭력이 그렇지만 어른에 비해 저항할 힘이 떨어지는 아이를 상대로 한 폭력은 무참하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마치 제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애완동물을 다루듯 아이의 존엄성과 자유를 깡그리 박탈해버리는 부모의 모습에 가슴이 아릿했다. 

  세 사람 뿐만 아니라 <영원의 아이> 속에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때문에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다보면 아무리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이라 해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휑하게 찬바람이 부는 겨울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느리지만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내용도 내용이고, 분량도 분량이다보니 중간중간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아니 읽어봐야 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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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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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김윤식 선생님의 평론집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 동아시아 근대문학의 관련성을 루쉰과 이광수를 통해 읽어가는 글을 접했다. 이광수의 <무정>이야 비교적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루쉰의 <아Q정전>은 워낙 어릴 때 읽었던 탓인지 '내가 아큐를 위하여 정전을 쓰려고 한 것은 벌써 일이 년' 어쩌고 하는 첫 문장 정도만 기억날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았다. 평론을 통해 몇몇 단면을 만나봤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조만간 다시 <아Q정전>을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만 한 채 아큐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차, 판지를 덧댄 독특한 표지와 멋진 판화가 잘 어우러진 <아Q정전>을 접하고는 반가움에 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품팔이를 하는 아Q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점점 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전개되는 <아Q정전>은 분량은 짧지만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어떤 내력을 가진 사람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저 웨이좡 마을의 사람들이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그런 아Q. 하지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놀라운 정신승리법으로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동네 과부인 우어멈에게 찝쩍거리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그동안 무시하던 왕털보에게 욕을 퍼부었다가 손찌검을 당하는 등의 굴욕을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겪은 굴욕을 비구니 같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풀다가 결국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는 수단으로 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그가 꿈꾼 혁명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채 그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반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오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 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리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 80
 
   

  <아Q정전>은 혁명과 그 흐름에 휩쓸린 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의 허구성을 그린다. 이전 사회에서도 배제당한 아Q는 혁명을 꿈꾸지만 혁명당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Q 같은 하위계급은 혁명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혁명 전과 다름 없이 무시당하고 배제된다. 얼핏 <화랑의 후예>를 생각케 하는 아Q. <아Q정전>으로 그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이야기 속에서 그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아Q가 아닌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루쉰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결국은 정신적으로 승리하고 마는, 때로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짓게 하는 아Q의 모습을 통해, 그의 공허한 승리를 통해 다시금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독자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 혁명이 일어나도 그 놈이 그 놈인 세상을 견뎌야 하는 수많은 아Q를 위한 위로. 어쩌면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민중의 계몽이 아닌 위로가 아니었을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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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쥐벽서 사건과 우리의 아Q
    from 루쉰, 투창과 비수의 문장들 2011-07-13 12:20 
    스스로 모독하다! 최진호(수유+너머 연구원) 아Q는 ‘한때는 대단했고’ 견식도 높았으며 게다가 ‘진정한 일꾼’이니 제대로라면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약간의...
 
 
 
