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이라는 볼라벤도 종로구 명륜동을 덮치진 못했다.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구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신기했을 뿐, 다른 어떤 특이점도 찾지 못했다, 오늘의 하늘에선. 바람이 세차게 불어 빗방울이 튀는 방향이 달라지긴 했으나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미미했다. 오히려 어제 잠들기 전 세수할 적에 화장실 뒷창문을 때리던 바람이 배는 더 강했을 것 같다. 그땐 정말 이렇게 태풍이 오는구나, 하고 마음 졸였었는데. 물론 내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태평한 소릴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사로 태풍 피해 소식이 뜰 때마다 같은 나라 안에 살면서 태풍을 느끼는 감도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에 놀란다.

 

 잔말이 많았다. 태풍 때문인지 칙칙한 날씨 때문인지 개강을 1주도 남기지 않은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질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빌리러 대출대로 오는 사람들이 무척 적었다. 평소 같았으면 컴퓨터를 했겠지만, 읽겠노라 읽겠노라 미뤄두었던 책을 집었다. 디자인 업계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의 책이라 그런가 표지 디자인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용이 재미있을지는 아리까리했지만 이야기를 한 편씩 읽으면서 그런 걱정을 쉽게 날릴 수 있었다. 좋은 디자인을 봤을 때처럼 계속 시선을 주게 되는 책이었다.

 

 아직 80여쪽밖에 읽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는 거니까. 디자인의 디귿자도 모르는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알맞은 눈높이의 책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책이 '진국'일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본인의 심미안을 찬탄(=자화자찬)하며 감격해한달까. 이제 글 맺고 다시 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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