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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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텔톤의 예쁘장한 색감도 마음에 들었지만, "용기, 믿음, 정의……지금, 세 여자가 닫힌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린다!"라는 뒤표지에 카피와 백인 여성과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 그리고 100주가 넘게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책이라는 점 등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됐다. 월요일 오전 출근길 읽기 시작한 이 책을 50페이지도 채 읽기 전에 어서 주말이 오기를, 아니 휴가라도 내고 흐름을 쭉 이어가 이 책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친구와의 약속마저도 미뤄가며 오랫만에 '이야기'가 주는 힘에 한없이 매료됐다.

  1960년대 초, 미시시피주 잭슨. 다른 지역에서는 유색인과 백인의 경계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남부 지역인 잭슨에서는 KKK단에 대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혀가 뽑히기도 하고, 허위 고발이나 벌금, 감옥에 가거나 집단 린치를 당하는 등 유색인에 대한 억압은 계속된다. 그리고 여기, 속은 썩을대로 썩어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기만 한 잭슨을 살아가는 세 여자가 있다. 목화농장의 딸로, 갓 대학을 졸업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스키터. 베테랑 가정부로 열일곱 명의 백인 아이를 길러낸 아이빌린. 가정부치고는 입이 걸어 문제가 되지만 음식 솜씨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미니. 자라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세 여자. 갑과 을의 관계, 주종관계로밖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 글 쓰는 것과 관련된 경력을 쌓기 위해 지역 신문의 살림 관련 칼럼을 쓰게 된 스키터가 친구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아이빌린의 도움을 받으며 둘은 조금씩 다가간다. 그리고 스키터는 그를 독려해주는 유명출판사의 수석편집자에게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고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을 받는다. 처음에는 백인들이 자신에게 앙갚음을 할까봐 두려워하던 흑인 가정부들은, 아이빌린을 시작으로 하나씩 둘씩 가정부로서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 어렵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흑인 가정부를 위해 스키터는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바꾸고, 지역도 밝히지 않지만 불안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책. 처음엔 조용히 묻힐 것 같았던 책이 지역방송에서 소개되며 잭슨의 핫이슈가 되고, 책에 참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가정부에 대한 마녀사냥도 시작된다. 점점 압박을 받는 세 사람. 과연 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남부가 배경인, 흑인이 등장하는 소설은 많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뿌리> <앵무새 죽이기> 등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그렸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헬프>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백인과 유색인이라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헬프>가 다른 작품들보다 돋보이는 것은 표지에 쓰인 파스텔톤의 색감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여주인 힐리에게 미니는 차마 남에게 떠벌릴 수 없을 재료를 넣어 케이크 두 조각을 보낸다는 이야기나 음식을 비롯한 살림에 전혀 재능이 없는 백치에 가까운 셀리아와 미니의 만담(?) 등은 이 책이 가질 수밖에 없는 묵직함을 완화시켜준다. 이런 완급의 조절 때문인지 내용도, 캐릭터도 전혀 다르지만 잭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읽으며 마치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을 때처럼 어쩐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나 힘들다. 하지만 그것은 계약의 만료에 따라 어느 정도 끝날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이 사회를 뒤엎지 않는 한, 혹은 평생을 쏟아도 끝나지 않는 관계도 있다. 끈질기고 위험한 싸움. 마틴 루터 킹 등의 인물이 앞장서 조금씩 유색인들의 목소리를 높여가지만 남부에서 유색인이건 유색인이 아니건 유색인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숨을 건 행위다. 부당함 앞에 늘 무릎을 꿇어야 하고, 보고도 못 본 것처럼 듣고도 못 들은 것처럼 그저 그렇게 자신을 죽여가면서 살아가야 했던 유색인들. <헬프>는 그들이 용기를 내 꺼내는,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보조자로서의 그들의 삶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 5년 동안 60번이나 출간을 거절당했다는 이 소설. 그 세월 동안 분명 <헬프>는 잭슨 마을의 '가정부'들처럼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제법 두툼한 소설이지만 오랫만에 소설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책. 영화로 만나게 될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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