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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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 살던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난파되어 몇몇 동물들과 구명보트를 타며 일어나는 이야기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와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파이 이야기>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이미지와 종교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좀더 암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목자와 표지 이미지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두 책을 다르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저자 얀 마텔과 여러모로 비슷해 보이는 화자 '헨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두번째 소설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은 헨리는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그렇게 다양하면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방식은 왜 천편일률적일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이에 헨리는 한쪽 페이지에는 소설을 맞은편 페이지에는 평론을 수록한 플립북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원고를 접한 관계자들의 거절과혹평이 이어지고, 결국 그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자신이 소설가임을 알려주는 것은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뿐. 그렇게 도착한 편지 가운데 한 독자가 보내온 플로베르의 단편을 읽게 된 헨리. 동물의 죽음에 대한 부분에 형광펜이 칠해진 그 단편을 읽어내려간 헨리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린다. 마침 독자의 주소가 그의 집 근처였기에 그는 편지나 전할 요량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제사로 일하고 있는 헨리라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소설과 헨리와 박제사 헨리. 두 사람은 닮은 듯 다르다. '글'을 매개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지만, 그 방식이나 삶에 대한 자세는 사뭇 다르다. <20세기의 셔츠>라는 희곡을 써내려가고 있는 박제사 헨리는 이야기 속에서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고함원숭이 버질을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언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먹을 것을 갈망하고, 자유를 소망하는 두 동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독자는 어느샌가 소설가 헨리처럼 이 이야기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버질)와 베아트리체(베아트리스)의 안내를 받는 것처럼 <베아트리스와 버질>에서 베아트리스와 버질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안내를 맡는다. 그동안 그저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으로만 기록된 홀로코스트. 그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소설가 헨리가 이룰 수 없었던 그 목표를 박제사 헨리는 <20세기의 셔츠>를 통해 이뤄낸다.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우리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라는 대화를 나누는 베아트리스와 버질. 그들의 말처럼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야기 말미에 붙은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까지 읽어가면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낼 수 있을까. 베아트리스와 버질. 두 안내자를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홀로코스트 한복판이었다. 은유와 비유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만큼 더 탄탄한 이야기로 돌아온 얀 마텔. 그가 다음으로 풀어갈 주제는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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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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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 때문일까? 프랑스 소설에서 종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는 등장인물을 만나곤 한다. 얼마 전에 읽은 공쿠르상 수상작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기억을 잃고 자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언노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사고로 72시간 동안 코마에 빠진 뒤 깨어난 주인공. 모든 기억을 잃지 않은 듯하지만, 정작 병원 문을 나서고 보니 그의 자리에 자신과 똑같은 추억과 똑같은 기억을 가진 남자가 존재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주는 사람도, 신분증 같은 서류상의 증거물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 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간된 『언노운』. 영화를 먼저볼까, 원작 소설을 먼저 볼까 고민하다가 반전을 알고 봐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에 이끌려 원작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와 원작 모두를 보고 난 뒤의 결론은 영화와 원작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는 것. 일단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코마에 빠진 뒤 깨어난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는 같지만, 영화와 원작을 가르는 요소는 '액션'과 '음모'다. 소설에서의 반전은 문자 그대로 반전으로 존재한다. 주인공 마틴 해리스의 자기 증명과도 같은 독백과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식물학적 지식에 대한 기억이 주를 차지해 영화보다는 훨씬 주인공 내면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느끼는 혼란, 자신을 증명할 것이 없어 느끼는 절망이 영화의 원작인 『언노운』 속에는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원작에는 거의 없었던 액션이 끼어든다. "사라진 72시간 액션을 재구성하라"라는 영화 포스터 속의 카피처럼 영화 속 마틴 해리스는 소설 속 이미지보다는 강하다. 자신의 기억에 없는 행동, 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 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소설 속 마틴 해리스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누군가 그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줄 때까지는 그는 각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에는 차이가 있어도, 액션과 음모가 가미되어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화려하게 단장했다 해도 기본적으로 『언노운』이 제시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다.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을 증명할 어떤 방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인지, 무엇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전 세계 동시 개봉을 택했다는 말처럼 『언노운』의 매력은 반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곳곳에 깔린 복선이 눈에 들어와 더 재미가 더해졌다. 덤으로 원작과 영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이라면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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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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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 거리에 반짝이는 풍경, 모금을 위해 종을 울리는 구세군, 20세기의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 <나홀로 집에> 등등.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이 아닐까 싶다. 구두쇠의 대명사 스크루지가 유령을 만나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배워간다는 내용이야 따로 읽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자(?) <크리스마스캐럴>을 읽기 시작했다.

  표제작인 <크리스마스캐럴>을 비롯해 이 책에는 총 7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 에세이 등 방식은 조금 달랐지만 '크리스마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만큼은 공통적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찰스 디킨스 연구자인 마이클 슬레이터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글을 통해 왜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 천하의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해 베풀며 살게 된다는 <크리스마스캐럴>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들이라 이야기로의 매력은 떨어졌다. 그저 '알고 있다'고 느껴온 작품을 한 번 읽은 데에 의미를 두고 싶다. 흥청망청 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감사와 즐거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조금은 변질되어버린 크리스마스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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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3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스 디킨스가 왜 크리스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지 더 궁금해지는 리뷰~^^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2010-12-30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10-12-30 22:55   좋아요 0 | URL
내년 크리스마스에 한 번 읽어보세요 ㅎㅎㅎ
순오기님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하고 힘찬 새해 맞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