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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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만 하더라도 안철수 원장(그 위원회의 이름은 너무 길어 잘 기억이 안 난다, 무슨 융합..이었던 것 같은데 편하게 그냥 원장이라 부르겠다)이 이렇게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박원순 현 시장에게 서울시장직을 양보한 것도 뜻밖의 일이었는데, 그게 바로 '차기 대권 준비하는 것 아니냐'하는 전망으로 나아가게 될 줄이야.

 

 2011년에 나온 이 책은 안철수 원장의 강연, 패널 질문과 토론, 청중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보면서 만약 1년 뒤인 지금 안철수 원장이 강연을 한다면 사뭇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패널들도 흔히 전문가(그들이 뭐에 전문적인지는 아무도 모를..지도)라 불리는 사람들로 채워졌을 거고, 패널 질문들은 거의 다 대권 도전 여부나 대통령 안철수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들만 나왔을 것이다. 강연 내용은 본인이 하는 거니 제처두고라도 말이다. 다행히(?) 이때는 안 원장의 개인사와 그의 가치관, 이룬 일 등을 파고들었기에 신문 정치면을 달아오르게 할 내용이 크게 많지는 않았다. 아, 지금이라면 핫 아이콘인 안철수의 A to Z가 모두 중요하므로 동문 강연회에서 나왔던 발언 하나조차도 대단한 의미가 생길지 모르겠다.

 

 책은 담백하고 재미있었다. 간신히 백 쪽을 넘긴 얇은 책이라 안철수란 사람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빈약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평소 가치관과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풍성하기에 그런 오해는 접어둬도 좋다. 무릎팍도사에 나왔던 내용들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조금 더 담담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TV 프로그램의 특성상 더 눈길이 가는 내용만 선택돼서 나온 방송보다는 솔직히 덜 재미있었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다. 안철수가 살아온 삶이 곧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인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을 밝히는 데 관심이 있었던 그는 강연에서 대학시절에서부터 하루에 3시간만 자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던 시간들, 경영자로서 첫 발을 내딛고 안랩을 키워간 시절을 두루두루 훑었다. 의사, 프로그래머, 경영자, 교수 입장에서 그가 경험했던 것과 거기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평범한 사람이다 못해 게으르고 의지 박약인 나로서는 신세계와도 같은 얘기가 펼쳐져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안될지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나도 늘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렴풋한 상태인데,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보고 감명받았다.

 

 책임감이 강한 자기 성격을 살려서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여해 공부도 하고, 사람들이 모르던 것들을 알려주는 역할도 자처하고. 예전 같았으면 스스로를 책임감 많은 사람으로 정의했겠지만, 이제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아서일까 쉽게 그렇게 말 못하겠다. 욕심만 많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아서 이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계속 저울질하며 괴로워만 했을 거다. 안철수에 비판적인 이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다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마음 먹었던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안철수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때문에 성인(聖人) 컴플렉스가 그를 뒤따라다니는지도 모른다.

 

 진로 고민, 특히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며 살지 궁리할 때에 이 책을 봐서 그런지 마음에 콕콕 박히는 구절이 많았다. 무언가 하려고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안철수의 3원칙은 제때에 딱 도움이 됐다. 과거는 잊자,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자, 미래의 결과에 미리 욕심내지 말자. 두 번째 원칙이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다 못해 거의 자유롭지 못한 비겁한 나에게 적절한 조언이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뭘 원하는지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라는 것. 어제 아주 중대한 결정을 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두 번째 원칙을 생각했다. 아직 시작도 안 해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잘한 것 같다. 당당하게 나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싶어요, 라고 밝힐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답을 구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현대의 인재라고 하는 점도 항상 걱정하던 부분을 들킨 것 같아서 뜨끔했다. 기자를 꿈꾸는 내게 '좋은 질문을 못하는 점'은 항상 스트레스였다. 좋은 질문, 아니 아예 질문을 할 시도도 안 하는 게 불만스러워서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1) 아는 것이 없다=전문성 부족 2) 평소 의문을 잘 가지지 않고 주로 수용하는 입장이기 때문 = 무딘 시각. 안철수 역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한 답으로 한 분야에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상식과 포용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난 두 가지 다 안 돼 있군. 이런 사람이 기자가 되는 건 재앙이겠지. 습관적으로라도 질문을 해 버릇해야겠다. 사람을 당황시키거나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사소한 것도 질문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

 

 무릎팍도사에서든, 안철수의 생각에서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든, 안철수란 사람이 신선했던 것은 '상식적인 생각, 보다 사람을 위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기 생각을 또렷이 말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너무 교과서적이어서 심심할 수도 있을 만큼 그의 말과 생각과 행동은 바르고 곧았다. 안철수가 가진 기업관도 마음에 들었다.

 

 

 왜 무리를 지어 일하는가?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크고 의미 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여럿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기업의 목적은 수익을 내는 것인가? 수익이라는 것은 기업 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다.

 

 반기업 정서를 가진 내게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인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라 좋았다. 묻었던 희망을 다시 품게 해 주었다. 아무도 이런 기업관을 내세우지 않았기에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안 좋은 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점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늘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고 본다. 모든 혁신은 처음엔 비웃음당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기업가가 아닌 유력 대선 후보로, 교수로 남아 있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기업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선사했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 제일 부족한 게 희망인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든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사람이라 신경이 쓰인다. 기대하고 있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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