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가사 중에서

 

 

이 세상을 숨 가쁘게 살아가는 방식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는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즐겨 불렀다. 하지만 삶의 박자를 전혀 맞추지 못하며 기대에 못 미쳤다. 무엇을 하고 싶은데 나는 한 박자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빨랐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라는 게 이거구나 싶을 정도로 거짓말로 살아야만 했다. 거짓말은 지금의 삶이 초라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변명과 다르지 않았다. 이럴 때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짓말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할 것이다.

 

 

헤밍웨이의 단편집 제목과 같은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해리는 자신이 거짓말로 살아왔기 때문에 ‘거짓말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비극적인 삶을 끌어안고 있다.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의 직업은 작가였다. 그러나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불행하게도 그의 재능의 파괴자였다. 사랑하면 더 완전한 인간에 가까워지리라 믿었는데 오히려 그는 ‘등뼈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물어버린 어떤 뱀’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자신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도마뱀이 더 괜찮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돌이켜보면 거짓말로 산다는 것은 자기 삶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유쾌한 방법일 것이다.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고 거짓말만 하게 되었을 때 돈값을 훨씬 잘할 수 있다는 해리의 절망을 공감하게 된다. 돈값은 우리의 영혼을 콜레스테롤로 가득 채우기 때문에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죽음 앞에서 딱딱해질 정도라고 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혼란스러워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통증을 소진하는 것은 어떨까? 거짓말을 파괴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은 다른 영혼이 되는 것인데 킬리만자로에 올라가는 것은 아주 좋은 파괴이지 싶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빛과 어둠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

 

 

그러면 왜 킬리만자로를 일까? 우리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킬리만자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들이 마치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거나’(「킬리만자로의 눈」), 반대로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나 자신을 놓아버리면 내 영혼이 몸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잠을 자지 않고 누워 있으면서 뭔가에 정신을 파는 방법’(「이제 내 몸을 뉘며」)이었다. 그래서 평행한 길은 놔두고 근육이 아플 정도로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것은 ‘모든 걸 가질 수도 있었는데, 매일 우리는 그것을 더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하얀 코끼리 같은 산」) 피곤하기 때문이며, 모든 것 즉 ‘생각할 의무, 써야 할 의무, 다른 의무들을 등 뒤에 뒤에 버리고 왔다’(「심장이 둘인 큰 강 1부」)는 행복이 아닐까?

 

헤밍웨이의 단편집『킬리만자로의 눈』은 아주 단순하게 거짓말을 파괴하는 소설 같았다. 어느 순간 삶에 의욕을 잃고 죽음 혹은 허무에 빠진 우리에게 사냥을 하거나 스키를 타거나 송어 낚시를 하라고 한다. 사소하다고 하면 너무 사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아주 ‘좋은 파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매일 맞고 꺽이며 사는’(「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두려움에서 벗어나 ‘댐이 터진 것 같은 절대적 흥분상태’를 느낄 것이다.

 

 

일찍이 단편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는 문학이란 삶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삶에 충실하고, 삶을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인물은 움직이는 캐릭터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헤밍웨이의『킬리만자로의 눈』을 읽는 내내 마음이 어디론가 쏜쌀같이 움직였다. 낮보다는 밤이 더 강렬하여 잠들지 못하는 밤에 불을 켜두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빛이 아주 좋고 정말 아름답다’(「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혹, 거짓말로 들리겠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느 누구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