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어떤 경우는 왜 보는 것만으로 안 되는 걸까요? 언제나 뭔가를 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진심을 알 수 없습니다. 진심이 3차원이라고 한다면 지금 여기는 1차원입니다. 그러니까 1차원에서 3차원을 보기 위해서는 2차원을 거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우리는 1차원만으로는 진심을 볼 수 없습니다. 2차원에서 1차원을 보면서 느낌과 의미를 찾아낼 때 비로소 우리가 진심이라고 부르는 세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진심은 상식의 반대편이 아니라 상식을 절실히 껴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김영하의보다를 읽으면 잘 설계된 우회로를 걸었다는 느낌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시선이 밝고 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정확한 생각을 한다는 것에 놀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좀 더 살펴보면 독일의 사상가 크라카우어가 말한 대기실의 사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철학이라는 보편적 진실이 맨 끝이라고 했을 때 역사, 문학은 끝에서 두 번째, 즉 대기실입니다. 생각해보면 대기실은 이쪽에서 궁극의 진실이라는 저쪽으로 가기 위한 중간쯤이라 곧바로 철학으로 직행하고자 했다면 굳이 우리가 대기실에 머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중간이 없다고 했을 때 문자 그대로 진심을 알기가 막막하다는 것이 문제로 남겠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대기실에 머문다고 해서 그 시간이 순간이라고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대기실에 들어오기 전의 어떤 경우들이 순간입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순간들이 생각되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대기실의 사유는 곧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순간들을 제대로 보기 위한 영원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 삶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분명 어떤 순간은 진심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놓쳐버렸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면 후회스러운 얄미운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해서 생각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은 또 다른 모순입니다. 동시에 생각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작가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던 것을 고백하면서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라고 확신을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생각이 보이는 것에서 안 보이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면 글은 보이는 것에서 안 보이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과 맞닿은 진심의 경계, 그 속에서 찾아내는 작가의 독특한 산문은 생각의 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대화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우리 가슴 속에 불러일으킵니다.

 

작가에 따르면 insightoutsight의 차이는 무지에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혁명 때 군중들을 격분시켰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을 들어보세요.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지"라는 말! 아웃사이트에서 보자면 가난을 조롱하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난에 대하여 무지했는지를 인사이트해보면 정말 쓸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에게도 어린 시절 부유한 친구로부터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란 지금에 와서야 순수한 호기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순수한 호기심이 어떤 진실을 위한 여닫이쯤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안에 갇혀 버리는 무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아주 간단해보입니다. 삶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하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요? 하나, 작가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을 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부자 아빠가난한 아빠를 모두 죽일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집니다. 이러한 의식은 곧 윤리적 생존이 아니라 생존의 윤리 때문입니다. , 작가처럼 정신적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옷을 입는 감각이 아니라 옷을 입지 않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패스트패션으로 사라집니다. , 라캉이라고 하면 히스테리자라고 불렀을 것인데 자신의 욕망이 만족되지 않는 상태로 타인의 욕망으로 은폐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 말대로 인간이라는 작은 지옥을 보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요?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가 작은 지옥이라는 것을 모른 체 살다가 이제야 블랙홀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작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난데없이 불가능한 인간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착시가 아닙니다. 엉뚱한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을 분명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p185)

 

이렇듯 작가는 5년 만의 독특한 산문집에 걸맞게 우주를 떠돌던 정신적 무중력 상태에서 벗어나 강력한 중력이 존재하는 지구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가 아니라 누구에게 본 것을 진심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단지 생각의 끝이 아닌 또 다른 대화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작가의 눈으로 진심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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