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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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중권이 가장 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을 소화하고 흡수해서 유감이다. 생각을 넓히고 글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의 '개념'을 설명했지만, 어찌 그 안에 진중권의 목소리와 생각이 들어가 있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는 새로운 지식을 물어다 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나는 물어온 그 지식을 꼭꼭 씹으면 혹여 손상될까봐 있는 그대로 꿀꺽 삼킨 느낌이었다. 비판적 수용이 가능할 만큼 여물지 못한 까닭이다. 때때로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졌다. 이렇게 다 맞다 맞다 하고 읽으면 안 되는데,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하고. 어떤 대상에 대한 지나친 열광과 팬덤의 광기를 혐오하는 그인데, 참 싫어할 만한 짓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새 모이만큼 작았기 때문이었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2. 그래서 이 책은 적어도 3번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장을 모두 넘겼지만 이 책 속의 말들이 내 것이 되지는 못했다. 어려운 책이라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되짚으면서 읽는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만큼 철학적 용어는 난해했다. 그나마 몇몇 개 알아들은 것은 내게도 친숙한 예를 동반했을 때였다.'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면 안 되는 어느 영화'나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 허경영, 이정희, 유시민 등의 낯익은 소재가 나왔을 때 비로소 안심하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3. 책은 왜 읽는 것일까? 결국 내가 필요한 것, 혹은 내게 필요한 것, 알아야 할 것 등을 그저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읽는 게 아닐까? 책을 이해하고 뜯어본 후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야 책읽기가 완성된다. '내 것으로 만들기'는 쳐낼 것은 쳐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하는 단순한 차원에서부터, 저자의 생각에 맞서서 내 생각을 키워보는 것까지를 포괄한다. 어렵지 않은 시중의 책은 1번의 묵독 혹은 정독으로 그 작업이 가능하지만, 완전히 생소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3번은 읽어야 한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었다.

 

4. 철학책이 그만큼 어렵다는 걸 강조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지난 번 『페미니즘의 도전』에 나와 있듯 어려움과 재미는 연속선상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쉽게 어려운 개념을 얻고 싶었던 욕심 때문에 책읽기를 그르친 것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에 파타피직스, 범주 오류, 앵프라맹스, 시뮬라크르, 푼크툼 등 상당히 낯선 개념들을 가지고 한 권의 온전한 책을 만드는 대중저술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본인의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무수한 주제를 가지고 전방위 글쓰기를 하는 진중권은, 독자 입장에서도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도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가치관 측면이나 글쓰기 부분에서 꼭 닮고 싶은 사람이다.

 

5. 적어도 3번은 읽어야 한다고 호언했으니 1번 묵독 후 마지막 1번은 개념 정리하는 데 쓸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을 적용할 만한 사례와 함께 정리해보려고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런 쉬운 속담을 내가 맞게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 잠시 네이트에 다녀왔다. 헐.......)라는데, 서 말의 구슬을 준비해줬으니 어서 꿰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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